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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화 6장. 지옥을 보다(1)
시뻘건 화마에 얼굴마저 붉게 물든 자, 그는 바로 담호였다.
그그극!
그의 몸을 중심으로 가공할 인력이 발생했다.
인력은 사람은 물론이고, 화염과 공기까지도 끌어들였다.
화르륵!
화염과 공기가 뒤섞여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화산에서 터져 나오는 용암보다도 뜨겁게.
그 한가운데 담호가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흡사 지옥의 제일 밑바닥에 존재하는 군장과도 같아 보였다.
“아아!”
“저게 무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충격적인 광경에 사람들의 동작이 딱 멎었다.
불길을 바라보는 두 눈이 뜨거운 열기에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담호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들의 시선을 강제로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담호가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크으윽!”
“괴, 괴로워!”
사람들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연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차라리 죽어서 이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담호의 주먹이 허공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활처럼 휘어지는 담호의 등, 이어 그의 주먹이 대지를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콰아앙!
뇌음이 먼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눈을 끔뻑거렸다.
지이잉!
순간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보이고, 귀에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에서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몸이 눈과 귀의 신경을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유추해 낼 사이도 없이 엄청난 후폭풍이 그들을 덮쳤다.
쿠우우우!
멀쩡하던 밤하늘에 폭풍이 몰아쳤다.
몸을 끌어당기는 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사람들의 몸이 폭풍에 휩쓸려 사방으로 날아갔다.
“크아악!”
“살려 줘!”
비명은 그 직후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볼품없이 바닥을 나뒹굴고, 거꾸로 처박혔다. 그런 그들의 몸 위로 자욱하게 일어났던 먼지가 내려앉았다.
기존의 파성추에서 진일보한 위력의 파성추였다.
이를테면 파성추의 진화판이었다. 그 위력은 기존의 위력을 몇 배나 상회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그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객잔을 집어삼켰던 화마가 거짓말처럼 꺼져 있었다. 비록 상당 부분 검게 그을리고 탄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불길은 완전히 소화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허억, 허어억!”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 상식을 넘어선 현상에 그들은 어찌 반응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반응한 이들은 바로 중천의 무인들이었다.
“마인이다.”
“명존의 세상을 위협하는 마선(魔仙)이 분명하다.”
그들이 언급한 마선은 마교의 경전에 등장하는 역천의 마인이었다. 마교의 신인 명존에게 대항하는 역천의 존재. 마교 최고의 적이 바로 마선이었다.
“마선이 정말로 실재했다니.”
“신교의 가르침은 사실이었다.”
백성들은 중천 무인들의 말을 완전히 믿었다.
역설적이게도 담호라는 존재가 믿음의 증거가 되어 준 것이다. 백성들은 분노와 적의가 어린 시선으로 담호를 노려보았다.
“물러가라, 마선아! 이곳은 명존의 땅이다. 너와 같은 이가 서 있을 곳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담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죽을 자리를 모르고 불길로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그들은 마교의 교리를 철석처럼 믿었다.
“이곳에서 죽어도 우리는 명존에게 갈 것이다.”
“죽일 테면 죽여 봐라.”
그들의 눈에는 광기마저 어려 있었다.
어차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겨웠던 참이다. 무인들에게 치이고, 고관대작들은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 줄기 희망도 없이 어쩔 수 없이 겨우 연명해 온 비루한 삶, 이 기회에 제 한 몸 희생해 극락에 갈 수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울까?
오히려 바라마지 않던 기회였다.
그렇게 백성들이 담호에게 다가갈 때 중천의 무인들은 조금씩 뒤로 빠졌다.
‘우리는 아직 죽어선 안 된다.’
‘과업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 먼저 죽을 수 없다.’
일반 신도들이야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었지만, 자신들 같은 고위 신도는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나를 죽여라. 마인아!”
“아니다. 나부터 죽여라.”
모두가 미쳤다.
광기는 모두의 두려움을 날려 버렸다.
백성들은 앞을 다퉈 자신을 죽이라 말했다. 아무리 굳건한 배포를 가진 무인이라 할지라도 모골이 송연해질 만한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퍼석!
제일 앞에서 죽여 달라고 말하던 사내의 머리가 날아갔다.
눈앞에서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는 머리통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퍼석!
“커억!”
그 순간 또 다른 남자의 머리가 날아갔다.
피 보라가 튀고, 회백색 뇌수와 골편을 뒤집어썼다. 온몸에 느껴지는 축축한 감촉과 뜨거운 열기가 이게 꿈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 충격적인 광경이 사람들의 이성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으아악!”
“사, 살인이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광기에 취해 흐릿하기만 하던 세상이 또렷하게 보였고, 그 한가운데 담호가 서 있었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죽으면 극락에 갈 거라고?”
부르르!
지옥에서 울려 퍼지는 귀곡성이 이럴까?
담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그만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몸을 떨었고, 또 어떤 이들은 똥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담호의 목소리엔 공포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힘이 있었다.
담호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
그 누구도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머리를 잃은 시신 두 구가 아직도 멀쩡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다.
광기가 사라지고 난 후 직면한 현실은 두려웠다.
백성들은 감히 입도 열지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했다.
담호는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멀쩡히 서 있는 몇몇 이들을 향해 있었다.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 숨어서 교묘하게 선동하던 중천의 무인들이었다.
담호의 입이 열리고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들이었군.”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중천 무인들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교의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내공을 운용해 심맥을 보호했다.
“튀엇!”
“흩어져!”
그들은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더 이상 강호에 담호가 발을 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대일로 싸울 때는 당할 자가 없지만, 경공은 완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네 명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도주했다. 경공의 대가도 네 명 모두를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물며 한쪽 다리가 불편한 담호는 더욱 가능할 리 없었다.
‘단 한 명만 도주하면 돼.’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본단에 권마가 왔다는 소식만 전하면 된다.’
그들은 자신 있었다.
비록 무공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경공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들의 예상처럼 네 명이 한꺼번에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니 담호도 일시지간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듯 보였다. 그사이 네 명은 담호에게서 순식간에 멀어졌다.
덜컥!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었다.
갑자기 그들의 몸이 보이지 않는 낚시 바늘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에 딱 멈춰 섰다.
“…….”
잠시 정적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이내 그들의 몸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담호를 향해 끌려갔다.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무시무시한 인력이었다.
파성추를 펼치기 직전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담호의 파성추는 이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이젠 그가 적을 쫓지 않는다.
적을 끌어당겨 사정권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격살한다.
새로운 파성추였다.
담호의 등이 활처럼 휘어졌다.
중천의 무인들이 눈을 부릅떴다.
“사, 살려!”
콰아앙!
그 순간 뇌음이 울려 퍼졌다.
담호에게 끌려왔던 중천의 무인들이 피 떡이 되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모두가 죽었다. 단 한 명만을 남긴 채.
“끄으으!”
그가 바닥에 처박힌 채 비명을 내질렀다.
겨우 숨만 붙어 있다 뿐이지, 그의 몰골은 죽는 것보다 더 처참했다. 사지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가슴은 마치 구멍 뚫린 가죽부대처럼 볼품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는 마치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겨우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담호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들어 담호를 올려다봤다.
“크으! 권……마.”
“이런 방식이었나?”
“뭐……가 말이냐?”
“이게 너희들이 세를 불리는 방식이냔 말이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백성들을 끌어들여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것.”
“크흐흐! 약자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어리석은 백성들은 이제 우리의 편으로 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창이 되고, 검이 되겠지. 흐흐!”
“누가 그런 생각을 해냈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을 교화시켜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 그야말로 악마적인 발상이었다.
담호의 물음에 그가 웃었다.
피에 물든 이빨과 잇몸, 그리고 광기어린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할 만큼 무서웠다.
그가 담호를 향해 저주를 토해 냈다.
“흐흐! 너 혼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본교가 강호를 일통하는 날 천하 전체가 네 적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부터, 아녀자, 노인 들까지 모조리 너를 죽이려 눈에 불을 밝힐 것이다 흐흐! 감당할 수 있겠느냐? 권마여…… 커헉!”
콰직!
순간 그의 머리가 부서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담호가 부숴 버린 것이다.
그의 주먹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담호의 눈빛이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그의 눈동자 안엔 인간의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중천 무인의 협박은 그에게 일말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천하가 적이 된다?’
지금도 그랬다.
화산파와 극히 일부의 몇몇 무인들을 제외하면 그의 편은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천하가 그의 적이었다.
거기에 몇 명 더 추가된다고 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였다.
“형!”
“오라버니.”
등 뒤에서 방진보와 황혜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묵일광을 부축하고 있는 방진보와 황혜령이 보였다. 그들 뒤쪽으로 하오문의 분타주인 임주하와 부하들도 보였다.
곳곳에 그을음이 묻어 있고,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오라……버니.”
황혜령의 눈에 뿌연 습막이 어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이 가득 찼다. 그녀가 묵일광을 방진보에게 맡기고 담호에게 다가왔다
담호는 말없이 황혜령을 안아 줬다.
“흐흑!”
황혜령이 담호의 가슴에 이제껏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이 황혜령을 엄습했다.
이제 이곳은 천하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되었다. 담호가 이곳에 있기에.
“으아아!”
“히익!”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성들이 사방으로 도주했다.
‘저자가 권마?’
임주하가 몸을 떨었다.
그제야 그녀는 왜 천하가 권마라는 두 글자에 벌벌 떠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공포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