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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60화 (3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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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화 4장. 오랜만의 만남이 반갑기만 하다(1)

소림사의 산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마교라는 위협이 천하를 휩쓸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림사는 산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개방했다. 무림맹과 소림사에 힘을 보태겠다고 찾아오는 무인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절대 물러서거나 비겁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산문이 개방되어 있다고 해서 경계가 약하거나 무방비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전력들이 산문에 포진되어 철저히 경계를 하고 있었다.

산문을 지키고 있는 승려들은 달마전 소속의 무승들이었다.

달마전은 나한전과 함께 소림사 무력을 상징하는 양대 축이었다.

나한전이 깊다면 달마전은 폭넓다.

소림사 내부에서 두 전(殿)을 평가할 때 하는 말이었다.

광문이 이끄는 나한전은 오직 소림사의 무공만 익힌다. 천 년을 넘게 내려온 소림사의 무공만 익히고 연구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오직 소림사의 무학만 파고들었다. 삼 년 전 검율천에게 그들이 자랑하는 백팔나한진이 깨진 이후에 그런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반면 달마전은 소림사의 무공뿐만 아니라 세속의 뛰어난 무공도 연구하고 분석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심득을 소림사의 무공에 접목시켜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림사에서도 가장 폭 넓은 무공 지식과 실력을 자랑했다.

나한전과 달마전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다. 그들은 서로에 뒤처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런 경쟁심은 서로의 수준을 더욱 높게 끌어올렸다.

때문에 달마전 무승들의 자부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들의 자부심은 산문 양옆에 서 있는 자세에서부터 나타났다.

어깨를 쫙 펴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왼손에 들린 강철 선장과 오른손에 들린 백팔염주가 그들을 더욱 강렬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불문을 수호하는 신장(神將)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무림맹과 소림사에 찾아온 무인들은 그런 달마전 무승들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오!”

“역시 소림사군. 이 정도라면 마교가 제아무리 강해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야.”

“어디 이르다 뿐인가? 무려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소림사라고. 그 저력이 어디 가겠는가?”

“저들의 모습을 보니 용기가 나는군. 여길 오길 정말 잘했어.”

사람들은 달마전 무승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 사실 소림사도 그런 점을 노리고 달마전의 무승들을 산문에 배치한 것이기도 했다. 마교와 본격적으로 싸우기도 전에 군웅들의 사기가 하락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산문 앞에 서 있어야 하는 달마전의 무승들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했다. 군웅들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렇게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차라리 무공을 일초반식이라도 더 수련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었다.

마치 구경거리가 된 듯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엄한 방장의 명이기에 싫은 표정 하나 없이 꾹 참아야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태양은 최고 높은 곳에서 작열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지라도 참기 힘든 더위가 그들을 괴롭혔다.

등줄기를 따라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고, 회색 승복은 축축하게 젖어 갔다. 그래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일단의 무리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가 소림이구나.”

“산문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군.”

“드디어 도착했군요.”

소림사를 보며 감격 어린 표정을 짓는 이들은 바로 젊은 무인들이었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그들의 얼굴에는 아직도 애티가 남아 있었다.

그들의 뒤로 두 명의 남자가 더 보였다.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무인과 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이곳이 강호 최후의 보루라는 소림사?”

“최후의 보루는 무슨? 강호가 그렇게 단순한 곳인 줄 알아?”

젊은 무인이 감탄하는 소년을 타박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래도 어쨌거나 멋있네요. 세월이 아로새겨진 듯한 벽돌 하며 기품 어린 전각들도.”

소림사를 보며 코끝을 문지르는 어린 소년은 바로 방진보였다. 그리고 젊은 남자는 초연운이었다.

그들 앞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는 이 남 일 녀는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 서우종, 주진광, 경하진이었다.

초연운이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이곳까지 함께 오는 동안 고운 정, 미운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달마전의 승려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소림의 일대제자인 설천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순간 초연운의 눈이 빛났다.

설마 소림사의 일대제자가 산문을 지키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설천에게 포권을 취했다.

“반갑습니다. 설천 대사. 전 백전문의 초연운이라 합니다.”

“초연운? 설마 취운룡?”

설천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취운룡 초연운은 삼 년 전 싸움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강호의 많은 이들이 아직도 초연운과 백전문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백전문은 강호의 전설이었다.

문주부터 말단 제자까지 단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마교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그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무림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었다.

설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말 백전문의 취운룡 초연운 대협이십니까?”

“대협은 조금 그렇고, 내가 취운룡인 것은 맞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설천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만큼 놀람이 큰 탓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더위에 짜증이 나 있던 표정 따윈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것은 달마전의 다른 무승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수많은 후기지수 중 한 명으로 치부되었던 취운룡이었다. 하지만 삼 년 전의 사건 이후 누구도 취운룡을 후기지수라는 단어로 묶어 두지 않았다.

그는 이미 강호의 대협이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무인이었다. 특히 젊은 무인들 중에서 그를 우상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설천 역시 그런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강호의 위기 앞에서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졌던 백전문의 무인들과 초연운은 존경을 받아 마땅했다.

“소림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초 대협!”

설천이 초연운에게 반장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다른 무승들이 일제히 한목소리로 외쳤다.

“초 대협이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웅!

그들의 외침이 소림사의 산문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에 소림사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초연운에게 모아졌다.

“취운룡이라고?”

“정말 그란 말인가?”

“초 대협이 합류했다. 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만 갔다. 그에 당황한 것은 초연운과 함께 이곳까지 온 서우종과 주진광, 경하진이었다.

그들 역시 초연운을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정도로 인정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연운은 그런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겉으로 표 낼 만큼 수양이 얕지는 않았다.

“아미타불! 소승이 거처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알려만 주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강호의 영웅에게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부디 소승에게 안내할 기회를 주십시오.”

설천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초연운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미타불! 저를 따라 오십시오.”

설천이 앞장서 걸었고 그 뒤를 초연운 등이 따랐다. 방진보는 당연하다는 듯이 초연운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서우종, 주진광, 경하진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여기까지야 어떻게 초연운을 졸라 따라올 수 있었지만, 소림사 안에까지 따라 들어가는 것은 그들도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뭐해요? 오지 않고.”

방진보가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아!”

“으음!”

손짓을 하는 방진보의 모습에 경하진이 제일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어미를 쫓아가는 새끼 오리처럼 서우종, 주진광이 따랐다.

소림사는 산문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웅장하고 고풍스러웠다. 바닥에 깔린 청석과 굴러다니는 조약돌 하나에도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새겨진 것 같았다.

설천이 안내한 곳은 소림사의 빈객청이었다. 산문 근처에 있는 빈객청은 소림사에서 외부 손님이 왔을 때 숙소로 내주는 곳이었다.

설천은 그중 가장 크고 깨끗한 방을 초연운에게 보여 주었다.

“일단 이곳에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방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더 좋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초 대협께는 너무 누추한 곳입니다. 제가 보고를 하고 올 때까지만 잠시 쉬고 계십시오.”

“이것 참!”

“제가 초 대협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겨우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설천의 간곡한 눈빛에 초연운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초 대협. 제가 다녀올 때까지 근처를 둘러보셔도 좋습니다. 제가 제자들에게 말해 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초연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천이 환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설천이 나가고 나서야 초연운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설천의 눈빛도, 군웅들의 관심도 그에겐 큰 부담이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죽은 사부와 사형제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담호를 돕기 위해 세상에 나왔지만, 그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 완전히 치유된 것이 아니었다.

초연운이 방진보를 바라봤다.

“진보야.”

“예! 형.”

“난 밖에 나갈 생각 없으니까 너나 구경하거라.”

“그래도 돼요?”

“이 안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해. 기왕 왔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경내를 구경해. 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을 테니까.”

초연운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방진보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로만 듣던 소림사의 위용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쉬고 계세요. 저는 소림사 좀 돌아볼게요.”

“그래라.”

초연운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손을 휘저었다. 그에 방진보 등이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마자 땀을 식혀 주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곳이 소림이란 말이지?”

방진보는 궁금했다.

강호의 태산북두라고 불리는 이곳이.

***

본의 아니게 소림사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무림맹의 본단은 조촐했다. 그나마 맹주를 비롯한 수뇌부들은 소림사에서 큰 전각 하나를 내줘 체면치레를 하고 있었지만, 다른 무인들은 급조한 거처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 때문에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궁창이 머물고 있는 거처 또한 최근에 급하게 만든 곳이었다. 군사부의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소림사 내부에서는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소 누추하더라도 독자적인 공간에서 함께 있어야 효율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 남궁창의 생각이었다.

“휴우!”

남궁창이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한 거처였다. 그래도 그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는 소림사와 맹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군사님.”

밖에서 심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급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남궁창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들어오라.”

“예!”

대답과 함께 심복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지금 소림사 안에 취운룡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취운룡?”

남궁창이 눈을 끔뻑거렸다.

처음엔 취운룡이 소림사에 들어온 것이 무슨 문제인가 싶었다. 하지만 취운룡이 초연운의 별호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초연운은 권마의 친구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심복의 대답에 남궁창이 의자의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힘껏 움켜잡았다.

초연운은 이제 단순한 후기지수 따위가 아니었다.

백전문을 상징하는 백전전승기의 주인이었고, 마교에 맞서 끝까지 대항했던 무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화산권마 담호의 유일한 친우였다.

화산파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담호가 오직 그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혈로를 헤치고 화산으로 달려갔던 사건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초연운이 들어왔다는 것은 곧 권마도 소림사에 온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창백하기만 했던 남궁창의 안색이 더욱 새하얗게 변해 갔다.

남궁창은 담호의 이름 두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이 온다고?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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