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377화 1장. 누가 누구에게 자격을 묻는가?(2)
“허억! 허억!”
엎드려 있는 방진보의 어깨가 들썩였다. 물고기처럼 크게 벌어진 입은 연신 공기를 들이켰다.
마치 폐가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격통을 호소했다. 입에선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온 관절이 제멋대로 돌면서 전신이 갈기갈기 해체되는 듯했다.
그 순간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한 경우에도 오행군자공을 멈추지 마라. 네가 쉰다고 해서 오행군자공까지 중단해서는 안 된다.”
담호였다. 그가 팔짱을 낀 채 방진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에 방진보는 이를 악물고 오행군자공을 운공 했다.
몸 안에 쌓은 다섯 가지의 기운이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의 뜻대로 순응하던 기운들이 이렇게 미쳐 날뛰는 것은 바로 담호 때문이었다.
담호와의 비무는 그의 오행군자공을 격렬하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오행군자공은 미쳐 날뛰었다. 방진보는 최선을 다해 오행군자공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으!”
방진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그야말로 혈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의 몸에 침투한 담호의 내공이 오행의 기운을 자극한 것이다.
담호는 그런 방진보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도와주면 간단히 기혈을 안정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방진보에게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
방진보의 앞을 막고 있는 벽은 그 스스로 깨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투툭!
그렇지 않아도 불거져 나왔던 핏줄들이 더욱 도드라져 나왔다. 눈에까지 핏발이 서서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방진보의 입술을 터지며 핏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방진보는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 더욱 큰 고통이 전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진보는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오행군자공을 운용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방진보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깨달음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정말 불현듯 찾아왔다.
‘차라리 놓아 버리면……. 아! 자연의 기운은 구속을 하지 않는 것. 놓는다면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갈 거야.’
방진보는 애써 붙잡고 있던 오행군자공의 제어를 풀어 버렸다. 그러자 미쳐 날뛰던 오행의 기운이 더욱 거칠게 날뛰었고, 방진보의 전신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마치 터질 것처럼 말이다.
기적은 그 순간 일어났다. 폭풍처럼 사납게 몰아치던 오행의 기운이 갑자기 교류를 시작한 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금기(金氣)와 수기(水氣)가 끝없이 서로의 위치를 바꿔 가며 어울리고, 상극인 목기(木氣)와 화기(火氣)가 어우러졌다. 거기에 토기(土氣)까지 더해져 다섯 가지의 기운이 마침내 상통(相通)하기 시작했다.
오행의 기운이 상통을 하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던 방진보가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제야 방진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더욱 운공에 몰두했다.
담호는 그 모습을 무심히 바라봤다.
이제 고비는 지났다. 방진보는 스스로의 힘으로 훌륭하게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부순 것이다.
담호는 방진보의 곁을 지켰다.
가장 큰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은 외부의 충격에 취약할 때였다. 기혈이 안정되고 상통한 오행의 기운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까지는 호법을 서 줘야 했다.
방진보의 운공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형?”
눈을 뜬 방진보가 담호를 바라봤다.
“고생했다.”
“이건?”
방진보가 말을 잇지 못했다.
몸 안에서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게 오행이 상통하는 경지?”
“그렇다.”
“고마워요, 형. 이 은혜를 어떻게…….”
“됐으니 씻기나 해.”
“예?”
담호의 말에 방진보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몸에는 검붉은 액체가 가득 맺혀 있었고, 지독한 악취가 났다. 오행의 기운이 상통하면서 몸 안의 불순물이 모두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방진보는 급히 우물가로 달려가 몸을 씻었다. 몇 번이나 물을 부은 후에야 몸에 달라붙었던 불순물들이 모두 씻겨 나갔다.
방진보는 내친 김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방진보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얼굴 형태도 조금 변했고, 키도 눈에 띄게 커졌다. 탈태환골까지는 아니지만 육신이 무공을 펼치기 최상의 상태로 변한 것이다.
오행군자공의 공능과 방진보가 그동안 음식과 매화신단을 이용해 쌓은 내공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방진보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후아!”
방진보가 절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몸 안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이 그가 보는 세상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동안 막혀서 진전이 없던 화산파의 무공들을 막힘없이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진보가 그렇게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별채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그제야 방진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누구세요?”
“무림맹의 내당주 조명율이라 합니다.”
“내당주님요?”
방진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림맹의 내당주라면 엄청나게 높은 직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방진보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방진보가 급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무림맹의 내당주 조명율이 보였다.
조명율의 시선이 방진보의 뒤쪽에 있는 담호를 향했다.
“맹주님의 전언을 가지고 왔습니다, 담 대협.”
“전언?”
“예! 잠시 후 대전에서 중요한 회합이 있으니 담 대협도 꼭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담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조명율의 얼굴에 절로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무림맹의 군사인 남궁창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인 담호였다. 그런데도 무림맹의 그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만큼 담호가 공포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담호의 조그만 표정 변화 하나에도 조명율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조명율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맹주님을 비롯해 강호의 명숙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니 될 수 있으면 꼭 참석해 달라고 맹주님이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초 대협과 해 소저 등도 참석할 겁니다. 그분들에겐 이미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
담호는 말없이 조명율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을 받은 조명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조명율은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담호의 입이 열렸다.
“어디로 가지?”
“맹주부…… 아! 가장 큰 전각으로 오시면 됩니다.”
조명율이 급히 대답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안도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일단은 맹주의 명을 이행한 완수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 맹주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담호가 말을 번복할 것을 두려워한 조명율이 급히 자리를 떴다. 담호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방진보가 담호를 불렀다.
“형?”
“가자.”
“정말 가시려구요?”
“그래!”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방진보가 급히 따랐다.
담호를 따라 맹주부에 들어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무공을 익히느라 외부와 차단된 곳에 있었기 때문에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다.
며칠 만의 외출이었다.
불과 담장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아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것이 며칠 만의 외출 때문인지, 아니면 오행군자공이 상통의 경지에 이르러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
담호를 따라 한참 걸음을 옮기던 방진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저 멀리 산을 올라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방진보는 한눈에 그들을 알아봤다.
“소청이다.”
은소청과 은가보의 무인들이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방진보의 얼굴에 대번 반가운 빛이 떠올랐다. 그 역시 며칠 동안이나 담호와 붙어 있다 보니 은소청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진보는 담호를 뒤로 한 채 은소청에게 걸어갔다.
“소청! 어?”
방진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은소청의 옆에 바싹 붙은 채 걸어오는 젊은 무인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겨우 두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무인은 은소청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은소청은 그런 무인이 부담스러운 듯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젊은 무인이 더욱 그녀의 곁으로 바싹 따라붙었다. 어찌 된 일인지 은가보의 무인들이 젊은 무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눈치를 보는 듯했다.
방진보가 목청을 높였다.
“소청!”
“아! 진보야.”
은소청이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방진보를 보는 그녀의 얼굴엔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급히 물었다.
“수련은 끝난 거야?”
“응!”
방진보의 시선이 은소청의 뒤쪽에 있는 젊은 무인을 향했다. 그는 무엇이 불만인지 인상을 쓴 채 방진보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담긴 노골적인 적의가 공기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누구야?”
“아! 저 사람은…….”
“대군상. 참마도객 대군상이 내 이름이야. 그쪽 소형제는 이름이 어떻게 되지?”
은소청의 곁에 붙어 다가오던 젊은 무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바로 참마도객 대군상이었다.
그는 매우 불쾌한 시선으로 방진보를 바라봤다. 실제로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대군상은 은소청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외모도 그만하면 아름다운 데다가 무엇보다 호남성 제일의 재력을 가졌다는 은가보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그를 혹하게 만들었다.
천하에 수많은 재녀들이 있었지만, 은소청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재력이 조화된 이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대군상은 스스로의 무위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구무룡의 뒤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 사신성의 일원이었고, 실제로 그는 마교의 무인들을 상대로 큰 공을 세웠다.
자신과 무공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반려 또한 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여인들이 접근해 왔지만 누구도 그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은소청이었다.
은소청을 만난 것은 겨우 한 시진 전에 불과했지만, 그는 은소청에게 큰 흥미와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은소청의 곁에 바싹 붙어서 유혹했다.
사신성의 일원이라는 신분과 잘생긴 얼굴, 그리고 유려한 언변이 조화를 이뤄 수많은 여자들을 함락했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그 어떤 것도 은소청에겐 통하지 않았다.
은소청은 그저 형식적으로 그를 대할 뿐 진심으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마치 마음에 커다란 장벽을 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살짝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방진보의 이름을 묻는 그의 목소리엔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 있었다.
대군상의 날카로운 기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위축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방진보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대 소협이셨군요. 전 방진보라고 합니다.”
“별호는?”
“예?”
“별호는 없냐고?”
“그런 거 없는데요.”
“그래?”
순간 대군상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방진보도 그런 사실을 눈치챘다. 자연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대군산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럼 은 소저와는 어떤 사이인가?”
“그걸 왜 물으시죠?”
“은 소저와 별 사이가 아니라면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대군상의 자신 있는 말에 방진보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담호를 따라 강호를 수없이 주유했지만 대군상처럼 타인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말을 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왜요?”
“은 소저가 마음에 들었거든. 그녀는 나와 혼인하게 될 거야.”
“누가 누구하고 혼인한단 거죠?”
보다 못한 은소청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군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은소청의 의견 따윈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때였다.
“조카! 이곳에서 뭐하는가? 소림사에 왔으면 이 숙부를 찾아오지 않고.”
갑자기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중년의 무인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육 척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 누구 봐도 장사라 할 수 있는 그런 체형이었다.
목소리만큼이나 얼굴 또한 박력이 넘쳐흘렀다.
대군상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떠올랐다.
“아, 외숙.”
“하하! 조카!”
중년 무인이 양손을 활짝 펼쳐 대군상을 끌어안았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은소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한눈에 그의 정체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진주언가(珍州彦家)의 언주천 대협 아닌가?’
진주언가는 오대세가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언주천은 진주언가의 장로로 가주 다음가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엄청난 무인이었다.
언주천은 가주를 대신해 무림맹에 파견 나와 있었다. 설마 그가 대군상의 외숙일 줄은 몰랐다.
언주천이 대군상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네가 강호에 위명을 날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던 게냐?”
“조카의 처가 될 만한 자격을 지닌 여인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제야 언주천의 시선이 은소청을 향했다.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