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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69화 (36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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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화 7장. 빚은 반드시 갚는다(1)

대화로 설득할 자신 따윈 없었다.

논리로 제압할 자신 또한 없었다.

이제까지 대화로 상황을 타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말랑말랑한 상황 따윈 담호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 목숨을 걸었고, 두 주먹만을 믿고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단 일격에 앞을 가로막은 계지원의 무승들을 날려 버린 담호는 남궁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허용한 계지원의 무승들 얼굴엔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천만다행으로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선공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들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감히!”

“소림의 무승을 공격하다니. 이것은 소림에 대한 도전이다.”

그들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담호를 막아섰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단단히 내공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멈춰랏!”

“마인이여!”

그들이 노성을 내뱉으며 외기를 발산하는 순간이었다.

후웅!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그들이 있는 방향에서 담호가 있는 곳으로.

바람은 단순히 무승들이 있는 방향에서만 불어오지 않았다. 산문에 모인 모두가 바람을 느꼈다.

오슬오슬한 바람은 그들의 등 뒤에서 담호를 향해 불어가고 있었다. 아니, 담호에게 빨려들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하지만 그들의 놀람보다 담호와 정면으로 마주선 무승들의 놀람이 더욱 컸다. 그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바람의 세기는 군웅들의 몇 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담호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그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아니, 그가 바람과 공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담호의 흑발과 검은 장포가 불어오는 바람에 거칠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으으!”

“아미타불!”

그 모습에 계지원의 무승들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평생을 소림이라는 거대한 문파에서 수련한 무승들이었다. 불문의 성지에서 수련을 한 이들답게 그들의 무위는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담호처럼 살기 짙은 무인과 싸운 적이 없었다.

역한 피비린내가 콧속을 파고 들어왔다. 후각을 마비시키는 혈향이 뇌리까지 하얗게 만들었다.

“죽고 싶으면 계속 막아 봐.”

거대한 짐승이 어금니를 드러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끔찍한 살기의 그물이 무승들을 덮쳤다.

신경 끝이 타고, 수많은 개미들이 전신의 혈관을 파고드는 듯한 그 기분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끔찍했다.

그제야 무승들은 사람들이 명문정파인 화산파의 제자인 담호를 왜 권마라고 부르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들의 눈에 비친 담호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무언가였다.

담호가 오른발을 힘껏 내디뎠다.

쿵!

그리고 왼발을 끌며 다가왔다.

스르륵!

그 엇박자의 걸음이 무승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들은 결정을 해야 했다.

이대로 담호와 싸우든지, 아니면 물러서든지.

마음은 싸우라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그극!

그들의 몸이 담호를 향해 조금씩 끌려가고 있었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담호의 몸에서 발생한 가공할 접인지기(椄引之氣) 때문이었다.

내공을 끌어 올려 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몸은 계속해서 담호를 향해 끌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직감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이대로 끌려가다가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그들의 얼굴에 암담함이 내렸다.

“무림맹의 무사들은 무얼 하는 거냐? 어서 권마를 막지 않고.”

남천산이 급히 명령을 내렸다. 그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일제히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랏!”

“감히 무림맹의 군사를 헤하려 들다니.”

그때였다.

촤아앙!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해남파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꺼내들었다.

“누구도 담 대협께 갈 수 없다.”

“우리 해남파가 용납하지 않겠다.”

겨우 스무 명에 불과했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기세는 군웅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선두에 해소월이 있었다.

검을 뽑아 든 그녀의 모습은 전설의 검후(劍后)를 연상케 했다.

군웅들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당신이 왜?”

“우리 해남파는 권마 담 대협을 지지합니다.”

구무룡의 일원인 해소월의 말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해소월 개인이 아닌 해남파 전체가 담호를 지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해남파가 권마와 손을 잡은 건가?”

“해중화가 중원을 배반했다.”

하지만 해소월과 해남파만으로 대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몇몇 이들이 선동하자 다시 군웅들이 요동쳤다.

그때였다.

쾅!

“크엑!”

군웅 속에 숨어서 선동하던 이가 갑자기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그가 쓰러진 자리에 누군가 홀연히 나타났다.

뒷짐을 지고 있는 젊은 무인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졌다.

“초, 초 대협이다.”

“취운룡?”

군웅들이 젊은 무인의 정체를 알아보고 웅성거렸다.

그는 바로 취운룡 초연운이었다.

그의 곁에는 아직 애티가 가시지 않은 소년, 방진보가 함께하고 있었다.

담호를 보는 방진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형!”

담호가 자신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를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진보는 감격해하고 있었다.

초연운의 근처에 있던 무인이 물었다.

“초 대협, 설마 당신도 권마의 편을 들려는 것이오?”

모두의 시선이 초연운에게 모아졌다.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초연운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연하지.”

“어찌 그럴 수가!”

“실망이오, 초 대협. 당신과 같은 명문의 무인이 무엇 때문에 저런 마인의 편을 든단 말이오?”

군웅들의 비난이 초연운에게 쏟아졌다.

그 순간 초연운이 말없이 상의를 풀어 헤쳤다. 그러자 흉터로 도배된 상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으음!”

“아!”

그 끔찍한 모습에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초연운은 내친 김에 바지 한쪽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쇠로 된 의족이 모습을 보였다.

그에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다.

초연운의 상처가 그와 백전문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삼 년 전 백전문은 마지막 한 명까지 마교에 맞서 싸웠다. 그때 초연운의 다리 역시 무참히 잘려 나가고, 빈사 직전에 이르렀었다.

그때 초연운이 보여 주었던 의기는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고, 아직도 강호의 전설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초연운의 전설을 모르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백전문의 마지막 생존자.

그 순간 초연운이 커다란 깃발을 꺼내 펼쳤다.

펄럭!

수없이 찢어지고 기운 자국이 가득한 거대한 깃발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참았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사람들은 깃발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아아!”

“백……전전승기(百戰全勝旗)?”

강호 동도들이 선물했던 백전문의 상징을 보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걸레쪽처럼 변한 백전전승기였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알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쾅!

순간 초연운이 백전전승기를 바닥에 꽂았다.

“권마는 내 친구다. 그가 무엇을 하든 나는 그를 믿는다.”

우웅!

그의 사자후가 산문에 메아리쳤다.

누군가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보낸다는 것.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런 믿음을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연운은 백전전승기를 걸고 담호를 믿는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내 유일한 친구니까.

그의 외침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금방이라도 담호에게 달려들 듯하던 군웅들이 주춤거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은 무림맹주인 남천산이었다. 무림맹의 무인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초연운의 기백에 짓눌려 멈춰 섰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것은 비단 남천산뿐만이 아니었다.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 또한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때 나선 이가 바로 계지원주인 광문이었다.

“사형, 저자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일단 권마를 제압해 소란을 피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 순간에도 담호의 앞을 막아선 무인들이 담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계지원의 무승들은 모두 광문의 제자라 할 수 있었다. 제자들의 위기 앞에서 광문은 체면은 물론이고 이성마저 잃었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광천에게 광문이 다시 한 번 채근하려 할 때였다.

“아미타불! 사숙!”

갑자기 젊은 승려가 끼어들었다.

“소천?”

“네가 왜?”

젊은 승려는 바로 소림의 희망인 소천이었다.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담 대협이 저러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잠시만 지켜보셨으면 합니다.”

“으음!”

“어떻게 너까지?”

소천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었다.

소림의 희망이었고, 차기 방장이 유력한 기재였다. 그의 발언이 남다른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광천이 물었다.

“진심이냐?”

“그렇습니다. 저는 초 시주를 믿습니다.”

“으음!”

소천은 초연운을 믿었다.

싸우면서 정든다고 했던가? 소천이 그와 같았다. 초연운과 전심전력으로 싸워 봤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초연운이 그에게 보여 준 모습은 진심이었다. 그런 초연운이 모든 것을 걸고 믿는 이가 담호였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그에게 믿음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소천의 생각이었다.

소천이 이렇게 나오자 광문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제야 광천이 결정을 내렸다.

“소림의 전 제자들은 이 일에 참여하지 말고 물러서거라.”

“아미타불!”

그의 사자후에 승려들이 반장을 하며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계지원의 무승들을 끌어당기던 가공할 접인지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자유를 되찾은 계지원의 무승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들의 등줄기는 온통 식은땀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담호가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악몽을 꾼 사람처럼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순식간에 동조자들을 잃은 남궁창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곁에 남은 이들이라고 해 봐야 남궁세가에서 파견 나온 몇몇 무인들밖에 없었다.

그들의 무위는 무척이나 강력해서 평상시에는 든든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마치 폭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그들은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담호는 어느새 남궁창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압박감과 살기가 남궁창을 꼭꼭 묶어 두고 있었다.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냐? 권마.”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내가 한 일이라곤 한평생 강호와 무림맹을 헌신한 것밖에 없다. 설령 그 과정에서 소소한 잘못을 했다고 해도 이런 핍박을 받을 만큼 큰 잘못은 아니다.”

남궁창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그는 스스로에게 떳떳했다.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다.

남궁창은 담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담호는 그의 눈빛에 벌써 수천 조각으로 갈라져 죽었을 것이다.

그 순간까지도 남궁창은 자신의 유려한 화술로 꼬인 정국을 풀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책사의 기본이었고, 남궁창은 스스로가 뛰어난 책사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의 자부심은 다음 순간 산산이 박살이 났다.

쾅!

“크엑!”

생전 처음 경험하는 극통이 복부에서 느껴졌다. 부릅떠진 그의 두 눈에 자신의 복부에 꽂힌 담호의 주먹이 보였다.

“이제부터 기억날 거야.”

담호의 무심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온 순간 남궁창의 바지춤은 축축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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