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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12화 (4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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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화 4장. 폭풍 앞에 홀로 서다(3)

담호는 혈인을 방불케 했다.

온몸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전신 곳곳에 물고기 아가미 같은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서도 아직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본교 최대의 숙적답구나, 권마. 허나 너의 그 질긴 목숨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남현소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러나 담호의 시선은 그가 아닌 요사란을 향해 있었다.

“이익!”

남현소의 얼굴에 굴욕적인 빛이 떠올랐다. 담호가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담호는 남현소를 무시했다. 이 자리에 그보다 더 강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요사란이었다.

본래 강자는 쉽게 자신을 드러내거나 흥분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냉철한 이성을 유지한 채 미래를 준비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강자라 할 수 있었다.

담호와 요사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혈륜마녀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수많은 이들을 죽인 요사란이었다. 그녀는 타인에게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지,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같은 마교의 무인들마저도 그녀를 두려워하고 피할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오늘 처음으로 타인이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담호의 눈빛 때문이었다.

깊고 무거운 그 눈빛 안에 인간의 감성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저렇게 완벽하게 인간의 감정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과연 본교 최대의 적이라 할 만하구나.’

피부가 저릿저릿하고,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몸이 먼저 위기를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혈륜마녀라는 별호를 얻은 뒤에는 말이다.

요사란은 언젠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울 때가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요사란이 입을 열었다.

“나는 신교의 군장 요사란이라…….”

쾅!

그 순간 폭음이 터지며 요사란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담호가 파성추를 날린 것이다.

뒤로 날아가는 요사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고도 기척도 없이 이뤄진 기습이었다. 다행히 수강을 두른 손바닥으로 담호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가벼운 그녀의 몸은 십여 장이나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놀란 것보다 기가 막혔다.

설마 담호 정도의 명성을 지닌 고수가 통성명도 하지 않고 기습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놀랍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했다.

팟!

순식간에 요사란을 날려 버린 담호가 남현소를 향해 쇄도했다.

“뭐, 뭐야?”

예고도 없이 쇄도하는 담호의 모습에 남현소가 기겁해 뒤로 물러났다. 담호가 그런 남현소를 따라붙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남현소였다.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는 상처를 입고 지쳤다. 반면 적들은 건재했고, 특히 남현소는 수백 명의 수하들까지 두고 있었다.

수하들을 모두 상대한 후 남현소와 싸우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은 없었다.

대가리를 치면 나머지는 절로 와해된다. 그것이 담호의 생각이었다.

근처에 있던 수하들이 남현소를 구하기 위해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담호를 향해 장력을 날렸다.

“멈춰랏!”

“감히!”

매서운 장력 서너 줄기가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바위라도 부술 만큼 강력한 장력이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제아무리 담호라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담호는 장력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등이 둥그렇게 말렸다.

풍뎅이를 보고 만든 금구자를 펼친 것이다.

퍼퍼퍽!

담호의 몸을 강타한 장력은 둥근 몸체에 빗겨 나갔다. 덕분에 충격량이 반 이상으로 감소했다. 그렇다 해도 어지간한 무인이었다면 즉사했을 만큼의 충격에 내장이 진탕된 것도 사실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식도를 타고 피가 올라왔지만 담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충보를 펼쳤다.

그의 목표는 남현소 단 한 명이었다.

그 외는 싹 무시했다.

“이런 미친!”

남현소가 담호의 의도를 깨닫고 분노했다.

설마 수하들을 무시하고 자신만을 노릴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였느냐?”

쐐애액!

그의 손에서 날카로운 장력이 발출되었다.

성명절기인 쇄우장(碎宇掌)이었다.

쇄우장은 침투경(浸透勁)을 이용해 상대의 외부가 아닌 내부를 파괴하는 장법이었다. 쇄우장 한 방에 황혜령을 호위하던 묵일광도 단숨에 무력화될 정도로 치명적인 위력을 갖고 있었다.

순간 담호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동을 했다. 초진동 방호 기공인 방패를 펼친 것이다.

퍼석!

쇄우장은 방패를 뚫지 못하고 흩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에 남현소가 잠시 주춤거렸다. 그사이 담호가 들이닥쳤다.

쾅!

파성추가 터졌다.

하지만 남현소도 절대의 고수, 본능적으로 수비식을 펼쳐 담호의 공격을 흘려 버리려 했다.

퍽!

그 순간 단양타가 작렬했다.

남현소는 예상치 못한 궤적으로 파고드는 담호의 주먹에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충격은 크게 받지 않았지만, 대신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콰앙!

담호의 발이 남현소의 몸통에 꽂혔다. 독행류 독문 각법인 충각(衝脚)이었다.

충차의 위력을 지닌 각법은 남현소의 내부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호신강기로도 그 모든 충격을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커헉!”

남현소가 피를 토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어느새 핼쑥하게 질려 있었다.

“제기랄!”

“이 악귀 같은…….”

수하들이 남현소에게서 담호를 떨어트려놓기 위해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의 공격을 무시했다.

그가 믿는 것은 독행류와 극도로 단련된 육체였다.

우웅!

초진동 기공인 방패가 어지간한 공격을 상쇄했다. 하지만 도검류의 공격에는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도가 그의 등에 상처를 내고, 날카로운 검이 옆구리에 꽂혔다.

속에서 피가 울컥 치밀어 올라 입안에 가득 찼다. 담호는 입안에 머금은 피를 그대로 내뿜었다.

푸우우!

순식간에 피를 뒤집어쓴 남현소가 급히 소매로 눈을 훔쳤다. 그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쾅!

담호가 이마로 그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강렬한 충격에 뇌가 진탕되면서 그의 몸이 흔들렸다. 어느새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호신강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았다.

“크아악!”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은 남현소가 다짜고짜 쇄우장을 펼쳤다. 연이어 십여 발의 장력이 담호를 향해 날아왔다. 지근거리에서 펼쳐진 공격이라 담호가 모두 피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담호 역시 공격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방패로 상쇄할 것은 상쇄하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몸으로 감당했다.

이마가 터져 나가고, 코뼈가 주저앉았다. 피가 가슴팍을 적시고, 전율스러운 고통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담호는 남현소의 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의 두 손이 남현소의 목을 콱 조였다.

“컥!”

신음과 함께 그의 몸이 허공으로 뽑혀져 올라갔다.

두 다리가 대지에서 떨어지는 아찔한 부유감이 남현소를 엄습했다. 그리고 머리와 다리가 반전되는 것이 느껴졌다.

쾅!

남현소의 몸이 거꾸로 대지에 처박혔다.

대지(大地), 그 자체를 무기로 삼는 흉포한 공격, 지천격이었다.

쿵!

두 다리를 허공에 허우적거리던 남현소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것이 신화전주 남현소의 최후였다.

“…….”

어둠이 내려앉은 대지에 정적이 찾아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신화전 무인들의 눈동자가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남현소는 저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남현소가 이끄는 신화전은 내원에서도 핵심 전력이었고, 그의 무공은 칠대마인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대했다. 더군다나 성격이 차갑고 계산이 빨라 누구도 그와 척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때문에 사대군장이나 칠대마인마저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존중해 줬다.

그런 그가 볼품없는 모습으로 바닥에 처박힌 채 죽어 있는 모습은 경악을 넘어서 괴리감마저 느끼게 했다.

“하!”

요사란이 무참히 죽은 남현소를 보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파성추로 요사란을 전장에서 튕겨 낸 후 남현소를 죽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에 불과했다.

요사란이 미처 손을 쓸 수 없는 짧은 순간에 이 모든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소름이 끼쳤다.

그 짧은 순간 담호란 인간은 요사란을 전장에서 밀어내고 오직 남현소만을 목표로 집중 공격을 가해 결국은 숨통을 끊었다.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의 과단성과 냉혹한 손속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강호인들이 왜 권마를 경원시하고 두려워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눈앞의 남자는 무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순식간에 판세를 읽는 눈,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행동력,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력과 결심하면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마음가짐. 목표로 한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마는 그 집요함과 찰나의 순간에서 승패의 향방을 결정짓는 승부 감각까지 말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무인을 보아 온 요사란이었지만, 담호와 같은 무인은 처음이었다. 그 집요함과 냉혹함에 몸서리가 절로 처질 정도였다.

상대는 짐승이었다.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거대한 짐승.

“놈이 전주님을 죽였다.”

“죽여랏!”

뒤늦게 신화전의 무인들이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수장을 잃은 그들의 몸짓은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담호가 의도하던 바이기도 했다.

수장을 눈앞에서 죽임으로써 사기를 꺾는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담호가 아닌 무인들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요사란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빚 때문에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 남현소가 만든 천라지망에 한 발짝을 걸친 요사란이었다. 남현소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절대로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현소가 죽는 모습을 본 순간 마음이 변했다.

담호라는 괴물을 살려 두면 얼마나 많은 마교의 무인들이 그의 손에 죽을지 감히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콰쾅!

실제로 그녀의 눈앞에서 신화전의 무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추구하는 노선이 다르다지만 이 이상 그들의 죽음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츠으으!

요사란의 하늘색 장포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공력을 끌어 올린다는 증거였다.

슈와악!

“비켜!”

그녀의 신형이 길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담호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요사란의 새하얀 손이 섬전처럼 담호의 가슴을 후려쳤다.

백전뇌음수(白電雷陰手).

서역의 소뢰음사(小雷音寺)에서 만들어진 이 무공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쩌어엉!

담호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이번 싸움에서 처음으로 그가 물러난 순간이기도 했다.

그의 뜻이 아니었다. 그만큼 요사란의 백전뇌음수가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백전뇌음수를 막은 담호의 팔뚝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팔뚝에는 그녀의 손자국이 깊이 찍혀 있었다.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진 것이다.

단숨에 승기를 잡은 요사란이 다시 공격하려는 순간이었다.

빠각!

갑자기 요사란의 머리가 튕겨져 나갔다.

머리카락이 산발되고 이마와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찰나의 순간 담호의 무릎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강타한 것이다. 그녀가 위기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이번 일격으로 머리가 박살 났을 것이다.

무섭도록 흉험한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반격을 한 담호의 임기응변에 소름이 다 끼쳤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쉬쉬쉭!

요사란이 담호에게 바싹 붙었다.

담호의 간격으로 스스로 들어선 것이다. 그만큼 그녀 역시 지근거리에서의 접전에 자신이 있었다.

타다다닥!

손과 손이 얽히고 다리와 다리가 격돌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의 전권에 휩쓸린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다.

신화전의 무인들은 감히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아아!”

“음!”

그들의 입에서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권마와 혈륜마녀의 목숨을 건 싸움.

그들은 어느새 혈륜마녀가 이기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갔다.

그들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칼바람은 점점 날카로워져 가더니 종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때였다.

“어어?”

“뭐야?”

그그극!

갑자기 신화전의 무인들이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딸려 갔다. 가공할 인력이 발생해 그들을 잡아끄는 것이다.

무인들이 내공을 끌어 올리거나 천근추를 펼쳐 인력에 대항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일이…….”

“대체?”

그때였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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