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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화 7장. 무간지옥(無間地獄)이 열리다(3)
무림맹과 소림사는 초긴장 상태였다.
그들이 미처 전력을 파견하기도 전에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가 멸문지화를 당했고, 무당파 역시 큰 피해를 입어 무림맹을 지원할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무림맹과 소림사의 힘만으로 마교의 침공을 막아 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천하의 많은 무인들이 마교를 막아 내기 위해 이미 무림맹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거리가 너무 멀어 도움을 줄 수 없는 문파나 사람 들을 제외하면 강호 무림의 전력 절반 이상이 무림맹과 소림사에 들어와 있었다.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능히 마교와 자웅을 겨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림맹에 들어온 무인들의 생각이었다.
무림맹의 맹주전에는 맹주인 남천산을 비롯해 강호 최정상의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불만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마치 분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장내의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광천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소림사의 방장으로 수십 년을 지내 온 광천이었다. 불도를 닦는 승려지만 한편으로는 무인으로서의 삶도 놓치지 않았기에 지금의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살짝 눈을 뜬 광천이 남천산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곤욕스러운 이가 있다면 바로 남천산일 것이다. 그의 예상처럼 남천산은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포문을 연 이는 청허문(靑虛門)의 문주인 주연록이었다.
“맹주, 이 책임을 어떻게 지시렵니까?”
“진정하시오, 주 문주.”
“어떻게 진정합니까? 맹주. 결사대가 전멸했어요. 강호 최고의 기재들이 이번 임무에서 모조리 몰살당했단 말입니다. 대참사예요. 이번 사태로 인해 강호는 향후 삼십 년 동안 암흑기를 보내게 될 겁니다.”
“그렇습니다. 결사대에 속한 이들은 각 문파의 핵심 인재들이었어요. 현 강호의 허리가 잘려 나간 거나 다름없어요.”
“도대체 전대 결사대는 뭐한 겁니까? 젊은 기재들을 보호해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처음부터 잘못된 임무였어요. 결사대라니……. 그런 구시대적 발상이 아직도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니.”
남천산이 어떻게든 진정을 시키려 했지만 군웅들의 분노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마치 활화산이 터지듯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결사대에 포함되었던 기재들을 잃은 문파들의 분노가 컸다. 그들은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되듯 남천산을 쏘아붙였다.
남천산의 얼굴이 소태를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그가 결사대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기재들이 결사대에 들어간 것은 스스로의 의지였다.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워낙 많은 이들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전대 결사대는 어찌 되었소? 설마 그들만 살아 돌아온 것은 아니겠지?”
“맞소! 그들을 믿고 기재들을 보낸 것인데, 그들도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은 이제 전대 결사대까지 거론하며 책임을 추궁했다.
남천산은 답답한 표정을 지을 뿐 명쾌한 답을 내 주지 못했다. 사실 누구보다 갑갑한 이는 바로 그였다.
그에게 결사대를 조직할 것을 제안한 이는 바로 전대의 절대고수인 천도왕 적경천이었다. 그와 다른 전대 무인들이 함께한다고 했기에 그 역시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런데 결사대의 임무가 실패하자마자 적경천은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수많은 이들을 풀어 적경천의 행방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제기랄!’
남천산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자신도 적경천에게 속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들이 그런 변명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분노한 군웅들은 지금 이 사태를 책임져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제물이 바로 남천산이었다.
‘도대체 적 선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설마 이 모든 책임을 나에게 떠넘기려고 모습을 감춘 것은 아니겠지?’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남천산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결사대의 기습이 오히려 마교를 자극했어요. 그 때문에 놈들이 복수하러 올라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결사대의 섣부른 공격이 오히려 화를 불러왔어요.”
장내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섣불리 마교를 자극한 결사대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혼란과 공포의 빛이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교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갈세가를 멸문시키고 하남성으로 넘어왔으니 이곳까지 도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무서운 마교와 직접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남천산을 성토하는 목소리와 이성을 찾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섞여 시장통을 연상케 했다.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 중 강호의 절정고수가 아닌 자 없었고, 한 문파를 책임지지 않는 자도 없었다. 밖에 나가면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 어디에도 강호를 진정으로 위하는 대협의 풍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그들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가 또렷할수록 광천은 심마가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무리 거센 파도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기 마련이었다. 지금이야 감정이 격앙되어 저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결국은 군웅들이 이성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군웅들이 듣지 않을 터였다.
광천의 생각처럼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목소리를 높이던 군웅들이 조금씩 이성을 찾았다. 그리고 광천에게 의견을 구하는 자가 나타났다.
“광천 대사께서는 저희가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천하 무림의 태두라는 소림사였다. 그리고 광천은 소림사의 방장이었다. 당연히 묻는 말투나 태도가 정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광천은 대화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아미타불! 여러분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본문 역시 소천의 행방을 알지 못해 애가 타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맹주에게 책임을 묻는 것보다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마교는 우리의 지척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맹주를 경질시키고 새로운 이를 뽑는다는 것은 오히려 자중지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면 대사께서는 남 대협이 맹주직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럼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책임은 누가 집니까?”
“책임은 나중에 물어도 늦지 않습니다.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으음!”
광천은 생존을 이야기했다.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소림사의 방장이 하는 말이었다.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기에 위기감 또한 크게 느껴졌다.
천하의 소림사가 생존을 이야기하는데 감히 다른 문파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현재 마교의 폭풍에서 그나마 빗겨 나 있는 것은 화산파와 종남파처럼 중원 외곽에 있는 문파들뿐, 나머지는 모두 이번 격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즉 소림사와 무림맹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의 문파와 터전 역시 마교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휴우!”
“음!”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미타불! 지금은 맹주에게 힘을 몰아줘야 할 때입니다. 소승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광천의 말에 군웅들이 서로의 눈치만 봤다.
그들 역시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광천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자니 체면이 영 살지 않았다.
그때였다.
쿵!
갑자기 남천산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릎을 꿇었다.
“이 남 모가 여러 군웅들 앞에 사죄를 하오이다. 섣불리 전대 선배들을 끌어들여 무림맹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인정하오이다. 이 죄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제일 앞에서 싸울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선두에서 싸움으로써 조금이나마 사죄하고 싶습니다. 제게 돌을 던지는 것은 강호의 위기를 넘긴 후로 미뤄 주십시오.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맞겠습니다.”
남천산의 비분강개한 목소리와 눈빛은 군웅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어차피 대안도 없던 차였다. 군웅들의 마음은 조금씩 남천산의 맹주직을 유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광천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남천산이 미더운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맹주를 함부로 교체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때였다.
“크, 큰일 났습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승려 한 명이 대전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림사의 이대제자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광천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마, 마교입니다.”
“뭣이?”
“숭산 밖 백여 리 앞에 마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이냐?”
“개방에서 전해 온 소식입니다.”
“으음!”
개방의 정보라는 말에 광천이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하오문과 더불어 가장 믿을 수 있는 정보망을 갖춘 곳이 바로 개방이었다. 개방이 그렇게 말했다면 분명 사실일 것이다.
평화를 되찾는 듯했던 장내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랭해졌다. 멀게만 느껴졌던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
더 이상 책임 소재를 두고 다툴 때가 아니었다. 위기 앞에서 그들은 뭉쳐야 했다.
광천이 급히 남천산을 일으켰다.
“맹주, 그만 일어나십시오.”
“대사!”
“사죄는 공으로 상쇄하는 법입니다. 강호는 맹주의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남 모, 목숨을 걸고 마교를 물리치겠습니다.”
남천산이 광천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교가 내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구나.’
안도감이 드는 한편으로는 처량하기도 했다.
처음 무림맹주가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의기가 가득했었다. 마교의 위협을 물리치고 중원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신념도 있었다. 하지만 군사 남궁창과 신경전을 벌이며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다 보니 어느새 그 역시 속물이 되어 있었다.
의기가 가득하던 젊은 무인은 풍진 바람에 닳고 닳아 노회한 무인이 되었고, 결국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남천산은 맹주직에 연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에겐 남은 것은 오직 맹주라는 허울 좋은 직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남천산은 알고 있었다.
***
상한천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을 무심히 바라봤다.
중원 오악 중 하나인 중악(中岳), 즉 숭산이었다. 숭산에는 천하 무림의 태두인 소림사와 무림맹이 공존하고 있었다.
악양의 본거지를 잃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무림맹은 차치하고라도 소림사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숭산은 위대해 보였다.
“드디어 이곳까지 왔는가?”
중원의 무인들이야 언제든 들를 수 있는 곳이 숭산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올 수 있고, 개방된 산문을 통해 마음껏 소림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산문은 유독 신교에만은 굳게 닫혀 있었다.
불문인 소림은 신교를 부정했다.
그들이 믿는 신인 명존을 거짓된 이로 규정했다.
마교가 사람들의 뇌리에 사교라는 인식이 박힌 것은 그런 소림사의 적대적인 태도가 영향이 컸다.
다른 이들은 쉽게 찾아오는 이곳이 신교도들에겐 너무나 멀고 험했다. 그래서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무려 수십 년이나 걸렸기 때문인지 몰라도 냉철하기만 하던 상한천의 얼굴이 약간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소림사만 무너트리면 중원은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에 빠질 것이다.”
세력이야 무림맹에 더 클지도 모른다. 실제 중원의 수많은 문파와 인물 들이 모인 무림맹이 전력 면에서는 소림사를 월등히 앞섰다. 하지만 상한천은 오히려 소림사가 더욱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군사.”
낯익은 음성과 함께 웬 노인이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노인을 알아본 상한천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상한천이 이 정도로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노인의 이름은 위강휘였다.
호교원의 원주이자 유령마제라는 별호로 불리는 절대의 고수. 그라면 상한천의 예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위강휘의 등 뒤로 수십여 명의 노인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도를 발산하는 이들은 바로 호교원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상한천의 명을 받고 무당파를 초토화시키고 오는 길이었다. 상처 입은 자도 있었고, 죽어서 함께 오지 못한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상실감보다는 소림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고양감이 가득했다.
그들 역시 상한천만큼이나 소림사에 오기를 고대했다.
위강휘가 그들을 대표해 말했다.
“소림사는 우리 몫일세. 그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네. 자네는 무림맹에 집중하게.”
“알고 있습니다.”
“명만 내려 주게. 우리는 언제든 소림사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네.”
위강휘가 흥분을 참기 힘든지 자꾸만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것은 다른 호교원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소림사였지만, 오히려 그들은 투지를 느끼고 있었다. 소림사만 무너트리면 신교 천하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상한천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여러분이 가장 앞에 서시게 될 겁니다.”
“그럼 무엇을 망설이는가? 어서 명을 내리지 않고.”
“먼 길을 오느라 모두가 지쳤습니다. 지금은 쉬면서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으음!”
“허나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겁니다.”
상한천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벼락을 떨어트리기 위해 하늘은 한참이나 힘을 모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응축된 힘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번 전쟁 또한 그렇게 될 터였다.
상한천은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는 짙은 혈향을 맡았다.
‘지금 바람이 지나가면 새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