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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17화 (41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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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화 6장. 한자리에 모여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2)

개방만큼이나 많은 분타와 지부를 두고 있는 것이 바로 하오문이었다. 비록 마교가 안휘성을 장악한 이후 활동이 많이 위축되고, 철수한 지부도 많았지만 그래도 몇몇 지부는 아직도 건재했다.

담호가 찾은 하오문의 지부 역시 건재한 곳 중 하나였다. 이곳에 있는 하오문은 도박장으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일단 한번 도박에 중독된 자는 부모가 죽어도 참지 못하고 다시 도박장을 찾기 마련이었다. 밖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혈란에 휩쓸려 죽어 나가고 있었지만, 도박장 안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어서 던지라구.”

“제기랄! 이번에도 잃으면…….”

도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눈에 불을 밝힌 채 노름이 벌어지고 있는 탁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곳곳에서 주사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마작을 하는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박의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해서 한쪽에서는 투견판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제기랄! 목을 노려야지.”

“그래! 목을 물고 홱 돌려서, 그렇지…….”

전표를 들고 목이 터져라 외쳐 대는 사람들의 얼굴엔 광기마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겐 남궁세가가 무너진 것도, 마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따위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도박판에서 일어나는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와아아!”

“아아!”

곳곳에서 탄성과 탄식, 희비가 교차했다.

끼이익!

도박장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지만 누구 한 명 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박판에 집중되어 있었다.

도박장에 새롭게 들어온 이는 바로 담호와 방진보였다.

“이곳이 하오문?”

도박장에 생전 처음 들어와 보는 방진보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실내엔 연기가 자욱했고, 그 안에서 광기를 발산하고 있는 인간군상은 방진보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광경을 보게 되면 그와 같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은 인간의 본성 밑바닥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밖에서 어떤 신분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다 같이 도박에 미친 똑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담호는 방진보가 받았을 충격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굳이 말을 걸어 위로하지 않았다.

강호란 세계엔 화려하고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흙탕처럼 더러운 것도 존재했고, 이 역시 강호의 한 모습이었다.

방진보가 반쪽짜리가 아닌 제대로 된 무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남궁 형제를 밖에 놔두고 오직 방진보만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였다.

그때였다.

“거기 잠깐. 어떻게 안에 들어왔지?”

도박장 안에서 사고가 터지지 않는지 감시하던 하오문의 무인들이 담호와 방진보에게 다가왔다.

당연히 도박장 밖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새로운 손님이 방문하면 당연히 그들이 안에 알려 줬다. 하지만 그들은 밖을 지키는 무인들에게서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한 덩치 하는 무인들이 사나운 기세를 발산하며 다가왔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도 위축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불행히도 담호와 방진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기랄!’

‘뭐, 뭐야? 설마 마교인가?’

급기야 그들의 걸음이 멈췄다.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들의 두 다리가 담호에게 다가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그들은 두려움이 담긴 시선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달라.’

‘이 남자는 우리와 달라.’

담호의 감정 없는 눈빛을 마주보는 순간 그들의 뇌리 속에 공통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비켜랏! 너희들 따위가 상대하실 분이 아니다.”

누군가 안쪽에서 후다닥 뛰어오며 외쳤다. 염소수염에 왜소한 체격의 중년인이었다. 그에 하오문의 무인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분타주님.”

“비켜! 이놈들아. 나를 죽일 셈이냐?”

“예?”

“어서 꺼지라구.”

염소수염 중년인이 화를 벌컥 냈다. 그제야 무인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얼굴엔 살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염소수염 중년인이 급히 담호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담 대협. 소인은 하오문의 화현(和縣) 지부장인 서일명이라고 합니다. 담 대협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서일명의 인상은 꼭 쥐 같았다. 실제로 성격도 쥐처럼 음침하고 눈치도 빨랐다. 덕분에 그는 단숨에 담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권마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오늘이 화현 지부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자신의 미소가 담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며.

다행히 담호는 별로 마음이 상한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서일명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일명이 종종걸음으로 앞장섰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도박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사방이 꽉 막혀서 밀실을 연상케 하는 방은 서일명의 집무실이었다.

“여기 앉으십시오.”

서일명은 담호에게 상석을 권했다. 담호는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방진보는 담호의 뒤에 선 자세로 있었고, 서일명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손을 모은 채 담호를 바라봤다.

잠시 서일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담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천하의 정세를 알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알고 싶으십니까?”

“마교와 무림맹.”

“둘 다 어렵진 않군요. 그럼 마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담 대협 덕분에 안휘성에서 마교의 세는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핵심 전력이 모조리 날아가 버린 상황이라 구심점 없이 흩어져 있는 형편이지요. 덕분에 저희 도박장도 안전해졌으니 이 점 감사드립니다.”

서일명의 말처럼 안휘성 내에서 마교의 세력은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다. 남궁세가를 멸문시킨 후 하늘을 찌를 듯하던 기세도 한풀 꺾인 상태였고, 전력도 크게 약화되어 호남성과 가까운 안휘성 외곽으로 전력을 후퇴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이제까지 마교의 기세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상황이었고, 끈질기게 저항하던 문파들도 한결 숨통이 트였다.

“아직은 완전히 안정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마교가 득세하던 시절에 비하면 살 만해진 상황이지요. 이 모든 것이 다 담 대협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직장을 잃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 하하하!”

“…….”

“예! 헛소리는 그만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무튼 안휘성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교의 전력은 건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원 남부를 병탄하는 작업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하오문은 전력을 다해 마교의 실체를 파헤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면 수집할수록 하오문의 절망은 커져만 갈 뿐이었다.

마교의 전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여전히 탄탄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고,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전력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악양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그게 뭐지?”

“무기를 만드는 공방이 바쁘게 돌아가고, 식량을 실은 마차가 줄을 이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담 대협께서도 잘 아실 거라고 봅니다만.”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려는군.”

“맞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무기와 식량이야말로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물품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규모라면 수천 명 이상이 능히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양입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지요.”

서일명의 설명에 담호의 표정이 굳었다. 서일명이 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공세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무림맹이군.”

“정확합니다. 저희 상부에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마 근일 내에 무림맹과 큰 충돌이 있을 겁니다.”

“무림맹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

“이제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저희가 은밀히 정보를 흘릴 예정이거든요.”

“개입할 생각인가?”

“저희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교가 득세를 하면 죽어나는 것은 저희 같은 아랫것들이니까요.”

서일명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교가 득세한 지역에서는 하오문이 탄압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문을 닫은 지부가 벌써 수십 개가 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오문의 세력이 위축될 것이 뻔하기에 그들 역시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담호의 눈빛은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서일명이 상념에 잠긴 담호의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참, 말씀드릴 것이 또 있습니다. 이건 확실한 것은 아닌데…….”

“…….”

“무림맹에서도 마교의 본진을 노리고 정예를 은밀히 파견한 것 같습니다.”

순간 담호가 고개를 들어 서일명을 바라봤다. 담호의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서일명은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 무슨 놈의 눈빛이…….’

단지 눈빛만 봤을 뿐인데 숨이 턱 막혀 오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담호가 입을 열었다.

“결사대인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서일명의 대답에 담호의 눈빛이 일렁였다.

결사대를 다시 조직한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과거에 가장 효과를 봤던 방법을 되풀이하기 마련이었다. 과거에 결사를 조직해 탁월한 효과를 봤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악몽을 경험한 자는 항상 그에 대비하기 마련이었다. 담호는 마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허술한 곳이었다면 불과 수십 년 만에 예전의 전력을 다시 회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결사대에 담호가 아는 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담호가 물었다.

“연운은?”

“소림사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결사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군.”

“그런 것 같습니다.”

서일명이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연운.’

결사대에는 초연운의 지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초연운의 성격상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담호가 있는 곳은 안휘성의 동쪽 끝이었다. 마교가 있는 호남성 악양과는 무려 천 리가 넘게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칠 주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무엇보다 아무런 충돌도 없이 호남성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담호의 눈빛이 깊이 침잠됐다. 이렇게 된 이상 초연운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초연운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라도 능히 자신의 한 몸 빼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때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방진보가 입을 열었다.

“연운 형은 괜찮을 거예요. 천하의 취운룡을 누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전 연운 형을 믿어요.”

방진보의 확신 어린 말에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초연운을 믿었다.

지금의 초연운은 삼 년 전의 초연운과 달랐다. 비교할 수 없는 성장을 이뤘고, 완전한 무인으로 거듭났다.

그런 초연운을 믿지 않는다면 강호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담호는 초연운을 믿었다.

담호는 그 후로도 서일명에게 현 강호의 정세에 대해 들었다.

그가 마교의 천라지망을 무너트린 후 강호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소식은 바로 마교에 대항하는 문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담호의 신위에 용기를 얻어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때였다.

“흥! 감히 나를 속이다니.”

콰앙!

뾰족한 교성과 함께 굉음이 밀실 밖에서 들려왔다.

“싸, 싸움이다.”

“무림인이야.”

뒤이어 사람들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서일명의 안색이 싹 변했다. 누군가 밖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담호라는 큰 산을 넘자 또 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그는 담호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방진보가 담호를 바라봤다.

“형!”

“그래!”

담호가 방진보와 함께 밀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밖에 나와서 제일 먼저 본 광경은 허공을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담호가 도박장에 들어왔을 때 막아섰던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날아온 방향에 면사를 걸친 여인이 오연히 서 있었다. 그녀의 양팔에는 하오문의 무인들이 한 명씩 목을 잡혀 있었다. 그중의 한 명은 방금 전 담호에게 한참 설명을 하던 서일명이었다.

“대협, 제발!”

그가 울상인 얼굴로 담호를 바라봤다.

서일명의 목을 잡고 있는 여인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담호를 향했다.

“너도 한패냐?”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도박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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