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
358화 3장. 목숨이 두 개라도 위험하다(2)
남자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난 모습이었다.
무공(武功)은 자신을 완성시키는 학문.
그래서 무인들은 무공을 공부(工夫)라 불렀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육체 또한 완벽에 가까워진다. 단지 근육의 질이나 체형뿐만 아니라 좌우 균형 또한 완벽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무공이 경지에 달한 무인들은 예외 없이 완벽한 균형미를 갖고 있었다. 체형에 상관없이 말이다.
그것이 장천소의 상식이었고, 무림을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장천소와 해소월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육체의 좌우대칭이 무너진 데다가 발까지 절고 있었으니까.
장천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는 오만한 만큼이나 자신의 무공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무인이었고, 그렇기에 자신보다 못한 무인들이나 자기 관리를 못한 이들엔 한없이 가혹했다.
“뭐야? 절름발이냐?”
그렇지 않아도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더욱 하늘로 치솟았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멋모르고 나선 절름발이가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절름발이 남자는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해소월을 향해 다가왔다.
스르륵!
그가 발을 끄는 소리가 유독 크게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불길하게 심장을 자극하는 발소리를 듣는 순간 몇몇 사람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설마?’
‘그인가?’
강호에 전해지는 전설 한 자락.
―발을 저는 남자를 만나면 조심하라. 그가 권마일지도 모르니까. 검은 옷을 입었다면 더욱 조심하라.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신(死神)일 테니까.
강호 경험이 조금만 있는 무인이라면 모두가 그 전설을 알고 있었고, 또 가슴 깊이 각인시키고 있었다.
엇박자의 걸음에 사람들의 심장 또한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고동쳤다. 그래서 그들은 확신했다.
‘권마다.’
‘그가 나타났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권마는 누군가 자신 앞에서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예고도 없이 공격하는 것이 권마라는 존재였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 순간이 죽음이었다.
그래서 장내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장천소는 그런 정적이 자신 때문인 줄 알고 씨익 웃었다.
강호에서 활동을 하지 않은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강호인들이 자신을 기억하고 두려워한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권마, 담호가 마침내 해소월 앞에 도착했다.
“담…… 대협.”
해소월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담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담호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그렇네요. 그렇지 않아도 담 대협의 소식은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설마 소림사로 가는 건가요?”
“그래!”
“역시 그렇군요.”
그 말을 끝으로 해소월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녀는 혈향을 맡았다.
후각을 자극하는 강렬한 피 냄새는 그녀의 머릿속까지 새하얗게 만들었다.
‘그는 더 강해졌구나.’
등골을 타고 전율이 퍼져 나갔다.
한번 시작된 떨림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 장천소가 끼어들었다.
“뭐냐? 절름발이. 이 계집하고 알고 있던 것이냐?”
담호의 고개가 소리도 없이 장천소를 향했다.
“헉!”
순간 장천소가 자신도 모르게 거친 숨을 내뱉었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감각한 눈동자를 보는 순간 장천소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가 이를 악물었다.
무려 이십 년 만에 강호에 나왔다고 하지만 그 역시 강호에서 알아주는 전대 고수였다. 기세 좋게 세상에 나왔는데 이름도 알지 못하는 절름발이 따위에게 잠시나마 두려움을 느끼고 위축되었단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력을 담아 목소리를 높였다.
“어른이 말하면 재깍 대답을 해야지 어디서 그런 눈으로 째려보는 것이냐?”
웅웅!
객잔 안의 기물이 그의 목소리에 담긴 웅혼한 공력에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장천소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받은 담호의 얼굴엔 미미한 변화조차 없었다.
담호가 입을 열었다.
“죽고 싶나?”
강호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협박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고, 상대를 가장 손쉽게 위협하는 단어였다. 너무나 식상한 말이었기에 평소의 장천소라면 그저 코웃음 한 번으로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르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심장 어림에서 시작된 떨림은 전신으로 번져 갔고, 결국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졌다.
장천소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이마 위로 혈관이 도드라져 나왔고,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에겐 자존심이 있었다.
대력흑웅이라는 별호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이십 년 만에 강호에 나왔지만, 자신을 당할 이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호에서 은퇴를 한 후에도 이십 년 동안 그 역시 꾸준히 무공을 닦아 왔기 때문이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마음속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의 심장에서 시작된 떨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래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순간 담호의 주먹에 머리통이 부서질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그의 손발을 족쇄처럼 구속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런 경험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이 점점 가빠졌다.
“허억! 허억!”
크게 부풀어 오른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담호의 눈빛이 그의 심장을 압박하고 있었다.
결국 장천소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심장을 옥죄어 오던 강렬한 기세가 한결 약해졌다. 그제야 그의 안색이 조금은 정상을 되찾았다.
내친김에 장천소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크음! 아, 아직 어린 친구가 세상물정을 모르는군. 뭐, 좋아! 어르신이 소피가 마려운 관계로 이번 한 번만 참고 넘어가 주지. 운이 좋은 줄 알거라.”
그 말을 끝으로 장천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허억! 허억! 어디서 저런 새끼가…….”
장천소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십 년 만에 기세 좋게 나온 강호에 설마 저런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가 강호에 다시 나온 것은 정의감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혼란한 시기에 힘을 보태면 거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었다.
“으하하!”
“저것 봐라.”
등 뒤에서 사람들의 비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실제로는 감히 웃는 자가 없었지만, 장천소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장천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구간으로 달려갔다. 마구간에는 그가 수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애마가 있었다.
그의 거대한 덩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애마 백풍(白風)이. 백풍을 탄다면 저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객잔을 금방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구간에 들어선 순간 장천소는 자신도 모르게 절규를 내뱉었다.
“이게 뭐야?”
히힝!
그의 애마 백풍이 마구간 안에 널브러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곁에 괴물 같은 검은 말이 서 있었다.
***
“소문은 들었어요. 사천성에 다녀왔다고……….”
“…….”
“당문이 설마 마교의 편에 설 줄은 몰랐어요. 담 대협이 아니었으면 강호는 큰 피해를 입었을 거예요.”
해소월의 말에 근처에 있던 해남파의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문이 정파를 배신하고 마교의 편에 섰다는 이야기는 청성파에서 탈출한 청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무림맹은 멀리 사천성에까지 전력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무림맹 또한 근거지를 빼앗기고 소림사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사천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청성파의 대제자이자 구무룡의 일인인 청운이 피를 토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무림맹은 차일피일 미루며 은근히 거절했다.
결국 청운은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사실은 강호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맹의 무능함과 비겁함을 성토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나서서 청성파를 돕지는 않았다.
마교의 편에 선 당문은 그야말로 무서운 곳이었다.
특히 그들의 독과 암기는 강호인들이라면 모두가 두려워했다. 일단 당문과 척을 지게 되면 살아도 산 게 아니었고, 언제 어느 때 고통스럽게 죽게 될지 몰랐다.
당문과는 은원으로 엮이지 마라.
강호에서 괜히 그런 이야기가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당문의 행보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들과 은원으로 얽힌 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말이다.
사람들은 눈이 있으면서도 당문의 포악한 행보를 보지 않으려 했고, 귀가 있으면서도 그들 때문에 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강호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사천성을 외면했을 때 들려온 소문 하나. 바로 권마의 전설이었다.
멀리 섬서성 화산에 은거하고 있다고 알려진 담호였다. 그가 왜 수천 리 떨어진 사천성에 있는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담호가 사천성에 있다는 것이고, 당문과 척을 지었다는 것이다.
담호는 한 번 적으로 규정한 자는 절대 살려 두지 않는 패도적인 존재. 그런 그와, 마찬가지로 물러설 줄 모르는 불패의 가문과 격돌했다.
그것은 마치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가 격돌한 것과 같았다.
그야말로 지독한 모순(矛盾)이었고, 믿기지 않는 핏빛 행보였다.
그들은 사천성에서 격돌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불패를 자랑했던 당문이 그야말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봉문을 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청성파와 아미파는 다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고, 당문은 세가 쪼그라든 채 외부의 활동을 완전히 멈췄다.
단 한 명이 만들어 낸 기적 같은 결과에 강호는 환호했고, 또 두려워했다.
사천성의 혈란을 종식시킨 데 환호했고, 그 어떤 문파나 단체도 해내지 못한 일을 홀로 해낸 담호의 위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객잔 안에 있는 담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엔 그 두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그들은 담호를 우러러보면서도 또 두려워했다. 하지만 담호는 정작 그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담호가 물었다.
“소림사엔 왜 가는 거지?”
“도움을 청하려구요. 모두 알다시피 마교가 호남성과 중원 남부를 장악하면서 본 파의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해요. 아직은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지만 시간문제예요. 저희에겐 현 상황을 타개할 돌파구가 필요해요.”
해소월은 솔직하게 해남파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해남파가 자리를 잡은 해남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방어하기도 쉽지만, 한번 고립되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이제까지는 고립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일대에서 해남파를 어찌할 만한 문파나 세력도 없었고, 구대문파와도 호의적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교가 호남성과 그 일대를 장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원과 왕래를 하던 배가 끊겼고, 외부와의 교역로도 막혔다.
해소월과 일대제자들이 해남도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도 천운이 따라 줘서 가능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조금만 더 늦게 빠져나왔다면 그대로 해남도에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을 것이다.
“몇 달은 버틸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예요. 그전에 마교와 대립하고 있는 이 상황을 끝내거나, 지원군을 이끌고 해남도로 돌아가야 해요.”
“…….”
“해남파뿐만이 아니에요. 중원 남부에 있는 많은 문파들이 저희와 같은 상황이에요. 그들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어요. 이 사실을 무림맹에 알리고,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그게 제가 소림사로 가는 이유예요.”
해소월의 말속엔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에 해남파의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 때문에 장내의 분위기가 무겁게 변했다.
해소월은 분위기를 바꾸려 말을 돌렸다.
“그런데 담 대협은 왜 소림사로 가는 건가요?”
“약속을 지키러.”
“네?”
“지킬 약속이 있거든.”
담호의 목소리가 무심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