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365화 5장.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이다(3)
관무외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앞에서 검율천과 음유경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진신 무력이야 검율천이 월등했지만, 연인인 음유경을 상대로 전력을 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로 성물의 명령을 받은 음유경은 전력을 다해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자와 전력을 다하는 자의 싸움, 당연히 전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피핏!
검율천의 전신에 자상이 늘어 갔다. 그럴수록 음유경의 심장엔 피멍이 들었다.
‘율천!’
성물의 명을 거절할 수 없는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하지만 성물의 권위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앗!”
그녀가 낙월신검의 절초를 연이어 펼쳐 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초식이 연신 검율천의 몸을 두들겼다.
쿠쿵!
검율천이 둔중한 발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난 자리엔 깊은 족적이 패여 있었다.
관무외와 공령살객들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전황은 분명 음유경이 유리했지만, 그렇다고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관무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겉으로 보기엔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될 수 있으면 길게 시간을 끌며 대책을 찾는 것이다.
“역시 이쪽에서 나서야 하는가?”
관무외가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그러자 협곡 반대쪽에서 두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관무외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공령살객들과 똑같은 복장의 무인들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령살객들이 관무외의 부름을 받고 나온 것이다.
일곱 명의 공령살객이 모두 모이자 관무외가 명령을 내렸다.
“합공하여 검율천을 죽여라.”
“존명!”
공령살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합공을 하라는 명령에도 그들은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들의 본질은 자객이었다. 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죽이는 것이 그들의 지상과제였다.
그들은 은밀히 두 사람을 포위한 채 공격할 틈을 노렸다.
관무외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깝군. 같은 편이 되었으면 유용하게 썼을 텐데.”
검율천은 강골(强骨)이었다.
일단 한번 원칙을 세우면 절대로 번복하지 않는 뼈대 굵은 남자였다. 이제까지 그가 걸어온 길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가 절대로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을 거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끌어들이려 한 것은 그만큼 그의 가능성을 크게 봤기 때문이다.
관무외가 손에 쥔 성물을 바라봤다.
평범한 패의 겉면엔 타오르는 성화와 알 수 없는 문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이런 쇠 쪼가리를 교주의 명령과 동급과 여기다니. 마교도들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관무외는 이런 신외지물에 집착하는 마교의 무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차도살인지계를 펼칠 수 있으니 세상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공령살객들이 합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섯 명 모두…….
관무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와 동행하는 공령살객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런데 다섯뿐이라고?’
푸욱!
순간 관무외는 옆구리에 불같은 통증을 느꼈다. 내려다보니 공령살객 중 한 명이 그의 옆구리에 검을 박아 넣은 것이 보였다.
“너?”
쉬가악!
그 순간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다른 공령살객이 성물을 들고 있는 그의 팔을 공격한 것이다.
“큭!”
관무외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는 속도보다 공령살객이 달려드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결국 관무외는 팔에 일검을 허용하고 성물을 놓치고 말았다.
“크윽!”
그는 다시 성물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공격한 공령살객이 먼저 가로챘다.
성물을 탈취한 공령살객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철썩같이 믿고 있던 수하들에게 암습을 당한 관무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네놈들이 미친 모양이구나. 감히 주군인 나를 공격해?”
그 순간 성물을 탈취한 공령살객들이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매미 날개처럼 얇은 면구가 벗겨지며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대체 누가 누구의 수하란 거야?”
비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관무외를 바라보는 남자는 바로 공작귀검 신무월이었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앳된 얼굴의 소년은 바로 명천이었다.
명천이 급히 음유경을 향해 외쳤다.
“사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아도 돼요. 신물을 회수했어요.”
그의 외침에 음유경이 무공을 펼치는 것을 멈췄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녀가 급히 검율천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괜찮아!”
검율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음유경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제야 음유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네놈들이 감히 나를 기만해?”
관무외가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에 검율천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기만해도 되고, 이쪽은 기만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너?”
“아무튼 고맙군. 덕분에 손쉽게 성물을 회수하게 되었으니.”
검율천이 신무월의 손에 들린 성물을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명천의 생각이었다.
명천은 음유경이 납치된 것을 알자마자 신무월과 함께 만일을 대비했다. 그들은 은밀히 움직였고, 협곡에 은밀히 숨어 있던 공령살객을 성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다.
성물을 되찾은 것은 예상치 못한 덤이었다.
신무월은 일부러 성물을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관무외를 조롱했다.
관무외가 갑자기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그래, 인정하마. 내가 너희들을 너무 우습게 봤다는 것을. 그깟 쇠 쪼가리 하나로 너희들을 좌우하려 한 것을 사과하마.”
우우웅!
가공할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협곡에 부딪치며 증폭됐다. 그 때문에 협곡 전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렸다.
관무외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대무객의 일인으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것이다.
“크윽!”
“읍!”
관무외의 가공할 존재감에 신무월과 명천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신무월도 어느 정도 무공을 완성한 무인이었지만, 관무외의 존재감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제기랄!”
그때 그의 어깨를 붙잡는 두툼한 손이 있었다.
“고생했다. 이제부턴 나에게 맡겨라.”
“대형?”
검율천이었다. 그가 어느새 두 사람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전신에서는 태산 같은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율천의 분노가 기세로 표출되는 것이다.
꿀꺽!
그런 검율천의 모습에 신무월과 명천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검율천이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들이 아는 검율천은 어떤 순간에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검율천이 관무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관무외도 그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콰르르!
검율천의 몸 주위로 백색의 뇌전이 명멸했다.
뇌신(雷神)이 현세에 강림했다.
그 순간 관무외가 주위 풍경에 동화되어 갔다. 공령객(空靈客)이라는 별호처럼 자신의 절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먼저 움직인 이는 검율천이었다. 그는 뇌전을 갑옷처럼 전신에 두른 채 관무외를 향해 돌진했다.
순간 관무외의 모습이 검율천의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그야말로 주위의 풍경과 완벽하게 동화된 것이다.
모습은 물론 호흡과 기척까지 완벽하게 지웠다.
관무외는 무(無)가 되었다.
그의 검은 어둠 속의 검, 즉 암검(暗劍)이었다.
수십 년 전에도 암검 하나로 오대무객의 일원이 되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의 암검은 더욱 발전했다.
관무외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암검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소리도 없이 검율천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때까지도 검율천은 그의 접근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죽어랏!’
관무외가 검율천의 목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의 검은 공기의 결을 소리도 없이 가르며 검율천의 목에 접근했다.
그때였다.
빠지직!
갑자기 검율천의 몸 주위에 명멸하던 뇌전들이 크게 일렁였다.
“크흡!”
뇌전이 검을 타고 관무외의 팔을 파고들었다. 살이 익고 미세한 신경이 탔다. 순식간에 검을 든 오른손이 마비되었다.
관무외가 이를 악물며 내공을 운용해 뇌전이 더 이상 몸속을 파고드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사이 오른팔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 순간 검율천이 몸을 돌려 관무외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뇌정류 사 식 뇌전갑(雷電鉀).
뇌전을 갑옷처럼 두르는 이 초식은 워낙 내공의 소모가 극심해 검율천도 거의 펼치지 않는 수법이었다.
뇌전을 마치 호신강기처럼 사용하기에 검율천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주위로 명멸하는 뇌전의 그물은 그 어떤 금속의 침입도 용서하지 않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콰르릉!
검율천이 분노가 담긴 일격을 날렸다.
관무외는 다시금 주위의 풍경과 동화되려 했지만, 팔에 부상을 입어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검을 휘둘러 검율천의 공격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쾅!
굉음과 함께 관무외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전대의 절대고수인 공령객 관무외와 신진 절대고수인 검율천의 치열한 사투는 그렇게 시작됐다.
콰르릉!
그들의 싸움에 좁은 협곡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거친 비명을 토해 냈다.
신무월과 음유경 등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공령살객들과 어울려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쉬악!
검이 공기를 가르고, 강력한 장력이 대지를 파괴했다. 그들의 격전에 좁은 협곡이 초토화가 되었다.
특히 음유경의 검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성물의 권위에 굴복해 연인인 검율천을 공격해야 했기에 그녀가 느끼는 분노는 더욱 컸다. 그녀는 분노를 모두 검에 담아 펼쳤다.
쉬가악!
“크흑!”
“음!”
음유경의 가공할 공세에 공령살객들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그 틈을 신무월과 명천이 파고들었다.
오랫동안 뜻을 함께했던 그들이었기에 눈빛만 봐도 서로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합공을 수련했던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이 치밀하게 맞물려 들었다.
“커억!”
결국 그들의 파상공세에 공령살객 한 명이 일검을 허용하며 쓰러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방죽이 터진 것처럼 공령살객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그들이 흘린 피가 대지를 붉게 적셨다.
음유경과 신무월, 명천은 붉게 물든 대지 위에 우뚝 섰다.
“아!”
“휴우!”
그들의 입에서 이제까지 억눌러놓았던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쉽지 않았던 싸움이었기에 그들이 느끼는 정신적인 피로는 엄청났다.
“율천은?”
음유경은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검율천의 행방을 찾았다.
그때였다.
쩌어엉!
갑자기 엄청난 충격파가 계곡 전체를 휩쓸고 퍼져 나갔다. 가공할 기파에 놀란 세 사람이 충격파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검율천과 관무외가 있었다.
관무외의 검은 검율천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고, 검율천의 주먹은 관무외의 옆구리에 박혀 있었다.
“율천!”
음유경의 절규가 협곡에 메아리쳤다.
그 순간 관무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그의 상반신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대……업이 코앞인데…….”
그것이 관무외가 세상에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털썩!
뒤이어 검율천도 무릎을 꿇었다. 그의 가슴엔 여전히 관무외의 검이 꽂혀 있었다.
음유경이 급히 검율천을 껴안았다.
“율천!”
“괜……찮다.”
혈인이 된 채로 검율천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이 음유경을 더욱 울컥하게 만들었다.
검율천이 손을 들어 음유경의 뺨을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내가 더 강하지 못해서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아니에요.”
“조금만 더 내가 강했다면…….”
이 지경이 되어서도 검율천은 스스로를 탓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릴 뿐, 결코 타인을 탓하지 않는.
그런 검율천의 모습이 음유경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당신은 더 강해질 거예요.’
그녀의 시선이 신무월의 손에 들린 성물로 향했다.
어렵게 되찾은 성물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존재했다. 그 비밀은 오직 성녀에게만 구전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