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380화 (3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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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화 2장.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2)

맹주부는 말 그대로 무림맹의 맹주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공석이 된 군사부와 달리 맹주부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맹주인 남천산을 필두로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 거대 문파나 세가에서 파견 나온 무인들, 그리고 무림맹의 수뇌부들까지 합쳐 무려 백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거대한 대전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거물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바로 맹주인 남천산의 소집령 때문이었다.

“맹주가 왜 모두를 소집한 것인지 아시오?”

“글쎄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모은 것 아니겠소?”

“거참! 사전에 언질도 주지 않고 이렇게 소집을 하다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어떤 이들은 호기심이 담긴 시선으로 맹주인 남천산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맹주를 기다리는 이들 중에는 초연운과 소천, 해소월 같은 젊은 무인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영문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초연운은 팔짱을 낀 채 맹주가 앉을 태사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지?’

무림맹주라고 하지만 정치적인 기반이 무척이나 약한 남천산이었다. 때문에 군사인 남궁창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상징적인 역할에 그쳤었다.

당연히 이렇듯 대대적인 소집령은 내리지도 못했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소집령까지 내리면서 많은 이들을 소집한 것이 단지 남궁창의 죽음 이후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때였다.

탁!

둔탁한 소성과 함께 문이 열리고 담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대전 안을 가득 채우던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그만큼 담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유독 한 명만 힘차게 손을 흔들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야!”

초연운이었다. 그가 손짓으로 담호를 불렀다.

담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연운의 옆자리로 걸어갔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이들의 얼굴엔 불편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의 얼굴에는 호감이 드러나 있기도 했다.

전자는 주로 강호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거나 기반이 든든한 장년 이상의 무인들이었고, 후자는 주로 강호초출이거나 젊은 축에 속하는 무인들이었다.

초연운이 미소를 지으며 담호를 바라봤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일이 있었어.”

“일?”

“나중에 말하지.”

“알겠네.”

초연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뒤를 이어 소천과 해소월 등이 알은척을 했다.

“담 대협!”

“오셨어요?”

담호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빈자리에 앉을 때였다.

“맹주님이 들어오십니다.”

경비를 서고 있던 무인의 외침과 함께 무림맹주 남천산이 대전 안으로 입장했다. 그러자 많은 무인들이 일어나 남천산을 맞이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배분이 높은 무인들은 제자리에 앉아서 남천산을 바라봤다. 그런 이들의 모습에 남천산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하지만 남천산은 이내 태연한 표정으로 군웅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하하!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이 몸을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애써 일어설 필요 없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지요.”

“예!”

일어섰던 군웅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남천산도 태사의에 앉았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소집에 응해 주신 강호 동도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여러분을 보니 강호의 정의를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허허!”

남천산의 웅혼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대전 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초연운이 그런 남천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처음엔 그냥 허수아비 같더니만 이젠 많이 능글맞아졌네.”

“아미타불! 방장께서 말씀하시길 이젠 맹주로서의 그릇이 가득 찼다고 하시더군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맹주직만 삼 년을 수행했어요. 그동안 느낀 것이 많았겠죠.”

소천과 해소월이 각각 한마디씩 했다.

그들의 말처럼 남천산은 이제 맹주로서의 위엄을 자연스럽게 발산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것이 그 증거였다.

남천산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군웅들의 소요가 가라앉기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이 늙은이가 갑작스럽게 여러분들을 소집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하실 겁니다.”

“…….”

“좋습니다. 시간 길게 끌지 않겠습니다. 우선 여러분께 몇 분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남천산이 잠시 말을 끓고 군웅들을 바라봤다. 대전 안에 모인 군웅들의 얼굴에 궁금하다는 빛이 떠올랐다.

그들이 아는 남천산은 이렇게 보여 주기식의 화려한 행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숨을 죽인 채 남천산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충분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남천산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나오시지요.”

그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무인들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누구지?”

대전 안의 무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생소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광천을 비롯한 몇몇 수뇌부들만 그들의 정체를 알아봤다.

‘천도왕 적경천.’

애초 무림맹이 소림사로 피난 왔을 때부터 남궁창으로부터 소개를 받았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다.

문제는 적경천의 뒤를 따르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그들에게선 적경천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혹시?”

광천 등의 얼굴에 ‘설마’ 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남궁창이 큰 목소리로 그들을 소개했다.

“이분들은 일차 정마대전 당시 마교의 본단을 급습했던 결사대의 일원이십니다. 마교가 퇴각한 이후 은거하셨던 분들입니다.”

남궁창의 발언이 일으킨 반향은 컸다.

“결사대라니? 그럼 삼십 년, 아니 거의 사십 년 전 이야기잖아.”

“그들이 아직 생존해 있었다고?”

“맙소사!”

군웅들의 웅성거림이 증폭됐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그들이 표정을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먼저 천도왕 적경천 선배는 모든 분들이 알 거라 생각합니다. 무림맹이 악양에서 퇴각할 때 적 선배의 도움이 있었기에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천도왕? 설마 그 천도왕?”

“이럴 수가!”

젊은 무인들마저 적경천의 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그의 무명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남천산의 소개는 계속됐다.

“그리고 이분들은 적성신군 유성월 대협, 천인대적검 장진명 대협, 천산설화 소보원 여협, 천랑객 구의진 대협 등이십니다.”

“아아!”

그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탄성은 점점 커져 갔고, 종국에는 커다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와아아!”

“결사대라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사람들의 얼굴엔 환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지금 남천산이 소개를 한 이들은 수십 년도 더 전에 전설로 군림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의 평화도 존재할 수 있었다.

전설을 목도한 이들의 얼굴엔 어린아이들처럼 설렘의 빛이 가득했다. 그만큼 남천산이 소개한 자들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들은 이미 전설이었고, 강호사에 큰 획을 그은 영웅들이었다. 그들의 재등장은 군웅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용기를 주었다.

남천산은 그런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분위기에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 우리 강호는 이분들에게 구함을 받았습니다. 결사대로 참전했던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강호는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결사대로 참전했던 분들 상당수가 돌아가시거나 은거를 택했습니다. 이분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은거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송구하게도 이분들을 다시 강호로 모시고 나왔습니다. 다시금 강호를 위해 희생을 해 달라는 염치없는 부탁을 하려고 말입니다.”

“…….”

남천산의 말이 이어질수록 군웅들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피를 흘리며 싸웠던 이들이었다. 싸움에 지쳐 은거했던 이들을, 이젠 손주의 재롱이나 보면서 쉬어야 할 이들을 다시 강호로 끌어와야 하는 현실이 슬프기만 했다.

“그리고 이분들은 저의 부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꺼이 강호를 위해 다시 싸우겠다고 나오신 겁니다.”

“우와아아!”

“최고다!”

순간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고, 남천산의 위세 또한 하늘을 찔렀다.

“이 남천산, 삼고초려 해 결사대의 일원을 초빙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천산이 잠시 말을 멈추고 대전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언제 열화와 같은 함성을 보냈냐는 듯이 침묵을 한 채 남천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남천산은 그들이 원하는 말을 했다.

“현재 우리에게도 결사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 이 땅을 지켰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결사대가 필요합니다. 마교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극독을 머금은 비수,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결사대입니다.”

남천산의 말이 불러온 반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후아!”

“결사대라니?”

“다시 결사대를 모집한단 말인가?”

군웅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웅성거렸다.

결사대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실로 대단했다. 일차 정마대전이 끝나고 벌써 수십 년이 흘렀지만 결사대에 참전했던 이들은 아직도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적경천이나 유성월 등이 아직도 강호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은 바로 결사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강호사가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무인들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영예였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웠던 열기가 군불을 지핀 것처럼 더욱 활활 타올랐다.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열기에 초연운과 소천 등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대전에 모인 이들이라면 그래도 강호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결사대라는 세 글자에 넘어가 열광하고 있었다. 결코 우습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초연운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담호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남천산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적경천과 유성월 등의 전대 결사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적경천을 비롯한 결사대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대전 안의 열기를 즐기는 듯했다. 그들은 미소를 지은 채 군웅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이미 적경천의 존재를 알고 있던 소림사의 승려들 역시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역시 설마 이 자리에서 남궁창이 결사대를 다시 만들겠다고 선언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광천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즐기던 적경천은 이내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섬뜩하면서도 냉혹한 눈빛이었다.

‘누구냐?’

적경천이 시선의 주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군웅들 가운데 그는 홀로 오롯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으니까.

‘권마!’

그는 단번에 담호를 알아봤다.

산발한 검은 머리카락에 칠흑처럼 검은 장포,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위를 압도하는 오롯한 존재감이었다.

적경천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도 담호와 같은 존재감을 보여 주었던 무인은 거의 없었다. 아니, 몇 명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신화적인 존재였다.

적경천은 담호가 그들과 동격의 존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안력을 끌어올려 담호를 자세히 바라봤다. 그러자 담호의 깊이 가라앉은 눈동자가 더욱 크게 보였다.

‘저 녀석!’

마치 세상의 모든 어둠을 머금은 것처럼 그 어떤 감정의 편린도 내비치지 않는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순간 적경천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감정을 느꼈다.

갑자기 온몸이 간질간질하고 손바닥이 땀으로 촉촉이 젖어들었다. 머리나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런 느낌을 갖게 한 자는 강호에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일차 정마대전 당시 강호 최고 수준의 고수들이었다.

적경천은 담호가 그들과 동격의 고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유성월 등을 바라봤다.

유성월과 장진명, 소보원, 모두 당대의 고수들이었다. 현재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최정상 고수들을 능가하는 무력을 갖춘 고수들. 하지만 그들조차 담호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와 뺨 위로 땀이 흐르고 어깨에 잔경련이 일고 있었다. 시선을 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눈이 아교로 고정된 것처럼 담호에게서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담호 단 한 명의 존재감이 강호 전대 고수들의 시선을 강제로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수많은 군웅들이 결사대라는 단어에 정신이 팔려 기이한 열기와 커다란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 전 결사대에 참여했던 무인들은 담호와의 기 싸움에 진이 빠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남천산이 외쳤다.

“결사대에 자원해 주십시오. 강호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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