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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13화 (4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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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화 5장. 악연은 끝없이 이어진다(1)

“흐으!”

요사란이 기괴한 숨소리를 흘렸다. 그런 그녀의 오른쪽 어깨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쇄골이 박살 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는 마치 거대한 새의 발톱에 뜯기기라도 한 것처럼 흉측하게 뜯겨져 나가 있었다.

허연 뼈와 붉은 살점 사이로 엄청난 양의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심장이 파열될 뻔했다.

위기의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호신강기를 펼쳤기에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굴러온 집채만 한 바위에 부딪친 것처럼 온몸의 뼈마디가 제멋대로 놀고, 근육이 파열되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은 채 겨우 숨을 이어 가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의 주위엔 수십 명의 무인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담호의 인력에 끌려왔던 신화전의 무인들이었다.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와 있었고, 사지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채 널브러져 있는 그들의 모습은 차마 꿈에 보기 두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다행히 전권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한 다른 무인들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요사란이 억눌렀던 숨을 토해 냈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담호의 모습이 보였다.

담호의 모습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화전 무인들보다 더 처참해 보였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은 선혈로 붉게 떡 져 있었고, 전신은 크고 작은 상처로 도배되어 있었다. 부러지고, 깨지고, 파열되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상처가 그의 몸에 도배되어 있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서 있는 것은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든 상처를 입고도 담호의 사나운 눈빛과 독기는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다.

아직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들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담호에게 덤벼들지 못했다.

그들도 독기와 악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그보다 독한 담호의 모습에 오히려 압도를 당하고 만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그에겐 천라지망이 통하지 않았다.

물량 공세도 소용없고, 절대고수로도 막을 수 없는 상대를 어떻게 공략해야 한단 말인가?

신화전의 무인들은 담호에게서 절망을 봤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 무너트릴 수 없는 거대한 절망의 벽을.

“흐읍!”

갑자기 요사란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백짓장보다도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내공 한 방울까지 끌어 올려 최강의 절초를 펼쳤다. 그런데도 담호를 무너트리지 못했다. 한참을 피를 토하던 그녀가 겨우 고개를 들어 담호를 바라봤다.

“왜…… 죽이지 않았느냐?”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담호에게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가 공력을 조금만 더 투입했다면 그녀는 벌써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녀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은 담호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담호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동정이냐?”

“빚을 갚았을 뿐이야.”

“빚?”

“내 동생을 살려 준 빚.”

“동생이라니.”

“황혜령.”

“아!”

그제야 요사란이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담호는 그런 요사란을 무심히 바라봤다.

헤어지기 전 황혜령은 요사란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을 말해 줬다. 그리고 당부했다. 혹시라도 부딪치게 되면 단 한 번만 사정을 봐 달라고.

하나뿐인 혈육의 부탁이었다.

이젠 담씨가 아닌 황씨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는 담호의 소중한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의 부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요사란이 웃었다.

피에 물든 이빨이 드러났다.

“그런 거였으면 아예 싸우기 전에 봐주지. 실컷 두들겨 패 놓고 봐주는 거라니. 하하!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 크흑!”

요사란이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그녀는 웃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녀가 애써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어났다.

적에게 동정을 받은 것도 수치스러운데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때까지도 담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할지라도 저런 상처를 입고도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 덤벼들면 담호를 끝장낼 수 있을지 모른다.

십중팔구는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신화전의 무인들 중 움직이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담호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를 상대로 더 이상 투지가 생겨나지 않았다.

그것이 절대자가 갖는 위용이었다.

담호는 강호의 수많은 무인들 중 한 명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절대자의 반열에 올랐고, 그가 갖는 무게감과 위엄은 감히 도전할 마음조차 들지 않게 만들었다.

요사란이 담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신교의 군장 요사란이 권마 담 대협의 배려에 감사의 인사드려요. 오늘의 배려로 당신과 나의 빚은 모두 청산했어요. 그러니 다음에 만나게 되더라도 봐줄 필요 없어요.”

“…….”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나는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할 것이고, 죽을힘을 다해 당신과 싸울 거예요. 그래도 괜찮다면 나는 이만 물러나겠어요.”

요사란의 당당한 말에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아직 살아남은 신화전의 무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

“허나…….”

“왜 싸우려고? 할 테면 해 봐. 할 수 있으면 말이야.”

“…….”

신화전 무인들이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수장을 잃은 채 이대로 물러나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쿵!

그 순간 담호가 그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강력한 진동이 대지를 타고 신화전 무인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신화전 무인들이 움찔하며 담호를 바라봤다.

“내가 보내 주는 이는 단 한 명뿐이야. 거기에 너희들은 포함되지 않아.”

“으으!”

담호의 광오한 말에 신화전 무인들이 몸을 떨었다.

모두가 심정적으로는 담호에게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달랐다. 담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힘이 쭉 빠지고, 어서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담호의 공포가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으아아!”

“피해!”

그 순간 그들은 앞뒤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내달렸다. 사방으로 일제히 몸을 날리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메뚜기 떼 같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체면도, 오기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요사란이 그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담호는 그들을 추적하지 않았다.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잔향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재앙이로구나. 앞으로 그의 손에 또 얼마나 많은 본교의 무인들이 죽을는지.’

이미 담호와는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마교였다. 앞으로도 담호가 살아 있는 한 그들은 끊임없이 충돌을 되풀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재앙.

요사란이 보는 담호가 그랬다.

그녀가 보기엔 지금이 담호를 죽이기에 최고의 기회였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이런 기회를 얻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신화전의 무인들은 공포에 질려 도주했고, 자신 역시 담호의 동정으로 인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

‘설마…… 하늘이 신교를 버린 것은 아니겠지?’

요사란은 고개를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물러서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이 천근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그녀가 디딘 곳마다 붉은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흔적을 남긴 채 멀어져 갔고, 담호는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주르륵!

마침내 요사란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담호의 입가를 비집고 선혈이 흘러나왔다. 억누르고, 또 억눌렀던 내상이 크게 도진 것이다.

요사란의 짐작처럼 담호의 몸 상태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좋지 않았다. 내장은 크게 상했고, 내상은 심각했다. 뼈가 부러진 곳도 있었고, 근육이 파열된 곳도 다수였다.

이런 상태로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기적일 정도로 망가지고 다쳤지만 담호는 죽어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호란 곳은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여도 잡아먹히는 세계였다. 적어도 기세 싸움에서 진 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 것이다.

기혈이 미친 듯이 들끓고 있었다. 넘치기 직전의 냄비처럼 그의 단전과 심맥은 위태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담호는 암혼심공을 믿고 몸을 맡겼다.

그 순간 암혼심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기혈을 진정시키고, 금이 간 것처럼 약해진 단전을 안정화시키며 담호의 내상을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담호는 암혼심공에 몸을 맡긴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렇게 한참 운공을 하고 있을 때 그의 곁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형!’

검은 말을 끌고 나타난 이는 바로 방진보였다.

남궁 형제를 안전한 곳에 숨기고 난 후 담호를 찾아온 것이다. 비록 담호에게 약속한 것처럼 안휘성 밖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안전한 것이니 절반은 약속을 지켰다 할 수 있었다.

방진보는 한눈에 담호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는 담호를 부르는 대신 주도를 꺼내 들고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담호의 운공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그때까지도 방진보는 석상처럼 담호의 곁을 지켰다.

***

은가보의 상단은 별문제 없이 악양에 들어왔다. 악양 번화가에 들어온 은소청이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으음!”

은소청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그녀의 변화를 알아챈 초연운이 조용히 다가왔다.

“왜 그래?”

“신화상단이이에요.”

은소청이 바라보는 커다란 저택의 현판에 신화상단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신화상단? 설마 마교의 외원이라는 그?”

“맞아요.”

은소청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 상단이라 불렸던 신화상단이었다. 모든 상인과 상단이 반드시 넘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 신화상단이었고, 그것은 은가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남 제일의 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은가보였지만 신화상단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신화상단의 거대한 재력에 막혀 진출이 좌절된 사업도 부지기수였고, 아예 진로가 막힌 지역도 있을 정도였다.

은가보에는 신화상단이 절망의 벽이었고,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었다. 은소청 역시 몇 번이나 은가보가 신화상단에 의해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신화상단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고, 은가보는 지켜봐야 했다. 그때는 단순히 신화상단의 수완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마교가 무림맹의 본단을 무너트리고 악양을 차지할 때 신화상단의 본색이 드러났다.

드러난 그들의 정체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교의 외원(外院).

모두가 순수 상인 집단이라고만 알았던 신화상단이 사실은 마교의 후예들이 만든 상단이었다. 그들은 일차 정마대전 이후 몰락한 마교의 마지막 재물을 이용해 상단을 만들었고, 재산을 불려 나갔다.

마교의 지원을 받았기에 그들은 단기간 안에 급속히 덩치를 불렸고, 그 결과 천하제일상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상단들이 큰 피해를 입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신화상단이 강력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마교가 뒷배인지도 모르고 경쟁하려 했으니 당연히 피를 볼 수밖에.”

“피해를 많이 봤나 보네. 목소리에 한이 담겼는데.”

“천하에 존재하는 상단 중에 신화상단과 악연이 없는 곳은 단 하나도 없을 거예요.”

“그 정도야?”

“네! 마교가 몰락했을 때도 그렇게 성장했는데, 마교가 중원 남부를 장악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성장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네요. 마교를 진정으로 물리치려면 반드시 신화상단을 무너트려야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자금이 뒷받침 되지 않는 조직이나 문파는 존재할 수 없어요. 특히 무림맹이나 마교처럼 거대한 문파일수록 엄청난 자금이 소모돼요. 제아무리 마교에 충실한 신도들이라도 자금줄이 마르고, 먹는 것이 궁핍해지면 그만큼 이탈도 커질 거예요.”

“신앙의 힘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냐?”

“풍족하게 먹는 것보다 더 큰 신앙은 존재하지 않아요. 굶주린 자에게 충성은 기대하기 힘든 법이니까요.”

딱 잘라 말하는 은소청의 말에 초연운은 할 말이 궁핍해졌다.

은소청은 무인인 초연운과 달리 상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초연운은 이해하기 힘든 관점이었지만, 그렇다고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화상단이야말로 마교의 중추예요.”

은소청이 단언할 때였다.

끼이익!

신화상단의 문이 열리고 일단의 무리가 밖으로 나왔다.

은소청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들 선두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귀한 기품이 비단처럼 온몸을 휘감은 여인,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분위기가 서려 있는 이는 바로 신화상단의 소단주인 원설화였다.

일행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던 원설화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녀도 은가보의 깃발을 발견한 것이다.

원설화의 걸음이 은가보의 상단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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