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
356화 2장. 작은 돌멩이 하나가 연못 전체에 파문을 일으킨다(3)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었고, 더위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사이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호남성이 완전히 마교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악양을 점령한 마교는 무서운 기세로 호남성 전체를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문파들이 멸문을 당하거나 봉문을 했다.
호남성은 이제 완전한 마교의 소유가 됐다. 마교는 호남성을 철저히 봉쇄했다. 외부와의 접점이 끊긴 호남성은 완전히 고립되어 외부에서는 그 소식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호남성을 거점으로 하는 몇몇 상단만이 외부로 출입을 하며 내부 소식을 알음알음 전해 줬다.
호남성을 장악한 마교는 전력을 더욱 보강했다. 천하 곳곳에 은밀히 흩어 놓았던 전력들을 호남성으로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삼삼오오 흩어져서 호남성으로 들어온 마교의 전력들은 악양의 본단에서 합류했다. 그렇게 모인 전력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마교는 절치부심했고, 수많은 전력들을 키워 냈다. 이제까지는 그들을 철저히 숨겨 왔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호남성은 그들의 세상이었다. 곳곳에 마교의 지부가 세워졌고, 그들은 무섭도록 빠르게 세를 늘려 갔다.
수많은 백성들에게 포교를 하고, 개중에 쓸 만한 재능을 가진 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를 확장한 마교는 그 기세를 몰아 강서성까지 침공했다.
호남성과 인접한 강서성에는 구대문파나 오대세가 같은 커다란 문파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무림맹의 영향력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때문에 강서성은 너무 쉽게 마교의 손에 넘어갔다.
중원의 허리에 해당되는 호남성과 강서성이 마교에게 장악됨으로써 중원 남부는 고립되게 되었다.
중원의 명문대파들은 거의 대부분 중원 북부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남부의 위험에 개입할 수가 없었다. 유일한 대안이 무림맹이었는데, 그들 역시 소림사가 있는 북부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에 중원 남부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리고 마교는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남부를 하나씩 장악해 갔다.
마교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들이 장악한 곳에 있던 문파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응징과 폭력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잡혀갔다. 그야말로 암흑기의 도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남부에 있던 무인들은 자파를 버리고 북부로 도주했다. 어떻게 하든 무림맹에 합류한 후 남부를 다시금 재탈환하려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만큼이나 천하의 혼란도 그렇게 극에 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무림맹과 구대문파 등이 이 혼란을 끝내 주길 원했다. 무림맹 역시 마교의 확산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으로 보였다.
무림맹이 그렇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무인들이 나타났다.
파죽지세로 남부를 장악해 가던 마교의 행보에 제동을 건 네 명의 젊은 무인들. 난세에 홀연히 일어서 마교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그들을 가리켜 강호인들은 사신성(四新星)이라 불렀다.
저 하늘에 찬연히 빛나는 별처럼 난세에 존재감을 드러낸 무인들. 그들은 구무룡처럼 강호의 이름난 문파 출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무공일도만 걸어온 무인들이었다. 명성보다는 실력으로 무장한 이들.
그들은 강호사에 등장하자마자 난세의 별이 되었다.
천궁사수(天弓射手) 염초월.
탈명객(奪命客) 오경의.
참마도객(慘魔刀客) 대군상.
환상선자(幻想仙子) 녹수빙.
사람들은 그들을 한데 묶어 사신성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사신성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장을 시작으로 수많은 젊은 무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장은 강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여양현(汝陽縣)에도 새로운 바람은 불어오고 있었다. 여양현은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 남쪽으로 불과 백여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소림사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무인들이 이곳을 찾아왔고, 또 지나갔다. 덕분에 여양현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객잔과 식당들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청류객잔 역시 그렇게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곳 중 하나였다. 청류객잔은 특히 넓은 마당과 마구간을 가지고 있어 말을 타고 온 손님들이 선호했다.
아호는 청류객잔의 점소이였다.
벌써 점소이 삼 년 차에 접어든 아호가 하는 일 중에 하나는 바로 객잔에 투숙하는 무인들의 말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무인들은 말을 자신의 몸처럼 아껴서 조금만 상태가 나빠지면 불벼락이 떨어졌다. 때문에 객잔의 주인은 무인들의 말을 특별 관리했다.
아호는 어린 시절을 마방(馬房)에서 보냈기에 누구보다 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말의 숨소리, 꼬리 움직임만 봐도 상태와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거참!”
그런 아호가 눈앞에 있는 말을 보며 혀를 찼다.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순백의 말이었다. 근육도 잘 발달되어 있었고, 덩치 또한 커서 일반적인 말들은 한참 고개 아래로 내려다봤다.
세상에 보기 드문 명마가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성격이 너무 고약하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말들이 들어온 탓에 두세 마리의 말들을 한 방에 집어넣어야 했다. 하지만 백마는 같은 공간 안에 다른 말들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른 말들을 집어넣으면 물고 걷어차서 쫓아냈다.
“주인을 닮아서 성격도 고약하네. 쳇!”
아호는 백마의 주인을 떠올렸다.
그는 오늘 오후 투숙한 중년의 무인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유명한 무인이었고, 위압감 또한 대단했다. 그 때문에 그가 등장하는 순간 청류객잔에 머물고 있던 모든 무인들이 그의 눈치를 봐야 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는 성격 또한 폭급 하고 무공 또한 엄청나서 객잔에 머무는 자들 중 그를 당할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타고 온 백마 또한 주인을 닮아 성질이 고약한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백마에게 먹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굶은 것을 알면 주인이 또 얼마나 난리를 칠지 몰랐다.
아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구간 한쪽에 있는 아궁이를 향해 걸어갔다. 아궁이 위에는 커다란 솥이 걸려 있었는데, 솥 안에서는 콩과 귀리들이 익어 가고 있었다. 말에게 줄 사료들이었다.
히히힝!
뚜껑을 열자마자 예의 백마가 날뛰었다. 자기 먼저 달라고 난동을 피우는 것이다.
백마가 소란을 피우자 다른 말들도 거기에 동조를 했다.
히힝! 푸르르!
순식간에 마구간이 시끄러워졌다. 몇몇 말들은 문을 걷어차기까지 했다.
“저 마귀가…….”
아호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하지만 정작 혼란의 주범인 백마는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아아!”
장내의 혼란은 전혀 진정되지 않았다. 아호의 표정이 금세라도 울 것 같았다.
그때였다.
“말은 여기에 맡기면 되는 것이냐?”
갑자기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호가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새까만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말과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에 칠흑색 장포로 몸을 가린 남자를 본 순간 점소이는 전신이 급격히 위축됨을 느꼈다. 이상하게 숨이 턱턱 막히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그렇긴 한데 당장은 말을 맡기가 힘들어요.”
“왜지?”
남자의 시선이 백마가 있는 공간을 향했다. 다른 공간에 두세 마리의 말들이 있는 것에 비해 그곳엔 오직 백마 한 마리밖에 없어 공간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아호가 급히 변명했다.
“저 녀석이 워낙 성질이 더러워서 다른 말들이 함께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물어뜯고 발길질을 해서 대협의 말이 다칠 수도 있어요.”
“괜찮다.”
“말이 다쳐도 저희는 책임 못 져요.”
“그래!”
남자가 대답과 동시에 고삐를 아호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그대로 객잔으로 들어갔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아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삐를 넘겨받은 검은 말을 바라봤다.
“아!”
순간 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안에 있는 백마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근육이 잘 발달된 말이었다.
“무슨 말이?”
청류객잔에 있으면서 제법 많은 말을 봐 왔다고 자부하는 아호였다. 그중에는 명마라고 할 수 있는 말들도 다수 있었다. 지금 마구간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백마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가 보아 온 그 어떤 말도 지금 고삐를 잡고 있는 검은 말에 비할 수는 없었다.
아호의 표정이 황홀하게 변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검은 말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푸르르!
흑마는 움직이지 않고 아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담담히 아호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모습에도 격조가 느껴졌다.
점소이는 그제야 마구간이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난동을 피우던 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숙인 채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아호가 급히 백마를 바라봤다. 다른 말들이 꼬리를 말고 있을 때 오직 백마만이 검은 말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말을 보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아호는 눈을 질끈 감고 흑마를 백마가 있는 방에 넣었다.
콰르르!
마구간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
말을 맡긴 남자는 객잔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객잔의 주인이 그를 맞이했다.
“방은?”
“손님은 운이 무척 좋습니다요. 마침 깨끗한 방 몇 개가 남아 있습니다. 그중 일인실이 가장 좋은데, 조금 비쌉니다요.”
턱!
그 순간 남자가 은화 하나를 꺼냈다.
“하하! 이 정도면 충분하지요. 식사도 하실 거지요?”
주인이 은화를 재빨리 품에 넣으며 물었다.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그를 창가의 빈자리로 안내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면 저녁 식사를 내오겠습니다. 헤헤!”
남자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주인이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가 주문을 넣었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 찬찬히 주위를 둘러봤다.
일 층의 탁자는 절반 이상이 차 있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허리에 무기를 차고 있었다. 무인이라는 증거였다.
그들은 새로이 들어온 남자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들끼리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말 난리도 아니군. 마교가 이렇게 순식간에 중원 남부를 장악하다니.”
“그러게 말일세. 아예 중원 남부로 가는 모든 길목이 봉쇄되었으니. 정말 큰일일세.”
“휴우!”
“그래도 사신성과 같은 이들이 등장해 마교와 맞서지 않는가? 아직 천하에 희망이 존재한다는 증거니까 너무 낙담할 필요 없네.”
“그래! 그렇게 믿어야지.”
그들은 소림사와 무림맹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무인들이었다.
청류객잔에 머물고 있는 대부분의 무인들이 그들과 같았다. 비록 개개인의 무력은 약하지만 그래도 강호의 위기 앞에 한 팔을 보태려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사신성이었다. 그들의 등장이 많은 사람들의 의협심을 일깨운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한참 떠들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비는 마치 세상을 쓸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거세게 내렸다. 열린 창문 사이로 빗물이 튀었지만 남자는 닫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심히 밖을 바라봤다.
그 순간 객잔 문을 열고 몇몇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다 와서 비가 쏟아지네.”
“무슨 비가……. 에이! 쓰벌. 다 젖었네.”
그들은 마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다. 어깨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내며 그들은 주인에게 다가갔다.
“혹시 남는 방 있소?”
“물론입니다요.”
“가장 싼 방이 얼마요?”
그들은 객잔 주인과 흥정을 했다.
그 후로도 몇몇 사람들이 비를 피해 객잔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객잔 안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때 주인이 음식이 든 쟁반을 들고 왔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손님이 몰려와서 음식이 늦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음!”
주인은 남자의 탁자에 음식을 내려놓은 후 제자리로 돌아갔다.
탁자 위에 갓 만든 음식이 놓여 있음에도 남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는 마치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한참이나 밖을 바라봤다.
꼼짝도 하지 않던 남자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빗속을 헤치며 일단의 무리가 객잔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엔 방립을 쓰고, 몸에는 방수가 되는 피풍의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객잔에 들어오자마자 방립과 피풍의를 벗었다. 그러자 그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는 검객들이었다. 비에 흠뻑 젖었어도 그들의 전신에서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한 여인이 있었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머리칼과 자주색 광목옷이 유독 인상적인 아름다운 여인이.
순간 남자의 눈에 떠오른 이채가 더욱 강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