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
440화 5장. 천하보다 자파의 안위가 우선이다(3)
중원을 가로지르는 장강은 호북성도 남북으로 나눴다. 때문에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이동하려는 자들은 반드시 장강을 건너가야 했다.
수많은 배들이 장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흔히들 운마도강선이라고 부르는 배였다. 사람과 말을 한꺼번에 태울 수 있는 커다란 배 수십 척이 장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하지만 강가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마교다.”
“드디어 저들이 장강을 넘는 건가?”
강가에 있는 사람들 중 무림과 연관이 있는 자들의 얼굴엔 절망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장강은 마교의 북진을 막는 심리적인 저지선이었다. 마교가 언젠가는 장강을 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렇게 많은 운마도강선을 이용해 한꺼번에 도강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선단이 일제히 도강을 하니 감히 그들을 막아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촤하학!
대선단이 지나간 자리엔 하얀 포말이 일어나 장강을 가득 채웠다.
“마교가 이리 빨리 장강을 넘다니. 대체 저 많은 운마도강선을 언제 준비했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제갈세가가 위험하다.”
마교의 전력이 장강을 건너 무림맹과 소림사가 있는 하남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갈세가가 있는 융중산 인근을 지나가야 했다.
제갈세가는 오대세가의 일원이었고, 무림맹의 주축 세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제갈세가가 마교가 자신들의 앞마당을 순순히 지나가도록 지켜볼 리가 없었고, 마교가 제갈세가를 그냥 지나쳐 갈 리도 없었다.
결국 두 세력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선두의 운마도강선에는 마교의 군사인 상한천이 서 있었다.
상한천은 강바람을 맞으며 강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력을 쪼개 비밀리에 무림맹으로 이동을 할 수도 있었다. 전략적으로 본다면 그게 오히려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상한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부러 병력을 드러냄으로써 세를 과시했다.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마교는 더 이상 음지에 숨어 지내는 문파가 아니었다. 악양에 본단을 둠으로써 세상에 그 실체를 알렸고, 지금은 수많은 백성들에게까지 포교가 되었다.
수많은 교도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세를 과시해야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시작은 제갈세가부터.”
사람들의 예상처럼 상한천은 제갈세가부터 칠 작정이었다.
오대세가 중 하나이니만큼 그 저력이 만만치 않을 터였지만, 이대로 무시하고 지나치면 오히려 더 큰 후환으로 돌아올 터였다.
무림맹과의 결전을 위해 사대군장은 물론이고 마교의 핵심 고수들과 세력이 모조리 동원됐다.
그때 상한천의 곁으로 다가오는 여인이 있었다.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젊은 여인이었다. 안색이 약간 창백한 것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신비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상한천이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봤다.
“요 군장.”
“군사.”
“몸은 좀 어떻소?”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요.”
그녀는 바로 사대군장 중 한 명인 혈륜마녀 요사란이었다. 심각한 상처를 입고 귀환한 요사란은 그동안 본단에 머물면서 내상을 치료했었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 더 폐관을 하며 완벽하게 낫고 싶었지만, 상한천은 그녀를 소집했다.
사대군장의 일인인 요사란은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주요 전력이었다. 그런 전력을 상한천이 편하게 쉬게 할 리 없었다.
결국 요사란은 수하들을 이끌고 이번 원정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요사란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상한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행이군. 지금은 하나라도 전력이 아쉬울 때니까.”
“조그만 내상 때문에 군장이 가지는 책무를 등한시할 생각은 없어요.”
“든든하구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이대로 가면 제갈세가를 지나가는 것이 맞죠?”
“맞소!”
“꼭 이 길로 가야 하나요? 제갈세가와 반드시 충돌하게 될 텐데.”
요사란의 얼굴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상한천은 그런 요사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제갈세가와 격돌하는 것이 두렵소?”
“그건 아니에요. 단지 염려되는 것이 있어서 그래요.”
“혹시 무당파 때문이오?”
“맞아요. 제갈세가와 무당파는 지척이에요. 제갈세가가 공격을 받으면 무당파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무림맹과 격돌하기도 전에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을 거예요.”
“요 군장의 생각이 실로 옳소. 무당파는 반드시 참전할 것이오.”
요사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알면서도 제갈세가가 있는 방향으로 간단 말인가요?”
“그렇소.”
“어째서? 자칫하다가는 발목을 잡힐 수도 있어요. 그러면 무림맹도 전력을 정비해 병력을 파견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전선이 무림맹이 있는 숭산이 아닌 제갈세가가 있는 융중산 인근에 고착될 거예요.”
요사란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나이나 배분은 그녀가 높았지만, 마교 내에서의 서열은 상한천이 위였다. 그래서 존대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 계속 쳇바퀴를 도는 것 같자 자연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교가 강호와 싸우는 것은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신교의 젊은 무인들이 죽는 것은 원치 않았다.
상한천이 그런 요사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미소는 절대의 경지에 오른 요사란마저 섬뜩하게 만들었다.
“요 군장이 본교를 아끼는 마음은 잘 알겠소. 염려하는 바가 무언지도. 하지만 요 군장이 걱정하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
“그게 무슨?”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오.”
“하지만…….”
“무당파는 신경 쓸 것 없소. 우리는 오직 제갈세가에만 집중하면 되오. 단숨에 제갈세가를 무너트리고 숭산으로 갈 것이오.”
“으음!”
상한천의 호언장담에 요사란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녀는 상한천이 절대 헛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신산귀계로 신교의 적을 물리쳐 온 상한천이었다. 이제까지 상한천이 장담을 해서 안 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피바람이 불겠구나.’
요사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당파는 소림사와 더불어 무림의 태산북두라 할 수 있는 문파였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화산파와 달리 그들은 대부분의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마교의 전력이 엄청나다고 하더라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그런 거대 문파를 상한천은 별거 아닌 존재처럼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준비해두었기에.’
하지만 상한천의 분위기에 짓눌려 물어볼 수 없었다.
상한천의 눈은 그녀가 보지 못하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무당산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마교가 본격적으로 무림맹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무당파도 입수했다. 문제는 마교가 무림맹으로 향하는 진로에 하필 제갈세가가 존재하고, 또 멀지 않은 곳에 무당파가 있다는 것이다.
제갈세가가 마교와 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무당파도 온 힘을 다해 제갈세가를 지원해야 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처럼 직접 부딪치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번에는 불가능했다. 그때는 화산파라는 커다란 방파제가 있어 마교라는 거친 파도를 상당 부분 막아 냈지만, 제갈세가에 그 정도의 전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제갈세가가 오대세가의 일원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무력 측면보다는 그들 가문의 영민한 두뇌와 절진 같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라는 거대한 해일과 조우하게 된 제갈세가에서는 당연히 무당파와 무림맹에 지원을 요청했다. 무림맹이 있는 하남성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지원이 온다 해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제갈세가는 무당파의 지원을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무당파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지라 제갈세가의 지원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제갈세가가 무너지면 다음은 무당파였다.
자소궁에는 무당파의 수뇌부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하고 있었다.
장문인인 청월 진인, 지낭인 청무 진인, 호북제일검이자 무당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청허 진인, 그리고 수많은 장로들까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심지어는 오랫동안 폐관 수련을 하던 무쌍검 진무영을 비롯한 일대제자들 일부와 전대 장로들까지 모였다. 그만큼 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장로들 중 가장 성격이 급한 청관 진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제갈세가에 지원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제갈세가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무당파입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우리는 신중해야 한다네. 본산을 지킬 병력도 남겨 둬야 하고, 지원 병력을 얼마나 보내야 할지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네.”
무당파의 지낭인 청무 진인이 청관 진인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모두의 시선이 청무 진인에게 집중됐다.
전대 장로 중 한 명인 광월 진인이 물었다.
“그럼 어떡하자는 건가? 사질의 고견을 듣고 싶군.”
“고견이랄 것도 없습니다. 사제의 말처럼 우리가 제갈세가에 지원 병력을 보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단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훗날을 도모할 만한 인원은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최악의 경우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
“봉문, 혹은 멸문을 말합니다.”
“으음!”
장내에 침통한 기운이 가득했다.
이곳 무당산에 자리를 잡고 문호를 연 이래 무당파는 언제나 강호의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모든 이들이 무당파를 우러러봤고, 화려한 영광의 세월을 수백 년이나 누려 왔다.
화산파처럼 큰 혈겁을 당한 일도 없었기에 문파의 존속을 걱정할 일도 없었다. 일차 정마대전 당시에도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무당파의 도사들은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사질이 우려하는 바는 알지만 너무 과한 것 같군.”
“예?”
“잊었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있는 무당산에 저들이 한 발이라도 디딜 수 있을 것 같은가?”
광월 진인의 호언장담에 전대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수십 년 이상을 폐관 수련하며 무공만 닦아 온 전대 장로들이었다. 비록 일전에 담호에게 당해 체면을 크게 구기긴 했지만, 그들의 무공은 여전히 강호에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사숙들을 믿고 있습니다. 사숙들이야말로 무당파 최후의 보루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을 감안해야 합니다. 남궁세가를 보십시오. 그들의 세력 또한 무당파 못지않게 대단했지만 결국은 멸문을 하지 않았습니까?”
“으음!”
“무림맹의 지원은 아무리 빨라도 열흘 이상 걸립니다. 그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제갈세가에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무당파의 안위가 최우선입니다.”
“사제의 말이 맞습니다. 일단 본파의 안전을 확보해야 제갈세가로 보내는 지원 병력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장문인인 청월 진인이 청무 진인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에 호북제일검인 청허 진인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사형, 사제. 지금은 본파의 안위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전력을 다해 제갈세가를 지원해야 할 때입니다. 제갈세가가 무너지면 본파에 미래가 있을 것 같습니까? 당장 전 인원을 이끌고 제갈세가로 출발해야 합니다. 권마와의 약속을 잊었습니까?”
“으음!”
순간 전대 장로들과 청월 진인 등이 침음성을 흘렸다.
담호의 별호가 나온 것만으로도 그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만큼 담호가 그들에게 남기고 간 잔향은 강력한 것이었다.
특히 담호에게 굴욕을 당한 전대 장로들의 얼굴엔 기분 나쁘다는 빛이 역력했다. 담호에게 굴복해 협조를 약속했지만 진심이 우러나온 것이 아닌 만큼 기분 나쁜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누가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인가? 단지 무당파의 안위를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거지. 설마 청허 사질은 권마와의 약속이 본파의 안위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겠지?”
뭉개진 발음으로 열변을 토하는 이는 담호에게 이빨이 부서지고 팔다리가 박살이 났던 광성 진인이었다. 담호의 별호를 언급하는 그의 눈엔 흉흉한 빛이 가득했다.
담호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했기에 그가 갖고 있는 원한과 분노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의 목소리엔 날이 바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에 청허 진인은 더 이상 말을 하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광성 진인과 전대 장로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커다란 바위를 올려놓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제갈세가로 달려가고 싶었다. 지금 이곳에서 회의를 하는 시간도 그에겐 아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장로들은 누구를 남겨 두어 전력을 보존하게 할지 토론하고 있었다. 제갈세가에 보낼 지원 병력을 의논하는 일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휴우!”
청허 진인이 크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흐흐! 무당의 죽지 못한 노괴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구나.”
갑자기 음산한 목소리 한 줄기가 자소궁 안에 울려 퍼졌다. 소름이 끼칠 만큼 음유한 공력이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순간 자소궁 안에 있던 무당파의 수뇌부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당파엔 이런 음유한 공력을 익힌 무인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웬 놈이냐?”
“누구냐?”
그들이 공력을 끌어올리며 사방을 경계했다. 그들의 얼굴엔 경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곳은 자소궁이었다.
무당파 한가운데 있는 중지였다. 당연히 몇 겹의 경계망이 삼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무당파의 고수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요지 중의 요지인 것이다. 그런 자소궁에서 난데없이 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니 그들이 경악하는 것이 당연했다.
순간 그들 한가운데 누군가 홀연히 나타났다.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주름이 얼굴을 온통 뒤덮은 노인이었다. 금방이라도 진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 눈동자에는 황달이 가득 끼어 있었다.
청월 진인이 노인을 노려봤다.
“무량수불! 그대는 누군가?”
“본좌는 유령마제 위강휘라고 한다.”
“위강휘?”
“신교의 호교원주가 바로 이 몸이다. 군사의 명을 받아 무당을 견제하기 위해 왔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뻔했구나. 이렇게 오합지졸에 오직 무당파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놈들인 줄 알았다면 말이다.”
위강휘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분명 비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