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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63화 (3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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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화 5장.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1)

추결개가 담호를 유심히 바라봤다.

“본방의 태상장로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아니야.”

“그런데 왜?”

“그냥 신기해서 그래. 수십 년 동안이나 은거했던 이가 급작스럽게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네. 정말 본방의 태상장로님인지도 의심스러웠고. 하지만 여러모로 검증한 결과 태상장로님이 맞다네. 나 역시 젊은 시절에 그분께 무공을 배웠던 적이 있고.”

“…….”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셨냐고 물으니 그렇게 말하시더군. 상처가 너무 심해 심산유곡에서 은거하면서 치료하셨고, 그러다 보니 강호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고.”

“아마 마교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겠지.”

“맞네! 그걸 어떻게?”

“다들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군.”

“그게 무슨?”

“아니야.”

담호가 말을 끊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추결개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담호의 말속에 뾰족한 바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단지 그 바늘이 정확히 무엇을 찌르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일 뿐.

“자넨 참으로 비밀이 많은 것 같군. 어디 속 시원히 털어놔보게. 밤은 길고 술은 많으니까.”

“당신은 아무에게나 비밀을 털어놓나 보지?”

“아무에게나? 난 개방의 장로일세. 아무나가 아닐세.”

추결개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개방의 장로라는 자부심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날 선 그의 목소리는 담호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착각이 심하군.”

“뭐가 말인가? 내 말이 잘못되었는가? 개방의 장로라면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그런 자리일세.”

“개방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

갑자기 담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무 낮아서 주위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추결개의 귀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짜르르!

순간 추결개는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것을 느끼고 흠칫 떨었다.

개방이 대단하냐고?

다른 누가 그렇게 물었다면 아마 추결개는 당장 그 이빨을 모조리 부숴 버리고, 살점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권마였다.

천하에서 가장 잔혹한 자였고, 또한 당할 자가 거의 없는 무인이었다.

개방이라는 이름이 비록 대단하다고 하지만, 권마라는 별호는 그에 뒤지지 않았다. 적어도 당금 무림에서는 오히려 권마라는 이름이 개방을 압도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담호의 눈빛과 기세는 추결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개방이라는 이름도, 개방의 장로라는 추결개의 신분도 담호에겐 위협이 되지 않았다.

현실을 인식한 추결개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겨우 변명했다.

“휴! 자네에겐 개방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겠지. 허나 우리도 나름의 자부심은 가지고 있다네.”

“…….”

“미안하네. 내가 괜한 말을 했네. 방금 전에 한 말들은 부디 잊어 주게나.”

결국 추결개는 사과를 했다. 그런 추결개의 모습에 가장 놀란 이는 바로 해소월이었다.

비록 지금은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천하에서 가장 많은 방도를 가진 곳이 바로 개방이었다.

흔히들 개방이 십만 방도를 가졌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전혀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중에서 무공을 제대로 익힌 방도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십만 방도를 가진 개방의 장로가 담호에게 사과를 하는 광경은 해소월에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당금 강호에서 담호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삼 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정말 다르구나.’

해소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목이 타는지 연신 술잔을 들이켜는 추결개에게 담호가 물었다.

“개방도 참전하는 건가?”

“당연하네. 그래서 내가 개방을 대표해 이곳에 온 걸세. 혹시 개방의 조력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게 말하게.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개방의 장로가 하는 약속이었다. 그만큼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다른 무인들이 추결개 같은 고인에게 그 같은 약속을 받게 되면 매우 감격을 했을 테지만, 담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반면 추결개의 머릿속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권마가 합류하다니. 이것이 화(禍)가 되련가? 아니면 복(福)이 되련가?’

***

초연운의 거처는 빈객청에서 별도의 거처로 옮겨졌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완벽하게 독립된 별채였다. 소림사가 그만큼 초연운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대우를 하는 것이다.

“휴우! 조금 낫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자 초연운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가 만난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비슷했다.

경외와 동정, 측은함이 뒤섞인 눈빛, 존경하면서도 불쌍하게 보는 그 눈빛은 초연운을 불편하게 했다.

‘역시 오만이었나?’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던 것 같았다. 아직도 그의 마음속 상처는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였다.

초연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배정받은 별채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때문에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로웠지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에 늘 함께했던 방진보마저 없으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진보, 이 녀석은 신나게 돌아다니는 모양이군.”

왠지 모르게 배신감이 느껴질 때였다.

“형!”

방진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별채 안으로 들어왔다. 방진보를 보자 초연운의 얼굴에 절로 웃음꽃이 폈다.

“이 녀석!”

“누가 왔는지 봐요.”

방진보가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던 초연운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소청!”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혀를 내밀며 귀엽게 웃는 소녀는 바로 은소청이었다.

“네가 어떻게?”

“거래 때문에 왔지요.”

“정말?”

“그럼요.”

“혹시 봤냐?”

“뭘요?”

“저 녀석 혼자 나가지 않았을 텐데.”

초연운이 고개로 방진보를 가리켰다. 그러자 은소청의 눈빛이 잠시 차가워졌다.

“그 여우요?”

“역시 봤구나.”

“봤죠. 에효!”

은소청이 한숨을 내쉬며 방진보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방진보는 눈만 끔뻑일 뿐, 은소청의 한숨에 담긴 이유를 알지 못했다.

“너도 참 고생이 많겠다.”

“그러게 말이에요.”

“참, 죄 많은 녀석이야.”

초연운이 방진보를 보며 혀를 찼다.

“내가 왜요?”

“됐어, 이 녀석아! 배고프니까 식사나 준비해.”

“그냥 소림사에서 드시면 안 돼요? 다들 그렇게 하는데.”

“내 앞에 훌륭한 숙수가 있는데 뭐 하러 중들이나 먹는 풀 쪼가리를 먹냐?”

“저도 고기로 만든 요리는 못 해요. 여기는 신성한 사찰이잖아요.”

“대신 고기 못지않게 맛있는 맛을 내겠지.”

“에휴!”

초연운의 태연한 대답에 방진보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은소청까지 만난 마당이었다. 실력을 발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미타불! 그 맛이 무엇인지 나도 궁금하구려.”

“헉!”

그때 뒤쪽에서 갑작스레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진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웬 젊은 승려가 입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방진보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행군자공이 경지에 이른 이후 방진본의 감각은 활짝 열려 어지간한 무인들의 움직임은 그냥 감지했다. 그런데 젊은 승려가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까마득하게 몰랐다. 그 말은 젊은 승려의 무공이 방진보를 월등히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반면 초연운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알은척을 했다.

“오랜만이군. 소천.”

“아미타불! 그간 잘 지내셨소? 초 시주.”

“뭐, 보다시피…….”

탕탕!

초연운이 자신의 의족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맑은 쇳소리가 별채 안에 울려 퍼졌다.

“미안하외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오.”

“알고 있어. 그러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아미타불!”

“폐관수련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에 끝냈소.”

“원하던 만큼 성취를 얻었나 보군.”

소천이란 승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연운은 그가 큰 성취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소천은 구무룡 중 일인이었다. 소림사의 희망이자, 차기 방장이 유력한 무승이기도 했다.

초연운은 오래전에 소천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소천은 적잖은 성취를 이룬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소천의 기도는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렬했다.

“역시 소림다워. 백척간두의 경지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비결이 있다면 알려 주지 그러나?”

“패배를 당하는 것이 아주 나쁘지는 않더구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까.”

“패배?”

초연운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소천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검율천에게 패배를 당한 것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날의 패배가 있었기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무공을 다시 수련했다. 기본공부터 시작해 이제까지 익혀 왔던 무공을 돌아본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무공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무공을 수련하다 보니 어느새 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폐관수련을 더 연장하고 싶었지만,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흐르는지라 면벽관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면벽관을 나온 후 제일 먼저 들은 소식이 바로 초연운이 소림사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초 시주를 꼭 뵙고 싶었소.”

“나를?”

초연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왜?”

“부끄러운 말이지만, 소승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외다. 또한 이제까지의 성취를 확인하고 싶소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하고 비무를 하고 싶다는 건가?”

“그렇소!”

소천이 초연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엔 투지가 가득했다.

그에겐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었다.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

무인이 그런 확신을 얻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타인과의 대결을 통해서였다.

그래서 초연운을 찾아왔다. 지금 소림사에서 그와 대등한 성취를 이룬 젊은 무인은 초연운밖에 없기에.

탕탕!

초연운이 자신의 의족을 두드렸다. 그러자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다리가 이 꼴인 것을 알고도 비무를 청하는 건가?”

“그게 문제가 되오?”

소천이 오히려 반문했다. 그에 초연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줄 알았소. 난 초 시주 정도의 무인이 그 정도의 장애를 극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소.”

“그렇게 높이 평가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아니, 영광이라고 해야겠군.”

초연운의 미소가 짙어졌다.

지금 소천은 자신을 대등한 무인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를 기껍게 만들었다.

소천이 호승심을 불태우는 것처럼 초연운 역시 온몸이 근질거리고 있었다.

소천처럼 초연운도 자신의 성취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아미타불!”

팟!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쩌어엉!

그리고 격돌했다.

강렬한 기파가 공터를 휩쓸고 지나갔다.

“위험해!”

방진보가 은소청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소천의 별호는 일권붕산(一拳崩山).

일권에 산을 붕괴시킨다는 소림의 기린아가 초연운은 향해 연거푸 일곱 번의 주먹질을 했다.

초연운은 소천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쳐 갔다.

다리가 잘려 추락했던 용(龍)이 다시 하늘을 향해 비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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