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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35화 (4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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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화 4장. 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1)

“휴우!”

초연운이 큰 숨을 토해 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온통 헤진 채 땀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만큼 치열한 사로를 헤쳐 왔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자 해소월과 청운, 소천을 비롯한 스무 명의 결사대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의 행색 또한 초연운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마교의 본단에서부터 수백 리나 떨어진 먼 곳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도주해서 겨우 이 정도를 왔다.

그나마도 초연운이 앞장서서 모든 위험을 돌파했기 때문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절반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마교의 본단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초연운이 보여 준 지도력과 무용은 결사대 무인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줬다.

그는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생기게 하지 않았다. 지치고 부상당한 자는 등에 짊어지면서까지 마교의 포위망을 돌파했다.

초연운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뒤로 빠지지 않았다. 그 자신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릴지언정 동료들은 최대한 보호하고자 했다. 덕분에 희생자는 더 생기지 않았지만, 대신 초연운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해소월이 초연운에게 다가왔다.

“초 대협. 조금만 쉬었다가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쉬었다가는 적들이 따라붙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초 대협이 먼저 쓰러질 거예요.”

“난 괜찮습니다.”

“절대 괜찮지 않아요.”

해소월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청운이 그에 합세했다.

“해 소저의 말이 맞습니다. 이대로라면 초 대협이 먼저 쓰러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해요. 딱 한 식경만 쉬었다가 다시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청운까지 이렇게 나오자 초연운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럼 잠시만 쉽시다.”

“제가 경계를 설 테니 모두 운기조식 하며 기력을 회복하세요.”

해소월이 호법을 자처했다.

초연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 역시 많이 지친 상태였다. 잠깐의 운기조식이 절실한 그때에 해소월이 딱 맞춰 말해 줬다.

초연운이 운기조식에 들어가자 다른 이들 역시 공력과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운공을 시작했다.

운기조식을 하지 않는 이는 해소월과 소천뿐이었다. 해소월은 상대적으로 체력을 많이 비축해 둔 상태라 필요가 없었고, 중상을 입은 소천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미 운기조식을 충분히 했기에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소천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소천이 커다란 나무에 기대앉은 채 입을 열었다.

“그에게 큰 빚을 졌구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에게 빚을 졌죠.”

“그러게 말이오. 그가 미리 퇴로를 확보하지 않았다면 이나마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오. 휴!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분명 빠져나온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미타불! 부디 그랬으면 좋겠구려.”

그렇지 않아도 파리한 안색의 소천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만큼 상황은 최악이었고,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초연운이 앞장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진즉에 몰살을 당했을 것이다.

소천의 시선이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초연운을 향했다.

“그가 있어 다행이오. 그가 없었다면 모두 전멸했을 것이오.”

“맞아요.”

“소림사로 돌아가는 즉시 그의 공을 세상에 알려야겠소.”

“그 전에 할 일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오?”

“결사대의 전대 무인들, 그들에 대해 알려야 해요.”

해소월의 말에 소천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젊은 기재들은 오직 전대의 결사대 무인들만 믿고 이번 임무에 참전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태반은 이번 임무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 소저의 말이 옳소. 적 대협을 비롯한 전대의 무인들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을 소림사와 무림맹에 알려야 하오.”

“그러기 위해서는 소림사로 무사 귀환해야 해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오.”

소천이 대답을 하면서 초연운을 바라봤다.

그에겐 초연운을 믿고 따르면 반드시 소림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는 초연운을 신뢰했다. 그만큼 마교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초연운의 지도력과 무력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초연운을 필두로 운공을 하던 기재들이 한 명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휴우!”

비록 잠깐의 운기조식밖에 못 했지만 그들의 안색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상당 부분 풀린 것이다.

초연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점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초연운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초연운이 미소를 지으며 해소월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초연운이 코끝을 찡그렸다.

“모두 호흡을 멈추시오.”

갑자기 그가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기재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랐지만, 의문을 표하는 대신 호흡을 멈췄다. 그만큼 초연운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츠츠츠!

갑자기 미세한 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허공이 검게 물들어 갔다.

초연운과 기재들은 급히 검게 물든 공기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직후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각이 제법이군. 은혼사(隱魂沙)를 감지하다니.”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젊은 무인이 나타났다. 유난히 검은 피부가 인상적인 남자는 마치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나 초연운과 기재들을 바라보았다.

그를 본 순간 초연운과 해소월 등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위기감을 느꼈다.

“마교의 추적자인가?”

“으음!”

추적자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등 뒤에도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모두 백여 명이 넘는 무리들이었다. 초연운 등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의 젊은 무인들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초연운 등은 절로 긴장을 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지근거리에 다가올 때까지 존재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팔자 좋군. 감히 도주하는 주제에 한가하게 운기조식이나 취하고.”

허리에 기다란 채찍을 칭칭 동여맨 남자가 살기 어린 음성을 토해 냈다.

“으음!”

그들의 등장에 해소월이 침음성을 흘렸다.

추적대가 오는 것을 감시할 테니 잠시 휴식을 취하자고 제안한 것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때 초연운이 말했다.

“해 소저, 잘못이 아닙니다. 휴식을 취하지 않았어도 결국은 따라잡혔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러니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해 소저 덕분에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으니까요.”

초연운이 해소월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코 해소월을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추적자들의 실력이라면 쉬지 않고 도주했어도 금방 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차라리 운기조식으로 조금이나마 내공과 체력을 회복한 것이 훨씬 나았다.

초연운의 시선이 맨 처음 입을 연 젊은 무인을 향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내 이름은 임독오다. 네놈을 피 모래로 만들어 줄 이름이니까 잘 기억해 두거라.”

“임독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기에 초연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임독오의 표정이 더욱 스산하게 변했다. 초연운의 태도가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십병(十兵)의 일원이었다.

수장인 정천악을 제외하면 십병 내에서 그를 당할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십병의 실질적인 이인자인 셈이다.

그의 몸에 잠재해 있던 은혼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은혼사(隱魂沙)는 말 그대로 모래였다. 실제 모래보다 수십 배는 더 작고, 미세한 알갱이로 이뤄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모래들은 매우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다루기에 따라 천하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은혼사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모공에 흡수해야 했다. 아무리 모래보다 미세하다고 하지만 이물질을 모공으로 흡수하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생살이 찢기고, 뼈를 깎는 극한의 고통이 찾아온다.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자가 없어 마교에서는 이제껏 은혼사를 흡수한 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임독오는 마교의 역사 수백 년 이래 처음으로 은혼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무인이었다. 그의 모공과 피부 아래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은혼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은혼사를 발산하는 임독오 곁으로 채찍을 두른 이가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남정옥이었다. 그 역시 십병의 일원이었고,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큰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구무룡이 강호 제일의 기재들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강호 제일이라는 단어는 우리 십병을 위해 존재한다.”

남정옥이 허리에 둘러매고 있던 채찍을 풀었다.

마치 뱀처럼 가늘고 긴 채찍이 꿀렁거렸다.

그의 독문 무기인 구절만독편(九切萬毒鞭)이었다. 일단 구절만독편에 휘감기면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살이 찢기고, 뼈가 잘려 나간 후에야 겨우 자유를 찾을 수 있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이 찾아오고 난 후였다.

임독오와 남정옥의 살벌한 기세에 초연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정작 그의 시선은 두 사람이 아닌 그 뒤쪽으로 향해 있었다.

부르르!

갑자기 살갗 위로 소름이 올라왔다.

동시에 강렬한 위기감이 그를 엄습했다.

임독오와 남정옥 뒤에 있는 누군가가 그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한 것이다.

누군가 거물이 뒤에 있었다.

그때였다.

“제법이군. 나를 알아차리다니.”

묵직한 음성과 함께 누군가 두 사람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임독오와 남정옥이 한 걸음씩 옆으로 물러나 길을 내줬다.

푸른 전포를 입은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당신은?”

“내 이름은 정천악이다.”

“정천악?”

“십병의 수장이 바로 나다.”

정천악의 등 뒤로 두 명의 여인이 모습을 보였다. 서문하경과 지수현, 그녀들 역시 십병이었다.

담호에게 목숨을 잃은 십병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초연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였지만, 눈앞에 나타난 십병은 그를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초연운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청운과 해소월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십병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심지어 중상을 입어 이제까지 거의 업혀 오다시피 한 소천까지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맹수가 다른 맹수를 알아보듯 역시 그들도 십병의 강함을 알아보고 긴장하고 있었다.

정천악이 초연운을 보며 말했다.

“나를 알아차린 것은 칭찬해 주지. 그 정도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지랄도 풍년이다.”

“…….”

초연운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는지 정천악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초연운이 그를 툭 쏘아붙였다.

“그렇게 뒤에 숨어 있다 나타나면 누가 쫄 줄 알았냐? 어디서 거물 행세야.”

“입에 걸레를 물었나 보구나. 취운룡.”

“걸레는 너 같은 놈이지. 냄새난다.”

초연운이 손바닥으로 코에 부채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정천악의 눈이 더욱 섬뜩하게 빛났다.

초연운의 행동이 자신을 도발하기 위해 하는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 이유도 말이다.

“자신에게 나의 분노를 집중시키고 싶었나 보군, 취운룡. 제법 똑똑한 것 같지만 소용없다.”

정천악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있던 지수현과 서문하경, 그리고 함께 온 백여 명의 수하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뭐야? 나와 일대일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나? 보기보다 겁쟁이군, 정천악.”

“이건 무인과 무인의 대결이 아니다. 신교가 무림맹의 떨거지를 응징하는 것이지.”

“치잇!”

정천악의 무심한 대답에 초연운은 자신의 도발이 무위로 돌아갔음을 직감했다.

자신에게 모든 분노를 집중시켜 다른 이들이 도주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 주려 한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때 곁에 다가온 해소월이 말했다.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마요. 우리 함께 싸워요.”

“그럽시다. 초 대협.”

“미력하지만 나도 한 팔 보태겠소.”

청운과 소천 등이 해소월의 말에 동조했다.

비록 말은 안 했지만 스무 명의 결사대 무인들도 그들과 같은 심정이었다.

십병을 비롯한 백여 명의 추적자들은 그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자신들이 무림의 미래이듯 그들 역시 마교의 미래였다. 이대로 무사히 성장해 가면 언젠가 강호의 정점에 설 것이고, 결국은 부딪치게 될 운명이었다.

꼭 지금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사생결단을 냈어야 할 존재였기에 그들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정천악이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결사대의 무인들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피워 올렸다.

“건방진! 오늘 이 자리에서 단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이 신호가 되었다.

십병과 무인들이 일제히 초연운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느 이름 모를 야산에서 그렇게 강호 최고의 기재들이 격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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