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
364화 5장.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2)
“훅훅!”
검율천은 연신 거친 숨을 내뱉었다. 폐가 크게 확장되었고, 심장이 격동했다. 수천 리가 넘는 거리를 단 일각도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해처럼 방대하던 내공은 바닥을 드러냈고, 강철 같던 체력 또한 한계에 달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그가 위태하게 서 있는 곳은 천장단애 위였다. 발밑으로 위태롭게 이어진 비좁은 협곡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 대의 마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공령객 관무외와 공령살객들은 그야말로 치밀했다.
음유경을 납치한 그들은 철저하게 흔적을 지웠다. 때문에 검율천도 그들의 흔적을 쫓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몇 번이나 헛수고를 했고, 엉뚱한 미끼를 쫓았다.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검율천의 집념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몇 번이나 원점으로 돌아와 추격을 재개했고, 결국 이곳까지 따라올 수 있었다.
검율천이 주위를 둘러봤다. 하도 정신없이 추적해 오다 보니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협곡 전체에 자욱한 운무가 감돌고 있는 것이 분위기가 제법 스산해 보였다.
“이곳이 호랑이굴인가?”
협곡 안에 호랑이가 있을지, 아니면 그보다 더한 괴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검율천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에겐 무엇보다 음유경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검율천이 그대로 협곡 정상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양손을 활짝 펼친 채 대지를 향해 하강하는 그의 모습은 커다란 새 같았다.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던 검율천이 대지에 착지하기 직전 오른발로 왼발의 발등을 차며 반등했다. 그 순간 그의 발밑으로 마차가 스쳐 지나갔다.
“놈이다.”
“지독한 놈!”
마차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그런 검율천을 발견하고 이를 갈았다. 그사이 검율천은 대지에 가볍게 착지한 후 무서운 속도로 마차를 따라붙었다.
“죽어랏!”
“하압!”
순간 마차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그대로 뛰어내려 검율천을 공격해 왔다.
쉬아앙!
강력한 도격이 연이어 날아왔다.
검율천은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고 몸을 두어 번 흔든 것만으로 도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그의 반격이 이어졌다.
콰르릉!
운무 속에서 뇌성이 울려 퍼졌다. 뇌격술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검율천을 공격했던 두 명의 무인이 그대로 어육이 되어 튕겨 나갔다. 그야말로 가공할 위력이었다.
탓!
검율천은 그 여세를 살려 그대로 마차로 뛰어 올라갔다. 그 순간 시퍼렇게 벼려진 검 날 다섯 개가 마차의 지붕을 뚫고 튀어나왔다. 이대로 착지하다가는 오히려 검율천의 발이 칼날에 찔릴 상황이었다.
“챠앗!”
하지만 검율천은 피하는 대신 오히려 발을 어지럽게 놀렸다.
따다당!
정련된 쇠로 만든 검 날이 검율천의 발길질에 오히려 부러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검율천은 숨도 돌리지 않고 바로 마차의 지붕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마차의 지붕을 그대로 뜯어냈다.
콰드득!
마차의 내부가 드러났다.
마차 중앙에 놓인 커다란 관, 그리고 주위에 포진한 다섯 명의 무인들. 그들은 바로 음유경을 납치한 공령살객들이었다.
그들은 검율천의 발길질에 부러진 검을 버리고 새로운 검을 뽑아 들어 공격했다.
쉬쉬쉭!
날카로운 검기가 비좁은 마차 안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흐읍!”
순간 검율천이 호신강기를 펼치며 그대로 마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콰콰쾅!
호신강기와 검기가 격돌하며 마차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검율천을 공격했던 공령살객들도 폭발에 휩쓸려 밖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들도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검율천을 향해 다시 한 번 검기를 날린 것이다.
슈우!
그 순간 검율천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어깨에는 마차에 실려 있던 관이 들려 있었다.
“유경.”
검율천이 급히 관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푸욱!
갑자기 관에서 검 날이 튀어나와 그의 복부를 관통했다. 예상치 못한 급습과 고통에 검율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커헉!”
그가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관을 부수며 묘령의 여인이 튀어나왔다. 검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 역시 공령살객의 일원이었다. 그가 음유경으로 위장해 관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드디어 거물을 잡았군.”
협곡 한쪽에서 평범해 보이는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공령살객의 주인인 공령객 관무외였다. 그의 곁에는 음유경이 제압된 채 서 있었다.
“유……경!”
검율천이 힘껏 소리쳐 불렀지만 음유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전신 마혈이 제압된 것이다.
관무외가 음유경의 목 부근 혈도만 풀어 줬다.
“율천!”
그제야 음유경이 목 놓아 검율천을 불렀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된 것이 금방이라 피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그녀의 유일한 사랑이 그녀 때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고문이었다.
“유경!”
검율천이 검에 뚫린 복부를 손으로 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엄청난 패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비록 뜻하지 않게 적의 암계에 빠져 상처를 입었지만, 이 정도로는 그를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없었다.
“흐읍!”
그가 숨을 들이켜며 근육에 힘을 주자 상처가 조여지며 콸콸 흘러나오던 피가 완전히 멈췄다.
“역시 대단하군.”
관무외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릴 때였다.
빠지직!
검율천의 몸 주위로 뇌전이 형성되었다. 검율천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였다.
검율천의 주위에서 명멸하는 뇌전에 공령살객들은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검율천이 인간이 아니라 뇌신(雷神)으로 보였다.
쿵!
검율천이 관무외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순간 일대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패왕지세(覇王之勢)였다.
천하의 관무외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검율천을 바라봤다.
“정말 대단하군. 아마 권마를 제외하면 젊은 무인 중 자네가 제일일 것이 분명해. 시대를 잘만 타고 태어났다면 패왕(覇王)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군.”
“개소리 따윈 집어치워. 어차피 이곳이 당신의 무덤이 될 테니까.”
검율천의 눈에 찐득한 살기가 어렸다.
그의 기세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실제로 그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공령살객들의 얼굴엔 식은땀과 더불어 긴장의 빛이 어려 있었다.
“챠앗!”
기합과 함께 검율천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관무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멈춰랏!”
“개소……리…….”
검율천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관무외의 손에 들린 둥그런 패(牌) 때문이었다.
“설마?”
“그렇다. 너희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마교의 성물이다.”
“그럴 수가!”
검율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음유경이 목숨을 걸고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던 물건이었다. 마교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신물이 관무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그게 진짜라고? 나는 믿을 수 없어.”
“그녀에게 물어보게. 성녀인 그녀라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은가?”
관무외의 말에 검율천이 음유경을 바라봤다. 그러자 음유경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라고?”
“신도광왕(神刀狂王) 정율휘.”
“…….”
관무외의 입에서 정율휘가 언급되는 순간 검율천이 입술을 굳게 닫았다. 본능적으로 진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음유경이 소림사에서 입수한 천일비사록에 언급되었던 두 사람. 한 명은 태을문의 현도 진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바로 신도광왕 정율휘였다.
그중 현도 진인은 이미 만나 봤지만, 성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남은 한 사람이 바로 정율휘였는데, 오래전에 종적을 감춰 추적할 수가 없어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어떻게?”
“우리도 그를 찾느라고 고생이 많았네. 종적을 감춘 지 너무 오래돼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거든. 하지만 결국은 찾아냈고, 이렇게 성물을 회수할 수 있었지.”
관무외가 검율천의 앞에서 성물을 흔들어 보였다. 그에 검율천의 눈동자도 같이 흔들렸다.
성물만 있다면 통제 불가의 괴물이 된 마교를 제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성물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관무외는 검율천의 눈에 어린 욕망을 읽었다.
“성물을 되찾고 싶은가?”
“…….”
“그렇다면 기회를 주지. 권마를 죽이게. 그러면 성물을 돌려주겠네. 어떤가?”
관무외의 음성은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검율천은 그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내 친구다.”
“친구라.”
관무외의 입가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원래 호걸일수록 친구가 많은 법이지. 허나 그도 자네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순간 검율천의 눈매가 좁아졌다. 관무외의 음성이 송곳처럼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마교의 폭주를 막기 위해 반대편에 섰지만, 자네의 뿌리는 마교가 아니던가? 자네가 익힌 뇌정류는 마교 십삼지파 중 하나니까.”
“그걸 어떻게?”
검율천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마교 십삼지파 중 하나인 뇌정류를 잇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음유경과 신무월, 명천 정도. 거기에 한 명을 더 더한다면 담호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관무외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줄 리 없었다.
그때였다.
“미안해요.”
갑자기 음유경이 사과를 해 왔다.
“무슨?”
“제가 말……했어요. 미안해요.”
음유경이 검율천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만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네가 왜?”
“이것 때문이지.”
관무외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손에 든 성물이 빛을 어지럽게 반사시켰다.
“성물?”
“자네야 성물 따위엔 신경 쓰지 않겠지만, 그녀는 다르지. 명색이 성녀잖은가. 성녀가 성물의 권위를 부인할 수는 없는 법이지.”
태어나면서부터 마교의 성녀로 길러진 음유경이었다. 마교의 많은 고수들이 성물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 역시 성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가 성물을 부인하다는 것은 그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검율천은 그제야 음유경이 왜 자신의 정체를 발설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관무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성물의 명을 따르지 않을 건가?”
“언젠가는 그와 목숨을 걸고 싸울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자의로 이뤄지는 것이지, 성물이나 타인의 강요 때문은 아니야.”
“역시 자네는 대장부군. 인정하지. 이깟 성물로 자네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성녀는 어떨까? 자네처럼 단호할 수 있을까?”
순간 음유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관무외가 음유경의 몸을 구속하던 마혈을 풀며 말했다.
“마교의 성녀여. 그대도 성물을 부인할 것인가?”
“…….”
당연히 음유경은 성물을 부인할 수 없었다.
“성물의 권위로 명령한다. 성녀는 명을 받들어라. 성녀는 마교의 반역자인 검율천을 처단하라. 명을 따르지 않겠다면 나는 차라리 성물을 파괴할 것이다.”
음유경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목숨보다 소중한 성물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죽었지, 성물이 파괴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성녀 음유경, 성물의 명을…… 받듭니다.”
음유경이 대답과 함께 검율천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미안해요, 율천.”
“괜찮다.”
“정말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다 이해해.”
검율천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음유경이 대지를 박차며 검율천을 향해 쇄도했다.
쉬이익!
음유경의 성명절기인 낙월신검(落月神劍)이 펼쳐졌다.
쩌어엉!
검율천이 손바닥을 활짝 펼쳐 음유경의 공격을 막아 냈다. 적잖은 충격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서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