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
409화 3장. 대일인(對一人) 천라지망(天羅之網)(3)
방진보가 남궁 형제를 자신의 말에 태웠다. 그리고 자신은 흑귀에 올라탔다.
푸르르!
흑귀가 콧김을 거칠게 뿜어 대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담호가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귀도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주인이 살기의 바다를 향해 들어갔기에 움직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방진보가 그런 흑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다시 돌아올 거야. 반드시!”
그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담호는 그에게 안휘성을 떠나라고 말했지만, 방진보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일단 남궁 형제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킨 후 담호를 도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꼭 곁에서 함께 싸워야만 돕는 게 아니었다.
포위망 밖에서도 담호를 도울 방법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방진보가 할 일은 그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마치 방진보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흑귀가 투레질을 멈췄다. 그제야 방진보가 남궁 형제를 바라봤다.
“반드시 뒤처지지 말고 나를 따라와야 해.”
“네!”
방진보가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담호에게 짐이 될 수는 없었다. 포로가 되는 순간 담호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고, 또한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담호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제약을 줄 수는 없었으니까.
방진보가 남궁선휘를 바라봤다.
“준비됐어?”
“예!”
말고삐를 잡은 남궁선휘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얼굴에도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그의 앞에는 남궁영휘가 말갈기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내가 어떻게 되든 영휘만큼은 반드시 보호해야 해.’
남궁영휘의 조그만 머릿속에 남궁세가의 모든 절학이 담겨 있었다.
그때였다.
“간다!”
방진보가 흑귀의 옆구리를 박찼다. 순간 흑귀가 한 줄기 검은 섬전이 되어 배에서 튀어 나갔다. 남궁선휘가 뒤질세라 그 뒤를 급히 따랐다.
두 마리의 말이 무서운 속도로 부서진 선수를 통해 뭍으로 튀어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피부가 아려 왔다.
일대에 퍼진 살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발산할 수 있는 살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간혹 유독 살기가 짙은 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이 발산하는 살기에도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일대에 퍼진 살기엔 한계가 없었다.
일개인이 발산하는 살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백, 수천의 사람이 한꺼번에 발사하는 살기였다. 그 말은 곧 그만큼의 사람이 담호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살기의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의 살기는 담호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오직 담호 한 명을 노리고 펼쳐진 천라지망이었다.
강호사가 시작된 이래 이렇듯 강력한 대일인(對一人) 천라지망(天羅之網)이 펼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강력한 살기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근육이 경직될 정도였다. 어지간한 무인이었다면 일대를 지배하는 살기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표정 한번 일그러트리지 않고 천라지망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움직임에 살기의 그물이 출렁였다.
담호의 시선이 문득 어느 한 곳을 향했다. 그나마 살기가 가장 적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적들이 일부러 길을 열어 준 느낌이었다.
“그곳으로 오란 건가?”
담호의 눈동자에 어린 어둠이 일렁였다.
가장 약한 곳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전력이 집중된 가장 위험한 곳이다.
사로(死路).
오직 죽음만이 존재하는 길.
담호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독행류는 오직 전진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
앞길이 험하다고 해서 피하고, 위험하다고 돌아가면 존재의 의미가 사라진다.
새들도 숨을 죽이고, 짐승들도 살기에 진저리를 치며 도주했다. 남은 것은 지독한 정적뿐.
스르륵!
그가 왼발을 끄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그가 발을 끈 흔적이 대지에 상흔처럼 새겨졌다.
그때였다.
푸화학!
갑자기 담호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드니 미리 매달아 두었던 주머니가 터지면서 녹색 분말 가루가 안개비처럼 쏟아졌다.
독연이었다.
푸쉬쉬!
녹색 독연에 닿은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담호는 독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썼다.
검은 장포의 표면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연에 녹아내리는 것이다. 그래도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런 독공 따위 사천성에서 당문을 상대할 때 실컷 경험해 봤다. 당문에 비하면 이 정도의 독공은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았다.
어지간한 독기 따위는 암혼심공의 벽을 절대로 뚫고 들어올 수 없다. 당문과 상대하면서 그의 암혼심공은 독에 대한 내성까지 갖게 되었다.
쉬이익!
독 다음은 암습이었다.
풀숲에 숨어 있던 암살자들이 소리도 없이 튀어나와 담호를 기습했다.
그들의 손에는 독이 묻은 단검이 들려 있었다.
“죽어랏! 권마!”
그들의 검이 담호를 찔러 왔다.
순간 담호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벽력탄이 폭발한 것처럼 바닥이 터져 나가며 돌멩이와 흙이 흉기가 되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퍼버버벅!
“크흑!”
“컥!”
담호를 향해 독검을 내질렀던 암습자들이 고꾸라졌다. 담호는 쓰러지는 암습자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피잉!
그 순간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은 정확히 담호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고개를 슬쩍 흔든 것만으로 화살을 피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쐐애액!
수풀을 뚫고 수많은 화살이 날아왔다. 혈광류의 궁수들이 화살을 날린 것이다.
지근거리에선 암살자들이 기습을 하고, 원거리에선 궁수들이 화살을 날린다. 천하에 이보다 더 완벽한 합격술은 존재하지 않을 듯했다.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권마여!”
“죽어랏!”
암살자들이 소리쳤다.
그 순간 담호의 몸에서 폭강이 발생해 휘돌았다. 폭마경이었다.
쿠우우!
마치 태풍처럼 담호의 몸을 휘감은 폭강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기습하던 암살자들도, 모든 것을 꿰뚫을 것처럼 날아오던 화살도 폭강에 휩쓸려 산산이 부서졌다.
팔이 떨어지고,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피 보라가 폭강에 휩쓸려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그 속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크악!”
“허윽!”
하지만 그들의 비명마저 폭강에 집어삼켜져 소멸됐다.
마침내 담호가 폭강을 걷어 냈을 때 방원 오 장 안에 생명의 흔적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닥엔 나선형의 고랑이 패여 있었고, 그 위로 누군가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과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저럴 수가!”
멀리서 담호를 향해 화살을 날렸던 혈광류의 궁수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설마 그들의 공격이 이렇게 막힐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온다.”
누군가 갑자기 소리쳤다.
정신을 퍼뜩 차리고 앞을 보니 담호가 정확히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빨라?’
‘무슨 다리병신이?’
담호의 무서운 질주에 수풀이 갈라지고, 나뭇가지가 부러져 튕겨 나갔다. 자로 그은 듯 숲 한가운데 선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선의 끝은 정확히 혈광류의 궁수들이 은신해 있는 곳이었다.
“제기랄! 움직여.”
“놈을 피해!”
혈광류의 궁수들이 분분히 흩어졌다. 하지만 채 절반도 움직이기 전에 담호가 수풀을 헤치고 그들의 눈앞에 당도했다.
쾅!
“크엑!”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담호의 파성추 한 방에 가슴뼈가 움푹 함몰된 채 튕겨 나간 것이다.
“크읏!”
“젠장!”
궁수들은 피하는 것이 늦었음을 깨닫고 활을 교체했다. 주 무기로 사용하는 대궁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조그만 활이었다. 혈광류의 수장이 즐겨 사용하는 것과 같은 조그만 각궁이었다.
그들은 보법을 펼쳐 이동하면서 각궁에 화살을 걸었다. 담호와 그들 간의 거리는 불과 네다섯 걸음 정도, 그 짧은 거리에서 화살을 쏘려는 것이다.
거리가 얼마가 되건 상관없었다. 그들이 익힌 보법과 궁술은 바로 코앞에 있는 적을 상대로도 위력을 발휘하니까.
핑! 핑!
그들이 담호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바로 코앞에서 날린 화살이었다. 상대를 맞추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궁술의 달인들이었다. 수백 보 밖에서도 눈을 감고 목표를 맞출 수 있는 궁사들이었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상대가 좋지 않았다.
담호는 화살촉의 방향, 궁수들의 눈빛, 그리고 호흡만으로 화살이 날아올 궤적을 순식간에 계산해 내고 움직였다.
쉬쉬쉭!
그의 몸 주위를 수많은 화살이 교차했다. 하지만 그 어떤 화살도 담호의 몸에 제대로 된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한차례 화살 세례가 지나가자 담호의 반격이 이어졌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담호를 포위하고 있던 십여 명의 궁수들이 튕겨 나갔다. 들고 있던 각궁이 모조리 부서지고, 목이 모로 꺾였다. 혀를 길게 내민 그들의 얼굴에서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격에 즉사한 것이다.
담호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십여 명이 죽는 동안 나머지 궁수들은 수풀 속으로 몸을 감췄다. 그 짧은 순간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일반적인 궁수들이 아니었다. 맨 처음 초장거리 저격을 했던 미지의 궁수였다. 즉 혈광류의 수장인 고설천을 찾고 있는 것이다.
목덜미가 간질였다. 놈의 시선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단 증거였다. 하지만 어디서도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하들을 미끼로 던져 놓고 그 자신은 감쪽같이 은신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어디선가 숨어서 담호를 겨누고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허점을 노출하는 순간 그의 화살이 날아들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지만 담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목숨을 건 전장에서 긴장의 끈을 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포기한 적도 없었고, 긴장을 늦춘 적도 없었다.
이곳은 목숨이 오가는 생사투의 전장.
담호에게 익숙한 환경이었다.
그때였다.
“권마가 저기 있다.”
“놈을 죽여랏!”
큰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무인들이 수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교에 협력하는 잠혈문 등의 무인들이었다.
“권마를 죽이는 자, 천하제일인이란 명예를 얻게 될 것이다.”
“우와아!”
누군가의 선동에 무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그들은 천하제일인이라는 불꽃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어차피 영달을 위해 마교와 손을 잡은 무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짙은 탐욕만 존재할 뿐 두려움 따윈 깃들어 있지 않았다.
무인에게 천하제일이란 명예보다 더 큰 욕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교의 정예와 수많은 문파들이 동원됐다.
그들은 사냥하는 입장이었고, 담호는 얌전히 사냥당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오기 힘들었다.
“목을 내놔라, 권마!”
“권마의 목숨은 내 것이다. 저리 비켜!”
그들이 해일처럼 담호를 덮쳐 왔다.
그 순간 담호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쿠우우!
가공할 인력이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던 무인들이 균형을 잃고 순식간에 담호에게 딸려 왔다. 그제야 무인들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뭐야?”
“크윽!”
그 순간 파성추가 터졌다.
콰아앙!
폭발이 일어나고 수십 명의 무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들은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뭐, 뭐야?”
그들을 뒤따라오던 무인들이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 일격에 집단의 광기가 깨진 것이다.
엉거주춤하는 그들을 보며 담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아무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제 저들은 알게 될 것이다.
담호를 가두기 위해 펼친 천라지망이 그들을 가두는 그물이 될 수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