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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51화 (4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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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화 1장. 원한만이 켜켜이 쌓여 갈 뿐이다(1)

시뻘건 고깃덩이가 날아와 원회상의 발치에 나뒹굴었다.

“끄으으!”

마치 가죽 부대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고깃덩이에게서 흘러나왔다. 그제야 원회상은 고깃덩이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인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십검(十劍)?”

혈월십검, 그중 가장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가 바로 십검이었다.

비록 말석이라고는 하지만 실력은 첫째인 일검에 뒤지지 않았다. 강호 어느 문파에 가도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최절정의 무인이 바로 십검이었다. 그런 무인이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는 사실이 마치 거짓처럼 보였다.

원회상의 시선이 십검이 날아온 곳을 향했다.

여느 곳과 다름없는 평범한 객잔이었다. 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객잔 중의 하나였다. 평상시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만큼 허름한 곳이었지만, 원회상은 객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냐?’

무언가 저 안에 있다.

혈월십검 중 한 명을 단숨에 짓이겨 버린 존재가.

고깃덩이처럼 짓이겨진 십검의 숨이 끊어졌지만, 원회상은 그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신경과 감각이 객잔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원주님.”

혈월십검이 분분히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의 시선 역시 원회상이 바라보고 있는 객잔을 향해 있었다. 뻥 뚫린 객잔의 벽을 보는 순간 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겨울도 아닌데 갑자기 오한이 느껴졌다. 손끝이 저릿하고, 등골이 오싹했다. 혈월십검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이래 처음으로 느끼는 강렬한 위기감에 그들의 눈에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평상시라면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벽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들의 발걸음은 대지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아교로 발과 대지를 붙여 놓은 것처럼 말이다.

“무슨?”

“큭!”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츠으으!

뻥 뚫린 구멍 안에서 역한 노린내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집어삼켰기에 저렇게 역한 숨결이 흘러나오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얼굴조차 보지 못한 미지의 존재에게 압도당했다.

“누구냐?”

그 순간 원회상이 살기 어린 음성을 토해 냈다.

그는 상인이었다.

본능적으로 이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의 기세에 밀리면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목소리부터 높인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잠시 위축되었던 혈월십검의 정신을 일깨웠다.

혈월십검이 서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에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사검과 오검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객잔의 구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혈월십검 중에서도 가장 임기응변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안에 어떤 위협이 도사리더라도 자신의 몸 하나는 충분히 지켜 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라면 안에 있는 자의 정체를 충분히 밝혀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혈월십검은 여차하면 안에 뛰어 들어갈 준비를 한 채 사검과 오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검과 오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그 순간이었다.

콰득!

섬뜩한 파골음이 안쪽에서부터 들려 나왔다.

“뭐야?”

“사검, 오검. 대답해!”

밖에 있던 혈월십검이 안에 들어간 자들을 불렀지만,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혈월십검은 물론이고, 원회상도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그때였다.

스륵!

갑자기 묘한 소성이 객잔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무언가 바닥을 끄는 듯한 그 소리는 묘하게 원회상과 혈월십검의 신경을 거슬렸다. 마치 조그만 갈고리로 신경을 긁는 것처럼 아파 왔다.

쿵!

묘한 진동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간 원회상과 혈월십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강호의 전설 한 자락이 떠올랐다.

대지에 발을 끄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반대편으로 달려가라. 권마가 죽음을 몰고 오는 소리일지니.

“설마?”

“권……마?”

그때 어둠 속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장포를 입은 남자가.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깊은 눈동자를 본 순간 그들은 상대가 짐작하던 그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는 바로 담호였다.

그의 등 뒤로 방진보와 기산월 등이 보였지만, 원회상 등은 미처 그들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들의 이목과 모든 감각을 담호가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담호가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담호라는 인간에게서 흘러나오는 잔향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객잔 안으로 들어갔던 사검과 오검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뻔했기 때문이다.

원회상이 눈을 부릅뜬 채 담호를 노려봤다.

“네가 어떻게? 설마 이 습격도 네가 계획한 것이냐?”

상황이 절묘해서 담호가 의심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담호는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원회상이 입술을 질겅 깨물며 자신을 호위하고 있는 혈월십검을 보았다.

강호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자부했던 혈월십검이었다. 막대한 영약과 수많은 비급이 그들에게 들어갔다. 그렇게 소요된 황금이 수백만 냥에 이를 정도였다.

혈월십검은 그가 황금으로 키워 낸 고수였다. 그런 고수들이 담호 단 한 명을 상대로 위축된 모습을 보자니 화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권마. 거래를 제안하마.”

“…….”

“신화상단이 가지고 있는 황금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 그러니 적대감은 거두고 내 밑으로 들어오거라.”

“…….”

“계집, 재물, 영약, 비급, 말만 하거라. 내 억만 냥을 써서라도 구해 줄 테니. 나와 손을 잡으면 너는 지금보다 몇 배나 더 강해질 것이다.”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천하제일의 재력을 지니고 있는 신화상단이었다. 원회상은 신회상단의 주인이었고, 자신의 호언장담을 현실로 이뤄 줄 힘을 갖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의 제안을 거절했던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처음엔 거절했을지 몰라도 두 번째에도 거절했던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의 몇 곱절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물량 공세에 당할 장사가 없다는 것이 원회상의 지론이었다. 그렇게 신화상단을 키워 왔고, 결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원회상은 초조한 눈빛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보통은 첫 번째 제안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담호의 눈빛엔 그 어떤 감정의 편린도 담겨 있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갑고, 어둠처럼 깊은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원회상은 자신의 제안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담호의 마음을 절대 흔들 수 없을 거란 사실도 말이다.

“놈을…… 죽여랏!”

순간 그의 입에서 살기 어린 음성이 토해져 나왔고 혈월십검이 움직였다. 비록 담호에게 위축되어 있다고 하지만 혈월십검은 강호 최고 수준에 근접한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익힌 무공 역시 당금 강호의 최정상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쉬쉬쉭!

그들이 휘두른 검이 매섭게 공기를 가르며 담호의 숨통을 노렸다.

일곱 명이 펼치는 합격진은 놀라울 정도로 정묘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마치 합격진의 교본을 보는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엔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담호는 그들의 공격에서 그 어떤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

비급대로 수련하면 분명 강해질 수 있었다. 거기에 영약까지 더해지면 강해지는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다. 이들은 그렇게 강해진 자들이었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곱게 자라난 화초 같은 무인들. 일반적인 무인이나 어중간한 자들에겐 큰 위협이 될 수 있겠지만, 담호처럼 전장에서 스스로를 단련한 무인에겐 그 어떤 위기감도 줄 수 없었다.

쿠우우!

담호의 몸 주위로 가공할 인력이 발생해 모든 것을 끌어당겼다.

“큭! 뭐야?”

“이게 무슨?”

가공할 인력의 개입에 그들이 펼쳐 낸 검로가 제멋대로 바뀌었다. 만일 그들이 조금 더 많은 경험이 있었다면 임기응변으로 대응했을 테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무시무시한 별호나 무공 수위에 비해 그다지 많은 실전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익숙했던 검로가 바뀌자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생과 사를 갈랐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담호가 파성추를 펼친 것이다. 그 후폭풍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후두둑!

사방으로 육편이 날아가고, 피보라가 비산했다. 피로 물든 뼛조각이 암기처럼 튀었다.

“크아악!”

“컥!”

근처에서 싸우던 무인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부서진 육편과 뼛조각이 무서운 흉기가 되어 그들의 몸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 모든 참극이 파성추 한 방으로 일어났다.

순식간에 일곱 명이나 되는 검객을 분쇄했지만 담호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이 왼발을 축으로 팽이처럼 돌았다. 그러자 등 뒤에서 달려드는 원회상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양손엔 붉은 기운이 유형화되어 있었다. 수강(手罡)이었다.

전의를 잃은 시점에서부터 혈월십검은 미끼에 불과했고, 진정한 공격은 원회상의 몫이었다.

비록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신화상단을 이끌어 가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그 역시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그것도 지고한 수준까지 익혔다.

수라무영수(修羅無影手).

마교의 비고에 잠들어 있던 비전의 수공(手功)이었다. 순수한 파괴력만으로는 마교의 수공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극강의 무공이었다. 원회상은 수라무영수를 대성했다.

담호와 정면으로 대결한다면 승부를 자신할 수 없었지만, 기습이라면 자신에게 승부의 추가 기울어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혈월십검을 희생시키고 기습을 한 것이다.

담호가 원회상의 기습을 감지했을 땐 수라무영수로 만든 강기가 가슴에 격중 하기 직전이었다.

“끝이다.”

원회상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아무리 권마라고 할지라도 가슴에 수강이 격중 되고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천하의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권마를 자신의 손으로 잡는다는 희열에 절로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우우웅!

그때 갑자기 담호의 몸이 떨리면서 형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직후 원회상의 수강이 담호의 가슴에 격중 했다.

“…….”

순간 원회상이 눈을 크게 치떴다. 수강으로 가슴을 후려쳤으면 분명 손에 느낌이 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허전했기 때문이다.

원회상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담호를 바라볼 때였다.

쩌엉!

갑자기 아찔한 충격과 함께 그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갔다. 코는 뭉개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눈에선 초점이 사라졌다.

원회상이 비칠거렸다.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자신의 수강이 담호의 가슴에 격중 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충격을 받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유를 말이다.

수강이 격중 되기 직전, 담호는 방패를 펼쳐 대부분의 충격을 상쇄했다. 만일 원회상의 수준이 더 높았거나, 실전을 많이 경험했다면 담호가 방패를 펼치는 순간 다음 수를 미리 준비했을 것이다.

그도 혈월십검처럼 비급과 영약으로 수준을 끌어올린 무인이었다. 실제로 직접 싸우는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었다.

단양타로 원회상의 정신과 육체를 날려 버린 담호가 무섭게 쇄도했다. 충보를 펼친 것이다.

아찔한 의식 중에도 원회상이 양팔을 교차해 상체를 보호했다. 강호에 알려진 담호의 성명절기인 파성추를 막기 위해서였다.

콰아아!

그 순간 담호의 오른발이 벼락처럼 튀어나와 그의 복부에 작렬했다.

“끄어어!”

원회상의 입에서 기괴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복부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때문이었다.

잠시 몸을 부들부들 떨던 그가 고개를 숙여 복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복부를 꿰뚫고 있는 담호의 오른 다리가 보였다. 다리가 마치 창처럼 그의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독행류의 독문 각법인 충각(衝脚)이었다.

충보와 합쳐져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충각은 무소의 뿔처럼 치명적인 위력을 자랑했다.

“이럴…… 수가!”

원회상이 손을 뻗어 담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손에 힘이 빠져 더 이상 뻗을 수가 없었다.

눈이 흐릿해지면서 세상 모든 것이 뿌옇게 보였다.

그 중심에 담호가 있었다.

“악……귀 같은…….”

원회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나 억울했다.

젊은 시절 그렇게 고생을 해서 오늘날 천하제일의 상단을 일궈 냈고, 마교를 열심히 지원해서 오늘날의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제 마교의 세상이 열렸는데, 이렇게 자신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세상에 혼자 남겨질 딸이 눈에 밟혔다.

“저주할 것이다. 죽어서도 네놈을…….”

퍼석!

순간 원회상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허우적거리다가 쓰러지고 담호의 무심한 모습이 드러났다.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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