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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화 7장. 빚은 반드시 갚는다(2)
남궁창의 위기 순간 호위무사들이 움직였다.
“멈춰랏!”
“군사를 구하라.”
백검대(白劍隊)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남궁세가에서 파견된 무인들이었다.
남궁창은 담호에 의해서 몰락한 남궁세가의 가장 든든한 구명줄이었다. 그의 은밀한 지원 덕분에 남궁세가는 원기를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때문에 남궁창의 경호에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백검대였다.
‘군사를 지켜야 한다.’
‘반드시!’
촤하학!
그들의 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수십 개의 검기가 허공을 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십 개의 검기는 담호를 금방이라도 도륙할 듯 무서운 기세로 날아왔다. 그 어떤 고수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살풍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정도의 공격으로 담호가 큰 상처를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격을 하는 백검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딱 한 걸음만 물러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남궁창을 구할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남궁세가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백검대의 목표치곤 무척이나 소박했다. 하지만 상대는 담호였다.
그 혼자만의 무력과 존재감만으로도 중원의 구대문파에 필적하는 괴물 같은 존재. 그런 자를 상대로 우위를 점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를 때였다.
후우웅!
갑자기 등 뒤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산들바람이 폭풍처럼 거세지는 순간 그들은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주위의 공기가 담호를 향해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담호의 몸에서 발동한 접인지기가 공기마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백검대마저 빨아들였다.
“크으으!”
“이게 무슨?”
가공할 위력의 접인지기에 백검대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접인지기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담호가 발생시킨 인력(引力)은 그들의 수준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쿠우우!
“크헉!”
“제기랄!”
백검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어 내며 그들이 담호에게 급속히 빨려 갔다.
광풍에 일렁이는 흑발과 검은 장포, 그리고 담호의 검은 눈동자가 급속히 확대됐다.
순간 백검대는 지옥의 어둠을 보았다. 그 어떤 것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담호가 주먹을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쾅!
그리고 굉음과 함께 암전이 찾아왔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후두둑!
사방으로 살점과 뼛조각이 튀었다.
군웅들의 얼굴과 몸으로 핏방울이 점점이 튀었다. 졸지에 피와 살점을 뒤집어썼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단 일격이었다.
파성추였다. 강호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담호의 성명절기였다.
파성추의 위력이 얼마나 극악한지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계의 대상이었고, 근래에는 담호와 마주쳤을 때는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는 조언 아닌 조언이 유행할 정도였다. 일단 거리를 두면 파성추를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파성추는 달랐다. 적들을 끌어들이더니 공간 전체를 파괴했다. 그 충격으로 담호의 근처에 있던 많은 무인들이 고막이 터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눈에 초점이 풀린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데도 큰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고, 군웅들은 말을 잃었다.
소림사의 산문 일대를 뒤덮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음습하면서도 폐부를 차갑게 파고드는 그 느낌이 끔찍했다. 절로 진저리를 칠 만큼.
“아!”
침묵을 깬 이는 바로 남궁창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하루 열두 시진을 붙어 다니다시피 했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원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쇄되어 있었다.
남궁창은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눈앞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담호의 음습한 숨결이 느껴졌고, 남궁창의 정신은 강제로 현실로 돌아왔다.
“네, 네놈이 대체…….”
남궁창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악다문 잇새로 상처 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대체 남궁세가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는 체면도 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콰득!
그 순간 남궁창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담호가 그의 무릎을 박살 낸 것이다.
남궁창은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아직까지 꺾이지 않았다. 담호를 바라보는 두 눈엔 아직도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담호가 그런 남궁창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 안엔 비참하게 무릎을 꿇은 남궁창의 모습이 그대로 맺혀 있었다.
남궁창이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어 담호를 노려봤다.
“좋다. 나를 죽이거라. 하지만 나를 죽이는 순간 마교와의 싸움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이제까지 마교와의 싸움을 누가 이끌어 왔는지 잊지 말거라. 이 남궁창이 무림맹의 창설을 주도했고, 이 정도까지 키워 왔다. 내가 없는 무림맹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것이 정말 최선인가?”
이젠 그도 악밖에 남지 않았다. 남궁창은 체면도 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몇몇 이들이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이 이 정도로 규모를 키우는 데는 남궁창의 역할이 컸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부재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였다.
퍼석!
“크헉!”
남궁창의 한쪽 어깨가 완전히 박살 났다. 담호의 일격에 뼈가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순식간에 멀쩡하던 어깨가 망가지자 남궁창이 고래고래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담호가 물었다.
“아픈가?”
“아프냐고? 당연하지.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남궁창이 바닥에 엎어진 채 침을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수치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은 오늘날의 무림맹을 만들어 낸 개국공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흠결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정도의 대우를 받을 만큼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래! 너도 아픔을 느끼는군.”
“나도 사람이다. 당연히 아픔을 느끼고, 고통스럽다.”
“너도 사람이었던 거야. 그런데 왜 그랬지?”
“이놈!”
남궁창은 담호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담호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하니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나는 너에게 비웃음을 당해도 좋을 만큼 싸구려 인생이 아니다. 강호의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나에게 경외감을 보이거라.”
“그래서 마교와 내통했나?”
“무슨 헛소리냐?”
“이미 알고 있어. 나를 죽이려고 마교와 내통한 것을.”
“거, 거짓말하지 마라. 증거가 있느냐?”
“증거 따윈 필요 없어.”
“함부로 모함하지 마라. 나는 남궁세가와 무림맹의 중요 인사. 증거도 없이 모함을 당할 만큼 하찮은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증거도 없는 주제에 사람을 핍박하다니.”
“말했잖아! 증거 따윈 필요 없다고.”
콰지직!
그 순간 남궁창의 왼쪽 다리에 담호의 발이 내리꽂혔다. 마치 거대한 절굿공이에 찧은 듯 남궁창의 왼쪽다리가 정강이에서부터 완전히 으스러졌다.
“끄으으!”
머릿속까지 하얗게 비우게 만드는 극통에 남궁창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그저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 뿐이었다.
담호는 그런 남궁창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그 눈빛이 남궁창을 질리게 만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담호가 겨우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는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고 고통을 줄 것이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남궁창이었지만, 자신이 겪게 될 고통 앞에서는 한없이 약했다.
“아, 악마 같은 새끼!”
숨이 막혀 왔다. 질식할 것 같았다.
담호의 눈빛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심해로 정신과 몸이 빨려드는 것 같았다.
순간 남궁창의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그것을 억누를 수가 없어 토해 냈다.
“그래! 내가 했다. 네놈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 같지도 않은 네 녀석을 지우기 위해 내가 그들에게 정보를 흘렸다. 왜? 네놈은 무림의 해악만 될 뿐이니까. 그래서…… 그래서 내가 마교 놈들에게 정보를 흘렸다. 그게 잘못된 것이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방죽이 터진 것처럼 남궁창은 말을 쏟아 냈다. 이성이 마비된 남궁창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담호에게 저주스러운 말을 쏟아붓고 싶을 뿐이었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남궁세가가 그렇게 몰락할 이유도 없었고, 많은 명문세가들이 피해를 입을 일도 없었다. 다 네놈 때문이다. 네놈 때문에 기존의 질서가 흔들렸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 네놈은 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역병(疫病)과도 같다. 그래서 마교 놈들을 이용해 네놈을 제거하려 했다.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더냐?”
“…….”
담호는 말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이쯤 되었으면 어떤 반응이라도 할 법한데 말이다. 그 모습이 남궁창의 이성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애초에 네놈만 아니었다면 내 구상이 틀어질 일도 없었고, 이렇게 소림사에 더부살이할 이유도 없었다. 네놈의 오만함이, 네놈의 불통이 오늘날의 비극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 나를 원망하기보다 네 자신을 원망하거라. 크흐흐!”
남궁창의 입가로 침과 거품이 흘러내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극심한 고통과 엄청난 공포가 이성까지 마비시킨 것이다.
“군사가 마교와 내통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남궁 군사가 저런 짓을 저지르다니.”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통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닌 남궁창이 직접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불신으로 시작한 표정이 경악, 그리고 분노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거나 무림맹을 이끌어야 할 군사가 적인 마교에 정보를 제공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뿐 아니라 맹주인 남천산마저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미타불!”
“이럴 수가!”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그들은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만큼 남궁창이 내뱉은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때였다.
살짝 초점이 나갔던 남궁창의 눈에 생기가 잠시 돌아왔다. 이성이 어느 정도 돌아온 것이다.
산문에 모인 군웅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울림이 고막을 자극하자 방금 전 자신이 내뱉었던 말과 순간이 떠올랐다. 자신이 배설하듯 내뱉었던, 세상에 결코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이.
순간 남궁창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아, 안 돼!”
불신과 분노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 자리에 모인 수천 명이 적대감이 담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창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육체의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자신의 오늘 발언으로 인해 남궁세가의 명예는 바닥으로 처박혔고, 강호에 설 자리가 없게 됐다. 자신의 손으로 이제 겨우 재기하던 남궁세가의 숨통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궁창이 담호를 올려다봤다. 그 잠깐 사이에 그의 얼굴은 족히 십 수 년은 더 늙은 것처럼 주름살이 깊이 패고, 머리가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잔인한…… 이제 만족하느냐?”
“…….”
“네놈 때문에 나와 남궁세가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제 만족하느냔 말이다.”
남궁창의 음성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하지만 장내에 있는 이들 중에 그를 동정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경멸의 시선으로 남궁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남궁창을 직접 응징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담호의 몫이었다.
“이 악마 같은 놈. 지금이야 승승장구하지만 결국 너의 끝도 좋지 않을 것이다. 너 때문에 화산파도 몰락할 것이다. 네놈은 재앙(災殃)의 씨앗, 너와 연관된 모든 것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남궁창은 담호를 저주했다.
핏발 선 눈으로 악담을 내뱉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담호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다. 그 모습이 남궁창을 더 악에 받치게 만들었다.
그가 무어라 더 악담을 퍼부으려는 찰나 담호가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남궁창의 몸통이 담호의 손에 잡힌 채 덜렁거렸다.
어깨가 부서지고, 한쪽 다리가 망가진 남궁창은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담호의 눈빛을 피하지는 않았다.
담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의 망막 가득 담호의 얼굴이 맺혔다.
담호의 입이 열렸다.
“네가 죽는 이유는 단 하나야.”
“그……게 뭐냐?”
담호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자신은 주먹으로 사람을 죽이지만 남궁창 같은 이는 세 치 혀로, 세 근밖에 되지 않는 두뇌로 사람을 죽인다.
그의 잘못된 결정, 잘못된 명령 하나에 죽는 이들의 수는 담호가 주먹으로 죽이는 자들의 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들은 휘하의 병력을 수(數)로만 생각하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지 않은 것.”
쾅!
벽력음과 함께 남궁창의 시야에 어둠이 깃들었다.
영원히 걷히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