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416화 6장. 한자리에 모여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1)
담호가 눈을 떴다.
무저갱보다 깊고 검은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 남궁선휘 형제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전신의 근육이 굳고,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그들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과 오줌을 억지로 눌러 참아야 했다.
“형!”
때마침 방진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바지춤은 축축하게 젖고 말았을 터였다.
담호에게 다가오는 방진보의 어깨에는 방금 전 잡은 듯한 새끼 멧돼지가 걸려 있었고, 허리에 맨 보자기엔 이름 모를 약초들이 하나 가득 담겨 있었다.
방진보가 멧돼지를 짊어진 채 담호를 향해 달려왔다.
“내상은 좀 어떠세요?”
“괜찮다.”
“정말요?”
방진보의 계속된 물음에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방진보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형이 깨어나기 전에 원기 좀 살려 주는 음식 좀 만들어 놓으려고 했는데. 조금만 기다리세요, 형. 금방 만들 테니까.”
“음!”
담호의 대답을 듣자마자 방진보가 멧돼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담호의 위에 부담 주지 않기 위해 특별히 잡은 어린 멧돼지였다. 그만큼 살도 연했고, 영양도 만점이었다.
서걱! 서걱!
방진보가 주도를 움직일 때마다 가죽이 벗겨지고, 살과 뼈가 분리되었다. 순식간에 멧돼지를 해체한 방진보는 내장을 따로 모아 약초와 쌀을 넣고 함께 삶았다.
내친 김에 고기도 몇 가지 채소를 더해 볶아 냈다.
치이익!
이름 모를 야산에 고기가 맛있게 익는 냄새가 퍼져 나갔다.
방진보는 담호에게 내장으로 만든 죽을 건넸다.
“형, 드세요. 위에 부담도 덜고,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될 거예요.”
“고맙다.”
“헤헤! 많이 드시고, 얼른 회복하세요.”
“음!”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장으로 만든 죽을 들었다.
천라지망이 펼쳐진 후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 때문에 그의 배 속은 오랫동안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먹거나, 소화되기 어려운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탈이 나고 만다. 하지만 이렇게 죽 형태로 먹게 되면 소화도 쉽고 위에 전해지는 부담 또한 덜게 된다.
방진보도 그 점을 생각해 내장죽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담호는 방진보의 그런 배려에 감사하며 죽을 먹었다.
담호가 죽을 잘 먹는 것을 확인한 방진보가 남궁 형제들에게 멧돼지 볶음을 덜어 주었다.
“너희들은 이것 먹어.”
“고마워요.”
“잘 먹겠습니다.”
남궁 형제가 감사의 인사를 하며 방진보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방진보는 미소를 지은 채 그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다행이다.’
담호가 입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몇 번을 죽었을 심각한 상처였다. 설령 운 좋게 상처를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후유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그런 중상을 입고도 담호는 다시 불사조처럼 회복했다. 그야말로 경이롭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엄청난 회복력이었다.
이곳으로 옮긴 후 담호는 거의 칠 주야를 운공에만 몰두했다.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담호의 외상은 거의 나았다. 쩍 벌어졌던 상처엔 딱지가 내려앉았고, 부러졌던 뼈도 붙기 시작했다. 아마 이대로 며칠만 더 흐른다면 움직이는 데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담호는 방진보가 정성을 다해 만든 죽을 묵묵히 먹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이 들어오자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담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방진보가 그제야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방진보는 이렇게라도 담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담호의 식사는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몸이 많이 상한 상태이기에 최대한 음식을 천천히 먹어 위의 부담을 줄인 것이다.
식사를 끝낸 담호가 근처의 커다란 바위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제야 주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숲과 산 아래로 보이는 커다란 호수, 여러 모로 낯선 풍광이었다.
“여긴 어디냐?”
“소혼 근처의 함산(含山)이라는 곳이에요.”
“함산? 아직 안휘성 안인가?”
담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분명 방진보에게 남궁 형제들을 데리고 안휘성 밖으로 도주하라 말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형의 말을 어겨서.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형을 두고 어떻게 저희들만 안휘성 밖으로 도주해요? 얼마든지 저를 혼내도 좋아요. 하지만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너는 잘못한 것 없다.”
“정말요?”
“그래!”
방진보도 이젠 어엿한 무인이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담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추적자는?”
“흔적을 말끔히 지웠어요. 아직까지 추적해 온 자는 없어요.”
“잘했구나.”
“헤헤!”
담호의 칭찬에 방진보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산을 내려가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깨어나자마자 그러실 것 같아 준비해 두었어요. 헤헤!”
담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방진보였다. 이미 산을 내려갈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방진보가 길게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흑귀가 나타났다. 흑귀는 담호를 보며 반갑다고 얼굴을 문질렀다.
담호는 흑귀의 두툼한 목덜미를 손으로 두들기며 체온을 나누다가 올라탔다.
푸르르!
“가자.”
“예!”
방진보와 남궁 형제가 담호의 뒤를 따랐다.
방진보의 말에 남궁영휘가 탔고, 그 뒤를 남궁선휘가 경공을 펼쳐 따랐다. 아직 남궁선휘의 맹세는 굳건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남궁선휘는 이를 악문 채 달렸다. 경공으로 질주하는 말을 따라붙는 것은 무척이나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그들은 조그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표정도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공터에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유, 웬일이래? 마교에 빌붙었던 놈들이 왜 다 도망간 거지?”
“그러게 말일세. 마교를 등에 업고 온갖 패악질을 한 놈들이 다 어디로 간 건지 한 명도 보이지 않네.”
그들의 얼굴엔 의아한 빛이 가득했다.
마교가 안휘성을 장악한 이후 이곳 역시 그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마교를 따르는 자들이 마을을 장악했고, 온갖 패악질을 자행했다. 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마교보다 오히려 그들을 등에 업고 패악질을 부리는 이들이 더욱 무서웠다. 그들은 마교를 믿지 않는 마을 사람들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괴롭혔다.
오죽했으면 그들을 피해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까지 속출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싹 사라졌다. 그 이유가 못내 궁금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때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사십대 중반의 장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다 권마 담 대협 때문이랍니다.”
“권마?”
“알아듣게 말해 보게. 담 대협 때문이라니?”
사람들의 시선이 장한에게 집중됐다.
“얼마 전 안휘성을 장악했던 마교의 전력이 권마 담 대협과 격돌했답니다.”
“마교의 전력? 그럼 엄청나게 많은 것 아닌가?”
“맞습니다. 적어도 천 명이 넘는 고수가 권마 한 명을 잡기 위해 동원됐습니다.”
“설마? 천 명이나…….”
사람들의 얼굴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단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동원됐다니? 그것도 무공을 익힌 무인들로만.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일대 사건이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했는지 장한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알 겁니다. 마교와 담 대협이 격돌했던 곳에는 아직도 치우지 못한 시신들이 즐비하답니다.”
“그럼 정말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고, 마교의 고위 인사도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마교가 큰 타격을 받고 안휘성 외곽으로 물러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혼자서 그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네! 그래서 마교도 난리가 난 겁니다. 남궁세가를 멸문시킨 후 자신들의 세상인 줄 알았던 안휘성에서 그 큰 타격을 입었으니까요. 들리는 말로는 담 대협에게 죽은 사람들 중에는 마교에서도 정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래서 마교도들도 큰 충격을 받고 물러난 겁니다.”
“그럴 수가!”
처음 듣는 소식에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넋을 잃었다.
안휘성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남궁세가는 하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하늘을 멸문시킨 것이 바로 마교였다.
마교는 절대의 공포였고,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이었다. 그들은 수십 년 전보다 더 무서워졌고, 거대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교가 무너지는 그림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마교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그것이 방금 전까지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념은 장한의 말에 의해 산산이 깨지고 있었다.
“정말…… 자네의 말이 정말인가?”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제가 소싯적에 합비의 무관에서 무공을 익힌 것을 잘 아시잖습니까? 그 무관의 동기가 해 준 말입니다.”
“으음!”
“사실 무관의 동기도 마교가 펼친 천라지망에 동원됐었습니다. 가기 싫었지만, 마교로 전향한 관주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참여했는데…….”
“했는데?”
“지옥…… 지옥을 봤답니다.”
장한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그는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이라도 한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담 대협이 주먹 한 번을 뻗을 때마다 수십 명씩 죽어 나가는데, 그 누구도 그분의 일권을 막지 못했답니다. 저와 동기가 무공을 배운 관주도 담 대협의 일권을 막지 못하고 그만 죽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고 동기가 그러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도망친 사람이 동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담 대협을 피해 도주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담 대협은…… 인간이 아니었답니다.”
“…….”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누구 한 명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고 장한의 말을 경청했다. 그만큼 그들은 장한의 말에 몰입하고 있었다.
“결국 천라지망에 동원된 외부 무인들은 다 도주하고, 마교의 전력만 남아 담 대협과 격돌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동기가 십여 리 밖에서 지켜봤는데 무려 하루 동안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어찌나 무서운지 동기도 하루가 지난 후에야 담 대협이 싸웠던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한 지옥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지, 지옥?”
“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까마귀와 들개 들이 포식을 하고, 피가 강을 이뤄 흘렀다고 하는군요. 그 참상이 어찌나 끔찍한지 한 번 본 사람들은 아직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군요.”
“으음!”
“하여간 당시 천라지망을 주도했던 마교의 수장도 담 대협의 손에 처참히 죽고 안휘성을 장악했던 마교의 전력이 완전히 와해됐습니다. 자연히 마교의 편에 빌붙었던 놈들이 설 자리도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곡성이 놈도, 언광이 놈도 부리나케 도망간 겁니다.”
장한이 언급한 연곡성이나 주언광은 모두 마교의 편에 섰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아는 놈이 더 한다고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지독할 정도로 괴롭히고 패악질을 일삼았다.
그들에게 겁탈당한 마을 여자만 열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큰 원한을 갖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단 한 명이 그렇게 많은 이들을 죽이고 마교의 손에서 안휘성을 구하다니.”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담 대협이야말로 중원을 구할 진정한 영웅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그분의 손속이 과해 권마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영웅이라 불릴 만하지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무림맹이 마교를 상대로 공을 세운 게 뭐가 있습니까? 그저 소림사에 빌붙어 있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반면 담 대협은 마교를 상대로 수많은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까? 난세에 이분만 한 횃불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윤주경, 비록 무공은 미약하지만 만일 담 대협이 부른다면 어디든지 달려갈 생각입니다.”
장한이 자신의 가슴을 쾅쾅 치며 호언장담을 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장한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호응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장한에게 정신이 팔려 그들 뒤로 지나가는 한 무리 인원을 보지 못했다.
거대한 검은 말에 탄 남자 담호와 방진보 등을.
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무용담의 주인이 바로 마을에 들어왔음을 까마득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열광이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담호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에겐 이 모든 환호와 열광이 남의 일인 것처럼 덤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반면 방진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사람이 나의 형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형이란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그런 자신의 욕망을 애써 억눌러 참으며 담호에게 물었다.
“형, 그런데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하오문.”
담호의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