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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81화 (3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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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화 2장.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3)

회합은 끝이 났다. 하지만 대전 안에 모인 사람들은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만큼 결사대라는 단어가 던져 준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남천산은 군웅들에게 결사대라는 벽력탄을 던졌고, 군웅들은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결사대에 들어가면 강호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이 그들의 가슴에 큰 불을 지른 것이다.

“결사대라…….”

“역시 자원해야겠지?”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지금이야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지만, 잠시 후면 소림사와 무림맹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에도 결사대는 소수로 운용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똑같이 소수만 뽑을 것이 분명했다.

대전 안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이 강호 유명 방파의 고수들이었다. 밖에 있는 어중간한 무인들과 신분 자체가 달랐다. 남천산은 그들에게 결사대에 들 기회를 먼저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큰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결사대에 가입하겠습니다.”

“저도 가입하겠습니다.”

무인들이 앞을 다퉈 손을 들었다. 대전 안은 순식간에 그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밀려드는 자원자들로 인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남천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곁에 있는 적경천 등이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남천산의 시선 또한 자연 그들의 눈이 향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들떠 있는 가운데 유난히 공기가 가라앉아 있는 그곳을.

그 한가운데 담호가 존재했다.

‘권마!’

남천산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꿔 미소를 지었다.

진실 된 감정이야 어떻든 간에 미소를 지어야 했다. 그는 무림맹의 맹주였으니까.

남천산이 담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에 군웅들이 분분히 비켜섰다.

자연 사람들의 시선이 남천산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남천산이 향하는 곳에 담호가 있었다. 담호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천산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담호는 별반 반응이 없었다. 그에 몇몇 무림맹 무인들이 울컥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성격이 더럽기로 소문난 담호였다. 무림맹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군사인 남궁창까지 날려 버렸는데 그들과 같은 일반 무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남천산이 다가오자 담호의 곁에 있던 초연운과 소천 등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림맹의 맹주이기 앞서 그들보다 몇 배분은 높은 선배 고인이었다. 먼저 일어나 맞이하는 것이 예의였다.

뒤늦게 담호도 몸을 일으켰다.

초연운 등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맹주님!”

“허허! 어떤가?”

“예?”

“결사대 말일세.”

“좋은 것…… 같군요.”

초연운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두가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결사대에 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눈을 번들거리고 있는데 혼자서 부정적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네. 그렇다면 자네도 결사대에 참여하겠지?”

“그건…….”

“자네와 같은 젊은 무인들이 강호를 위해 큰일을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생각하나?”

말은 초연운에게 하고 있었는데, 시선은 담호를 향해 있었다. 누가 봐도 담호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남천산의 의도를 깨닫고 담호를 바라봤다. 남천산은 초연운에게 말을 하는 형식을 빌려 담호에게 결사대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담호에게 집중됐다.

당금 강호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행보를 보여 주는 담호였다. 그가 결사대에 참여하겠다고 한다면 그 뒤를 따를 무인들이 줄을 설 것이다. 반대로 참여하지 않겠다면 실망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터. 그 어느 쪽도 남천산에겐 손해가 아니었다.

담호는 대답이 없었다. 곤란하게 된 것은 초연운이었다. 실제로는 담호에게 하는 말일지 모르지만 형식적으로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답도 자신이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탕! 탕!

초연운이 갑자기 자신의 의족을 두드렸다. 그러자 쇳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결사대에 참여하고 싶지만 보다시피 다리가 이래서…….”

“으음!”

“아직도 비가 오면 많이 아픕니다.”

초연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죄송합니다.”

“아닐세! 강호를 지키다 그리된 것을 아는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군. 혹시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말하게. 자네라면 언제든 결사대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네.”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음!”

침음성을 흘리며 남천산이 담호를 바라봤다. 이젠 담호 차례였다. 그는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자네는…….”

“됐어!”

“…….”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담호가 잘라 말하자 남천산이 무안한 얼굴이 됐다. 그래도 어느 정도 고민을 하거나 군웅들의 눈치를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칼처럼 잘라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허허! 젊은 친구가 단호하군.”

갑자기 낯선 음성이 남천산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적경천이 다가온 것이다.

그의 시선은 담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강호의 대선배인 적경천이 말을 걸어왔음에도 담호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적경천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 적경천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담호의 성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들었음에도 담호는 별반 반응이 없었다. 보통 이렇게 선배 무인이 다가오면 후배 무인이 예를 차리는 것이 강호의 법도임에도 말이다.

“나는 적경천일세.”

“알고 있어.”

“그런데도 예를 차리지 않는 겐가? 나는 자네에게 선배 대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게 무슨?”

“알잖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군. 실망일세! 강호에 대단한 후배가 등장했다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이렇게 예의가 없을 줄은 정말 몰랐군.”

“결사대…… 누구 생각이야?”

“무슨 말인가?”

“재밌어서 그래. 누구 생각이야?”

담호의 시선이 남천산을 비롯해 적경천, 그리고 뒤에 서 있는 유성월, 장진명 등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자 그들의 낯빛이 더욱 굳었다.

그들은 대답 대신 담호를 노려봤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강호의 최고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들이었다.

그들의 눈빛에 담긴 역도는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지만 담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담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당신들도 결사대에 참여하나?”

“물……론이다. 우리가 참여해 결사대를 이끌 것이다.”

“역시 그런가?”

“무슨 의미지?”

“당신이 더 잘 알겠지. 그렇지 않은가?”

“자네는 말을 참 재밌게 하는군. 남이 들으면 딱 오해하기 좋게 말이야. 어쨌거나 자네는 결사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이지? 참으로 아쉽군! 자네와 같은 젊은 무인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해 줘야 강호의 정의가 더욱 바로 서는 법이네. 허나 어쩔 수 없지. 본래 성향이 그렇다면야.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이야기하시게. 자네와 같은 고수라면 언제든 환영이니까.”

적경천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제까지 담호가 만난 그 어떤 사람과도 달랐다. 충분히 화가 날 만한데도 자신의 감정을 자제했고, 오히려 여유 있는 면모를 보였다.

담호는 적경천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적경천도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내공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그래서 처음 담호를 보았을 때와 달리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담호는 분명 껄끄러운 상대였다.

속내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새까만 두 눈은 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적경천은 담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비록 오랜만에 강호에 나왔다고 하지만, 그 역시 오래전부터 위명을 날려 온 강호의 절대 고수였다.

비록 담호의 눈빛이 부담스럽다고 하지만, 자신의 무력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담호는 분명히 젊고 강력한 무력을 소유하고 있다. 확실히 젊은 무인들 중 발군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가 갖지 못한 연륜과 대국을 꿰뚫어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수준의 무력이라면 아무래도 경험과 연륜이 풍부한 쪽이 유리하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적경천에겐 동료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무력을 지닌 이들이, 그것도 무려 열 명이나.

그가 담호에게 위축될 이유는 아무리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 봐야겠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이관…… 잘 있나?”

“철혈무신 이관을 말하는 겐가?”

“그래!”

“그분의 행방을 내가 어찌 알겠나? 아직 살아 계시다면 잘 있겠지. 그럼 이만 가 보겠네. 다음에 또 보세.”

적경천이 손을 흔들며 뒤돌아섰다. 맹주인 남천산 등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담호는 그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깊이 가라앉아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때 초연운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도 밖으로 나가세. 아무래도 안이 더욱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담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대전을 빠져나왔다.

결사대를 다시 뽑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소림사와 무림맹으로 퍼져 나갔다.

대전 안에 있던 무인들 중 상당수가 이미 결사대에 가입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수많은 무인들이 앞을 다퉈 결사대에 가입하고자 했다.

결사대에 참여하는 것은 젊은 강호인이라면 최고의 영예였다. 결사대에 참여해 공을 세우면 그들의 이름은 후대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름을 날리는 것.

그것도 후대에 영원히 기억될 만큼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

그 강렬한 유혹에 젊은 무인들 상당수가 넘어갔다.

그중에는 구무룡 중 일인인 천뢰무객(天雷武客) 남학, 무영신룡(無影神龍) 엄태천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 먼저 결사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의 참여는 다른 이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다. 순식간에 소림사와 무림맹이 결사대라는 이름의 광풍에 휩싸였다.

그런 와중에 한 줄기 신선한 소문이 소림사와 무림맹을 강타했다.

사신성의 일인인 참마도객(慘魔刀客) 대군상이 꺾였다는 믿을 수 없다는 소문이었다.

대군상은 현 강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무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무명의 무인에게 패배했다는 소문은 쉽게 믿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대군상이 패하는 장면을 목격한 군웅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들에 의해서 자세한 정황이 퍼져 나가면서 방진보의 이름 또한 널리 알려졌다.

구대문파 중 하나인 화산파의 대숙수 방진보.

처음엔 모두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화산파가 대단하다고 하나 고작 숙수 따위가 사신성의 일원을 꺾었다는 사실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일반 숙수도 아니고 대숙수라니.

그들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거짓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이들이 그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화산은 아직 죽지 않았다.”

“화산파가 새로운 젊은 영웅을 세상으로 내보냈다.”

사람들은 방진보를 통해 화산파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이빨이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사람들은 사신성의 일원을 누르고 홀연히 강호에 등장한 방진보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화산대숙수(華山大熟手)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방진보를 화산대숙수라는 별호로 불렀다. 화산파의 숙수이면서 사신성을 능가하는 도객이라면서 말이다.

화산대숙수 방진보.

그는 담호의 뒤를 이어 화산파를 대표하는 무인으로 떠올랐다. 수많은 젊은 무인들이 방진보와 교분을 나누기 위해 찾아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방진보는 부끄럽다는 얼굴로 빈객청 안에서만 머물렀다.

방진보는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이젠 너도 어엿한 무인이 되었구나. 화산대숙수 방진보. 크흐흐!”

“정말 자꾸 놀릴 거예요?”

“놀리긴? 사실을 말하는 거지.”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초연운의 놀림에 방진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갑자기 얻게 된 유명세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가 대군상과 싸운 것은 은소청을 지키기 위함이었지, 유명해지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하여간 놀리는 재미가 있는 녀석이라니까.”

초연운이 방진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생각 같아서는 계속해서 더 놀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소천과 청운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큰일 났네.”

소천의 다급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초연운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가?”

“아, 안휘성에…… 마교의 움직임이 포착됐네.”

“마교?”

“대규모 병력이 이동하는 것이 암운에 의해 포착됐네. 그 때문에 지금 무림맹의 수뇌부가 모두 소집되었다네.”

초연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급히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담호를 바라보았다.

담호의 깊은 눈동자에 파문이 일어났다.

‘안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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