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419화 (41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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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화 7장. 성의를 다해 손님을 맞이한다(1)

마교에서 가장 바쁜 이를 고르라면 누구나 첫손에 상한천을 꼽을 것이다. 마교에서 상한천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열상으로는 교주 휘하의 흑백사자가 그보다 우위였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상한천이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마교인들이 상한천이 마교의 이인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실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이 군사부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상한천과 어떻게라도 인연의 끈을 만들어 두려는 상인이나 지역 유지 들이었다.

그들에겐 강호의 정의란 뜬구름처럼 허황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역을 장악한 패자였다. 무림맹이 있을 때는 무림맹에 선을 대려 노력했고, 이제 주인이 바뀌자 마교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물론 그런 이들 대부분은 상한천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밑에서 정리됐다. 덕분에 상한천은 쓸데없는 곳에 심력을 소모하지 않고 마교의 운영에만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세상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밑에서 처리되었지만 상한천이 직접 얼굴을 대면해야 하는 존재도 있었다.

“군사님.”

원설화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상한천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죄송해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아니다. 네가 얼마나 바쁜지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신화상단 덕분에 본교가 이만큼 악양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고맙다.”

“아니에요. 본교의 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부친은?”

“호남성의 사업장을 둘러보느라 바쁘세요. 정리되는 대로 본단으로 들어오겠다고 했어요.”

“그렇겠지. 여하튼 너희 부녀와 신화상단이 있어 든든하구나. 덕분에 한숨 돌렸음이야.”

상한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교와 같은 거대한 단체를 이끌어 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재정의 안정이었다. 마교가 득세하자 수많은 상단들이 음으로 양으로 접촉을 해 왔다.

적당한 이권을 쥐어 주고, 그 대가로 큰돈을 받아 재정에 보탬이 됐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일 뿐이지, 진정한 마교의 충신은 아니었다.

신화상단이야말로 마교의 든든한 충신이자 재정을 뒷받침해 주는 큰 기둥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있기에 상한천은 재정의 압박 걱정을 하지 않고 마교를 마음먹은 대로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단순히 인사나 하려고 찾아온 것 같지는 않은데.”

“사실은 군사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신화상단의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어떤 도움을 바라느냐?”

“최근 하남성의 상로가 막혔어요. 때문에 본 상단의 이익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돌파구가 필요해요.”

“역시 그렇구나.”

상한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래 신화상단은 소림사는 물론이고 무당파와 같은 중원의 명문들과 큰 거래를 했었다. 하지만 신화상단이 사실은 마교의 외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들과의 거래가 모두 막혔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그들 내부에 신화상단을 들이면서 얼마나 많은 기밀이 유출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신화상단의 거래를 끊고 척살령을 내렸다. 때문에 신화상단은 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수익도 크게 줄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예? 무슨 방도라도 있나요?”

“조만간 무림맹과 소림사를 정리할 거란다. 일단 하남성만 무너트리면 다른 곳을 쓸어버리는 것은 여반장일 것이다.”

여반장(如反掌), 즉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다는 뜻이었다.

원설화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둘을 한꺼번에 무너트리려면 많은 피해가 있을 텐데요.”

“그래서 호교원을 움직이려 한다.”

“아!”

순간 원설화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명색이 신화상단의 소단주인 원설화였다. 당연히 호교원이 마교에서 어떤 위상과 힘을 가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호교원은 마교 최후의 저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자생존이 미덕인 마교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호교원에 들 확률은 코끼리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도 희박했다. 하지만 그렇게 희박한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자들은 호교원에 들어 마교 내의 모든 분쟁에서 자유로워질 권리가 주어졌다.

호교원을 움직일 수 있는 이는 오직 교주뿐이었다. 그 외의 그 어떤 이들도 호교원을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교주인 척관혈 역시 그런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하지만 몇 해 전 금기와 원칙을 송두리째 깨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대 호교원주였던 북명마제 화무의가 음유경 등을 은밀히 후원하다가 들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일련의 사건이 있은 직후 척관혈은 자신의 최측근 중 하나인 유령마제 위강휘를 호교원의 원주로 앉혔다.

호교원을 움직일 권한을 주었다는 것은 곧 교주가 상한천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살아남아 호교원에 들게 된 만큼 장로들의 무공 수위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그런 호교원을 움직일 수 있게 됨으로써 상한천이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영역은 거의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무림맹과 소림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할지라도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무너질 것이다. 두 곳만 무너트리면 천하의 그 어떤 문파도 감히 본교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교(魔敎)라는 오명을 벗고 신교(神敎)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중원 천하가 본교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화상단 또한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거라.”

“알겠어요.”

원설화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한천이라는 천재의 손에 호교원이라는 천하에 다시없을 명검이 주어졌다. 그 둘이 어떤 상승 작용을 일으킬지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럼 본교가 출진 준비를 할 때까지 저는 은가보에 집중해야겠네요.”

“무슨 말이냐? 은가보라니.”

상한천이 대번 관심을 보였다. 그에 원설화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마 전 은가보의 은소청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닌데 일행 중에 호상단과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몇몇 보이더라구요.”

“호오! 자세히 말해 보거라.”

“사실은…….”

원설화가 은소청 일행과 만났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상한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예! 그래서 사람을 붙여 놨어요. 혹시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보고가 올라올 거예요.”

원설화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상한천이 갑자기 책상 위에 널브러진 각종 종이뭉치를 뒤지기 시작했다.

천하각지에서 보내오는 동향 정보였다. 상한천은 그중 몇 뭉치를 꺼내 들었다. 이미 한 번 읽은 것들이지만, 그는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했다.

갑자기 동향 정보를 읽는 상한천의 모습에 원설화가 숨을 죽였다. 본능적으로 그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상한천은 몇 개의 동향 정보를 다시 파고들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그의 눈에 띄는 정보가 있었다.

[고장(古丈)에서 설산도객 이설휘가 이끄는 젊은 무인들과 충돌.

본교 사상자 이백여 명.

설산도객 이설휘 도주.

휘하의 젊은 무인 삼십여 명 살상.]

불과 반나절 전에 들어온 따끈따끈한 정보였다. 이것 때문에 상한천은 군사부의 문사들을 총동원해 정보 분석에 들어갔다.

설산도객 이설휘는 한 세대 전의 무인이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기에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은 상한천에게 큰 혼돈을 안겨 주었다.

‘도대체 설산도객이 뭐 얻어먹을 것이 있다고 호북성에 들어온 거지? 겨우 삼십여 명만 이끌고. 그 정도로는 본교에 그 어떤 타격도 입힐 수 없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보였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설휘 같은 이들이 더 많이 있다면? 그들이 각자의 전력을 이끌고 은밀히 악양으로 향하고 있다면?’

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가정이 속속 세워졌다. 그리고 상한천은 그런 가정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설휘는 그간 마교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던 예외의 존재였다. 존재는 하되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이설휘가 죽은 줄 알고 있었고, 그것은 상한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안일하게 생각했어. 진작 적경천을 떠올렸어야 했는데.’

적경천은 일차 정마대전 당시 활약했던 전대의 고수였고, 지금은 맹주인 남천산의 정신적인 지주로 활약하고 있었다.

적경천이 처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곳이 바로 이곳 악양이었다. 마교가 무림맹을 빼앗았을 때 그에 맞서 맹렬한 위용을 발휘했던 것이다.

‘만일 적경천 같은 자가 한둘이 아니라면? 일차 대전 이후 은거했던 자들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면?’

상한천은 의식의 흐름에 사고를 맡겼다. 단편, 단편의 정보가 모아져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그에게 큰 희열을 안겼다.

‘그들은 모두 결사대에 참여했던 자.’

당시 결사대는 마교에 큰 피해를 입혔다. 따지고 보면 마교가 중원에서 몰락한 데는 결사대에 당한 예상치 못한 타격 때문이었다.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었고, 한 번 성공한 작전은 후대에서 다시 재활용되기 마련이었다.

상한천이 다른 종이를 집어 들었다. 무림맹에 침투시킨 첩자가 보내온 정보였다.

[젊은 무인들 상당수가 보름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음.

비밀 훈련에 차출되었다고 하나 석연치 않음.

더 조사해 보겠음.]

‘젊은 영재들이 빼돌려져서 어디로 갔나 했더니, 은거를 깨고 강호에 나온 늙은 무인들이 차출해 간 거였군.’

무림맹에서 사라진 젊은 무인들, 그리고 호남성 고장에서 발견된 설산도객 이설휘가 이끄는 젊은 무인들.

그 둘이 상한천의 머릿속에서 연결됐다.

‘결사대에 참여했던 자들이 다시 쓸 만한 작전은 하나밖에 없지. 결사대!’

소림사에서 사라진 이들의 숫자는 이설휘가 이끌던 무인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 말은 곧 더 많은 이들이 호남성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철저히 분산된 채.

문득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수많은 정보를 수집했음에도 그동안 도저히 맞춰지지 앉는 정보의 공백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원설화의 설명에 빈자리가 채워졌고, 마침내 커다란 그림이 실체를 드러냈다.

저들의 의도가 뭔지, 그들이 노리는 것이 무언지 빤히 그려졌다.

마침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낸 상한천이 입을 열었다.

“설화야.”

“예!”

“네가 해 줘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제가 말인가요?”

“그래!”

상한천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방 안에 다섯 명의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결사대를 이끌고 합류한 전대의 무인들이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들의 얼굴엔 흥분된 기색이나 반가운 빛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침체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 천인대적검이라 불리는 장진명이 있었고, 좌우로 천산설화 소보원과 천랑객 구의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외에도 몇 명의 무인들이 더 있었다.

방 안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침묵을 깬 이는 바로 장진명이었다.

“이설휘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건가?”

“…….”

그의 물음에도 누구 한 명 대답하는 이 없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장진명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답답해서 묻는 것이었다.

설산도객 이설휘는 서른 명의 젊은 무인들을 이끌고 이곳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예정대로였다면 벌써 하루 전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설휘는 그들과 오래전부터 동고동락한 사이였다. 때문에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이설휘는 결코 약속에 늦거나,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몇 개 없군. 마교에 들통 났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사고를 당했거나.”

“아무래도 전자 쪽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겠죠.”

소보원의 말에 장진명을 비롯한 모두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렇겠지. 설휘는 결코 약속을 허투루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 우리는 어떡해야 하죠? 이대로라면 전력이 부족해요.”

“그래도 감행해야지.”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갈 길 따윈 존재하지 않아. 이미 너무 많이 왔음이야.”

장진명의 단호한 말에 모두의 안색이 경직됐다.

소보원이 그에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허나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아이들이 희생을 당할 거예요.”

그녀의 얼굴엔 안타까운 빛이 감돌았다. 그에 장진명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왜, 그새 정이 들었나?”

“앞으로 강호를 이끌어 갈 아이들이에요.”

“강한 놈들은 살아남을 게야.”

“하지만 그렇게 무책임하게…….”

“잊었나? 세상에 다시 나올 때부터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 따윈 없었다는 걸.”

“…….”

“어쩌면 강호사에 다시없을 죄인으로 기록될지도 모르지. 허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대업을 멈출 수는 없네. 다들 잊지 말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장진명의 말이 이어지는 내내 장내가 조용했다. 그들은 장진명의 강렬한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장진명이 쐐기를 박았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부디 정의로운 인간인 척하지 말자고. 어차피 서로 밑바닥까지 모두 봤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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