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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30화 (4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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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화 2장. 발발(勃發) 천하대전(天下大戰)(2)

육안에는 이름난 공방들이 다수 있었다. 방진보는 물어물어 그중에서 가장 실력 좋은 공방을 찾았다.

공방에 들어가자마자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강렬한 열기에 피부가 화끈했지만 방진보는 오히려 기분 좋은 청량감을 느꼈다.

땅땅!

두 명의 장인이 커다란 화로 앞에서 주거니 받거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망치질을 하고 있는 작업대 위에는 이 척 삼 촌 길이의 장검이 놓여 있었다.

새로 만드는 것 같지는 않고, 기존의 장검을 해체한 채 손보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이놈아! 망치질 똑바로 해. 그렇지 않아도 휜 곳이 더 휘잖아.”

“예!”

“조금 더 세게 두들겨. 그 위, 세 치쯤을 힘주어 두들기란 말이야. 그곳이 검의 혈이야.”

“알았어요.”

늙은 장인은 젊은 장인에게 쉴 새 없이 주문했다. 늙은 장인의 타박이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젊은 장인은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망치질에 열중했다.

“아!”

장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손질하는 모습에 방진보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대단하지.”

그때 방진보 뒤쪽에서 뜬금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진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마흔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문에 기대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색 영웅건에 남색 무복을 입은 사내에게서는 산처럼 장중한 기세가 느껴졌다.

‘고수!’

방진보는 본능적으로 사내가 대단한 고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이 굳자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 경계할 필요 없네. 나는 저들이 손질을 하고 있는 내 검을 찾으러 온 것뿐이니.”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네. 내가 오히려 놀라게 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검이라도 사러 온 건가? 그렇다면 아주 잘 찾아왔네. 저 부자의 솜씨는 매우 훌륭해서 나도 검을 손질할 일이 있으면 자주 찾아온다네.”

“검은 아니고, 요리에 사용할 주도가 있으면 사러 왔어요.”

“주도? 그럼 숙수인가?”

“예!”

방진보의 대답에 사내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방진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무인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그는 방진보에게서 신경을 거두고 장인들을 바라봤다.

장인들의 작업은 이제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땅땅땅!

망치 소리가 절정을 향해 치달았으며, 열기 또한 최고조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망치질이 딱 멈췄다.

망치질을 멈춘 늙은 장인이 숨 돌릴 틈도 없이 한껏 달아오른 검을 바로 옆에 있는 지장수에 담갔다.

치이익!

뜨거운 검이 들어가자 수통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망치로 담금질을 함으로써 검에 알게 모르게 배어들었던 온갖 불순물들을 배출시키고, 약해진 검신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인지 이 한순간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인은 집게로 검신을 잡은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수통에 담긴 검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떨림이 최고조로 강해졌을 때 노인은 수통에서 검을 꺼냈다.

“휴!”

매끄러운 검신을 잠시 살펴보던 노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생각 이상으로 검신이 잘 살아났기 때문이다.

노인이 들고 있는 검신은 특이하게도 묵 빛을 띠고 있었다. 칠흑처럼 검어 주위의 빛까지 모조리 흡수하는 듯했다.

노인은 묵 빛 검을 대기하고 있던 젊은 장인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날을 세우거라.”

“예!”

젊은 장인이 두 손으로 검을 받은 후 공방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숫돌에 검 날을 갈기 시작했다.

슥! 슥!

조용한 공방에 검 날을 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늙은 장인에게 다가갔다.

“잘되었나 보군. 수고했네.”

“검이 많이 상했습니다. 이번엔 어찌어찌 살려 냈지만, 다음엔 차라리 검을 바꾸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알고 있네. 그래도 이만큼 내 손에 맞는 검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이젠 손에 익을 대로 익어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네. 차라리 자네가 새로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휴! 이젠 이 늙은이도 늙어서 실력이 예전만 못합니다.”

“자네 아들이 있잖은가?”

사내가 한쪽에서 검을 갈고 있는 젊은 장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늙은 장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혼자 망치질을 하려면 아직도 많이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을 전수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의 피를 잇지 않았나? 분명 자네의 술(術)을 모두 이어받을 수 있을 거에야.”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그렇게 될 걸세.”

사내는 두툼한 손으로 늙은 장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방진보는 사내가 보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강호엔 간혹 세월을 내공의 힘으로 억누르는 고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사내도 그중 한 부류일 것이다.

‘누구지?’

방진보는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다.

검을 손질하는 것으로 봐서는 검의 고수가 분명해 보이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비슷한 외모를 가진 자가 생각나지 않았다.

‘은거 기인인가?’

방진보가 살짝 미간을 찌푸릴 때였다.

“그쪽은?”

늙은 장인이 방진보를 바라봤다. 그에 사내가 대신 설명해 줬다.

“주도를 사러 왔다는군.”

“주도? 숙수인가?”

“예!”

“어디 손 좀 보세나.”

늙은 장인의 갑작스러운 말에 방진보가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늙은 장인이 방진보의 손을 자세히 살폈다.

“이건 숙수의 손이라기보다는 무인의 손에 가깝군. 무공을 익혔느냐?”

“조금요.”

“그렇다면 주도가 조금 무거워도 상관없겠군.”

“예! 괜찮습니다.”

“어디 보자.”

늙은 장인은 진열대를 뒤지더니 이내 뭉툭한 주도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얼마 전에 들어온 묵철로 만든 거지. 일반 검을 만들기엔 양이 너무 적어 시험 삼아 주도로 만들어 봤는데, 너무 무거워서 일반 숙수들은 드는 것조차 쉽지 않더군. 그래서 다시 녹이려고 처박아 둔 건데, 역시 주인은 따로 있는 모양이군.”

늙은 장인이 주도를 방진보에게 넘겨줬다.

주도를 손에 쥔 첫 느낌은 늙은 장인의 말처럼 묵직하다는 것이었다. 시중의 주도보다 족히 두세 배는 무거운 느낌이었다. 날도 잘 벼려져 있어 따로 손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방진보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좋네요!”

“무겁진 않고?”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걸요. 고기나 뼈를 자를 때도 좋을 것 같고요.”

방진보가 주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대답했다.

“다행이구나. 은자 두 냥만 내거라.”

“그러면 너무 싼 거 아닌가요? 다섯 냥을 드려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다시 녹여 쓰는 것보다 너에게 파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서 그런다. 그 무거운 녀석을 제대로 써 주는 것만 해도 나는 만족한다.”

“감사합니다. 아껴 사용하겠습니다.”

방진보가 늙은 장인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늙은 장인의 입가에 고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퉁명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만족했으면 어서 셈을 치르고 가거라.”

“예? 예!”

방진보가 품에서 은자 두 개를 꺼내 늙은 장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은자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뒤돌아섰다. 더 이상 방진에게 용무가 없다는 것을 은연중 내보인 것이다.

“좋은 주도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방진보는 그런 늙은 장인의 등에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후 공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사내가 늙은 장인에게 말했다.

“아깝지 않은가? 보아하니 재료값이 더 비싸겠던데.”

“값보다 제대로 사용해 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르신처럼요.”

“별말을 다 하는군. 자네나 나나 같이 늙어 가는 처진데 어르신은 무슨.”

“다 같이 늙다뇨? 그래도 제가 서른 살은 더 젊은데. 같이 늙어 가는 취급하면 섭섭합니다요.”

“쯧! 자네도 나이가 들수록 넉살만 늘어가는군. 예전같이 풋풋한 맛이 없어.”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에 늙은 장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젊은 장인이 검을 들고 다가왔다.

“날을 다 세웠습니다.”

“어디 보자. 잘 세웠구나.”

늙은 장인이 검 날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합격점을 줬다. 그제야 젊은 장인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늙은 장인은 젊은 장인이 가져온 검에 빼 두었던 손잡이를 다시 달고, 수실까지 매어서 마무리를 지었다.

“여기 있습니다, 어르신.”

“고맙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살아남은 본가의 아이들이 있더군. 그 아이들을 거둘 생각이네.”

“저, 정말입니까? 정말 살아남은 아이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늙은 장인의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행입니다. 본가의 명맥이 아직 끊이지 않았다니.”

“그래! 다행이지.”

사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늙은 장인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웃을 수 없었다. 미처 노인에게 말을 하지 못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노인의 기쁨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내가 늙은 장인에게서 받은 묵 빛 검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자네 덕분에 그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수월할 듯싶네. 고맙네!”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가 보겠네.”

“부디 그 아이들을 잘 거두시길 빌겠습니다.”

“고맙네!”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공방을 나갔다.

늙은 장인은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서 사내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러자 젊은 장인이 다가왔다.

“아버지, 저분이 정말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십니까?”

“그렇다. 아비가 어렸을 때도 저분은 지금 저 모습이셨다.”

“정말입니까?”

젊은 장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아비 이름은 남궁열이라 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방계였다. 무가에서 태어났지만 검에 재능이 없기에 남궁세가를 나와야 했던 비운의 남자가 바로 남궁열이었다.

검에 재능이 없었기에 남궁열은 검을 만드는 것을 택했다.

다행히 쇠를 다루는 데는 재능이 있었던지 금방 이름난 장인이 되었다. 그 이후 그는 남궁세가에서 먼 이곳 육안에 둥지를 틀고 공방을 운영했다.

그때 도움을 준 이가 바로 남궁열이 어르신이라 부르는 그 사내였다. 그는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 검의 손질을 맡겼다. 그때마다 남궁열은 심혈을 기울여 노인의 검을 손질해 줬다.

‘대체 그분이 누구기에?’

젊은 장인이 사내의 정체를 물어봐도 남궁열은 알려 주지 않았다. 남궁열과 달리 어려서부터 남궁세가와 관련이 없는 곳에서 산 젊은 장인은 사내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젊은 장인이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사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공방을 나온 사내는 거친 손으로 손질을 끝낸 검을 어루만졌다.

웅웅!

검 집 속에 모습을 숨긴 검이 그의 손길을 느꼈는지 나직한 검명을 흘렸다. 그에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짙었다.

그의 검은 강호의 이름난 신병이기가 아니었다. 강도를 좋게 하기 위해 질 좋은 오철(烏鐵)로 만들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가까이 두고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검이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긴장을 하면 검도 긴장을 하고, 그가 살심을 품으면 검의 예기도 더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허나 아직은 검의 예기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사내가 계속해서 검을 어루만지자 날카롭던 예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저 멀리 목적지가 보였다.

태평객잔.

육안의 초입에 있는 큰 객잔이었다.

사내의 목표는 바로 태평객잔에 있었다. 정확히는 태평객잔 안 별채에.

별채가 보일 때쯤 갑자기 사내가 가볍게 대지를 박찼다. 그러자 그의 몸이 소리도 없이 공기 중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쉬아악!

그가 사라진 자리엔 바람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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