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438화 (438/500)

 438

438화 5장. 천하보다 자파의 안위가 우선이다(1)

“대호출세(大虎出世).”

“하압!”

“챳!”

커다란 연무장에 수많은 아이들이 교두의 지도 아래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이들이 일제히 같은 초식을 펼치는 광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좋다. 다음은 교룡승천(蛟龍昇天).”

교두의 힘찬 목소리가 연무장에게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아이들은 힘차게 초식을 펼쳤다.

청석으로 만든 바닥이 ‘쿵쿵’ 울리고 아이들의 힘찬 기합성이 화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들이 연무를 하는 곳은 태평궁의 옛터였다.

칼날 같은 지형적 특성을 가진 화산에서 그나마 가장 넓은 평지에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태평궁이었다.

천상계의 삼십육천(三十六天)을 본떠서 만든 태평궁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화산파의 대소사가 이곳에서 이뤄졌고, 휘하의 제자들이 무공을 연무하는 곳도 이곳 태평궁이었다.

마교가 침입했을 당시 태평궁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은가보의 지원 아래 태평궁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태평궁의 연무장에서 무공을 익히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가 있었다.

“원공이 의외로 가르치는 데 재주가 있구나.”

청수한 인상의 노도사는 바로 화산파 최고의 배분을 갖고 있는 현소 진인이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내성적이라 생각했는데, 가르칠 때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열정적입니다.”

대답을 하는 이는 바로 화산파의 장문인인 운경이었다. 그의 등 뒤로 화산제일검인 명경이 따르고 있었다.

현재 화산파를 이끌어 나가는 가장 핵심적인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현소 진인이 화산파의 정신적인 지주라면, 운경이 실질적인 통솔자였고, 명경은 무력을 상징했다.

그들 셋이 있었기에 무너졌던 화산파가 이 정도로 재건될 수 있었다. 화산파는 매우 빠른 속도로 옛 영화를 다시 찾고 있었다.

지금 태평궁 연무장에서 무공을 익히는 아이들은 이번에 새로이 뽑은 제자들이었다. 속가와 섬서성 인근에서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만 추려 비밀리에 받아들인 것이다.

교두 자격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는 매화삼십육검수 중 한 명인 원공이었다.

원래 원공은 삼대제자였다.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이대제자일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한차례 혈겁을 겪고 나서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무공을 익혔다. 성격 또한 열정적으로 변해서 화산파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특히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아이들이 화산파의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공의 지도 아래 아이들은 눈에 띄게 성장을 하고 있었다. 현소 진인 등은 그런 아이들의 성장에 큰 위안을 받고 있었다.

한참 아이들을 바라보던 현소 진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눈에 띄는 아이들이 몇 명 있구나.”

“역시 보셨군요. 유독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운경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문파가 대를 이어 발전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제자가 계속해서 유입되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화산파는 운이 좋았다. 이번에 들어온 아이들 중 상당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담호나 명경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쉽게 보기 힘든 재능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미래의 화산을 이끌어 갈 동량들이었다.

평상시라면 이대제자들을 사부로 배정해 차근차근 가르쳤겠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난세였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해치워야 했다.

매화삼십육검수가 저들에게 붙어 가르치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매화삼십육검수의 나이가 아직 젊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치였다.

현소 진인이 흐뭇한 표정으로 운경을 바라봤다.

운경은 믿기 힘들 정도로 화산파를 잘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가 화산파의 장문인이 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그때였다.

“장문인.”

갑자기 산 밑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세 사람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뛰어오는 자는 이대제자인 우공이었다. 그는 화산파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가 저렇게 달려온다는 것은 외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슨 일이냐? 우공.”

“크, 큰일 났습니다.”

“차분히 말하거라. 무슨 일이냐?”

운경의 말에 우공이 잠시 숨을 돌린 후 말을 이었다.

“마교의 대대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마교가?”

“예! 악양 본단에서 대규모 병력이 출진하는 것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하오문에서 전해 온 정보입니다. 정확할 겁니다.”

“으음!”

우공의 말에 세 사람이 침음성을 흘렸다.

하오문은 담호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화산파에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오문의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그들은 지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그동안 잠잠하던 마교가 왜 갑자기?”

“무림맹에서 마교의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기 위해 결사대를 파견했답니다. 그 때문에 자극을 받은 마교가 응징 차원에서 움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바보 같은……. 수십 년 전에 썼던 방법이 다시 통할 거라 생각했던 건가?”

현소 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본래 인간이란 존재는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예전에 성공했던 방법을 다시 답습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저들도 머리가 있는 이상 똑같은 방법에 당하지 않기 위해 대비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력이 얼마나 나왔다더냐?”

“아직 정확하게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전력이 동원된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결국 현소 진인이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운경과 명경의 표정도 현소 진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언젠가 닥쳐올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자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현소 진인은 침묵을 지킨 채 운경을 바라봤다.

배분으로 따지만 그가 제일 어른이었지만, 화산파의 장문인은 운경이었다. 화산파의 기강을 위해서라도 운경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운경은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현소 진인과 명경은 그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침묵하며 기다렸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운경이 눈을 떴다.

“명경.”

“하명하십시오, 장문 사형.”

“자네가 종남산에 가 줘야겠네.”

“종남파 말입니까?”

명경이 의뭉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종남파도 화산파처럼 삼 년 전에 큰 피해를 입고 봉문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 역시 봉문을 한 채 전력을 다시 추스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의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아 내부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같이 섬서성에 터를 잡고 있기에 화산파와 종남파는 수백 년 동안 협력과 반목을 되풀이해 왔다. 평화 시에는 경쟁과 반목을 했고, 난세에는 협력을 해서 공통의 적을 물리쳐 왔다.

운경은 지금이 다시 종남파와 손을 잡을 때라고 생각했다. 장문인인 자신이 화산파를 비울 수는 없으니 화산제일검인 명경을 보내 격을 맞추려는 것이다.

“그들이 봉문을 풀고 저를 받아 주겠습니까?”

“자네라면 종남파도 마냥 홀대를 하지 않을 게야. 화산제일검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작은 게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종남파로 가겠습니다.”

“반드시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하네.”

“물론입니다.”

“자네가 가있는 동안 나는 화산파 내부의 전력을 다시 점검해야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로 종남파로 가 보겠습니다.”

“음!”

운경의 허락이 떨어지자 명경이 현소 진인에게도 인사를 하고 바로 화산파를 나섰다.

“내가 도와줄 일은 없겠는가?”

“사숙께서는 화산파 내에 머무시면서 혹여 천사교의 무리들이 침범하지 않는지 잘 감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현재로서는 그들의 사술을 물리치실 만한 분이 사숙밖에 없습니다.”

“알겠네. 그리하지.”

현소 진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운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이상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 분명했다. 무림인들도 많이 죽겠지만, 강호와 상관없는 일반 백성들도 전란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것이다.

“무량수불!”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나. 지금은 마교의 기세가 대단하나,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을 걸세.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소질의 공부가 깊지 않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해하네.”

“참, 호에게선 연락이 없습니까?”

“없네!”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나?”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강한 아이일세.”

“하긴 제가 괜한 소리를 했군요. 오히려 권마의 위명에 힘입어 화산파를 키워 가는 주제에 말입니다.”

“별소리를 다하는군.”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요. 호가 화산권마라고 불린다지만 천하인 누구도 호가 화산 아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산파가 호의 우산 아래 있다고 생각하지요. 지금 화산파에 무공을 배우겠다고 들어온 아이들도 따지고 보면 호를 동경해서 들어온 이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런가?”

“호에게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가 화산파를 버려 주지 않아서 더욱더요.”

운경의 말속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현소 진인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현소 진인이 먼 하늘을 바라봤다.

‘잘 있느냐?’

***

‘사부!’

담호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갑자기 현소 진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담호는 말없이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그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은 것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아이들의 격렬한 기합 소리였다.

“하압!”

“엽!”

고개를 돌리자 남궁 형제가 방진보를 합공하는 모습이 보였다. 도저히 어린아이들의 대련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싸움은 격렬했다.

남궁 형제는 정말 최선을 다해 방진보를 공격했다. 하지만 방진보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공격을 받아넘기며 반격했다.

쉬앙!

방진보의 주도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다 뿐이지 방진보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카카캉!

주도와 남궁 형제의 검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저히 대련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흉험한 싸움이었다.

방진보는 매화도를 풀어 냈다. 도저히 짧은 주도로 펼친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도법은 수려했다.

주도가 움직일 때마다 매화가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그를 상대하는 남궁 형제가 눈앞에서 아른 거리는 화려한 매화에 현혹되었을 정도였다.

방진보는 매화도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이제까지 수없이 연무를 하고, 또 무공을 펼쳤지만 이렇게 깊이 몰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매일같이 남궁 형제와 대련했었다.

처음엔 남궁 형제가 다칠까 봐 조심했지만, 남궁 형제의 실력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남궁선휘는 물론이고, 남궁영휘의 발전도 눈이 부셨다.

대연심공이 효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인지, 남궁영휘의 몸은 점차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형태로 바뀌어 갔다. 아직까지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남궁 형제와의 대련은 방진보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까지 방진보가 싸운 이들은 모두 강호에서 명성을 날리는 자들이었다. 약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무인들이었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자신의 무공을 점검할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남궁 형제는 달랐다.

자신보다 훨씬 약한 이들이었다. 그들을 배려해야 했다. 같은 초식을 펼치더라도 힘 조절을 해야 했다.

본래 온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저 전력을 다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을 뺀다는 것은 그보다 배는 어려웠다.

때문에 방진보는 처음부터 자신의 무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힘의 배분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기초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예상치 못한 깨달음과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남궁 형제의 검로가 눈에 들어왔다. 두 형제의 성취는 아직 미미했지만 그래도 남궁세가 수백 년의 총화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방진보는 남궁세가 검공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렇다고 남궁 형제가 마냥 방진보에게 좋은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화산파의 무공을 접하면서 비약적으로 빠르게 실력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서로를 닮고 있었다.

담호는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봤다.

난세였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본신의 실력뿐이었다.

방진보는 아직은 어린 새에 불과하지만, 언제고 크고 튼튼한 날개를 얻어 홀로 창천을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담호는 그 시기가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