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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74화 (3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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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화 8장. 폭풍 속에 흔들리는 것은 일엽편주(一葉片舟)만이 아니다(3)

“그런데 동생은 어디로 가는 거야? 차림을 보니 멀리 가는 것 같은데.”

“섬서성으로 가요.”

“멀리도 가네. 그곳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오라버니가 계세요.”

요사란의 물음에 황혜령이 가볍게 대답했다.

“오라버니라? 꽤 사이가 좋은 모양이네. 즐거워 보이는걸.”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거든요. 삼 년 만에 만나는지라 조금 설레네요.”

“그래?”

요사란의 몽롱한 눈동자에 흥미롭다는 빛이 떠올랐다.

단순히 하룻밤의 인연일 뿐이지만 그녀는 황혜령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다.

“동생의 오라버니는 어떤 사람이지?”

“강한 사람이에요.”

“강해?”

“네! 단순히 싸움을 잘하고, 무공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강해요. 그래서 곁에 있으면 늘 든든해요.”

“그것참 부럽네. 곁에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축복이지.”

“언니도 그런 사람 있어요?”

“있었지! 지금은 죽고 없지만.”

“죄송해요.”

“동생이 미안할 게 뭐 있어. 그 사람이 죽은 게 어디 동생 책임인가? 난 아무렇지 않으니 미안할 필요 없어.”

요사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들은 지금 어젯밤 노숙했던 야산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앞쪽에는 묵일광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황혜령이 슬쩍 고개를 돌려 요사란을 바라봤다.

꽤나 거친 산길임에도 그녀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채 가볍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제야 황혜령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무공을 익힌 고수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불빛 한 점 없는 야산을 홀로 돌아다니는 여인이 보통 사람일 리 없었다. 단지 요사란의 신비한 분위기에 흘려 그런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언니는 어떤 문파의 고수일까?’

궁금증이 밀물처럼 밀려들었지만, 황혜령은 굳이 묻지 않았다. 요사란의 정체를 물으려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정체 또한 밝혀야 했다.

황혜령은 굳이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비가 패왕채의 채주이자 녹림의 총채주인 황경문이고, 오라비가 당금 강호에서 가장 파괴력이 있는 무인인 담호라는 사실을 밝혔다간 어떤 사달이 벌어질지 몰랐다.

강호 대부분의 문파들은 녹림도를 등한시하거나 천시했고, 토벌의 대상이라 생각했다. 그나마 황경문이 버티고 서서 녹림을 하나로 통합했기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녹림은 진작 강호 문파들에 의해 토벌당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황혜령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요사란에게도 똑같이 통용됐다.

그녀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묵일광이 그녀를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기에 황혜령은 요사란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너무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묵일광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야산을 벗어나 대로가 나타났다.

“흠! 관도네.”

“네! 이 길을 따라 가면 어렵지 않게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쉽게 길을 찾을 것을.”

요사란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황혜령이 그녀를 위로했다.

“그럴 수도 있죠. 다음 마을까지는 저희들과 함께 가요.”

“고마워!”

“뭘요!”

황혜령이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잠시 고개를 젓던 요사란은 이내 황혜령의 곁에 따라붙었다.

관도를 따라 쭉 걷다 보니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마을이 나타났다.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인지 입구에는 객잔과 주점 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마을 입구에 십여 명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묵일광의 눈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무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지?’

묵일광을 긴장시킬 만큼 두드러진 기세를 가진 무인이 무려 십여 명이었다. 천하의 묵일광이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무인들이 묵일광 등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그에 묵일광이 경계를 하며 암암리에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무인들은 묵일광을 지나쳐 요사란에게 다가갔다. 그중 유독 험상궂게 보이는 사십 대 초중반의 장한이 앞으로 나섰다.

장한이 갑자기 요사란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없어지셔서 얼마나 찾았는지 아십니까?”

“미안!”

“도대체…… 그 조그만 산에서 길을 잃는다는 게 말이 되십니까? 그냥 저희 뒤만 따라오시면 됐는데. 주군이 갑자기 없어지셔서 밤새 여기서 기다렸잖습니까? 저희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만해!”

“옙!”

한참 신나게 타박하던 장한이 요사란의 한마디에 입술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 하지만 얼굴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장한의 시선이 요사란과 함께 있는 황혜령 등에게 향했다.

“그런데 이분들은?”

“산속에서 만났어. 저녁도 챙겨 주고, 길도 찾아 줬어.”

“아!”

요사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장한이 황혜령과 묵일광에게 포권을 취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주군을 돌봐 주셔서.”

“아, 아니에요.”

“어린애도 아니고 자꾸만 길을 잃어버려서 곤욕스러웠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저희 주군을 이리 찾아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이 보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보답은 필요 없어요. 방향이 같아서 즐겁게 왔어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장한은 꽤나 수다스러웠다. 요사란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그런 장한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만해! 자꾸 그렇게 말하면 동생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동……생입니까?”

“그래! 언니, 동생하기로 했어.”

순간적으로 장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식사라도 대접할 테니 제대로 된 객잔이나 찾아봐.”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한은 뒤쪽에 서 있던 무인 한 명을 불러 식당이 있는 객잔을 찾을 것을 명령했다.

그에 황혜령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우린 바로 떠날 거예요.”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희 주군께서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장한이 간곡하게 부탁하자 황혜령이 난감한 표정으로 묵일광을 바라봤다. 곤란한 것은 묵일광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요사란이 나서서 쐐기를 박았다.

“겨우 밥 한 끼일 뿐이야. 큰 의미 없으니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대접을 받았으니 보답할 기회는 주어야지.”

“알았어요, 언니.”

황혜령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에 장한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객잔을 잡으러 갔던 무인이 돌아왔다. 모두가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장한이 은근슬쩍 뒤로 처져 요사란에게 다가왔다.

“주군!”

방금 전까지 능글맞던 말투는 사라지고 감정이 배제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해!”

“본단에서 전서구가 날아왔습니다.”

“전서구?”

요사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금마각과 신화전이 안휘성으로 움직였으니 저희는 이곳에서 합류하라고 합니다.”

“그 미치광이들과 합류하란 건가?”

“그렇습니다.”

“군사의 명이 확실해?”

“예!”

“싫어도 따라야겠군. 목표는?”

“남궁세가입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

요사란의 입가에 한 줄기 호선이 그어졌다. 순간 주위의 기온이 뚝 떨어진 듯 한기가 엄습했다. 하지만 장한은 놀라지 않았다. 그에겐 무척이나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장한의 시선이 문득 앞서 걸어가고 있는 묵일광을 향했다.

“범상치 않은 자입니다.”

“알고 있어.”

“혹시 남궁세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은밀히 제거하는 것이…….”

“주천! 언제부터 그렇게 말이 많아졌지?”

순간 요사란의 목소리에 한기가 맺혔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주천이라 불린 장한은 전신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헛! 죄송합니다.”

순간 장한이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머리가 터지면서 피가 터졌지만 장한은 개의치 않았다.

“주천!”

“예! 주군.”

“너에게 부족한 게 하나 있어. 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바로 낭만이야. 우리가 아무리 삭막한 세상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조금은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어.”

“주군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일어나도록.”

“감사합니다.”

요사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주천이 재빨리 일어났다. 그의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저런?”

그 모습을 본 요사란이 주천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주천의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피는 아무 때나 보는 것이 아니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면전에서 요사란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주천은 웃을 수 없었다. 요사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다.

“가자, 배고파!”

요사란이 객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남천산의 두 눈이 깊이 침잠됐다.

그의 앞에는 술병 네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그 혼자 비운 것들이었다.

한꺼번에 많은 술을 마셔서 그런지 목이 타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멀쩡했다.

취기에 몸을 맡기고 싶은데 취하지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남천산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담호!”

그의 충격적인 무위가 아직도 기억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그 압도적인 파괴력과 강렬한 무위, 그리고 군웅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존재감. 인정하기 싫지만 그 역시 담호의 존재감에 압도되었었다. 그래서 군사인 남궁창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수년 동안 남궁창과 대립해온 남천산이었다. 남궁창은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고, 그를 허수아비 삼으려 했었다. 그래서 그에 맞서기 위해 적천경과 같은 이들을 영입해 세력을 키워 왔다.

남궁창과 대립하면서 힘을 키워 온 일련의 일들은 무척이나 힘겨웠다. 하지만 남천산은 차근히 힘을 쌓아 왔고, 이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세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른바 맹주에 어울리는 위용과 위엄을 갖추게 된 것이다.

남천산은 서두르지 않고 그 세력을 이용해 남궁창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천천히 흡수하려 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맹주직을 공고히 하고 마교를 병탄해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이 바로 그의 원대한 야망이었다.

“그랬는데 그자가 모든 것을 망쳤어.”

남천산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담호는 그를 무시했다. 무림맹의 맹주인 자신을 말이다.

남천산이 보는 앞에서 남궁창을 죽임으로써 그의 체면과 위엄은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리 남궁창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처분은 맹주인 자신에게 맡겼어야 했다.

자신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이제 누가 그의 명을 진심으로 받들 것이며, 목숨을 바치려 하겠는가?

쾅!

울분이 치솟은 남천산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러자 자단목으로 만든 단단한 탁자가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때였다.

“무엇이 맹주를 그리 화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군.”

낯익은 음성에 남천산이 고개를 들어 방문을 바라봤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적 선배.”

“다녀왔네, 맹주.”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이는 바로 천도왕 적경천이었다. 그가 바닥에 나뒹구는 술병을 보며 말했다.

“혼자서 마시는 술은 심신을 상하게 하는 법이지.”

“죄송합니다, 적 선배.”

“역시 권마…… 때문인가?”

“들었습니까?”

“돌아오니 온통 그자에 관한 이야기뿐이더군.”

“그가 군사를 죽였습니다. 그로 인해 맹주로서의 위엄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아무도 제 명령을 듣지 않을 겁니다.”

“쯧! 마음이 많이 상했군.”

“죄송합니다. 못 볼 꼴을 보였습니다.”

“아닐세! 이해하네. 자네와 같은 모욕을 당했다면 누구라도 그럴 걸세.”

“적 선배!”

“나는 아직도 변함없이 자네를 지지하네. 내가 자네의 힘이 되어 주겠네. 그리고 이들 역시 든든하게 자네를 뒤받쳐 줄 것이네.”

적경천이 손으로 방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적경천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십여 명의 무인들이 줄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분들은?”

“강호 최후의 보루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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