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
384화 3장. 대지는 불타고,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3)
공기가 바뀌었다.
모르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림사와 무림맹의 분위기가 급박하게 변했다. 수뇌부들은 대전 안에 모여 연일 회의를 하고 있었고, 정보 조직인 암운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무인들의 본능은 실로 무서워서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곧 큰일이 닥쳐올 것을 직감했다.
그때부터 무인들은 연무장에 틀어박혀 무공을 점검했다. 말수가 적어지거나 극단적으로 무공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결사대 때문에 한껏 달궈졌던 공기가 식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사대가 조직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수면 아래서 결사대를 조직하는 일은 진행이 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지원을 했지만, 그중 누가 결사대에 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결사대에 들어간 이들도 절대 표를 내지 않았다. 정보는 보안이 생명이었다. 결사대에 들어간 것은 무한한 영광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후아! 밖은 아주 살벌하네요.”
방진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빈객청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에 주방용 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숙수의 그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주방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화산대숙수라는 별호를 얻은 그날 이후 그는 소림사의 주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소림사의 숙수들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불문의 요리는 또 처음이었기에 방진보는 흔쾌히 응했다. 그는 소림사의 주방에 머물면서 숙수들과 같이 요리를 하고, 또 지식을 나눴다. 그 덕분에 소림사에서 나오는 요리의 질이 크게 높아져 무인들의 호평이 자자했다.
주방에 있다 보니 자연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 들어왔다. 덕분에 방진보는 소림사와 무림맹 전반에 흐르는 기류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빈객청 안에는 담호 홀로 앉아 있었다.
방진보가 담호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헤헤! 이것 드세요.”
“뭐냐?”
“소룡포예요. 소림사의 비전으로 만든 건데 아주 맛있어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맛은 나요.”
“고맙다.”
“헤헤!”
담호는 방진보가 내민 소룡포를 받았다. 방금 찐 소룡포에서는 뜨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담호는 소룡포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고소한 육즙이 입안 가득 흘러들었다.
방진보의 말처럼 고기를 넣지 않았음에도 고기 맛이 느껴졌다.
“맛있죠? 이거 잘만 응용하면 화산파에서도 점심으로 내놓을 수 있겠더라구요.”
담호가 맛있게 먹자 방진보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방진보는 화산대숙수라는 별호로 불리게 된 것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담호가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더욱 신나고 즐거웠다.
그때였다.
“뭐가 그렇게 재밌냐? 화산대숙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방진보가 인상을 콱 구겼다.
이렇게 그를 놀리는 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연운 형!”
바로 초연운이었다.
그가 소천, 해소월, 그리고 청운과 함께 빈객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냄새가 그럴싸한데 우리 것은 없냐?”
“없어요.”
“에이! 그러지 말고. 대숙수님 제발…….”
“아, 진짜!”
방진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날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이렇게 재앙이 되어 돌아올 줄은 진심으로 몰랐다. 만일 알았다면 절대 내뱉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해 봤자 늦었고, 초연운은 절대로 놀리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방진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연운이 말했다.
“소룡포!”
“알았어요. 만들어 주면 될 것 아니에요. 진짜 더러워서……쳇!”
방진보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초연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담호 앞에 앉았다. 그 뒤를 소천과 해소월, 청운 등이 따라 앉았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안휘성 곳곳에서 마교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
초연운의 말에 담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소천이 보충 설명을 했다.
“아미타불! 남궁세가가 목표임이 분명합니다.”
“대책은?”
담호의 물음에 소천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해소월을 바라봤다.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다……예요.”
“…….”
“당장 병력을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제때 맞춰 지원 병력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해소월의 대답에 담호의 눈빛이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교에 본단을 빼앗기고 소림사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무림맹이었다. 모든 것이 산만하고 정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 무림맹이 남궁세가에 지원 병력을 쉽게 보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무림맹엔 비장의 한수가 있었다.
“결사대는?”
“그게…….”
“말해!”
“안휘성에 결사대를 파견할 수 없다는 것이 무림맹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결사대를 모집한 거지?”
“아무래도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해소월에게 집중됐다. 부담이 될 만도 하건만 해소월은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차 정마대전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설마?”
“맞아요. 맹주님은 일차 정마대전 때처럼 결사대를 이용해 마교의 본단을 칠 작정이 분명해요.”
“으음!”
“아미타불!”
청운과 소천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미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듣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을 줬다.
“마교의 본단이라면 악양인가?”
“아무래도 교주가 합류했으니 그곳이 본단이라 할 수 있겠죠.”
“으음!”
“문제는 마교의 전력이 모두 본단에 모인 것이 아니란 거예요. 마교의 전력은 아직 천하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본단만 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이제까지 드러난 마교의 전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마교의 저력은 실로 무서웠으니까.
해소월은 내친 김에 자신이 이제까지 생각했던 바를 모두 말했다. 마교와 수차례 격돌해 봤기에 그녀의 생각은 나름 타당했다.
초연운이 담호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래서 말인데…….”
“말해!”
“나도 결사대에 참여하겠네. 그래야 할 것 같아.”
“…….”
“어지간하면 머리만 굴리는 노인네들의 놀음에 장단 맞춰 주고 싶지 않은데, 너무 많은 이들이 결사대에 지원했어.”
초연운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우면서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냥 넘기기엔 일이 너무 커졌어.”
“내게 설명할 것 없어.”
“응?”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
담호의 말에 초연운은 물론이고 소천 등의 눈동자까지 흔들렸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나?”
“상관없어.”
“알겠네!”
초연운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자신을 이해해 주는 담호가 고마웠다.
담호의 시선이 해소월을 향했다.
“당신도 결사대에 참여할 것인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미 천뢰무객 남학 소협과 무영신룡 엄태천 소협도 참여하기로 했어요. 같은 구무룡 중 둘이 참여하다 보니 거절할 명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아미타불! 그렇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방장께서 합류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저 역시 청성파를 대표해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본문에서 인원을 더 보내온다니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해소월은 스스로의 의지로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소천과 청운은 문파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경우였다. 애초부터 그들에겐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셈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은 결사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소림사와 무림맹에 머물면서 명령을 기다려야 했다.
담호가 그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완성에 가까운 젊은 무인들이었다. 그들에게 주제 넘는 충고를 하는 것은 모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소룡포 왔어요.”
방진보가 큰 소리와 함께 빈객청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엔 커다란 쟁반이 들려 있었다. 쟁반에는 갓 만든 소룡포가 가득 쌓여 있었다.
초연운 등의 얼굴에 반색이 떠올랐다.
“역시 화산대숙수야.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만들어 오다니.”
“에이! 자꾸 놀릴 거면 형은 먹지 마요.”
“그럴 수야 있나? 어서 내려놔.”
“쳇!”
초연운은 거의 강제로 방진보의 손에 들린 쟁반을 빼앗았다. 순식간에 소룡포를 약탈당한 방진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품에서 조그만 쪽지 하나를 꺼내 담호에게 건넸다.
“참! 이거요.”
“뭐냐?”
“입구에서 하오문도라고 밝힌 이를 만났어요.”
“하오문?”
“예! 그가 이걸 꼭 형에게 전해 주라고 하던데요.”
방진보의 말에 담호가 쪽지를 급히 펼쳐 읽어 내렸다. 쪽지를 읽어 내리는 그의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그런 담호의 모습에 초연운 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담호였다. 그런 그가 저렇게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소천은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하오문이라고? 하오문이 무림맹 내에까지 사람을 심어 두었단 말인가?’
소림사와 무림맹에 들어오는 이들은 철저한 신분 확인과 검문을 거친다. 신분이 불확실한 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오문은 소림사 내에 사람을 심어 두었다. 소림사의 경계망에 구멍이 뚫린 셈이었다.
‘하오문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소천은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소림사 안에서만 평생을 지내 온 그였다. 그래서 소림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소림 이외에도 문파는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를 능가하는 젊은 무인들도 다수 있었다.
담호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언젠가는 그를 능가할 것이다.’
소천이 그렇게 다짐할 때였다.
콰직!
갑자기 쪽지가 담호의 손안에서 구겨졌다. 담호의 격렬한 반응에 방진보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
“왜 그러는가?”
초연운도 놀라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가 대답 대신 방진보에게 물었다.
“이 쪽지를 건네준 자는 어디에 있지?”
“바,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방진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담호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도저히 한쪽 발을 전다고 볼 수 없는 빠른 걸음이었다.
방진보의 말처럼 빈객청 밖에 일꾼 차림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담 대협!”
“당신이 이 쪽지를 보냈나?”
“그렇습니다. 하오문의 오상일이라 합니다.”
일꾼 차림의 사내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에 담호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정보가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저희 하오문에서 운영하는 객잔에 대협의 여동생과 호위무사가 머물고 있습니다.”
“내동생인 것은 어떻게 알았지?”
“저흰 하오문입니다. 그 정도 정보는 진작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부문주께서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셨거든요.”
“기예화?”
“그렇습니다. 부문주 덕분에 전 지부가 담 대협과 관계된 거라면 즉각 파악할 수 있도록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황혜령이 피투성이가 된 묵일광과 함께 객잔에 들어온 것이 어제 아침이었다. 두 사람을 알아본 객잔 주인이 전서구를 띄웠고,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소림사에 은밀히 잠입해 있던 오상일에게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내 동생은?”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 정도면 움직일 만하다 했습니다. 그보다 동생 분을 호위하던 무사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두 분을 안휘성 밖으로 빼돌리려 했지만 아시다시피 마교 때문에 밖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
“죄송합니다. 그건 저희의 능력 밖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하오문의 무력은 보잘것없으니까요. 이 정도로도 저희는 충분히 무리를 한 셈입니다.”
오상일이 소림사에 자리를 잡기 위해 한 노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몇 번이나 신분 세탁을 하고, 일꾼으로 위장해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담호에게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들통 나게 됐다.
오상일은 이제 소림사에서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만큼 큰 대가를 치른 것이다.
담호의 눈빛이 한없이 깊이 가라앉았다.
무림맹은 이미 안휘성을 포기했다.
그들은 결코 안휘성에 전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