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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32화 (4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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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화 3장. 누가 더 지옥 밑바닥에 어울리는가?(1)

후웅!

거친 기파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크윽!”

방진보는 급히 내공을 끌어 올리며 자신과 남궁 형제를 보호했다. 그 덕분에 세 사람은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진보는 방심하지 않고 남궁 형제를 데리고 더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녹수빙도 마찬가지였다. 가공할 기파를 피해 뒤로 물러난 그녀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수빙의 시선은 남궁인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녹수빙은 계속해서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머릿속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했다.

‘어디서…… 어디서 봤지?’

그 순간에도 남궁인후의 기세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콰드득!

별채를 둘러싸고 있던 높은 담장이 마치 지렁이처럼 한껏 뒤틀리는가 싶더니 이내 폭삭 무너졌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었다. 단순히 기파만으로 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인은 천하에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남궁인후의 기세는 단연 발군이었다.

하지만 폭풍 같은 기세 속에서도 담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머리카락과 피풍의가 미친 듯이 흩날렸지만 정작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남궁인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파문도 없는 고요한 눈. 무섭도록 침잠된 그 눈빛이 남궁인후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는 것이지. 그런 차별점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 보거라. 너의 행보를. 그럼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인간이 아닌 짐승임을.”

“…….”

“아울러 인간은 고귀한 이상을 가져야 하는 법이다.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전체의 이득과 삶을 보고 모두를 위해 가장 옳은 길을 정해 나가는 것. 그런 길을 걷는 자들이 너 같은 짐승에게 모욕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합리한 일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담호에게 모욕을 받았다는 사실에 그는 진정으로 분노를 하고 있었다.

무공은 강할지 모르지만, 인성은 마비된 괴물.

그것이 담호를 향한 그의 평가였다.

스스로를 고귀한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담호에 대한 평가가 더욱 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발산하는 가공할 기파에도 담호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어둠을 머금은 괴물 같아 보였다. 그를 노려보는 남궁인후의 눈에 핏발이 설 때였다.

“다 짖었나?”

“짖어? 이 남궁인후에게 지금 개라고 말하는 것이냐?”

남궁인후의 핏발 선 눈에 살기가 어렸다.

“아닌가? 개처럼 비루하게 천사교로 돌아섰잖아.”

“네가, 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리 지껄이는 것이냐? 너 따위가 무얼 안다고. 우리의 고심을, 우리의 심모원려 한 대계를…….”

쾅!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남궁인후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가 이제까지 서 있던 자리엔 담호가 서 있었다.

충보에 이은 파성추가 노성을 토해 내던 남궁인후에게 작렬한 것이다.

쉭!

담호의 피풍의가 바람에 흩날리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그 끝에 검막을 펼친 남궁인후가 있었다. 위기의 순간 검막을 만들어 몸을 보호한 것이다.

“놈!”

남궁인후는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담호가 무서운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짐승의 눈을 번뜩이면서.

화하학!

순간 남궁인후는 죽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담호와 상대했던 모든 무인들이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겪었어야 했을 거란 사실을.

그들에게 있어 담호는 죽음의 신이었을 것이고, 감당할 수 없는 재앙(災殃)이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자신의 혈육인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이 느껴야 했을 절망감과 좌절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담호는 무서웠다. 하지만 남궁인후는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무공을 익힌 햇수가 다르고, 무학의 깊이가 다르고, 깨달음의 정도가 달랐다.

그의 검이 부드럽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쉬아앙!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검기가 형성되는가 싶더니 담호를 향해 날아갔다.

절정 이상의 경지에 이른 무공이라면 검기를 만들고 날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궁인후의 검기는 달랐다.

그는 순식간에 십여 개나 되는 검기를 날렸다. 처음과 마지막 검기가 거의 시간 차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검기를 만들어 내고 날린 것이다.

콰콰콰쾅!

십여 개의 검기가 연신 담호의 몸을 두들겼다.

비검기(飛劍氣).

그가 만들어 낸 독문 수법이었다.

단순히 검기를 날리는 데 그치지 않고 위력을 극대화하고, 특히 연사 속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든 무공이었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검강에 비할 수 없었지만, 십여 개의 검기가 합쳐진 위력은 오히려 검강을 능가했다. 내공의 소모 또한 극히 적어서 거의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쿠쿠쿵!

담호의 몸이 둔중한 발소리와 함께 뒤로 밀렸다.

충보가 막힌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남궁인후의 눈이 번뜩였다.

“네놈의 무식한 돌진이 언제까지 통할 거라고 생각했느냐? 네놈에 대한 파훼법은 이미 생각해 놓은 것이 있다. 피에 미친 괴물아.”

담호가 무서운 것은 충보가 위력을 발휘할 때다.

무시무시한 힘을 잔뜩 응축한 충보에 속도가 실리면 파괴력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다. 그때 막으려 하면 늦는다. 속도가 실리기 전에 미리 움직임을 차단한다. 그것이 남궁인후가 찾아낸 독행류 파훼법이었다.

쉬쉬쉭!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비검기가 담호를 향해 날아갔다.

한 번에 열 개씩, 세 번을 연이어 펼쳤다. 도합 서른 개의 검기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이다.

“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영휘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콰콰콰쾅!

서른 개의 검기가 어떻게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담호를 두들겨 댔다. 폭음이 터져 나오고,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혀, 형?”

방진보가 눈을 부릅뜬 그 순간이었다.

슈우우!

갑자기 먼지를 뚫고 검은 무언가가 남궁인후를 향해 쇄도했다. 담호였다. 그런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패가 발동한 것이다.

남궁인후가 연이어 비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그가 날린 비검기는 방패에 막혀 소멸되거나 빗겨 나갔다. 하지만 거대한 충격량은 그대로 담호의 몸에 쌓였다.

그렇지 않아도 산발된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리고, 피풍의 곳곳이 찢겨 나갔다. 그만큼 담호의 몸에도 상처가 늘었다. 그래도 담호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막혔다고 해서 지레 포기할 만큼 담호의 의지는 나약하지 않았다.

부딪치고, 또 부딪치고.

상처를 입고 만신창이가 되어 대지에 나뒹굴다가 그렇게 쓸쓸하게 죽어 갈지라도 담호는 전진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충차와 같은 전진이야말로 담호의 정체성이었고, 그를 발전시키고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반대로 끝없이 전진하는 담호의 모습은 그의 적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어떤 무공을 쓰고, 초식을 펼쳐도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담호의 모습은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무서웠다.

‘제발 멈춰라!’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애원할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남궁인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치 연어가 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듯 조금씩 가까워지는 담호의 모습은 그를 두렵게 하기 충분했다.

담호와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의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산 것을 잡아먹는 짐승의 날숨이 역하게 코끝을 파고들었다. 담호를 향한 공포는 그때부터 거침없이 증폭된다.

이성을 마비시키고, 공포를 증폭시키며 눈덩이처럼 몸을 불려 나가는 것이다. 숱한 고수들이 그런 담호의 공포에 취해 스스로 무너졌다. 하지만 남궁인후는 그들과 궤를 달리하는 절대의 고수였다. 위기의 순간 남궁세가 비전의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이 그의 이성을 일깨운 것이다.

“챠아앗!”

남궁인후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또다시 비검기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펼치던 비검기와 또 달랐다.

통상의 비검기가 균등한 공력 배분을 통해 십여 개의 검기를 나눠 날리는 것이었다면 이번의 비검기는 열 개로 나눠야 할 공력을 하나로 응축했다. 당연히 위력 또한 열 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쩌어엉!

폭음과 함께 담호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이마에 그대로 검기가 직격한 것이다.

피가 튀고, 산발된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됐다.”

남궁인후가 체면도 잊고 환희에 찬 음성을 터트렸을 정도였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담호의 접근을 막아 낸 것이다.

남궁인후는 담호의 머리 한쪽이 날아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자신할 만큼 강력한 위력이 담긴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그그극!

부러질 듯 뒤로 젖혀졌던 담호의 머리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출렁이며 다시 이마를 가렸다. 검게 드리워진 그늘 사이로 뚝뚝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이 보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는 미간을 지나 담호의 눈가와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단순히 이마에 상처가 조금 난 것이 아니다. 살가죽이 벗겨져 들리고 허연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뼈에 남은 상흔이 방금 전 공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방패에 금구자까지 운용해 검기를 빗겨 나가게 하지 않았다면 이번 일격으로 담호의 두개골은 산산조각 났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위험한 순간을 넘긴 담호의 눈빛엔 그 어떤 동요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완벽하게 정지한 호수처럼 파문 하나 일지 않는 그의 눈동자를 본 순간 남궁인후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이 극도의 흥분 때문인지, 혹은 공포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온몸의 털이란 털이 모조리 곤두섰고, 쭈뼛한 느낌이 벼락처럼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헉!”

남궁인후는 자신도 모르게 단말마의 숨소리를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담호가 그가 있던 자리에 들이닥쳤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남궁인후가 담호의 공격을 피한 것이다.

피풍의에 가려져 있던 담호의 손이 섬전처럼 뻗어 나와 허공을 후려쳤다.

쩌엉!

순간 공기의 결이 쪼개지면서 충격파가 남궁인후를 덮쳤다. 단공벽(斷空壁)이 펼쳐진 것이다.

“크윽!”

충격파에 고막이 타격을 받으면서 순간적으로 남궁인후의 신형이 흔들렸다. 절대고수답게 남궁인후는 순식간에 원상태를 회복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담호는 놓치지 않았다.

퍽!

그의 주먹이 남궁인후의 허리에 작렬했다.

마치 부러질 것처럼 남궁인후의 허리가 거의 직각으로 휘었다. 격한 통증과 함께 내장을 타고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올라왔다.

남궁인후는 입안에 고인 피를 담호에게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후앙!

공기가 갈라지고, 담호의 잘린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리고 그의 반격이 이어졌다.

콰콰쾅!

검과 주먹, 검기와 권기가, 몸과 몸이 격돌했다.

기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대지가 뒤집어졌다.

“피해!”

방진보가 남궁 형제, 녹수빙을 데리고 별채 밖으로 물러났다.

커다란 별채가 그들의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먼지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부서진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우와악! 이게 뭐야?”

“도, 도망쳐!”

객잔에 머물고 있던 손님들이 예상치 못한 대참사에 놀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콰르르!

대지가 울고 공기가 갈라졌다.

세상에 종말이 온 것 같았다. 대부분의 손님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도망쳤고,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살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

그들이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흉험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조부님이 천사교에 속해 있다고?”

남궁 형제의 얼굴엔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이 역력했다.

담호와 남궁인후가 싸우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생전 처음 듣는 천사교라는 단어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남궁인후가 갑작스레 나타난 상황부터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천사교라는 단어가 더해지자 남궁 형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특히 남궁영휘가 느끼는 두려움은 훨씬 컸다. 형인 남궁선휘보다 영민하여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훨씬 일찍 감지한 것이다.

남궁영휘가 남궁선휘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남궁선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멍하니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찌지직!

“크아악!”

무언가 강제로 뜯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성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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