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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07화 (40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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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화 3장. 대일인(對一人) 천라지망(天羅之網)(1)

조양(棗陽)은 안휘성의 북쪽에 있는 도시로 하남성과 바로 연결되는 관도 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교통의 요충지다 보니 예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했고, 객잔과 주점 같은 숙박업소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것도 예전의 영화였다.

마교가 악양을 장악한 이후 외부로 통하는 대부분의 길이 끊겼다. 주요 길목마다 마교의 고수들이 배치되어 외부와의 출입을 엄격히 감시했다.

무림맹이나 구대문파와 같은 정파 무인들은 당연히 철저하게 차단되거나 살해당했고, 오직 상단이나 표국 소속의 무인들만이 출입이 허용될 뿐이었다. 그것도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 정도나 가능할 뿐이지,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는 바로 마교에 끌려가서 치도곤을 당하거나 살해당했다.

조양에도 마교의 고수들이 파견 나와 있었다.

그들은 마교에 전향한 문파들의 도움을 받아 조양 관도에 관문을 구축했다. 요새를 연상시키는 관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엄청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휴!”

은소청은 조양에 구축된 관문을 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상행으로 잔뼈가 굵은 은소청이었지만, 이렇게 마교가 득세를 하고 있는 관문을 마주하자 심신이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잠시 불안하게 흔들리던 은소청의 눈동자가 이내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녀가 여전히 시선을 앞에 고정시킨 채 말했다.

“모두 각별히 조심해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앞으로 나서지 마세요.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정말 괜찮겠어?”

“괜히 오라버니와 다른 분들이 나섰다가는 산통만 깨질 뿐이에요. 이런 건 저희들에게 맡겨 주세요.”

“알았어.”

인부로 위장한 초연운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여유로운 미소를 달고 사는 초연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긴장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결사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무공으로만 돌파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결사대의 존재를 마교에 들키게 된다. 그런 최악의 경우는 막아야 했다.

은소청이 이끄는 상단이 조금씩 조양의 관문에 다가갔다. 그러자 즉각 관문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누구냐? 거기 멈춰 서라.”

날 선 목소리에 이어 수십 명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는 것이 풍기는 기세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순간 은가보의 상단에서 중년의 무인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은가보에서 운영하는 상단이외다.”

그는 호상단의 부단주인 남주명이라는 자로 언변이 뛰어나고 뱃심 또한 두둑했다. 그 때문에 단주인 적용천을 대신해 호상단을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남주명은 긴장된 기색 하나 없이 관문을 지키는 마교의 고수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마교 측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의 무인이 앞으로 나왔다.

등 뒤에 커다란 대감도를 차고 있는 고수였다. 그는 말을 몰아 남주명에게 다가왔다.

그는 마교 외당의 당주 중 한 명으로 도강일이라는 이름의 고수였다.

“은가보의 상단이라고?”

“그렇소이다. 오랜 상행을 끝내고 귀향하는 길이오.”

“음!”

남주명의 태연한 대답에 도강일이 손에 들고 있는 명부를 뒤적거렸다. 명부엔 안휘성에 적을 두고 있는 문파와 상단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은가보는 명부 최상단에 적혀 있었다. 그만큼 마교에서도 주목을 하는 곳이란 뜻이었고, 배려를 해 줘야 할 곳 중 하나였다. 은가보 같은 거대 상단이 마교의 자금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쪽이 은가보의 호상단이란 증거가 있나?”

“여기 신분패와 무림맹에서 발행한 증표가 있소이다.”

“무림맹?”

“아! 오해하지 마시오. 소림사가 아니라 악양에 있을 당시의 무림맹이 발행한 거니까. 비록 신교의 적이 발행한 거라고 해도 공정성만큼은 의심할 일이 없을 겁니다.”

남주명은 도강일에게 일행의 신분패와 증표를 내밀었다.

도강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매의 눈으로 신분패와 증표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일단 진품인 것은 확실하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강일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

“어디를 갔다 오는 건가?”

“산서성으로 상행을 다녀오는 길이오.”

“산서성?”

“그렇소이다. 질 좋은 암염이 나오는 광산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다녀오는 길이외다.”

“암염?”

도강일의 눈이 빛났다.

본래 암염을 비롯한 소금은 허가받지 못한 상인들은 절대 취급할 수 없는 금지 물품이었다.

“국가의 허가는 받았는가?”

“당연하오. 믿지 못한다면 본단에 확인하셔도 좋소이다.”

“흐음!”

남주명의 당당한 대답에 도강일이 잠시 턱을 어루만지더니 수하들에게 짐을 확인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거기 방수포 뒤집어.”

“상자를 열어라.”

마교의 고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방수포를 벗기고 상자를 내려 수상한 물품이 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암염 속에 숨긴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암염이 실려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음!”

도강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단의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살폈다. 그의 시선을 받은 호상단의 무인들은 움찔했고, 상인들은 감히 눈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도강일의 시선이 멈춘 것은 바로 인부로 위장한 초연운 앞에서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초연운을 가리켰다.

“너?”

“예?”

초연운이 고개를 들어 도강일을 바라봤다.

“이름이 뭐냐?”

“조, 조일경입니다.”

초연운이 급히 가명을 말했다.

“조일경이란…….”

도강일이 신분패를 살폈다. 그러자 조일경이란 이름이 보였다.

“나이 서른다섯, 호북성 선도(仙桃) 출생. 맞나?”

“마, 맞습니다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더듬는 거지?”

“예? 그, 그게…….”

초연운이 말을 버벅거렸다.

순간 도강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뀐 것이다.

그때였다.

짜아악!

“컥!”

갑자기 은소청이 초연운의 뺨을 때렸다. 격통으로 초연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서 똑바로 고하지 않고 뭘 그렇게 더듬는 게냐? 너 때문에 일정이 지체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은소청의 앙칼진 목소리가 초연운의 뺨을 파고들었다. 그에 초연운이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호북성 천도에 있는 선곡리라는 마을이 제 고향입니다. 아직도 부모님들이 그곳에 살고 계시니 확인해 보십시오.”

“정말이냐?”

“거짓이라면 이놈의 모가지를 치셔도 좋습니다.”

초연운의 호언장담에 도강일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때 은소청이 도강일에게 다가와 은밀히 무언가를 쥐어 주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은원보였다.

도강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으리! 곧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비를 맞으면 암염이 모두 녹으니 사정 좀 봐주시지요.”

“으음!”

“나중에 다시 이곳을 지나갈 때 톡톡히 사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은소청이 상단의 일꾼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일꾼들이 급히 커다란 술항아리를 내려 마교 무인들 앞에 대령했다. 그러자 마교 무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도강일의 눈을 의식해 애써 웃음을 억눌렀지만, 자꾸만 입가가 씰룩이고 있었다.

“이십 년 된 소홍주입니다.”

“헉! 이, 이십 년?”

“예! 어렵게 구한 명주입니다.”

“허!”

도강일이 입을 떡 벌렸다. 그의 입가에 침이 절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수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관문을 지키던 그들에게 이십 년 된 소홍주는 그 어떤 감로수보다 더욱 달콤하게 느껴졌다.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봉인된 마개 사이로 흘러나오는 향긋한 주향이 소홍주가 진품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수하들이 폭동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도강일이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통과시키거라.”

“옛!”

마교의 무인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관문을 열었다. 은소청과 은가보의 상단이 유유히 관문을 통과했다.

관문을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결사대의 무인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제법이구나.’

천인대적검 장진명이 은소청을 보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은가보의 호상단이라는 신분을 내세우면 그나마 쉽게 검문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보다 은소청이 더 능청스럽게 대응해 준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마침내 관문을 완전히 통과해 더 이상 마교의 무인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야! 너 일부러 그랬지?”

초연운이 퉁퉁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은 채 은소청을 노려봤다.

“내가 뭘요?”

“일부러 세게 때린 거잖아?”

“누가 그렇게 말을 더듬으래요? 오빠 때문에 하마터면 의심을 살 뻔했잖아요.”

“그거야…….”

“오빠의 실수를 덮어 준 것이 저예요. 그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흥!”

은소청이 코웃음을 치며 저만치 앞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초연운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제기랄! 더럽게 아프네.”

초연운이 퉁퉁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며 엄살을 떨었다. 하지만 엄살을 떠는 얼굴과 달리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검문이 철통같지는 않아.’

무시무시한 기세로 중원 남부를 장악하고 있는 마교였다. 그들은 철저한 상명하복의 명령 체계를 고수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바늘 하나 들어갈 만큼의 틈도 없다는 것이 강호의 중론이었다.

초연운이 일부러 의심을 살 행동을 함으로써 저들의 허실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 덕에 은소청에게 뺨을 얻어맞기는 했지만 후회나 미련 따윈 없었다.

‘이 정도라면 꽤 많은 결사대가 안휘성에 들어올 수 있겠어.’

초연운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은소청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최악의 경우 은소청만이라도 무사히 탈출시켜야 했다. 그래야 방진보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

“휴우!”

방진보가 배의 난간에 기댄 채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상하게 머리가 멍했다. 마치 머릿속을 기다란 막대기로 휘저은 듯이 말이다.

비단 방진보뿐만이 아니라 배에 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갑판 여기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마치 기억 한 조각을 날카로운 비수로 도려낸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돌려 선수를 바라봤다. 선수엔 담호가 홀로 서 있었다. 장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검은 장포가 날개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그의 모습에 방진보는 감히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벌써 수년째 담호와 함께 하고 있는 그였지만, 담호의 표정이 이처럼 굳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형은 괜찮아요?”

남궁 형제가 머리를 흔들며 방진보에게 다가왔다.

그들 역시 방진보처럼 기억 한 부분이 송두리째 사라진 상태였다. 그 때문에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나도 죽겠다.”

“어우! 전 토할 것 같아요.”

남궁선휘가 고개를 흔들었다.

“뭍에 오르면 속이 편해지는 요리를 해 줄게. 그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고마워요, 형.”

“아니야!”

남궁선휘의 말에 방진보가 고개를 저었다.

졸지에 가문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두 사람이었다. 남궁세가의 몰락은 가문의 구성원들이 초래한 재앙이었지만,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담호에게 가주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담호는 그에 대한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았지만 방진보는 달랐다. 그는 마치 자신이 남궁세가를 몰락하게 한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궁 형제에게 더 잘해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들 조금만 힘내자. 금방 뭍에 도착할 테니까.”

“예!”

남궁 형제들이 힘차게 대답할 때였다.

쐐애액!

갑자기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뭐야?”

방진보가 놀라 전면을 바라보자 사람 몸통만 한 굵기의 커다란 화살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저, 저?”

화살의 목표는 담호였다.

허공에 선을 그린 거대한 화살은 그대로 담호에게 직격했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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