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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29화 (42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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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화 2장. 발발(勃發) 천하대전(天下大戰)(1)

“허억! 허억!”

남학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있는 곳은 마교 외성 내의 으슥한 골목이었다. 그의 전신 곳곳엔 크고 작은 상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어깨 위에선 피가 증발하면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숨은 턱 끝에 찼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격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얼굴엔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고, 두 눈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모두 죽었어. 모두…….”

그와 함께 행동했던 결사대의 무인들이 모두 죽었다. 그중에는 오래된 친구도 있었고, 공동파의 후배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처참히 죽임을 당했고, 남학만이 겨우 빠져나왔다.

마교의 저력은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남학 자신도 강호 최고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마교에는 그와 같은 수준의 고수가 무척이나 많았다.

용이 숨어 있고,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공포의 대지.

일차 정마대전 때는 결사대의 기습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용담호혈이 된 지금의 마교엔 똑같은 수법이 통하지 않았다.

무림맹 최대의 패착이라면 수십 년 전에 한 번 통했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고, 그에 젊은 기재들이 휩쓸려 참여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젊은 기재들이 죽음으로써 무림의 정기는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사대에 많은 무인이 참여한 문파들일수록 손해가 막심하고, 다시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려면 수십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남학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오직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엄태천까지 뿌리치고 나온 그였다. 같은 구무룡의 일인인 무영신룡 엄태천은 중상을 입은 채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남학은 그의 손길을 매섭게 뿌리친 채 도주했다. 혼자라도 살기 위해서였다.

“연운을 찾아야 해. 그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초연운을 떠올렸다.

끝까지 결사대의 마교 침투를 반대했던 이였다. 그래서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되니 가장 먼저 떠오른 이가 바로 그였다.

왠지 이유는 몰랐다. 그냥 그를 만나면 자신을 이 위험 속에서 구해 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남학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마교는 광활했다. 내성과 외성의 규모를 합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같은 마교도라고 할지라도 지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길을 잃고 말 정도로 내부는 복잡했다.

덕분에 남학이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위태위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마교의 무인들이 그물처럼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잡히는 순간 목숨을 잃는 것은 둘째치고 처참한 고문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남학이 욕설을 내뱉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남학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힘들다고 여기서 멈추면 남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남학은 필사적으로 생로를 찾아 움직였다.

“난 죽지 않아. 반드시 살아서 공동파로 돌아갈 거야.”

남학이 마치 스스로에게 최면이라도 걸듯 같은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릴 때였다.

소리도 없이 그의 앞에 허름한 장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얼굴 가득 패인 주름살과 곳곳에 피어난 검버섯. 주름살에 파묻힌 눈엔 진물이 가득했고, 몸 전체를 가리는 허름한 장포 사이로 드러난 두 손에도 고목의 껍질을 연상시키는 주름살이 가득했다.

하지만 남학은 노인의 출현을 미처 감지하지 못한 채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그가 노인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머리를 노인의 가슴에 부딪치고 난 후였다.

“무슨? 헉!”

그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아무리 지치고 부상을 입었다고 하지만 감각까지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천뢰무객(天雷武客)이라는 별호는 편히 앉아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많은 싸움을 하고,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하였기에 강호 동도들이 붙여 준 것이다.

그런 자신이 상대의 가슴에 머리를 부딪칠 때까지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남학이 급히 기수식을 취하며 소리쳤다.

“누, 누구냐?”

“감각이 둔한 아이구나. 아니면 생각이 많든가.”

노인이 남학을 보고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보는 순간 남학은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남학은 결코 배포가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만해서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발아래로 내려다보는 경향이 강하긴 했지만, 뱃심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두둑했다.

특히 호전적인 성향이 강해서 많은 이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그는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었지,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타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도 단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말이다.

부르르!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전율이 그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챠앗!”

쿠르르!

남학은 급히 뒤로 물러나며 공동파의 절학인 현천신장(玄天神掌)을 펼쳤다. 하늘을 검게 물들일 정도로 위력적이라는 현천신장은 마치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노인에게 밀려갔다.

그 순간 노인이 장난처럼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해일같이 밀려들던 현천신장이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픽 꺼졌다.

남학이 찢어져라 눈을 부릅떴다.

그의 동공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남학의 입이 떡 벌어지고, 이빨이 절로 딱딱 부딪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노인이 자신과 궤를 달리하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겨, 격이 달라.’

같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눈앞의 노인은 자신과 달랐다. 그의 목소리가 절로 떨려 나왔다.

“다, 당신은 누굽니까?”

말투도 달라졌을 뿐 아니라 기세도 팍 꺾였다. 평소의 남학이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남학이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의 고목 같은 얼굴이 꿈틀거렸다.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것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보내 줄까?”

“무슨?”

“출구를 찾고 있는 것 아니었느냐? 마교에서 내보내 주겠다는 말이다.”

“저, 정말입니까?”

남학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망연히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란다, 아이야. 나는 너를 이곳에서 내보내 줄 수 있단다.”

“그럼 어서 내보내 주십시오.”

“허면 대가를 치러야지.”

“대가?”

남학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오르는 찰나였다.

콱!

갑자기 노인이 양 손바닥으로 남학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간 남학은 벼락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노인은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무어라 중얼거렸다. 남학은 정신을 잃은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강제로 무언가를 주입받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인이 남학의 머리에서 손을 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그가 정신을 잃은 남학을 보며 웃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무언가는 잃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지. 너의 그릇이 제법 튼튼하니 쓸 만하겠구나. 마영.”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골목길에서 회색 옷을 입은 복면인이 나타나 노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인이 복면인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귀사에게 데려다주거라. 그러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존명!”

복면인이 대답과 동시에 남학을 들쳐 업고 사라졌다. 그 직후 골목 반대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이쪽이다. 놈의 흔적이 이쪽으로 향해 있다.”

마교의 고수들이 남학을 추적해 오는 소리였다. 그들이 어느새 남학을 쫓아 근처까지 도착한 것이다.

노인은 몸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았다. 대신 꼿꼿이 폈던 허리를 꾸부정하게 숙였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노인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존재감은 사라지고, 평범한 노인이 되었다.

그 직후 마교의 고수들이 나타났다.

“어? 혈노 님!”

그들이 노인을 발견하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평소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노인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이도 있었다.

노인은 바로 마모 단예향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포교 조직인 중천의 수장인 혈노였다.

“혈노 님이 여기에 어떻게?”

“밖이 소란스러워 잠시 나와 봤네.”

“아직 잡히지 않는 자들이 있어 위험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허허! 그러지.”

혈노는 순순히 대답하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도 그런 혈노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혈노를 보호해야 할 중요 인사로 생각했다.

혈노는 미소를 지은 채 내성 안으로 사라졌다. 그사이 추적해 온 마교의 고수들이 외성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 어디서도 남학의 모습은 발견할 수는 없었다.

이날 결사대의 침입으로 마교의 고수 수백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특히 칠대마인 중 두 명인 이선창과 윤광이 크게 다쳐 전력의 손실을 가져왔다.

마교로서는 그야말로 큰 타격을 입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사대가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결사대는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대부분의 젊은 무인들이 죽거나 마교에 사로잡혔고, 그 중에는 구무룡 중 한 명인 무영신룡 엄태천도 있었다.

전대의 결사대 중에서는 천인대적검 장진명과 천랑객 구의진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오체분시 되어 처참히 죽임을 당했고, 잘린 목은 마교의 정문 앞에 걸렸다.

결사대를 이용해 마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자 했던 무림맹의 의도는 결과적으로는 절반의 성공만 거둔 셈이었다. 아니,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다.

마교의 군사 상한천은 마교를 수습하는 대신 숭산 무림맹으로의 진격을 명했다.

무림맹의 기습에 동료들을 잃은 마교 무인들의 분노는 무서웠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전력을 정비해 무림맹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수많은 전력이 악양을 빠져나와 무림맹이 있는 숭산으로 향했다. 이제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전력이 진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 첩보를 입수한 무림맹과 소림사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들의 의도와 달리 천하대전(天下大戰)이 오히려 앞당겨진 것이다.

그렇게 천하는 격랑의 소용돌이에 빨려들고 있었다.

***

노숙지를 떠난 담호 일행은 꼬박 하루를 소비해 육안(六安)에 도착했다. 육안은 안휘성 북서쪽에 있는 도시로 하남성과 인접해 있었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 머물 만한 곳이 꽤 많았다.

“아, 오늘은 객잔에서 쉴 수 있겠구나.”

제일 반색을 한 이는 바로 여자인 녹수빙이었다.

남자들이야 며칠씩 노숙을 해도 상관없었지만, 여자인 녹수빙은 제대로 씻지 못해 꽤 고생을 해야 했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객잔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수욕을 하고 싶었다.

객잔이 반가운 것은 남궁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황야에서의 나날은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강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들의 심정 역시 녹수빙과 다를 것이 없었다.

특히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말도 마다하고 걸어온 남궁선휘가 느끼는 피로감은 엄청났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육안을 바라봤다.

“휴우!”

오늘 밤은 편한 곳에서 배부르게 먹고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전신이 노곤해졌다.

그들은 급히 육안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보인 객잔을 잡았다. 태평객잔이라는 이름의 객잔이었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은지라 별채를 잡았다. 덕분에 돈이 적잖게 소요됐지만 방진보는 흔쾌히 지불했다. 그 역시 오늘은 편한 곳에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쉬고 싶은 것이다.

“먼저 씻을게.”

별채를 잡자마자 녹수빙이 제일 먼저 수욕을 하러 들어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휴! 힘들다.”

“죽을 것 같아요.”

“저두요.”

방진보의 말에 남궁 형제가 동의했다.

지친 표정의 그들과 달리 담호의 얼굴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겨우 이 정도로 피곤을 느낄 담호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암혼심공이 절로 운공 되어 그의 피로를 몰아내고 있었다.

방진보가 담호를 바라봤다.

“형, 저 잠시 나갔다 와도 돼요?”

“…….”

“주도 좀 하나 새로 마련하려구요. 아무래도 요리하는 칼에 계속해서 사람의 피를 묻히는 게 영 꺼림칙해서요.”

예전부터 쭉 해 왔던 생각이었다.

언제까지나 요리하는 칼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요리에만 사용하는 새로운 주도를 마련하고 싶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너라.”

“헤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저녁때까지 돌아올게요.”

“그래!”

방진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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