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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59화 (35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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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화 3장. 목숨이 두 개라도 위험하다(3)

푸르르!

담호가 마구간의 문을 열자 흑귀가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반갑게 맞이했다. 흑귀의 등 뒤로 쓰러져 있는 백마의 모습이 보였다.

“저 말은?”

“주인이 버렸어요.”

점소이 아호가 급히 대답했다.

“버려?”

“예! 저 검은 말이 아저씨 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버리고 도망갔어요.”

아호는 잔뜩 성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성질이 좋지 않은 백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흑귀에게 밟힐 때는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주인에게 버림받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 말이 잘못이겠어요? 잘못 길들인 주인 잘못이지. 이제부터라도 제가 잘 길들여 보려구요.”

아호의 말에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흑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마구간 밖에서는 해소월과 해남파 제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기에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담호와 달리 그들은 말이 없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까지는 불과 백여 리밖에 남아 있지 않아 걸어가도 상관없는 것이다.

담호도 흑귀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해남파의 제자들은 경외 어린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그들 중에는 예전에 담호를 본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욱 많았다. 그들에게 담호는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런 담호와 함께 소림사로 동행한다는 사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해소월이 말했다.

“그럼 출발하죠.”

그들은 다 함께 객잔을 떠났다.

등봉현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엔 무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소림사로 가는 무인들이었다. 그중에는 명문 정파의 무인으로 짐작되는 이들도 보였고, 낭인처럼 허름한 차림의 무인들도 있었다.

담호는 그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해남파의 무인들이 마치 호위를 하듯 주위에 포진해 있었기에 사람들은 담호의 정체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담호의 곁에서 걷던 해소월이 문득 입을 열었다.

“해남만 더운 줄 알았더니 이곳도 만만치 않네요. 벌써 여름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운 날씨였다. 그나마 그들은 내공을 익혔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지, 일반 백성들은 지독한 더위에 외출조차 삼가고 있었다.

담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해소월은 마음이 상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어차피 담호의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담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담호의 침묵이 불편했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말 많은 다른 이들보다 그와 함께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담호는 그녀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때 담호의 곁으로 다가오는 해남파의 제자가 있었다. 해소월의 사제 중 하나인 진문중이었다.

진문중은 해남파의 제자들 중에서도 성격이 가장 냉철하면서도 무공에 대한 열의가 강한 이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담호를 불렀다.

“담…… 대협.”

“…….”

“해남파의 일대제자 진문중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진문중의 얼굴엔 결연한 빛이 가득했다.

해남파에서는 알아주는 재능의 소유자라고 하지만 담호에 비하면 보름달 앞의 반딧불과 다름없었다.

예전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인정하다 못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그가 담호에게 말을 건 것도 굉장히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그도 담호가 얼마나 냉혹한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호에게 말을 건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었다.

담호가 진문중을 바라봤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그의 눈빛이 무서웠지만, 진문중은 담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침내 담호가 입을 열었다.

“말해!”

“제가 익힌 무공 중에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럽니다. 가능하다면 담 대협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무리(武理)를 알려 달라는 건가?”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진문중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도 자신의 부탁이 얼마나 염치없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에게 가르침을 청할 정도로 절박했다. 그 절박함이 진문중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담호에게 말을 걸게 만들었다.

담호가 진문중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에 다른 해남파 제자들이 긴장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들도 무공을 향한 진문중의 열의를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와 같은 시기에 담호에게 저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 만일 담호가 화를 낸다면 그 뒷감당을 해야 하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담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뭐가 궁금하지?”

“본문의 무공 중에 해연십삼검(海燕十三劍)이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익힌 절공인데 그중에서 육 초식인 철연비참격(鐵燕飛斬格)이라는 초식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비급엔 분명히 이런 구절이…….”

“난 구절 따윈 해석하지 않아.”

“그럼?”

“따라와!”

담호가 관도 근처의 수풀로 들어갔다. 진문중이 굳은 표정으로 잠시 주위를 바라봤다.

해소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문중에게 말했다.

“괜찮겠어? 담 대협은 결코 사람을 봐주는 사람이 아니야.”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그렇게 해야겠어?”

“전 본파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사제?”

“그러려면 강해져야 하잖아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저라도 강해져서 본파에 도움이 되어야죠.”

“…….”

예상치 못했던 진문중의 말에 일행이 숙연한 표정이 되었다. 진문중이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전 담 대협이 무서워요.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본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로 영원히 남는 거예요.”

진문중이 막혀 있는 철연비참격은 상승의 경지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그는 이 길목만 넘어서면 분명 새로운 경지를 맞이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진문중은 철검을 꽉 쥔 채 담호가 들어간 수풀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음!”

“휴!”

그런 진문중의 모습에 해남파의 제자들이 복잡한 표정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수풀 속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컥!”

뒤이어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

비명의 주인이 진문중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느끼는 고통이 비명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다시!”

“아악!”

그 순간 들려오는 담호의 냉혹한 목소리와 악에 받친 진문중의 대답.

쉬이익!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폭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그리고 수풀 밖으로 진문중이 튕겨 나와 바닥을 나뒹굴었다.

“진 사제.”

해소월이 놀라 부축하려고 하자 진문중이 손을 뿌리치며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다.

쉬가악!

조금 전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가 해소월 등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소리였다.

콰앙!

하지만 굉음이 울려 퍼지자 여지없이 진문중이 튕겨 나왔다. 그런 그의 전신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곳곳에 시커먼 멍 자국이 보였다.

“크윽!”

진문중이 소매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가겠습니다.”

이번엔 담호의 재촉이 없음에도 진문중은 이를 악물고 수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해소월과 해남파의 무인들은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란격석(以卵擊石), 즉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진문중의 실력으로는 담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진문중은 십여 차례나 더 수풀 밖으로 튕겨 나왔고, 뛰어들었다.

위이잉!

하지만 진문중이 수풀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그의 검에서 나는 소리는 점점 더 날카롭게 변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 진문중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간질거리고 시야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껏 담호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옴짝달싹도 하지 않던 공기가 바늘만큼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진문중에겐 그곳이 자신의 검이 통과할 유일한 검로로 보였다.

“챠아앗!”

자신도 모르게 크게 기합을 내뱉으며 검을 찔러 넣었다.

강철로 된 제비가 허공을 날아 온몸을 부딪치듯 그렇게 힘껏 말이다.

슈우우!

전신의 공력이 오른팔을 통해 검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에 진문중이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그의 느낌과 상관없이 그의 몸은 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푸욱!

그의 검이 빛이 되어 담호의 몸을 관통했다.

그 생생한 느낌에 진문중이 몸을 떨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개가 관통하는 것 같은 짜릿한 느낌과 함께 찾아온 깨달음의 희열이 그를 떨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희열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콰앙!

뒤이어 굉음과 함께 엄청난 격통이 그를 덮쳤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진 사형!”

“사제!

마치 통나무처럼 그대로 쓰러지는 진문중을 해남파의 제자들이 받아 들었다.

정신을 잃은 진문중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었고, 곳곳에 검은 피멍이 생겨나 있었다. 그런데도 진문중은 정신을 잃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보 같은…….”

해소월이 그런 진문중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진문중의 무모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담호를 향해 달려드는 진문중을 보다 못해 그녀와 해남파의 제자들은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진문중의 마지막 공격을 보았다.

강철로 된 제비가 온몸을 던져 날린 아름다운 일격. 그야말로 완벽한 철연비격참이었다. 이제까지 수도 없이 진문중을 막아서고 좌절시켰던 그 초식을 기어이 성공시킨 것이다.

그래서 진문중은 혼절해서도 웃을 수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기에 해소월은 그가 존경스럽게 보였다.

해소월이 고개를 들어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의 검은 장포에는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진문중이 철연비격참을 격중시킨 흔적이었다. 비록 위력이 약해 담호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초식만큼은 훌륭히 구현해 낸 것이다.

“고마워요.”

해소월이 담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진문중이 철연비격참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담호 덕분이었다. 진문중이 펼치는 수많은 검로들을 차단하고, 오직 단 하나만의 검로만을 남겨 두어 그곳으로 펼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철연비격참을 알고서 한 것이 아니었다. 진문중이 펼치는 초식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려면 오직 마지막 검로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로 계산한 것이 아니었다. 몸으로 몇 번 부딪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담호가 장포에 뚫린 구멍을 바라봤다. 겨우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 좁은 구멍이었지만, 그 안엔 진문중의 집념이 담겨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그런 진문중의 집념과 과단성만큼은 높이 인정해 줄 만했다.

담호가 기절한 진문중을 들어 흑귀의 등에 실었다. 흑귀에 진문중을 실었다는 것 자체가 담호가 그를 인정한다는 증거였다.

“가지.”

담호의 말에도 해남파의 무인들이 머뭇거렸다. 진문중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던 거대한 벽을 온몸을 던져 뚫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진문중의 모습은 해남파 무인들에게 처절한 감동과 함께 ‘나도 벽을 깨고 싶다’는 도전 의식을 고취시켰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은은한 불꽃은 순식간에 거대하게 타올라 그들의 심장을 집어삼켰다.

“저, 저에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시작은 노권의였다.

그는 진문중과 절친한 사이였고, 또 강력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진문중이 뛰어넘은 벽을 그도 뛰어넘고 싶었다.

자신도 온몸을 내던져 담호에게 도전하고 싶었다.

그는 강렬한 열망이 담긴 눈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간절한 것을 원하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그때 담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뭘 망설이지?”

“…….”

“덤벼!”

그가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순간 노권의는 자신도 모르게 담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야아아!”

그의 거친 기합 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해소월이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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