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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57화 (35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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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화 3장. 목숨이 두 개라도 위험하다(1)

“우와! 다 와서 비가 이렇게 쏟아지다니. 속옷까지 흠뻑 젖었어요.”

“그래도 그나마 근처에 객잔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여인과 함께 온 무인들이 저마다 물기를 털어 내며 한마디씩 했다.

츠으으!

그 순간 여인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내공을 끌어 올려 옷에 묻은 물기를 날려 버리는 것이다. 그런 여인의 모습에 객잔 안에 있던 손님들이 눈을 빛냈다.

청류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인들이었다. 때문에 여인이 지금 보이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임독이맥을 타통 하지 않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경지다.’

‘여인이 저런 경지라니.’

임독이맥을 타통 했다 함은 내공이 막히는 곳 없이 전신을 휘돈다는 뜻이었다. 곧 절정지경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강호의 젊은 여인들 중에 그 정도의 경지를 이룬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누구지?’

‘혹시 환상선자?’

그들은 당금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무인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보는 순간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손잡이에 새겨진 두 글자.

벽상(碧霜).

천하에 수많은 무인이 있었지만, 이 같은 이름을 가진 검의 소유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아! 그녀는 해남파의 해소월 소저구나.”

“해중화를 이곳에서 보다니. 정말 운이 좋구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해중화(海中花) 해소월.

해남파의 소문주이자 구무룡의 일인. 비록 사신성의 등장으로 명성이 조금은 바랬지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들이었다.

특히 해소월은 삼 년 전 마교와의 싸움에서 무시 못 할 전공을 세웠었다. 때문에 강호인이라면 그녀를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유명했다.

순식간에 옷을 말린 해소월이 함께 온 사제들에게 말했다.

“휴! 일단 방이 있는지 알아봐.”

“예! 사저.”

그녀와 함께 온 해남파의 무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명은 객잔 주인과 방을 흥정하고, 나머지는 식사할 자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빈 탁자 세 개를 한데 모아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사저, 일단 여기에 앉으세요.”

“빈방이 세 개 남았는데, 하나는 사저가 주무시고, 나머지 방에는 저희들이 자면 될 것 같아요.”

해소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삼 년이란 시간은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예전에도 아름다웠지만, 지금 그녀는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휴!”

해소월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시선은 그녀에겐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었다. 평상시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무거울 때는 그마저도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주위에 포진한 무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모두 해남파의 제자들로 그녀에겐 사제가 되었다. 지금 이들을 이끄는 중책을 맡은 이는 바로 해소월이었다.

해소월이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를 선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만일 그녀의 주위에 사제들이 없었다면 진즉에 접근해 왔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사제들은 모두 해남파의 최정예들이었다. 해남파의 일대제자들로 무공의 성취가 구대문파의 일대제자들 못지않았다.

이렇게 웃고 떠들고 있어도 발산하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기에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른침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무심히 사람들을 보아 넘기던 그녀의 시선이 창가에서 딱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창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검은 옷의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마치 사자 갈기처럼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과 칠흑처럼 새까만 장포를 입은 남자였다. 머리카락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그녀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저…….”

그녀가 남자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했더니 잔챙이들이 잔뜩 몰려와서 그런 거구만.”

우웅!

마치 커다란 동종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는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고막을 아프게 자극했다.

“크윽!”

“컥!”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손으로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했다.

해소월과 해남파의 제자들이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쿵! 쿵!

발소리와 함께 계단이 남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잔뜩 휘어졌다. 삐걱대는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야말로 곰처럼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실제로도 그는 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 사이로 드러난 팔뚝은 통나무만큼이나 굵었고, 차돌을 연상시키는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사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엔 흉터가 가득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남자가 해소월을 보고 누런 이를 드러냈다.

“호! 제법 예쁜 계집이 있구나. 네년은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는 당신은 누군가요?”

“버릇없는 계집이로다. 어른이 물어보면 순순히 대답을 해야지, 반문이라니. 예쁜 얼굴과 달리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려면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는 것이 예의 아닌가요?”

해소월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해남파의 제자들이 나섰다.

“사저, 저런 광인의 말을 들을 필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곰처럼 큰 남자를 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런 해남파 제자들의 모습에 곰처럼 큰 남자가 웃었다.

“크하하! 내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다고 이리 업신여김을 당하다니. 정말 재밌구나.”

우웅!

남자의 웃음에 객잔 안의 기물이 진동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공력이었다.

해소월과 해남파 제자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정도의 공력이라면 그들이 존경하는 해남파의 장로들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남자가 웃음을 딱 멈추며 해소월과 사제들을 노려봤다.

“이 대력흑웅(大力黑熊) 장천소가 이리 무시를 당하다니. 어이가 없구나. 아무리 수십 년 만에 강호에 나왔기로서니 말이다.”

순간 장내의 공기가 싸늘히 식었다.

“맙소사! 대력흑웅이라니?”

“장천소라면 이십 년 전의 무인이 아닌가?”

몇몇 식견 있는 자들이 장천소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력흑웅 장천소는 이십 년 전에 활동했던 무인이었다. 천생의 신력을 타고난 데다가 철탑신공(鐵塔神功)이라는 무공을 익혀 천하에 당할 자가 그리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성격이 워낙 포악한 데다가 다혈질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강호가 좁다고 활개 치며 날뛰던 그는 어느 날 강호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랬던 그가 이십 년의 시공을 건너뛰어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해소월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력흑웅 장 선배 본인이 맞습니까?”

“흐흐! 맞다. 천하에 나 말고 또 누가 대력흑웅이라는 별호를 쓸 수 있을까?”

“이십 년 전에 은거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로 다시 세상에 나온 겁니까?”

“그래서 불만이냐? 어린 계집아.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해남파의 해소월이라고 합니다.”

“호! 해중화라고 불리는 계집이로구나. 이것 참 노부가 운이 좋구나.”

“무슨 말이시죠? 운이 좋다니.”

“혼자 술을 마시는 게 적적했는데 너같이 어여쁜 계집의 술시중을 받을 수 있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느냐?”

“누가 술시중을 든단 말인가요? 말조심하세요. 아무리 당신이 선배 고인이라 할지라도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흐흐! 계집이 성깔도 제법 있구나.”

장천소가 음소를 흘렸다.

객잔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부터 안하무인격인 성격이 이십 년을 은거해 살았더니 더욱 괴팍해졌다.

“이미 이십 년 전에 은거하신 분이 왜 강호에 나온 거죠?”

“당연히 강호를 지키기 위해서지.”

“뭐라구요?”

“귓구멍이 막혔느냐? 마교의 손에서 강호를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무슨?”

“강호가 위기에 처했으니 노부가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당연히 너와 같은 후배 무인들이 노부를 대접해야지. 그게 강호의 도리다.”

“…….”

해소월의 말문이 턱 막혔다.

장천소 정도의 무인이라면 분명 마교와의 싸움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이 술잔을 따를 이유는 되지 못했다.

“당신은 무척이나 후안무치하군요. 누구도 그런 이유로 후배무인에게 술자리를 강요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당신과 같은 선배 무인이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거참, 계집. 쫑알쫑알 말이 많구나. 어르신이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면 냉큼 앉을 것이지.”

“말조심하시오. 당신은 지금 해 사저뿐만 아니라 해남파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나오면 더 이상 참지 못하오.”

보다 못한 해남파의 무인 한 명이 발끈해 소리쳤다. 그의 얼굴엔 분노의 빛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해남파 제자들의 표정 또한 그와 같았다. 해소월을 모욕하는 것은 곧 해남파를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남파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큰 그들은 결코 참을 수가 없었다.

장천소가 그들을 내려다봤다.

“참지 않으면?”

“이익!”

“왜 한바탕하려고? 감당할 자신은 있고?”

장천소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분명 비웃음이었다. 그에 해남파 제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흐! 나는 알고 있지. 너희들이 왜 해남파를 나와 수천 리 멀리 떨어진 소림사로 기어가는 것인지. 마교가 중원의 허리를 장악하고 있으니 남부에 있는 해남파가 점령당하는 것은 시간문제. 그러니까 소림사에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이 아니더냐?”

“이익!”

해남파 제자들의 턱이 씰룩거렸다. 장천소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장천소의 비웃음이 짙어졌다.

“하지만 과연 소림과 무림맹에 해남파를 도와줄 여력이 있을까? 자기들 한 몸 지키는 것도 버거운데. 거기다 내가 무림맹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해남파를 도와주지 말자고 제안하면? 흐흐흐!”

“장 선배!”

순간 해소월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장천소는 협박을 하고 있었다.

분한 것은 장천소의 협박이 아주 허황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장천소와 같은 명성과 무력을 지닌 무인이 도와준다고 하면 무림맹은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장 선배가 원하는 것이 뭔가요?”

“말했잖느냐? 네가 따라 주는 술을 마시고 싶다고. 내 곁에서 시중을 들면 무림맹에는 내가 이야기를 잘해 주지. 아니면 내가 직접 도와줄 수도 있고.”

“…….”

“선택은 네 몫이다. 결과를 감당해야하는 것도 너의 몫이고.”

장천소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사저,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해남파입니다. 그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데, 하물며 저자와 같은 광인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 없습니다.”

스릉!

해소월의 앞을 막아선 제자가 검을 뽑았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검을 빼 들었다.

그들의 얼굴엔 결연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해남파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 크기에 이런 모욕을 받는단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해소월의 표정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내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평상시라면 선배 고인이고 뭐고 화를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장천소의 말처럼 지금 해남파의 사정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마교가 호남성과 강소성을 차지한 이후 중원 남부가 그들의 영향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해남파가 자리 잡은 해남도가 섬이라는 지형적인 이점을 살려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립될 것이 분명했다.

장천소가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척을 지게 되었을 때 무림맹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장천소가 그런 해소월의 속내를 읽고는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흐흐! 어린 계집아. 그렇게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 없다. 너는 이 어르신의 옆에서 술만 따르면 된다. 그러면 모든 일이 해결되니 굳이 문제를 크게 만들 필요 없다.”

“휴!”

해소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될 수 있으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모욕을 받고서도 참으면 모두에게 우습게 보이게 된다.

강호에서 한번 얕보인 자가 어떻게 되는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까지 인내하는 것은 그녀의 성향이 아니었다. 그녀가 애검 벽상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흐흐! 이거 재밌구나.”

그 모습을 보며 장천소가 더욱 크게 웃었다. 그런 그의 눈이 붉은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해소월에겐 곤욕스러운 이 시간이 그에겐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지난 이십 년은 그에게 너무나 심심한 시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해소월이 자신의 술시중을 들어 주지 않을 거란 것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겐 단지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오랜만의 파괴 욕구를 풀고 싶은 핑계가.

“흐흐!”

그는 어서 해소월이 무공을 펼치길 바랐다. 그래야 자신이 무공을 펼칠 명분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스릉!

그때 전혀 이질적인 소리가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의자의 다리가 바닥을 끄는 소리였다. 그 때문에 한껏 달아올랐던 흥이 찬물을 끼얹은 듯 식어 버렸다.

“뭐야?”

장천소가 신경질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검은 옷의 남자가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남자의 모습에 장천소가 인상을 구겼다.

“넌 뭐냐?”

“…….”

남자는 대답 없이 걸어왔다.

“아!”

순간 해소월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남자가 다리를 조금씩 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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