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427화 (427/500)

 427

427화 1장. 사선을 뚫고……(2)

세상을 살다 보면 간혹 뜬금없이 위화감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하게 어긋난 흐름을 느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흐름의 변화나 위화감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지만 노군상 정도로 단련된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무인들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노군상은 오래전부터 신교 내에 흐르는 한 가닥 암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적해 왔다. 그 때문에 신교 내의 행사나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위화감을 느끼고 있던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주인 척관혈 역시 매우 오래전부터 그런 어긋난 흐름을 느끼고 있었기에 노군상에게 암류를 추적할 것을 명했다.

‘그들은 은밀히 숨어서 본교와 무림맹의 충돌을 조장했지.’

그들은 도마뱀처럼 철저하게 위장해 있었고, 독사처럼 치명적인 독니를 숨기고 있었다. 그 때문에 노군상은 그들을 추적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노군상은 본능적으로 구의진이 그들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무림맹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구나.’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폭출 했다.

노군상에게 최고의 기치는 신교였다. 남들은 마교라고 욕하고 경원시할지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 신교는 삶의 모든 것이었다. 신교를 위협하는 모든 것이 그에겐 적이었다.

쿠우우!

가공할 살기의 폭풍이 구의진을 덮쳐 갔다.

“흡!”

구의진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의 예상보다 노군상의 기세가 더욱 거셌기 때문이다. 그가 파악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노군상의 실력은 뛰어났다.

‘이 정도였나?’

그는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졌음을 깨달았다.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역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챠앗!”

구의진의 전신에서도 가공할 기세가 피어오르며 노군상과 격돌했다.

콰콰쾅!

그들을 중심으로 강기(罡氣)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

“크윽!”

남학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전신은 피로 물들어 있어 혈인을 방불케 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이고 쓰러트렸는지 몰랐다. 그 과정에서 그 역시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몰랐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남학은 굳건한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의 뒤로는 스무 명의 결사대 무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공동파의 제자도 있었고, 다른 문파의 제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행색 역시 남학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악전고투로 전신이 피로 물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절망의 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적을 죽이고 필사적으로 도주했지만, 또다시 그들의 앞을 수많은 적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개미지옥에 빠져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그들을 이끌던 전대의 결사대 무인은 난전 중에 헤어진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남학이 그를 대신해 앞에 서서 생로를 개척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학의 눈에는 은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저 눈앞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데 급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남학은 달랐다.

그는 전대의 결사대 무인이 그들을 버려두고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들만 믿고 따르라고 하던 이들이 그들만 버리고 도주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기가 최악이었는데, 전대의 무인들에게서 버림받았단 사실을 알게 되면 그나마 남아 있는 전의마저 꺾이게 될 것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남학이 고개를 들었다.

마교 곳곳에서 폭음과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마교의 무인들이 그들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남학이 검을 꼬나들며 외쳤다.

“모두 힘을 내 돌파한다. 뒤처지지 말고 내 뒤에 붙어.”

“예!”

“알겠습니다.”

기재들이 악을 쓰며 대답했다.

그들에게도 이제 악과 독기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남학에게서 뒤처지면 남는 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남학이 선두를 질주하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다른 이들과 합류해야 해.’

결사대 대부분이 난전 중에 뿔뿔이 헤어졌다. 그들을 찾아 합류해야만 그나마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졌다.

“이야아아!”

남학이 기합을 내지르며 눈앞의 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결사대의 무인들은 분전을 했지만, 애초부터 상대가 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곳은 적진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적들은 만전을 기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학이나 해소월처럼 믿고 의지할 만한 이들이 있는 조는 그나마 많은 이들이 생존했지만, 그렇지 못한 조는 아예 씨몰살을 당했다.

마교의 고수들은 눈에 불을 밝힌 채 살아남은 자들을 사냥했다.

“감히 본단을 더럽힌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마지막 한 놈까지 모조리 추적해 죽여라.”

그들은 분노에 눈이 멀었다.

오랜 세월 꾹꾹 눌러왔던 한이 분노를 증폭시켰다. 그들은 잔혹하게 결사대의 무인들을 사냥했다.

“흐흑! 살려 줘!”

“으아아!”

결국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결사대 무인까지 생겨났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크게 공을 세워 강호에 명성을 드높일 것만 생각했었다. 금방이라도 비단길이 그들 앞에 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닥친 현실은 그들이 꿈꿔 왔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눈앞에서 피가 튀고 살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웃고 떠들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친구가 죽는 모습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줬다.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고, 눈앞에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상한천은 그 모든 광경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봤다.

‘좋은 기회다. 명존께서 본교를 돌보시는 것이 분명하다.’

신교가 중원에 다시 자리를 잡기까지 수십 년이 넘게 걸렸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신교의 무인들은 독기를 키워 왔고, 반드시 중원에 본단을 마련하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수십 년을 묵히고, 증폭시켜 온 한이었다. 그렇게 하나 된 목표를 향해 수많은 신교의 무인들이 수십 년을 달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중원에 번듯한 본단을 마련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생겼다. 중원에 본단이 생기니 안주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급격하게 세를 확장하는 대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원했다. 아직까진 그들의 의견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신교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분란의 싹은 미연에 잘라 버리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리고 결사대가 침입해 옴으로써 의외로 빨리 그런 기회가 찾아왔다.

중원에 애써 마련한 터전을 침범당한 마교인들의 분노는 무서웠다. 그들의 분노는 결사대와 무림맹으로 향했다.

“우리에게 겨우 이 정도의 공간도 허용하지 못한단 말이냐?”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단 말이냐?”

그들의 절규와 외침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상한천은 그 모든 광경을 미소를 지은 채 바라봤다.

하나 된 신교.

그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상한천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결코 없었다.

그가 부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결사대를 모조리 사냥하는 대로 무림맹을 공격한다. 본교의 모든 전력들을 대기시켜라.”

“존명!”

부관들이 힘찬 대답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졌다.

혼자 남은 상한천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마제(魔帝)시여.”

순간 허공이 열리면서 누군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주름이 얼굴을 온통 뒤덮은 노인이었다. 금방이라도 진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처럼 눈동자에는 황달이 가득 끼어 있었다.

그가 상한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불렀는가? 군사.”

“번거롭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교주께서 자네에게 우릴 부릴 권한을 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응해야지.”

“감사합니다. 마제.”

상한천이 고개를 숙여 노인에게 극진한 예를 표했다.

겉보기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별 볼 일 없는 노인 같았지만, 사실 그의 진정한 신분은 신교 최후의 보루라는 호교원(護敎院)의 원주였다.

유령마제(幽靈魔帝) 위강휘.

그것이 노인의 진정한 신분이었다.

오직 척관혈의 명령만 듣는 신교의 충신이자, 역사의 증인. 제아무리 상한천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교주의 권위를 빌려 그를 소환했을까?

“무엇을 명하고자 하시는가? 군사.”

“호교원을 대기시켜 주십시오.”

“역시 움직이려는가?”

“바람이 불었을 때 돛을 활짝 펴는 법이지요. 그래야 기세를 몰아 힘차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법이니까요.”

“지금이 돛을 펼 시기라고 본 모양이군. 알겠네! 군사의 판단이 그렇다면 믿어야지.”

위강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상한천의 미소가 짙어졌다.

“감사합니다. 마제.”

“아닐세! 호교원의 늙은 괴물들을 준비시키겠네. 필요할 때 불러 주시게나.”

위강휘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공간을 넘나드는 것 같은 그의 경신술은 상한천에게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유령’이라는 별호가 그처럼 어울리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괴물 같은 늙은 괴물이 이제 자신의 명령을 듣는다는 것이다.

위강휘가 이끄는 늙은 괴물들은 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나머지도 빨리 정리해야겠군.”

그의 시선이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전장은 이제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대부분의 결사대원들이 죽거나 쓰러져 있었고, 남은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아직 살아남은 자들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가 깔아놓은 그물은 너무 완벽하고 촘촘해서 빠져나갈 틈 따윈 없었으니까. 이젠 앉아서 그물을 걷어 올리기만 기다리면 됐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늘 마음먹은 대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변수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군사님!”

수하 한 명이 누군가를 등에 업은 채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왜 그러냐?”

“질풍신권께서…….”

“이선창을 말하는 것이냐?”

“예! 질풍신권께서 지금…….”

수하가 급히 등에 업고 있던 사내를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상한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칠대마인 중 한 명인 이선창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구, 군사?”

“어떻게 된 것인가?”

상한천이 급히 이선창을 안아 일으켰다.

“애……송이들에게 당했습니다.”

“애송이들?”

이선창이 손등으로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이빨을 뿌득 갈았다.

“으득! 취운룡과 해중화의 합공에 당했습니다.”

“취운룡이?”

상한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반대로 이선창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초연운이 해소월에게 합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비록 초연운이 강호에서 명성을 날린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후기지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합공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연운은 이미 후기지수의 틀을 벗어나 있었다. 그의 무공 수위는 이선창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강철로 된 의족을 앞세운 각법은 상리를 크게 벗어나 그를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거기에 해소월까지 합세하니 제아무리 이선창이라고 하더라도 버티기 힘이 들었다.

결국 그는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 두 명에게 큰 내상을 입고 말았다. 그런 그를 수하가 들쳐 업고 이곳까지 도주했다.

이선창에겐 씻기 힘든 일대 굴욕이었다.

“그럼 놈들은?”

“…….”

상한천의 질문에 이선창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수치스러운 표정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다.

상한천은 수하들과 함께 급히 성심전으로 달려갔다.

세 사람이 싸웠던 성심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우물이 있던 자리엔 커다란 동혈이 뻥 뚫려 있었다.

동혈을 보는 순간 상한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비밀 통로입니다. 놈들이 이곳으로 탈출했습니다.”

수하의 대답에 상한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드물게 보이는 감정의 격한 변화였다.

“몇 놈이나 빠져나갔느냐?”

“그게…….”

“단 한 놈도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어서 추적대를 보내.”

“조, 존명!”

수하가 대답과 함께 급히 추적대를 편성해 추적에 나섰지만 상한천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도대체 몇 놈이나 빠져나간 거지?”

뿌드득!

상한천이 이빨이 부서져라 갈았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