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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385화 (3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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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화 4장. 도고일척(道高一尺)이면 마고일장(魔高一丈)이라…(1)

남궁세가는 안휘성의 성도인 합비(合肥) 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배후로는 제법 커다란 산을 병풍처럼 등지고, 앞에는 커다란 강이 흐른다. 완벽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 거기다 마을로 들어가는 통로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하나뿐.

다리만 지키면 그 어떤 적도 침입할 수 없는 천혜의 지형. 그 한가운데 남궁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남궁세가 주위로 자리를 잡은 집들은 모두 방계(傍系) 소유. 마을 전체가 남궁세가의 혈족으로 이뤄진 셈이다.

남궁세가의 분위기는 비장했다.

비록 지금은 세가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안휘성의 맹주를 자처하는 남궁세가였다. 수백 년 동안 안휘성에 구축해 온 그들의 세력은 실로 광범위했다.

안휘성에 존재하는 무관치고 남궁세가와 관련이 없는 곳이 없었고, 수많은 상단, 표국 들 역시 안휘성의 속가제자들이 차린 것들이었다.

남궁세가가 담호에게 큰 피해를 입고 봉문을 했다고 하지만, 그들과 연관된 외부 세력들은 아직도 멀쩡히 남아서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장로 남궁장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침중했다. 그의 주위에는 남궁세가의 수뇌부들과 속가문파들의 수장들이 포진해 있었다.

장내에 내려앉은 무거운 침묵을 깬 이는 바로 남궁장운이었다.

“마교도들이 이렇게 안휘성 깊숙이 들어올 때까지 까마득하게 모를 수가 있나? 아무리 본가가 봉문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니.”

“죄송합니다. 모두가 저희 탓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속가문파의 수장들이 참담함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이 마교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몇 개의 무관이 전멸을 당한 이후였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마교의 전력이 안휘성으로 들어온 사실을 까마득하게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인지했을 때는 마교의 정예들이 이미 합비 인근까지 도착한 후였다.

“가증스럽게도 놈들이 삼삼오오 인원을 분산해 침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인이나 낭인 들로 분해서 들어왔기에 놈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속가 문파의 수장들이 머리를 탁자에 찧으며 죄를 청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남궁장운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표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연이은 악재가 이어지자 그의 표정엔 어둠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가주인 남궁천의 죽음 이후 남궁세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무림맹의 군사 남궁창까지 잃었다. 그들의 부재는 남궁세가의 전력 악화로 이어졌다.

특히 남궁창의 죽음이 뼈저리게 아팠다.

남궁창의 죽음으로 무림맹의 지원과 연결 고리가 거의 끊기고 말았다. 아직도 끈이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너무나 미미해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저희가 언제 무림맹의 지원에 기댔습니까? 우린 대남궁세가입니다. 이 정도의 위기는 언제든 헤쳐 나갈 저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님.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죽을 것 같은 표정 짓지 마십시오. 대남궁세가가 이 정도의 혈란에 무너질 리 없습니다. 이미 전 혈족들이 전원 옥쇄할 각오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남궁세가의 직계 혈족이자 장로들인 남궁경과 남궁세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얼굴엔 분기탱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직계들의 반응은 대부분 두 사람과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마당이 침범당한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적어도 남궁세가가 멀쩡했을 때라면 말이다.

남궁장운은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전대 가주였던 남궁천은 그야말로 엄청난 존재감으로 남궁세가 전체를 이끌었다. 그의 말 한마디면 남궁세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었다.

남궁세가의 수많은 장로들 누구도 그의 결정에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그의 권한과 존재감, 무력은 막강했다. 남궁천이 생존했을 때는 무조건 그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됐다.

생각할 것도 없었고, 고민할 것도 없었다. 따로 책임질 것도 없으니 실컷 검만 휘두르면 됐다. 생각해 보면 가장 편했던 시절이었다.

반대로 그렇게 강력한 존재가 부재하게 되자 역효과가 너무 극심했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존해야 했고, 원치 않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남궁장운은 극심한 심적 갈등을 겪어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남궁장운이 고민할 때였다.

“숙부!”

갑자기 나직한 목소리가 대전 입구에서 들려왔다. 무심코 입구를 바라보던 남궁장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진아!”

“소가주다.”

“소가주가 출관했는가?”

갑자기 대전 안에 모인 사람들이 술렁였다.

대전 입구에 나타난 젊은 무인. 그는 마치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줄기줄기 발산하고 있었다.

남궁무진, 바로 남궁세가의 소가주였다.

그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모두가 놀라워했다.

남궁장운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진아! 어떻게, 몸은 괜찮은 게냐?”

“이젠 괜찮습니다.”

남궁무진의 대답에 남궁장운을 비롯한 모든 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남궁무진이 주화입마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궁무진이라는 불세출의 기재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의 오성은 실로 가공했고,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남궁세가의 모든 무공을 익혀 나갔다. 무리해서 무공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지기 전까지 말이다.

그 때문에 모든 사달이 일어났다. 그의 주화입마를 치료하기 위해 신의 종리연을 납치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담호와의 큰 충돌을 불러왔다. 그리고 충돌은 가주였던 남궁천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남궁천은 상처가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렀다.

그것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앞에 서 있는 남궁무진의 모습은 멀쩡해 보이다 못해 오히려 예전에 비할 수 없이 엄청난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모두를 대표해 남궁장운이 물었다.

“주화입마는?”

“극복했습니다.”

“어떻게?”

“아버님이 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내상이 악화되셔서…….”

“저의 주화입마를 치료하려다 내상이 악화되신 겁니다.”

“으음!”

남궁장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사실은 남궁천의 최측근인 자신조차 까마득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버님은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자책하지 마라. 무진아.”

“자책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책할 자격도 없으니까요. 저로 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럴 자격이 있겠습니까?”

“가주께서 돌아가신 것은 모두가 권마 때문이다. 절대 네 탓이 아니다.”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하지요. 지금은 그게 급한 게 아니니까.”

남궁무진이 걸음을 옮겨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남궁장운이 서둘러 태사의를 비켜 줬다.

남궁무진의 전신에서는 사위를 압도하는 기세가 뻗쳐 나오고 있었다. 석년의 남궁천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기세가.

‘정말 주화입마를 극복했단 말인가?’

사람들의 얼굴에 잠시 의문의 빛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내 납득했다. 주화입마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상대는 남궁세가 제일의 기재인 남궁무진이었다. 더구나 남궁천의 도움이 있었다면 오히려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남궁무진이 태사의에 앉았다.

“이야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본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마교도가 이미 안휘성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럼 전면전이 머지않았군요.”

“피할 수 없는 충돌입니다. 그에 대비해 남궁세가의 전 전력과 속가제자들까지 모조리 소집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남궁무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그의 전신에서는 절대자의 기도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적들의 전력은?”

“그게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군요.”

“그렇진 않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많은 전력을 끌어모았든 본가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안일함 때문에 무림맹이 본성을 빼앗겼고, 본가가 몰락을 했습니다.”

“으음!”

얼음처럼 차가운 남궁무진의 말에 열변을 토하던 무인이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남궁무진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흩뿌리며 말을 이었다.

“가주께서도 계시지 않고, 검왕대도 없습니다. 현재의 남궁세가는 역대 최악의 전력입니다. 우리는 현 상황을 냉정히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대전 안에 모인 사람들의 귀에 또렷하게 각인됐다. 흥분했던 사람들은 냉정을 되찾았다.

남궁무진의 시선이 남궁장운을 향했다.

“무림맹에 도움은 청했습니까?”

“이미 지급으로 요청했다.”

“그들이 도와줄 것 같습니까?”

“당연히 무림의 정의를 생각한다면…….”

“그들은 절대 도와주지 않을 겁니다.”

남궁무진이 단호히 잘라 말했다. 그에 남궁장운이 할 말을 잃었다.

“제가 그들이라도 절대 도움을 주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미끼로 써먹을 거면 몰라도.”

“그게 무슨?”

“안휘성에 전력이 빠지는 만큼 마교의 악양 본단이 약화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무림맹주라면 절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남궁무진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본래부터 남궁세가 제일의 천재라 불렸던 남궁무진이었다. 무재도 뛰어났지만 사태를 파악하고 주변 상황을 읽는 눈은 더욱 뛰어났다. 무림맹에 군사로 파견 나갔던 남궁창조차 그에 관해서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남궁무진의 말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무나 충격적인 예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궁무진의 말이 사실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남궁창의 죽음 이후 무림맹과의 연결 고리는 미약해졌고, 지원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장로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어떻게 무림맹이? 무림맹이 창설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이가 바로 남궁세가이거늘.”

“우리가 없었다면 무림맹은 태동조차 못 했습니다. 무림맹에 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반드시.”

“집을 지키라고 키운 개가 주인을 배신하다니.”

장로들이 앞을 다퉈 무림맹을 성토했다.

남궁무진은 그런 장로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자신은 연무장에 앉아서도 그런 사실을 꿰뚫어 보았는데, 대외의 소식에 정통한 장로라는 자들이 저렇게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할 뿐이었다.

이런 이들을 데리고 마교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힘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냉정을 되찾았다.

“조용!”

“…….”

그의 말 한마디에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사람들이 조개처럼 입술을 다물었다.

“지금은 무림맹에 대한 보복을 말할 때가 아닙니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어, 어떻게 말이냐?”

“저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도와주게 만들어야죠.”

“그러니까 어떻게?”

“안휘성에 국한된 전선을 중원 남부 전역으로 확대하는 겁니다.”

남궁장운이 눈을 끔뻑거렸다. 일시지간 남궁무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남궁무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 못하고, 그의 설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남궁무진이 태사의에서 일어나 벽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안휘성의 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가 안휘성 지도 한복판의 합비를 찍었다. 남궁세가가 위치한 곳이었다.

“안휘성의 맹주가 남궁세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그렇지.”

“안휘성 내의 정도를 걷는 문파라면 모두가 본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본가와 음으로 양으로 관계된 문파의 수장들이시구요. 바꿔 말하면 여기에 있는 이들이 안휘성의 전력 전부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무진이 말하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이제와 굳이 다시 끄집어내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탁!

그 순간 남궁무진이 안휘성 남부의 어느 한 지점을 짚었다. 안휘성을 반으로 가르며 지나가는 거대한 강줄기, 장강 남부에 있는 거대한 산이 있는 곳이었다.

중인들은 한눈에 산의 정체를 알아봤다.

“황산?”

“그렇습니다. 녹림의 총본산인 패왕채가 있는 곳입니다.”

중인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궁무진의 말처럼 황산에는 녹림의 총채인 패왕채가 존재했다. 수만 녹림도의 정점에 군림하는 거대한 산채가.

남궁세가가 안휘성 정파 무림을 대변한다면 패왕채는 녹림을 상징했다. 토벌하고자 했다면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러자면 남궁세가 역시 커다란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 때문에 안휘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장강을 핑계로 토벌을 차일피일 미뤄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서로 소 닭 보듯 해 온 것이다.

남궁무진의 말이 이어졌다.

“패왕채를 이 싸움에 끌어들입니다.”

“그게 무슨?”

“패왕채가 전화에 휩쓸리면 수만 녹림도가 움직일 겁니다. 비록 개개인의 무위는 개미처럼 보잘것없지만, 그 어마어마한 숫자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터. 마교의 신경도 분산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 틈을 노려 반격합니다.”

“허나 그렇게 되면 녹림도의 피해가……. 아니, 그보다 그들이 참여할 이유가…….”

“어차피 남궁세가가 무너지면 다음은 패왕채입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녹림도의 피해를 걱정하셨습니까?”

“아니, 그게…….”

의견을 개진했던 장로가 남궁무진의 질책에 얼굴을 붉혔다.

남궁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차피 약탈이나 하고 살아가는 녹림도일 뿐입니다. 세상에 하등 필요 없는 이들을 신경 써 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속죄는 차후 우리가 살아남은 후에 신경 쓰십시오. 지금은 본가를 살리는 데만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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