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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화 6장.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1)
치이익!
새빨갛게 달궈진 과자 위로 잘 손질된 재료들이 들어갔다. 순간 재료에 불이 붙었다. 시뻘건 불길이 과자 위에서 춤을 추었지만 방진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각종 양념이 순식간에 첨가되고 순식간에 고소한 냄새가 별채 안을 가득 채웠다.
마치 손이 네 개가 달린 것처럼 방진보는 순식간에 요리를 해냈다. 그런 방진보의 모습을 보며 소천이 탄성을 내뱉었다.
“허!”
한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자의 모습은 때론 예상치 못한 감흥을 안겨 주곤 했다. 지금 방진보의 모습이 그랬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요리를 만드는 모습은 소천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단순히 능숙하게 요리를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유자재로 불길을 다루는 방진보의 모습 뒤에 숨겨진 내공의 운용을 보았다.
방진보는 오행군자공을 이용해 요리의 맛과 효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비록 그 안에 담긴 자세한 운용은 모르지만, 그 의도만큼은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명색이 불문인 소림사였다. 하지만 소림사의 무공은 결코 유하지 않았다. 살생을 자제하긴 했지만, 무공 자체의 위력은 강맹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무림의 태산북두이고 중심이다 보니 소림사는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무공 역시 그렇게 발전을 해 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소림사에서 자라 온 소천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무공을 익혔다. 그가 익힌 무공은 오직 소림과 강호를 지키기 위한 것. 때문에 살상력이 유독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런 식으로 내공을 운용해 사람에게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휴! 부끄럽구나. 이제까지 나는 맹목적으로 소림의 무공을 익혔을 뿐, 그 근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 저 아이만도 못하니, 그동안 헛살았구나.’
소천이 그렇게 자신을 탓할 때였다.
“뭘 그렇게 생각해?”
초연운이 그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소.”
“대단하지?”
“그게…….”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도 진보를 볼 때면 감탄을 하곤 하니까. 내가 처음 봤을 때 저 녀석은 그저 뚱뚱하고 소심한 어린아이에 불과했어. 하지만 음식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신념만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어. 그 결과가 바로 저거야.”
“휴우!”
“무엇보다 저 녀석이 만든 음식은 정말 맛있거든. 일단 한번 맛보면 다른 이가 만든 음식은 쓰레기 같게 느껴질 정도라니까.”
초연운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소천은 그처럼 편하게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결국 무승부로 끝이 났다. 하지만 소천은 알고 있었다. 초연운이 자신을 배려해 주었다는 것을.
자신은 전력을 다했지만, 결국 초연운의 전력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더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때 방진보가 접시에 요리를 담아 다가왔다.
“헤헤! 간단히 만든 건데 드셔 보세요. 고기는 넣지 않았으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아미타불! 고맙구나.”
소천이 사용하지 않고 방진보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젓가락을 놀려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소천이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입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입안에서 감도는 청량한 기운이 그의 뇌리를 맑게 만들고 있었다.
“한낱 음식이 어떻게?”
그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초연운이 그런 소천에게 말했다.
“생각하지 말고 즐겨. 너는 생각이 너무 많다니까. 그냥 비우면 되는 것을.”
순간 소천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비우라고?”
초연운은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소천에겐 마른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을 적시는 단비처럼 그의 가슴속을 순식간에 적셔 왔다.
그렇게 깨달음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고, 초연운은 단숨에 소천의 상황을 눈치채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그것은 방진보도 마찬가지였다.
“아깝지만 음식은 나중에 먹어야겠구나.”
“네!”
“소청은?”
“무림맹에 들어갔으니까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잘됐네. 소천이 깨달음을 수습할 때까지 이곳에서 그를 지키자.”
“네!”
방진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은소청은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녀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림맹과의 거래를 위해 소림사에 온 상단의 주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무림맹의 군사인 남궁창과 수뇌부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방금 전 남궁창이 한 말 때문이었다.
상단의 주인 중 한 명이 정적을 깨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기부금을 더 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남궁창이 태연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은소청을 비롯한 상단의 주인들은 더욱 경직됐다.
남궁창은 한 시진 전 거래를 위해 소림사에 들어온 상단의 주인들을 전부 자신의 거처로 소집했다. 그리고 무림맹을 위해 더욱 많은 돈을 기부해 줄 것을 부탁했다.
말이 부탁이지, 남궁창이 무림맹에서 가지는 위치를 생각한다면 강요나 다름없었다.
“여러분들도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소. 하지만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 조금씩 희생을 해 주어야 하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무림맹은 근거지를 잃었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외다. 여러분들이 무림맹과의 거래로 얻는 이득 중 일부를 다시 돌려 달라는 것이니 그리 큰 손해는 아닐 것이오.”
“…….”
“물론 여러분들의 희생은 잊지 않을 것이오. 무림맹이 마교를 물리치고 다시 정상을 되찾는 날 여러분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오.”
말을 하는 남궁창의 눈엔 은은한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는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담호’라는 이름 두 글자가 독버섯처럼 그의 가슴속에 자라나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호가 곧 무림맹에 들어올지 모른다는 소식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직 담호의 행방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그가 세울 수 있는 대책은 없었다. 그래서 담호를 잊기 위해 일에 몰두했다.
지금 무림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자금이었다.
의기만으로 무림맹과 같은 거대한 단체는 돌아가지 않는다. 막대한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엄청난 거금이 필요했다.
호남성의 무림맹 본단이 마교에 넘어간 지금 돈이 나올 수 있는 구석은 거의 없었다. 이제까지 무림맹을 지원하던 명문 거파들은 마교가 호남성을 장악한 이후 자파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자연 무림맹에 대한 지원이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남궁창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거래하는 상단들이었다.
처음 입을 열었던 상단의 주인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럼 얼마나 더 지원해 달라는 겁니까?”
“글쎄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해야지요.”
“그게 무슨?”
“여러분들이 강호를 생각하는 만큼 스스로 내놔야지, 우리가 얼마를 내놓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소?”
남궁창의 대답을 듣는 순간 말을 건넸던 상인은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상인에게 알아서 내놓으라는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었다. 남궁창은 상인들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처럼 말하면서는 실제로는 교묘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마교와 거래를 하는 것이 낫겠다.’
‘이제까지 뜯어 간 돈이 얼만데 또 이런단 말인가?’
상인들은 남궁창과 무림맹의 무도함에 치를 떨었다. 은소청도 그들 사이에 섞여 분노했다.
상단에서 뜯어낸 돈이 고스란히 무림맹에 쓰였다면 그나마 분노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도 무림맹에서 거둬들이는 돈보다 쓰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중간에서 막대한 돈이 증발되고 있어. 그 돈만 제대로 쓰였어도 이렇게 무리하게 상인들에게 돈을 뜯을 필요 없었을 텐데.’
은소청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남궁세가를 비롯해 몇몇 가문들의 재정이 풍족해졌다는 것은 상인들이라면 거의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까지 무림맹에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라도 그만둘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무림맹과 척을 지게 된다면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같은 거대 문파들과의 거래도 끝이었다. 어떻게든 돈을 더 마련해 지원해야 했다.
다른 상인들 역시 은소청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약자였다.
무림이란 세계는 힘이 우선시되는 세계였다. 이곳에서 강자는 무림맹과 같은 거대 무벌이었다. 그들의 말이 곧 강호의 법칙이었다.
회의가 끝나자 상인들이 웅성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휴! 얼마를 더 내야 할지.”
“그러게 말일세. 일단 상단의 자금 사정부터 살펴봐야겠네. 그렇지 않아도 간당간당한데 올해 겨울이나 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은소청이 그들의 뒤를 따를 때였다.
“은 소저!”
“예?”
갑작스러운 남궁창의 부름에 은소청이 멈춰서 뒤돌아봤다.
“은 소저는 잠시 남게. 따로 할 말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은소청이 급히 대답했다.
마침내 다른 상인들이 모두 나가고 단둘만 남게 되자 남궁창이 입을 열었다.
“거기 자리에 앉게나.”
“예! 감사합니다.”
은소청은 남궁창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가득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네. 자네를 추궁하려고 남으라 한 것이 아니니까.”
“그럼?”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잠시 남으라고 한 것일세.”
남궁창의 말에도 은소청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남궁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은가보도 많은 피해를 입었지?”
“예? 무슨 말인지…….”
“은가보의 주요 사업장은 호남성에 있으니 하는 말일세. 지금 호남성은 완전히 마교의 손에 들어갔으니 피해 또한 막대하겠지. 안 그런가?”
“그건 맞습니다만…….”
은소청이 말끝을 흐렸다.
남궁창의 말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마교가 악양과 무림맹을 장악하기 전에 은가보는 화산파의 도움을 받아 많은 부분을 섬서성으로 이전했다. 그 덕에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거기에 대해선 사과를 하겠네. 무림맹만 넘어가지 않았다면 은가보도 그런 피해를 입지 않았을 테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은소청의 대답에 남궁창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순간 은소청의 불길한 예감은 더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화산파와 거래를 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게 무슨?”
“아닌가?”
남궁창이 은소청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려서부터 상계에서 구른 은소청이었다. 때문에 제법 담대하고 자부했지만, 강호의 거물인 남궁창의 집요한 시선을 감당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은소청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남궁창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 은가보의 고충을 해결해 주려 하네. 화산파 대신 본맹과 거래를 하세.”
“지금도 거래는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만.”
“규모를 더 키우잔 말일세. 겨우 화산파와의 거래로 예전만큼의 성세를 언제 회복하겠는가? 차라리 본맹과 거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은가보에도 더 좋을 걸세.”
“그건…….”
“내가 호의로 하는 말일세.”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버님에게 군사님의 말씀 전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은소청은 가장 상식적인 대답을 내놨다. 하지만 남궁창은 집요했다.
“화산파와의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네. 그쪽에는 이미 무림맹의 사자가 갔으니까. 그들이 알아서 잘 설명해 줄 걸세.”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참다못한 은소청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남궁창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신의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오래전부터 화산파와 친밀한 관계와 신의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 신의를 군사의 말씀 한마디에 헌신짝 버리듯 할 수는 없습니다.”
“진……심인가?”
남궁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굴엔 언짢은 기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에 은소청은 겁을 집어먹었다. 하지만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흐음!”
남궁창이 팔짱을 낀 채 은소청을 내려다봤다. 그런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원래 그의 계획은 화산파를 재정적으로 고립시킨 후 담호와 담판을 짓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는 담호라 할지라도 사문인 화산파의 재정 위기 앞에서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그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은소청이 버티면서 초장부터 그의 계획은 어그러져 삐걱거리고 있었다.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질 각오는 되어 있나 모르겠군.”
남궁창의 목소리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은소청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에 은소청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때였다.
“군사님.”
밖에서 심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남궁창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냐?
“권마가 지금 숭산을 올라온다 합니다.”
“뭐라?”
남궁창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