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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18화 (41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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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화 6장. 한자리에 모여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3)

여인의 얼굴을 가린 면사를 뚫고 강렬한 안광이 폭사되어 나왔다.

화가 극에 달했는지 여인의 목소리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담호는 말없이 여인을 바라봤다. 그런 담호의 모습이 여인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양팔에 잡힌 서일명과 하오문의 무인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담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잠깐만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방진보가 담호의 앞을 막아섰다.

“비켯!”

순간 여인이 새하얀 손이 섬전처럼 뻗어왔다.

‘금나수?’

방진보는 단박에 여인의 손동작이 범상치 않은 공부라는 것을 눈치채고 반응했다.

탁!

마치 그림자를 쫓는 것처럼 손이 휘둘러져 여인의 손을 쳐 냈다.

화산파의 절학 중 하나인 추영장법(追影掌法)이었다.

매화도에 비해 성취가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방진보에 의해 금나수가 무위로 돌아가자 여인의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흥! 제법 숨겨 둔 한 수가 있단 말이지. 이자들이 너를 믿고 그리 방자했구나.”

“아, 나는 그게 아니고…….”

방진보가 급히 변명했지만, 이미 여인의 화는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였다.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방진보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조그만 손바닥이 방진보를 향해 뻗어오는가 싶더니 이내 수십 개로 분열했다.

촤하학!

“차앗! 육합환무(六合幻舞).”

순간 방진보는 천지사방이 손바닥 안에 갇힌 듯한 착각을 느꼈다. 여인이 펼친 장법이 평범한 무공이 아니란 증거였다.

“쳇!”

방진보는 어쩔 수 없이 주도를 꺼내 매화도를 펼쳤다.

쩌저저정!

손바닥과 주도가 부딪치며 거친 기파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보통이 아니구나.’

날카로운 주도와 부딪쳤는데도 여인의 손은 멀쩡했다. 담호처럼 특별한 수공(手功)을 익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인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환영신장(幻影神掌)을 이렇게 수월하게 받아 내다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도박장에 들어온 것은 호객꾼의 꼬임 때문이었다. 숙소를 찾고 있는 그녀에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로 속여 이곳으로 데려왔다. 속은 것을 알고 나가려 하자 호객꾼과 하오문의 무인들이 막아섰고, 그 결과 이 사달이 일어난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단 한 번만 손을 부딪쳐도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여인도 손을 한 번 부딪쳐 본 것만으로 방진보의 수준이 자신 못지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외쳤다.

“부끄러운 줄 알거라. 그런 무공을 익히고도 이런 사기꾼들과 한패라니.”

“아, 잠깐! 나는…….”

“문답무용(問答無用).”

여인은 방진보의 대답도 듣지 않고 연거푸 장력을 날렸다.

콰콰콰!

그녀의 가공할 장력에 방금 전까지 수많은 이들을 광기에 물들게 했던 도박장이 파괴되었다.

“으악! 피해!”

“이럴 수가! 내 도박장이…….”

도박을 하던 이들이 때아닌 날벼락을 피해 도망갔고, 분타주인 서일명이 넋을 잃었다.

그가 평생을 일궈 온 삶의 터전이 저 악귀 같은 여인의 손에 파괴되고 있었다.

“저년을 죽여!”

서일명이 이성을 잃고 수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하지만 누구 한 명 선뜻 나서지 않고 서로의 눈치만 봤다.

‘저런 싸움에 뛰어들라고?’

‘미치지 않고서야.’

방진보와 여인의 싸움은 살벌했다.

엄청난 위력의 장력이 공기를 파동 치게 만들었고, 날카로운 주도가 결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들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자들의 싸움이었다. 그런 자들의 싸움에 감히 뛰어들 배포와 용기 따윈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일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저런 년을 누가 도박장에 들여놓은 거야?”

그사이에도 두 사람의 싸움은 치열하게 이어졌다.

쾅!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고, 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공방은 점점 더 치열해져 갔다.

담호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봤다.

화산대숙수라는 별호로 불리는 방진보였다. 비록 별호는 조금 우스울지 모르지만 그의 실력이 사신성이라 불리는 강호 최고의 기재들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여인은 그런 방진보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장영(掌影)이 환상처럼 일대를 휩쓸었다. 그녀의 그림자가 수없이 많은 환영을 만들어 냈다.

쉴 새 없이 분노를 토해 내던 서일명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여인의 환상적인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녹수빙! 그녀는 환상선자(幻想仙子) 녹수빙이구나. 이런 빌어먹을! 하필 사신성을 도박장 안으로 끌어들이다니.”

서일명은 모든 것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하오문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주고 파는 조직이었다. 물론 본단에는 무서운 고수들이 즐비했지만, 이런 변두리 분타에까지 그런 고수가 파견 나와 있을 리 만무했다.

서일명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쌀 때였다.

촤아앙!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기파가 객잔을 휩쓸고 지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도박장이 무너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콰르르!

유서 깊은 하오문의 분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두 사람이 싸움을 멈췄다.

“대단하네. 너, 보통이 아니었구나.”

녹수빙이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방진보를 바라봤다.

그녀는 더 이상 방진보를 오해하지 않았다.

비록 최선을 다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실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방진보는 그런 그녀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 상대가 한낱 하오문이 운영하는 도박장 소속일 리 없었다.

녹수빙이 방진보에게 인사를 했다.

“난 녹수빙이라고 해. 부끄럽지만 환상선자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지.”

“화산파의 방진보예요.”

“화산대숙수? 정말?”

녹수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절로 방진보의 뒤쪽에 있는 담호를 향했다.

“설마? 그럼…….”

“맞아요. 권마 담호 형이에요.”

“이럴 수가!”

녹수빙의 놀람이 극에 달했다. 그녀가 허둥지둥 담호에게 포권을 취했다.

“노, 녹수빙이 권마 담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환상선자라고?”

“부끄럽지만 그렇게 불리고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환상선자라는 별호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눈동자에 드러나 있었다.

녹수빙이 문득 얼굴을 가린 면사를 벗었다. 그러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아무리 봐도 스물은 넘어 보이지 않는 싱그러운 젊음으로 무장한 미인이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설마 이곳에서 담 대협을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녹수빙은 담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기이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당금 천하를 움직이는 절대의 무인이었다. 강호에 발을 들여놓은 인물치고 담호를 모르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수많은 이들이 그를 우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녹수빙도 마찬가지였다. 무인의 길을 걷기에 그녀는 담호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 중 하나인 사신성의 일원이었지만, 그 정도로는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담호와 같은 절대자가 되어 강호를 호령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렇기에 담호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을 누구보다 반기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눈빛으로 담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

오랜만에 은가보에 활력이 감돌았다.

호상단과 함께 은소청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가보는 거의 비워져 있다시피 했다. 마교가 무림맹을 내쫓고 악양을 장악할 때 보주인 은일명이 재빨리 은가보의 알짜배기 자산을 외부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재 호남성에 있는 은가보는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은일명 자신도 주요 인사들과 함께 호남성 밖으로 몸을 피했기에 은가보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남아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은가보에 남아 관리를 하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주인이 돌아오자 반색을 했다. 은소청은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한 후 함께 온 결사대에 숙소를 배정해 주었다.

“휘유! 정말 끝내주는구나.”

초연운이 화려한 은가보의 내부를 보며 절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랜 세월 공을 들여 가꿔 온 아름다운 가산과 화려한 전각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곳곳에 아름다운 조각과 도자기, 그림 등이 걸려 있어 운치를 더했다.

초연운도 이제까지 꽤나 많은 명문가를 방문해 봤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꾸며진 곳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초연운과 함께 온 결사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가보의 재력이 천하에서 수위에 들 정도라더니 사실이었군.”

오죽하면 장진명조차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을 정도였다.

장진명을 비롯한 결사대에는 별채가 배정되었다. 별채 또한 수려한 풍경을 지닌 가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또한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어 시선을 피하기에 적합했다.

“일단 모두 합류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계세요.”

“고맙네, 은 소저. 덕분에 한결 편하게 쉬면서 준비할 수 있겠어. 이 은혜 잊지 않겠네.”

“아니에요.”

은소청이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홀로 남은 장진명은 별채 내부를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은소청과 은가보를 택한 것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

“아주 좋아!”

이제부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다른 결사대가 합류하기 전에 준비할 것도 많았고, 정보도 수집해야 했다. 바쁘게 움직여야 빠듯하게 맞출 수 있을 듯싶었다.

장진명은 그날부터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흩어져 악양에 들어온 결사대가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적성신군 유성월이 이끄는 결사대가 제일 먼저 은가보에 들어왔다. 그다음은 천산설화라 불리는 소보원이 이끄는 무리가 들어왔다.

초연운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와.”

“아미타불! 오래 기다렸는가?”

“별로!”

“무사히 다시 보게 되어 다행이네.”

소보원과 함께 들어온 소천이 초연운을 보며 반색을 했다.

뒤이어 해소월과 청운이 들어왔고, 천뢰무객(天雷武客) 남학, 무영신룡(無影神龍) 엄태천도 합류했다.

구무룡 중 무려 네 명이나 한자리에 모였다. 당연히 사기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결사대에 참여한 젊은 무인들은 은가보에 모여 이곳에 들어오기까지의 무용담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마터면 마교 놈들에게 걸려 큰 싸움이 날 뻔했다니까. 다행히 슬기롭게 위기를 넘겼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큰 사달이 났을 걸세.”

“겨우 그거 가지고? 우리는 어땠는지 아는가? 마교의 정예를 만나서…….”

무사히 합류한 자들의 자랑이 이어졌다.

강호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결사대에 자원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아직 치기가 남아 있는 젊은 무인이었다. 조그만 무용담도 크게 부풀려 말하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강호 무림을 위해 나선 젊은 무인들이었다. 순수한 의기로 나선 이도 있었고, 개인적인 공명심 때문에 나선 이도 있을 것이다.

은소청은 그들을 위해 무언가라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술과 고기를 준비해 그들에게 베풀었다.

초연운이 은소청에게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이러다가 은가보의 기둥이 뿌리째 뽑힐라.”

“이 정도 가지고는 표도 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럼 다행이고.”

“결행일은 언제인가요?”

“마지막 조가 합류하는 대로 결행할 거야.”

“아직 합류하지 못한 조가 있나요?”

“음! 조금 늦네.”

초연운의 얼굴에 살짝 초조한 표정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결사대가 은가보에 합류했지만, 딱 한 조가 아직 합류하지 않았다.

설산도객(雪山刀客) 이설휘가 이끄는 조였다.

특히 이설휘의 조에는 어린 무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초연운은 그들이 결사대에 포함되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목숨을 걸고 싸우기엔 평균 연령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부디 무사히 합류했으면 좋겠는데.”

“그저 조금 늦는 것뿐일 거예요. 걱정하지 마요. 금방 합류할 테니까.”

“그럼 좋고.”

초연운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장진명을 비롯한 전대 결사대의 무인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었다.

‘늙은 괴물들.’

초연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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