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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33화 (4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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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화 3장. 누가 더 지옥 밑바닥에 어울리는가?(2)

남궁인후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오른손에 든 검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검을 들지 않은 반대쪽 팔을 향했다. 하지만 팔이 있어야 할 자리는 허전했다. 어깨 어림에서부터 팔이 통째로 뜯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방금 전 손이 얽혔을 때 담호는 통째로 그의 팔을 어깨에서부터 뜯어냈다. 근육이 찢겨 나가고, 생살이 뜯어져 나갔다. 그리고 뼈가 뽑혀져 나가는 그 고통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했다.

한순간 남궁인후의 이성이 날아갈 정도였다.

남궁인후가 볼살을 푸들거리며 담호를 노려봤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것이었던 팔을 타인이 들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에게 상실감을 넘어서 공포심마저 들게 했다.

“너?”

남궁인후가 검을 지지대 삼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팔이 뜯겨져 나간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일순간 너무 많은 피가 빠져나가 정신이 다 어질했다. 하지만 남궁인후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적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비록 일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팔을 잃긴 했지만, 검을 든 오른팔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싸울 수 있다. 남궁세가의 검은 이 정도로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후웅!

남궁인후가 억지로 공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일대의 대기가 그의 내기와 동조해 일렁였다.

“역시 듣던 대로구나. 악귀 같은 놈! 성정이 흉포하니 수법 또한 극악하기 그지없어. 너 같은 녀석은 공포로 사람들을 두렵게 할망정 천의(天意)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천의를 얻지 못한 자가 어찌 강호의 정의를 논할 것이고, 사람들 앞에 서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너는 패웅은 될지언정 강호를 구할 영웅은 절대 되지 못할 것이다.”

“…….”

“너처럼 살육을 위해 평생을 행동하는 자는 절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고뇌를, 영웅의 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사도(邪道)에 들어서야 했던 우리의 선택을. 허나 아주 먼 훗날,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 못 할 세상을 살아갈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해 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한 거니까.”

남궁인후가 검을 들어 담호를 겨눴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팔을 잃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의 감정은 유난히 격앙되어 있었다.

그의 거친 감정이 공기를 타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다.

“크윽!”

“헉!”

사람들이 심장 어림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남궁인후 정도의 경지에 오른 자들은 심경의 변화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물며 이렇게 격앙되고 악의가 가득 찬 감정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거친 기운과 감정도 담호에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무심히 들고 있던 팔을 버리는 담호의 모습에선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이 남궁인후의 분노를 더욱 격렬하게 끌어냈다.

“감히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이 나를…….”

“너는 입으로 싸우는 모양이지.”

“놈!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대화가 왜 필요한 거지?”

싸움에 있어 선택지는 언제나 하나뿐이다.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거나, 아니면 자신이 죽거나.

그것이 담호의 강호였고, 담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담호가 남궁인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엇박자의 불길한 걸음이 남궁인후의 심장을 자극했다.

남궁인후는 그 어떤 말로도 담호의 심령을 흔들어 놓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정말이지 담호와 같은 무인은 처음이었다.

그에겐 그 어떤 격장지계도 통하지 않았고, 감정의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강철 같은 신경과 마음을 가진 자를 상대하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남궁인후에겐 담호가 그런 존재였다.

무공 이전에 기세의 문제였고, 남궁인후는 담호의 기세에 완전히 잡아먹힌 거나 다름없었다. 본인은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말이다.

스르륵! 쿵! 스르륵! 쿵!

커져가는 담호의 발소리가 남궁인후의 심장을 더욱 거세게 고동치게 만들었다.

남궁인후의 시선이 문득 멀리 물러나 있는 남궁 형제를 향했다.

남궁세가의 마지막 후인들이었다.

비록 천사교의 방침과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흐름 때문에 남궁세가가 멸문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저 두 사람이 남아 있는 한 남궁세가가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남궁인후는 모든 미련을 버렸다. 마음속에 단단히 응어리져있던 집착까지도.

순간 남궁인후의 기세가 변했다.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남궁인후만이 남았다.

적어도 담호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담호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간혹 치열한 싸움 중에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하는 경우가 있다. 미련을 버렸을 때, 혹은 강렬한 열망이 깨달음을 이끌어 냈을 때 그런 경우가 발생했다.

이번엔 어떤 경우인지 모르겠지만 남궁인후 역시 깨달음을 얻어 순식간에 진일보한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남궁인후는 팔이 뜯겨져 나가기 전의 남궁인후와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담호는 두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궁인후가 찰나간에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는 수많은 사투와 참오를 통해 깨달음을 차곡차곡 누적해 왔다. 그리고 그 모든 깨달음은 독행류에 녹아들었다.

담호는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독행류를 믿었다. 그 믿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바위같이 굳건했다.

남궁인후가 검을 휘둘렀다.

검강의 비가 담호를 향해 쏟아졌다.

비검기의 발전형인 비검강(飛劍罡)이었다. 비검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펼치는데 그 위력은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쿠르르!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퍼져 나갔다.

담호의 망막에 쏟아지는 강기의 비가 가득 찼다.

피할 곳도, 물러날 곳도, 물러날 생각도 없었다.

담호는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쥔 채 강기의 비를 향해 뛰어들었다.

콰콰콰!

그의 주먹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전방을 향해 쏟아졌다.

숨 한 번 쉴 사이에 스물네 번의 연격(聯擊)을 날리는 수법,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였다.

천지사방을 피로 물들이는 독행류의 최종장이 비검강과 격돌했다.

번쩍!

소리도 없었다. 그저 눈부신 빛의 폭발만이 있을 뿐.

우당탕!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방진보와 남궁 형제들이 폭발에 휩쓸려 뒤로 나뒹굴었다.

그들이 겨우 몸을 일으키며 전방을 바라봤다.

그런데 귀가 먹먹했다. 귀에 이명이 가득해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뭐라 말했지만, 들리지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대화를 포기하고 담호와 남궁인후가 격돌한 곳을 바라봤다. 순간 그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담호가 피투성이로 서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오연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반대로 남궁인후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누군가 부축해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해 남궁인후를 구한 것이다.

담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광기마저 내비치는 그의 눈빛에 사람들은 소름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싸움에 개입해 남궁인후를 구한 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은빛 목도리를 목에 두른 삼십 대 후반의 미부였다. 범접할 수 없는 기품과 사위를 압도하는 위압감을 가진 그런 여인이었다. 그리고 담호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서……왕모.”

“오랜만이구나, 아이야.”

그녀는 바로 사신제의 일원인 서왕모 용화설이었다.

담호의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그 가벼운 행동 하나만으로도 가공할 살기가 발산됐다.

용화설이 왜 개입했는지, 무슨 이유로 남궁인후를 구한 것인지 담호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싸움에 개입한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화를 북돋게 하기 충분했다.

“왜지?”

“나는 그가 필요하단다. 네가 양보해다오.”

용화설이 안고 있는 남궁인후를 바라봤다. 남궁인후는 기식이 엄엄한 것이 위급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그의 내부 장기는 거대한 절구에 빻은 것처럼 짓이겨진 상태였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궁인후의 등에 내공을 주입했다.

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내 거야.”

“미안하구나. 염치는 없지만 네가 양보해 줬으면 좋겠구나.”

“싫다면?”

“이렇게 부탁하겠다.”

갑자기 용화설이 담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담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대는 서왕모 용화설이었다. 사신제의 일원이었고,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이가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남궁인후가 필요하다.”

담호를 바라보는 용화설의 얼굴엔 간절함이 가득했다.

심어살(心語殺)의 경지에 오른 절대의 무인이 무력을 사용하는 대신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잠시 용화설을 바라보던 담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용화설의 제안을 수용한다는 뜻이었다.

“고맙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으나. 언제고 반드시 보답하겠다.”

용화설은 담호와 싸우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방금 전 담호와 남궁인후가 마지막으로 충돌했을 때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담호의 몸에서 발생한 가공할 인력(引力)이 소리마저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자연스러운 현상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경지에 오른 무인었다. 그런 이를 상대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용화설은 아직 그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적으로 돌리기에 담호라는 존재가 너무나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공의 경지만 따지면 자신이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강호에서의 싸움이란 것은 단지 무공의 경지로만 승패의 향방이 갈릴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의 몸 상태, 마음가짐, 기세, 감각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수도 없이 많았다. 용화설이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필사의 의지, 독기, 집념과 같은 감정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용화설은 한참 부족했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적수가 없는 경지에 올랐고, 그 때문에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 투지가 생길 일이 없었고, 그런 세월이 켜켜이 쌓여 화강암처럼 단단해졌다. 그 때문에 이제는 어지간한 일에는 투지를 끌어 올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깎여 나갔다고나 할까. 육체는 강력한 내공 덕에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정신과 감정은 수많은 세월에 닳고 닳은 노인의 그것이었다.

괜히 담호와 싸우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담호는 젊었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승부를 내고자 하는 가공할 집념과 투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리를 전다는 것을 빼면 그야말로 완벽한 무인이었다. 그런 그와 싸우는 것은 그녀로서도 꺼려지는 일이었다.

‘육신이 아무리 반노환동을 해도 늙어 버린 정신까지 다시 젊어지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용화설이 잠시 눈을 감았다.

만일 자신의 정신력이 한창때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밟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를 찾아가 당당히 요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 냈을 테니까.

그럴 수가 없기에 이렇게 위명에 어울리지 않게 구차하게 담호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쩐 이유에선지 담호는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다.

“고맙다.”

“…….”

“그리고 미안하다. 너에게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어서. 맹약에 묶여 있는 나의 구차함이 참으로 싫구나.”

그녀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담호는 그런 용화설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가 남궁인후를 양보한 것은 용화설의 눈에 어려 있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진실로 절박한 그 눈빛이 담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용화설은 맹약에 묶여 있다고 했다. 그녀 정도의 고수가 맹약을 깨고 대답을 해 줄 리 없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말이다.

용화설이 기절한 남궁인후를 어깨에 짊어진 채 떠나려다가 문득 녹수빙을 바라보았다.

“아이야.”

“네? 네!”

“너도 나와 함께 가자.”

“그게 무슨?”

“그가 너의 몸에 장난을 쳐 두었구나. 내가 치유해 줄 테니 나와 함께 가자.”

뜬금없는 용화설의 말에 녹수빙이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자 용화설이 녹수빙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거라.”

순간 녹수빙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용화설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녹수빙은 용화설의 손을 잡았다.

용화설이 녹수빙의 손을 잡은 채 담호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너의 무운을 빌겠다. 그리고 부디 조심하거라. 남궁인후가 네 손에 당했다는 것을 알면 그들이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뭐?”

“다 기어 나오라고 해. 일일이 찾아다닐 필요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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