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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36화 (43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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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화 4장. 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2)

보통 수많은 무인들이 엉켜 싸우면 피아를 구별하기 힘든 난전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준이 높은 무인들일수록 난전 중에서도 자신의 격에 맞는 상대를 본능적으로 찾기 마련이었다.

결사대의 무인들과 십병들이 그랬다.

해소월은 십병 중 일인인 서문하경과 격돌했고, 청운은 구절만독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남정옥을 상대로 점찍었다.

소천은 지수현과 자웅을 겨뤘고, 임독오는 초연운의 몫이었다. 나머지 결사대 무인들은 십병이 이끌고 온 무인들과 부딪쳤다.

“크아아!”

“뒈졋!”

악에 받친 고성과 욕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들의 모습에서 강호 최고의 기재들이라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기품이라든지, 격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은 것은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자하는 필살의 의지와 독기뿐이었다. 그 모습은 인간보다 차라리 짐승에 더 가까웠다.

쉬가악!

후웅!

검과 도가 공기를 가르고 누군가의 피가 허공에 치솟았다.

“으으윽!”

“끄으!”

짐승의 비명이 전장에 가득 울려 퍼졌고, 그 속에서 인간들은 이성을 잃고 광기를 발산하며 날뛰었다.

이곳에 이미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 오늘만큼은 말이다.

마치 세상 전체가 미쳐 돌아가는 듯했다. 그 속에서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짐승들은 이제까지 꼭꼭 억눌러 두었던 광기를 발산했다.

정천악은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았다.

모두가 짐승이 되어 날뛰고 있었지만, 오직 그만이 고고한 학처럼 전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악에 받쳐 미친 듯이 날뛰는 결사대의 무인들조차도 정천악 곁으로는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정천악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정점에 선 자의 기품과 강자의 격이 정천악에게서 느껴졌다.

정천악은 싸움에 참전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사대의 무인 중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무인이라면 임독오와 싸우고 있는 초연운 정도였다.

확실히 초연운은 격이 달라 보였다.

구무룡보다 오히려 월등한 실력과 판단력, 그리고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만일 이대로 그가 착실히 성장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상대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임독오는 정천악에 비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고수였다. 게다가 그에겐 은혼사라는 기물이 존재했다. 정천악에게도 은혼사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일단 한 모금이라도 들이키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천악은 초연운이 은혼사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십병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같은 피를 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혈육보다 더 끈끈한 사이였다. 그렇기에 그들을 믿고 존중했다. 그들의 싸움에 자신이 개입하는 것은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정천악은 지켜보았다. 그가 개입하는 것은 전황이 기울어질 때문이었다.

초연운은 임독오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정천악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행이구나. 저자가 참전하지 않아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천악이 개입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초연운과 결사대에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결사대 무인들은 모르지만 초연운만큼은 정천악이 얼마나 가공할 무력을 소유했는지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전장에 개입하는 순간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야 전황이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마교의 무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분명 참전할 것이다.

그 전에 임독오를 쓰러트려야 했다. 그나마 정천악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니까.

그때였다.

츄화학!

갑자기 왼쪽 어깨에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은혼사가 그의 어깨를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

옷과 피부가 뜯겨져 나가며 살점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지독한 고통이 초연운을 엄습했다.

‘실수다.’

초연운이 급히 뒤로 물러나며 지혈을 했다. 그런 초연운을 임독오가 살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나를 두고 천악을 신경 쓰다니. 어이가 없구나.”

그의 살기에 은혼사가 크게 일렁였다.

임독오는 감히 자신을 상대하면서 정천악을 경계하는 초연운에게 크게 분노했다. 초연운이 자신을 무시한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연운 역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임독오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자가 아니었다.

그를 쓰러트리려면 초연운 역시 이 싸움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 내가 어이없는 짓을 했네. 크게 실수했어. 그래서 사죄의 의미로 당신에게만 집중하지.”

“너는 진즉 그랬어야 했다.”

임독오의 시선이 초연운의 왼쪽 어깨를 향했다. 은혼사에 당한 초연운의 어깨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전신이 온전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데, 팔 하나를 잃었으니 승부는 자신에게 기울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친김에 여세를 몰아 초연운을 공격했다.

“죽어랏! 취운룡.”

촤하학!

순간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은혼사가 일제히 초연운을 향해 날아왔다. 허공을 온통 검게 물들이며 덮쳐 오는 은혼사 앞에서 초연운이 피할 곳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초연운 역시 피할 생각이 없었다.

쿠우우!

그의 전신에 강기가 휘돌았다. 호신강기를 펼친 것이다.

호신강기에 막힌 은혼사가 튕겨 나갔다. 초연운은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순식간에 거두고 섬전처럼 임독오를 향해 쇄도했다.

“챠앗!”

커다란 기합과 함께 초연운의 성명절기인 팔황신권(八荒神拳)이 펼쳐졌다.

쿠콰가각!

초연운의 팔다리가 가공할 경력을 토해 냈다.

초식과 초식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숨 쉴 틈도 없이 임독오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임독오도 보통 무인이 아니었다. 그는 은혼사를 회수하면서도 침착하게 초연운의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냈다.

“제법이구나. 무림맹의 개.”

“너야말로.”

대화를 하면서도 그들은 손발을 격렬히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은혼사로 공격을 하면 호신강기로 막고, 호신강기를 거두면 다시 은혼사가 독사처럼 파고들었다.

두 사람 모두 내공의 수발이 자유자재인 경지에 올랐다. 은혼사와 권장을 번갈아 움직이는 임독오의 모습은 마치 악귀 같았고, 호신강기와 권각을 번갈아 가며 펼치는 초연운의 모습은 천장을 연상시켰다.

그들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하고 방어를 했다. 완벽한 공방일체(攻防一體)의 격전을 벌이는 것이다.

그들의 싸움은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해소월 역시 서문하경을 상대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서문하경이 들고 있는 빙옥검(氷玉劍)은 기물 중 기물이었다. 빙옥검에 살짝이라도 스치면 상처가 얼어붙으며 한기가 체내로 침투했다. 한기는 몸 안에 휘도는 혈액을 얼렸기에 내공을 이용해 녹이지 않으면 안 됐다.

그렇다고 해소월이 마냥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동안의 강호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중에서도 담호와 함께 동행하면서 쌓은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다.

카카캉!

그녀들의 검에서 불똥이 튀고, 검기가 부서져 나갔다.

청운과 남정옥의 싸움도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었다. 청성파의 절학은 구절만독편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남정옥의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금방 끝낼 줄 알았던 싸움이 하염없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구절만독편이 독사처럼 청운의 몸을 휘감아 갔다.

“이만 그만 뒈져랏. 청성의 개야.”

“흥! 이딴 기물에 의지하면서 어찌 떳떳한 무인이라 자부할 수 있는가?”

청운이 구절만독편을 쳐 내면서 오연히 소리쳤다. 그에 남정옥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검이나 채찍이나 다를 게 뭐가 있다고 헛소리냐? 그런 소리를 하려면 검이나 버린 다음에 하거라.”

“검은 만병지왕, 그따위 기물과는 격이 다르다.”

“흥! 정파의 개, 여전히 허세만 가득하구나.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는 놈이 진리인 것을.”

쉬아악!

남정옥이 공력을 구절만독편에 더욱 집중시켰다. 그러자 구절만독편에 뚜렷한 빛무리가 형성됐다. 편강(鞭罡)이었다.

청운의 얼굴에 긴장의 빛이 떠올랐다. 상대가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강기를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정옥은 이미 절대고수의 경지에 한 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청운의 경지는 아직 모호했다. 보이긴 했지만, 닿지는 않는. 그래서 반보가 아쉬운 그런 경지였다. 하지만 청운은 물러나지 않았다. 어차피 물러날 곳도 없는 백척간두의 상황이었다.

그가 물러나거나 무릎을 꿇으면 곁에서 분전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 위험해졌다.

청운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공력을 검에 집중시켰다.

카카캉!

검과 채찍이 격돌하면서 그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다행히도 편강에 격중당한 그의 검은 아직 부서지지 않고 버텨 주었다.

청운은 아직 검이 멀쩡하다는 데서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챠아앗!”

그의 검에서 청성파의 절학이 실타래처럼 줄줄이 풀려 나왔다. 그의 전신이 순식간에 은빛 검기에 휩싸여 남정옥의 편강에 부딪쳐 갔다.

콰아아앙!

그들이 격돌한 후폭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근처에서 싸우던 무인들이 기파에 휩쓸려 나뒹굴었고, 많은 이들이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는 초연운과 싸우던 임독오도 있었다.

임독오의 은혼사가 기파에 휩쓸려 잠시 흐트러졌다. 은혼사는 모래 알갱이보다 가벼워서 외부의 기파에 영향을 받기 쉬웠다. 그 때문에 임독오도 각별히 주변 상황을 신경 쓰면서 은혼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임독오는 급히 은혼사를 수습했지만, 초연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앗!”

그가 그대로 임독오를 향해 온몸을 날렸다. 호신강기를 펼치지도 않고 맨몸으로 말이다.

비록 예상치 못한 기파에 은혼사가 많이 흐트러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임독오의 전신에는 상당한 양의 은혼사가 휘돌고 있어 위험했다. 그런 은혼사를 향해 호신강기를 펼치지도 않은 채 맨몸으로 돌진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은혼사의 주인인 임독오는 물론이고 방관하고 있던 정천악까지도 말이다.

카가각!

실제로도 그랬다. 은혼사와 맞닿은 초연운의 살이 패여져 나가고, 근육이 뜯겨져 나가며 순식간에 혈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초연운은 비명 한 번 지르지도 않았고, 몸을 멈추지도 않았다.

팔황신권의 절초가 폭발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껴 두었던 공력이 활화산처럼 분출됐다.

쿠콰쾅!

“크억!”

폭발에 휩쓸린 임독오의 몸이 가랑잎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의 전신은 어느새 피로 물들어 있었고, 왼쪽 어깨와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절망하지 않았다.

공력을 모두 폭발시킨 초연운에게 더 이상 남은 힘이 없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초연운은 공격할 수 있는 모든 패를 소모했고, 남은 것은 자신의 반격뿐이었다.

“피 모래가 되거라.”

그의 손짓에 허공에 흩날리던 은혼사가 다시 초연운을 휘감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빠각!

갑자기 임독오의 머리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피와 회백색 뇌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 비틀거리던 임독오의 몸이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어, 어떻게?’

그것이 임독오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크으!”

초연운이 신음성을 내뱉으며 쪽 뻗었던 다리를 거둬들였다. 방금 전 임독오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던 것은 바로 그의 다리였다. 그리고 그의 다리는 쇠로 만든 의족이었다.

다리가 잘린 이후 의족을 처음 장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초연운은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애를 먹었다. 쇠로 된 의족과 원래의 다리엔 무게의 차이가 상당히 났고, 그 때문에 몸의 균형이 미묘하게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팔황신권을 펼치는 것도 쉽지가 않았고, 원래의 위력보다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초연운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오히려 의족을 무기화시켰다.

“크헙!”

임독오가 절명한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야 초연운이 이제까지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그런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임독오를 겨우 쓰러트렸지만 아직 위험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감히!”

콰아앙!

노성과 함께 강력한 경력이 초연운을 때렸다.

초연운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십여 장이나 튕겨져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임독오의 죽음에 분노한 정천악이 초연운에게 일장을 날린 것이다.

“감히 독오를 죽이다니.”

정천악의 눈에서 가공할 살기가 토해져 나왔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정천악은 임독오의 죽음을 미처 막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그의 분노는 실로 무서웠다.

콰드득!

그가 발산하는 살기와 경력이 일대의 대지를 뒤집었다.

마신(魔神) 같은 정천악의 모습에 초연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 죽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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