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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55화 (3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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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화 2장. 작은 돌멩이 하나가 연못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2)

쉬악!

그 어떤 조짐도 없이 관무외의 검이 검율천을 향해 날아왔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움직이기 전에 예비동작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위력이 큰 초식일수록 그랬다. 하지만 관무외의 동작엔 그런 게 없었다.

사삭!

마치 유령처럼 다가와 검을 휘두르는 공격엔 그 어떤 예비 동작도 전조도 없었다.

핏!

검율천의 어깨가 갈라지며 피가 튀어나왔다.

수많은 전투를 하며 실전 감각이 예리하게 곤두섰다고 자부하는 검율천조차도 미처 피하지 못할 정도의 은밀한 검격이었다.

“큿!”

“겨우 그 정도에 놀라선 곤란하지. 이제 겨우 여흥의 시작일 뿐인데.”

관무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실로 오랜만의 강호행이었고, 제대로 된 무인과의 싸움이었다.

천사교에 있어 검율천은 심각한 위협이었다.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검율천은 천사교의 흐름을 되짚어 근원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있었다.

이대로 그를 내버려뒀다가는 천사교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대업을 이루는 중대한 시기였다.

오랜 작업과 기다림 끝에 마교가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의 방해도 있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그가 나선 것이다.

쉬가악!

그의 검이 공기를 가르며 검율천의 목젖에 근접했다. 순간 검율천이 고개를 돌려 간발의 차이로 관무외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해 긴 자상을 입고 말았다.

검율천이 손으로 상처를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관무외는 그가 순순히 물러나도록 놔두지 않았다.

쉬쉬쉭!

그의 검이 연신 검율천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검율천이 뇌격술을 펼쳐 반격을 할라치면 어느새 그의 신형이 모습을 감췄다. 검율천과 같은 절대고수의 안력으로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주위와 동화되는 것이다.

“소용없어. 내 검은 너와 같은 애송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야.”

“큭!”

“애초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달라. 너는 겨우 우리를 쫓기 위해 무공을 펼치지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기를 든 것이거든.”

그렇게 살벌한 검술을 펼치면서도 그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검율천은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관무외는 반격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그를 비웃었다.

“뭐든지 선이 있는 거야.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너희들은 그 선을 넘었어.”

“그 말은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간다는 말이군.”

“뭐?”

콰앙!

그 순간 검율천의 반격이 시작됐다.

뇌격술의 제일 식인 벽력층층(霹靂層層)이 펼쳐진 것이다.

쿵! 쿵!

관무외가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찌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바닥엔 그의 족적이 뚜렷하게 남았다.

검율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관무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쿠우우!

이식인 혈살우(血殺雨)가 펼쳐졌다.

세상 전체에 피의 비가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내리는 비를 피할 수 없듯 관무외 역시 피의 비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관무외였다.

슈우우!

그가 순식간에 허공중에 모습을 감췄다. 뒤이어 그의 반격이 펼쳐졌다.

쉬가악!

환상처럼 공간을 가르며 관무외의 검이 검율천의 코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관무외의 검은 더 이상 검율천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이미 검율천이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당한 공격에 또 당할 정도로 검율천은 약하지 않았다. 그의 뇌격술은 싸움을 거듭할수록 발전을 했다.

콰콰콰!

검율천의 뇌격술이 폭풍처럼 연이어 펼쳐졌다.

두 사람의 주먹과 검이 허공에서 연이어 격돌했다.

관무외는 마치 유령처럼 공간을 이동했고, 검율천은 거머리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관무외에게 공간을 주면 불리해지는 것은 검율천이었다. 반대로 관무외는 간격을 넓히는 것이 유리했기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검율천은 이를 악물었다.

오대무객에 속하는 절대의 무인이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가 천사교가 조급함을 느낀다는 증거였고, 자신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었다.

“챠앗!”

순간 검율천이 주먹을 연거푸 일곱 번 내질렀다.

권기가 연거푸 발출되고, 합쳐졌다. 그렇게 합쳐진 권기는 순식간에 바퀴 형상이 되었다.

제삼 식 대천륜(大天輪)이었다.

쿠오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에 일대의 공기가 다 요동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관무외는 유령참살(幽靈慘殺)이라는 최강의 살법(殺法)을 펼쳤다.

극강의 두 초식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쿠와아앙!

굉음과 함께 방원 삼십여 장이 초토화됐다. 대지엔 회오리 문양이 상흔처럼 새겨지며 속살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 검율천이 홀로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디서도 관무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주했나?”

무언가 이상했다.

관무외는 결코 이렇게 허무하게 도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겨우 이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었다.

검율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문득 그의 시선이 역관을 향했다.

“설마?”

그가 역관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그는 순식간에 거리를 단축해 역관의 한 객잔 별채에 도착했다.

벌컥!

“대형?”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얼굴의 소년이 그를 맞이했다.

“명천?”

“예! 대형, 저예요.”

그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는 바로 명천이었다.

예상대로라면 그는 공령살객들의 목표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음유경이 그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검율천이 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유경은?”

“누나는 오지 않았는데…….”

“설마 유경이 진정한 목표였던가?”

검율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제야 관무외의 이해되지 못할 행동과 등장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음유경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아름드리나무가 잘려 나가고 비탈진 경사를 깎아 내어 평평하게 다졌다. 그렇게 생겨난 평지에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만든 모옥이 들어섰다.

요즘 소림사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무림맹의 무인들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숙소가 부족하게 된 소림사에서는 연일 개간 작업과 함께 모옥을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었고, 무림맹의 하급 무사들도 합류했다. 그들이 흘리는 굵은 땀방울이 숭산을 적시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걷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군사 남궁창을 비롯한 수행원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참담한 표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천하의 무림맹이 어쩌다가…….’

멀쩡하던 자기 집을 강탈당하고, 졸지에 남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게 된 격이었다. 때문에 먹고 자는 것까지 주인집의 눈치를 봐야 했다.

소림사는 최선을 다해 무림맹 무인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또한 더부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무림맹이 많은 것을 요구할 처지도 되지 못했다. 때문에 소림사에서 무림맹은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남궁창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었다.

“어, 저기?”

“맹주님이십니다.”

남궁창을 수행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깼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맹주인 남천산과 적경천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맹주님!”

남궁창과 수행원들이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을 맞이했다. 그러자 남천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이 많구려, 군사.”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만났으니 잠시 함께 걷지 않겠소?”

“예!”

남천산의 말에 남궁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를 적경천과 수행원들이 조용히 따랐다.

“일은 잘되어 가시오?”

“일단 각 문파에 친서를 보내 최대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협조는 잘해 주나 모르겠소.”

“무림맹이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이구려!”

남천산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당장이야 어수선하겠지만, 그래도 보름 안에는 어느 정도 전력을 재정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악양의 무림맹 탈환을 노려볼 만할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전력이 많이 부족하오. 더군다나 그쪽에는 교주가 합류했소. 복마전이 따로 없을 것이오.”

“알고 있습니다. 허나 차분히 전력을 보강하다보면 반드시 무림맹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절대의 반열에 오른 고수들을 많이 영입해야 하오. 하급 무인들이 제아무리 많이 있어 봤자 절대의 무인 한 명 영입하는 것보다는 못하니까.”

“그건…….”

남궁창이 말끝을 흐렸다.

그라고 절대 고수들을 왜 영입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강호에 절대 고수가 많을 리 없었다. 그렇게 흔하다면 ‘절대’라는 수식어가 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호에 알려진 절대 고수의 수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 정도 되는 무인들은 자파에서도 보물 취급을 받는다. 그런 이들을 무림맹으로 완전 영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남천산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젠 때가 되었소.”

“무슨?”

“적 선배님과 비슷한 전대의 무인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들을 정식으로 영입할 것이오.”

“하지만 그건…….”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소? 무림맹에서 퇴각할 때도 적 선배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오.”

“으음!”

“적 선배님의 동료들을 영입한다면 무림맹은 단시간 안에 예전의 성세를 회복할 것이 분명하오. 그렇게만 된다면 악양을 탈환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오.”

남천산의 음성엔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남궁창은 남천산의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적경천을 바라봤다.

한때 천도왕이라는 별호로 천하를 질타했던 절대고수였다. 남천산의 말처럼 그가 있었기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소림사로 퇴각할 수 있었다.

이제 적경천은 잊혀진 전대의 고수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엄청난 무위를 목도했고, 공을 세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향해 존경의 염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창은 꺼림칙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적 선배와 비슷한 은거 무인들이 합류하는 것은 분명 맹과 천하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허나 그렇게 되면 맹주의 힘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 견제할 수단이 없게 돼.’

이대로 남천산이 무림맹의 주도권을 갖게 되면 남궁창은 닭 쫓는 개 꼴이 되고 만다.

남궁창이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수행원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미 대세가 넘어간 것이다.

남궁창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 이상 반대할 명분도, 근거도 없었다.

그가 적경천을 바라봤다.

“저희가 부탁드리는 것이 폐가 되지 않겠습니까?”

“전혀!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들은 오히려 강호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게 되어 더 좋아할 테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소.”

적경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천산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바라봤다.

“언제쯤 그분들이 합류할 수 있겠습니까?”

“이럴 줄 알고 이미 연통을 보냈다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오.”

“다행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오.”

적경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남궁창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전력이 크게 증가함을 감축드립니다, 맹주님.”

“아직 축하는 이르오. 저 간악한 마교도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나서 받아도 늦지 않소. 그러니 우리 최선을 다합시다.”

“알겠습니다.”

남궁창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땅을 보고 있는 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지금 당장은 고개를 숙이지만, 언제까지 이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거라. 이대로 무림맹을 당신들 손에 넘겨주지는 않을 테니.’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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