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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08화 (40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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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화 3장. 대일인(對一人) 천라지망(天羅之網)(2)

마치 포탄에 직격당한 것처럼 수많은 사람을 태운 커다란 배가 크게 요동치고 부서진 나무판자가 사방으로 튀었다.

“어이쿠!”

“이게 뭐야?”

요동치는 배 위에서 사람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방진보와 남궁 형제는 무공을 익혔기에 그들처럼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용케도 균형을 유지하며 담호가 서 있던 곳을 보았다.

순간 그들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배의 선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머리가 잘린 소처럼 선수가 날아간 배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선수가 있던 자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살이 박혀 있었다. 화살이 직격하면서 선수를 날려 버린 것이다.

“형!”

방진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선수에 박힌 커다란 화살 위에 담호가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야!”

“예! 형!”

“뭍에 내리는 즉시 아이들과 말을 타고 이곳을 벗어나라.”

“예? 하지만…….”

“내 말대로 해.”

“알았어요.”

담호의 말에 방진보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흑귀도 데리고 가라.”

“그건…….”

“필요할 거다. 안휘성을 빠져나가 나를 기다려라.”

“알았어요.”

방진보가 남궁 형제와 함께 말들이 있는 갑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살기가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발산하는 애송이들의 살기가 아니었다. 무섭도록 정련된, 고도의 집중력이 동반된 살기였다.

지금 담호가 있는 배와 강기슭까지의 거리는 무려 백여 장이 넘었다. 그렇게 먼 거리에서 이렇게 큰 화살을 정확하게 날렸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궁술이었다.

강 너머의 살기가 배를 훑는 것이 느껴졌다. 넓게 퍼진 살기가 일점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담호를 향해서였다.

투웅!

그 순간 공기가 출렁였다. 강 너머의 궁수가 다시 한 번 화살을 날린 것이다.

담호가 움직였다.

자신을 목표로 날린 화살이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움직이면 늦는다. 육감을 믿어야 했다.

콰앙!

담호가 허공으로 몸을 띄운 그 순간 예의 커다란 화살이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틀어박혔다. 갑판이 터져 나가고 사방으로 나무 파편이 튀면서 시야를 가렸다.

퍽!

그 순간 어린아이 손바닥 길이만 한 조그만 화살이 담호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깃만 남긴 채 조그만 화살 전체가 담호의 살 속에 박혀 있었다.

담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화살이 박히기 전까지 그 어떤 조짐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씨이잉!

뒤늦게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보다 빨리 화살이 날아온 것이다.

어린아이 손바닥 길이만 한 화살이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오다니. 이런 기문병기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쐐애액!

다시 거대한 화살이 날아왔다. 그 크기만으로도 어지간한 공성병기를 압도하는 위력을 지닌 화살이었다. 하지만 담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가 아니란 사실을.

콰앙!

거대한 화살이 다시 한 번 배를 강타하며 크게 요동쳤다. 그 순간 담호가 옆으로 이동했다.

퍼억!

간발의 차이로 그가 있던 곳에 예의 조그만 화살이 박혔다. 깃만 남긴 채 갑판에 깊숙이 꽂힌 화살이 부르르 떨었다.

소리도, 기척도 없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먹이를 노리는 솔부엉이처럼 조그만 화살은 숨통을 노리고 날아왔다.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소리를 듣고 알아차린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육감에 의지해 간발의 차이로 피한 것이다.

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초장거리 저격이었다. 그리고 목표는 당연하게도 담호였다.

강 너머 수풀에 숨어 있는 미지의 적은 담호를 노리고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한편 배를 모는 선장과 선부들은 선수가 대파되면서 난리가 났다.

“배에 물이 샌다.”

“어서 틀어막아.”

선부들이 물을 막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고, 선객들도 놀라서 큰 비명만 내지를 뿐이었다.

선장이 선부들을 독려했다.

“어서 배를 뭍으로 몰아. 늦으면 통째로 수장될지도 몰라.”

이미 강을 반 넘게 가로질렀다. 섣불리 뱃머리를 돌렸다가는 강기슭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가 가라앉을 것이다.

“대체 누가?”

선장의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그런 선장의 눈에 갑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담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쐐애액!

커다란 화살이 다시 담호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고설천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의 눈엔 저 멀리 강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커다란 배가 보였다. 정확히는 배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검은 옷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힘들 만큼 먼 거리에 있었지만, 매의 눈보다 뛰어난 그의 안력은 정확히 검은 옷을 입은 사내를 포착하고 있었다.

“권마!”

그는 바로 담호였다.

담호는 더 이상 거대한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

코앞까지 날아온 화살을 향해 마주 일격을 날렸다.

콰아앙!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화살촉과 담호의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내공이 실린 강철 화살촉에서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그 여파로 담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지만, 그래도 건재해 보였다.

“크하하! 저 미친놈!”

고설천이 애깃살을 날리는 것도 잠시 잊고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담호에게 날린 거대한 화살은 인력으로 날린 것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커다란 기계식 노로 날린 것이었다.

수많은 톱니바퀴와 용수철, 그리고 고래 심줄과 교룡의 껍질, 천잠사 등을 꼬아서 만든 시위가 아니었다면 날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기물이었다.

본래 공성병기로 개발된 것으로 일개인이 쓸 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고설천 정도의 내공과 궁술,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근력을 지닌 자라야 겨우 시위를 당길 수 있는 기물 중의 기물이었다.

두꺼운 성벽을 관통할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화살을 담호는 주먹 한 방으로 무력화시켰다. 그 어이없는 광경이 고설천을 오히려 웃게 만들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구나. 괜히 십삼지파의 수장 둘이 놈의 손에 죽은 게 아니었어. 크흐흐!”

고설천의 별호는 혈궁사신(血弓死神), 마교 십삼지파 중 하나인 혈광류(血光流)의 주인이었다.

혈광류는 특이하게도 궁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파였다. 본래 강호의 무인들은 궁술을 매우 천시했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 싸우는 것이 아닌 먼 거리에서의 암습은 무인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강호에서 궁술을 수련하는 무인들은 천시를 받고, 경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마교는 아니었다. 오히려 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집중 육성시켰다.

그 대표적인 유파가 바로 혈광류였다.

혈광류는 중원의 궁술과 활뿐 아니라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궁술과 활을 수집했다.

그가 발사한 기계식 노는 서역에서 들여온 것이고, 애깃살을 날리는 각궁은 저 멀리 해동에서 어렵게 들여온 것이었다.

그는 특히 해동에서 들여온 각궁과 애깃살을 좋아했다. 크기는 조그마한데 그 위력이 그 어떤 대궁보다도 월등했기 때문이다.

무공의 고수라면 화살의 궤적과 파공성만 듣고도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깃살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크기가 너무 작아 육안으로 확인하기 불가능한 데다가, 속도가 소리보다 빨라 격중 한 이후에나 파공성이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애깃살을 즐겨 사용했다. 대부분의 고수들은 애깃살 선에서 처리가 됐다. 하지만 담호는 달랐다.

처음 일격을 허용한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애깃살에 격중 되지 않고 모두 회피했다. 애깃살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제법이구나.”

고설천이 조그만 각궁을 등에 매고 다른 활을 꺼내 들었다. 어른 키만큼이나 큰 대궁이었다.

천살궁(天殺弓)이라는 이름의 대궁은 혈광류의 주인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병이었다.

고설천이 천살궁을 꺼냈다는 것 자체가 제대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는 증거였다.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남현소의 지원 요청 때문이었다. 담호와 조우하기 전까지만 하더라고 그는 천라지망에 동원되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무리 담호가 대단하더라도 원거리에서 화살 한 방이면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산인지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부르르!

몸이 떨렸다.

담호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아직 그와 담호 사이엔 칠십 장이 넘는 강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무공을 익힌 고수도 그 거리를 뛰어넘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담호는 정확히 고설천이 은신하고 있는 수풀을 응시하고 있었다.

담호의 새까만 눈동자에 어린 살기가 공기를 타고 그에게까지 전해졌다.

담호가 손을 애깃살이 박혀 있는 어깨로 가져갔다. 하지만 애깃살은 깃만 남긴 채 깊이 박혀 있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설천이 담호를 비웃었다.

“흐흐! 소용없다. 애깃살은 그렇게 쉽게 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담호가 오른손 검지로 애깃살의 깃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애깃살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뽑아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깊이 밀어 넣는 것이다.

츄화학!

날카로운 애깃살의 화살촉이 살점을 가르고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질 텐데도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고설천에게 고정된 채였다.

“저, 저?”

푸확!

그 순간 애깃살이 담호의 어깻죽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를 관통한 것이다. 담호는 애깃살을 밀어내는 것을 멈추고, 어깨 뒤로 손을 가져갔다.

애깃살의 화살촉이 잡혔다. 담호는 그대로 애깃살을 끌어당겼다.

그그극!

마침내 애깃살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화살촉에 살점이 딸려 나오고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지만, 담호는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다.

담호의 손에서 애깃살이 우그러졌다. 원형을 잃은 애깃살이 갑판에 나뒹굴었다.

두근!

고설천의 심장이 크게 고동쳤다.

이런 상대는 처음이었다.

피가 들끓고 있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호승심과 투지가 이를 내밀고 있었다. 담호의 행동과 눈빛이 그를 자극한 것이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래야 내가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지.”

고설천이 천살궁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야 천살궁을 사용할 만한 상대를 만난 사실이 기꺼웠다.

그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수풀 곳곳에서 혈광류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십삼지파의 하나인 전검류가 일인전승으로 이어지는데 반해 그가 이끄는 혈광류는 항상 백 명을 유지했다.

백 명 모두 고설천처럼 뛰어난 궁수들이었다.

“권마 사냥을 시작한다. 약속된 곳으로 놈을 몰아넣는다.”

“존명!”

궁수들이 일제히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이백 개의 눈, 백 대의 화살이 담호가 타고 있는 배를 향했다.

활이 만월처럼 휘어지는가 싶더니 일제히 화살을 토해 냈다.

슈우우!

백여 대의 화살이 일제히 배를 향해 날아갔다.

궁수들은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순식간에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사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다섯 대의 화살을 연거푸 발사했다.

“크악!”

“사, 살려 줘!”

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처 선실로 피하지 못한 승객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고, 갑판 위에는 날카로운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빼곡히 꽂혔다. 하지만 수많은 화살 그 어느 것도 담호에게 격중 되지 않았다.

그의 발치엔 화살 수십 대가 널브러져 있었다. 화살촉 끝은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뭉툭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수십 대의 화살이 더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담호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응시했다.

순식간에 수십 대의 화살이 그의 몸에 격중 했다.

티티팅!

하지만 화살은 그의 몸에 부딪치는 즉시 튕겨 나가거나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우웅!

담호의 몸이 울고 있었다.

초진동 기공인 방패가 펼쳐진 것이다. 애깃살이 아닌 이상 그의 방패를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탄 배는 거의 반 이상이 물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꾸준히 뭍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쿵!

마침내 배가 뭍에 닿았다. 그리고 담호가 배에서 내렸다.

살기의 그물이 느껴졌다.

천라지망, 그 속으로 담호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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