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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52화 (4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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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화 1장. 원한만이 켜켜이 쌓여 갈 뿐이다(2)

“이것 참…….”

기산월이 눈앞에 펼쳐진 참극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모신 주군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자비한 손속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펼치는 손속과 독심이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무공을 고강한 경지로 익혔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잔혹하게 펼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대체…….”

오랫동안 무간지옥에 갇혀 인성이 마모되었다고 생각한 기산월에게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우리만큼 섬뜩했다.

잠시 싸움이 멈췄다.

순식간에 주인을 잃은 신화상단의 무인들도, 습격한 무인들도 싸움을 멈추고 담호를 바라봤다.

“궈, 권마.”

“어떻게?”

피아를 막론하고 반응은 똑같았다.

불신과 경악,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담호는 신화상단의 무인은 물론이고, 기습한 무인들까지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담호는 그때까지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중인들을 더욱 공포스럽게 했다.

침묵의 살인자이자 감당할 수 없는 재앙 같은 존재.

그들의 눈에 비친 담호가 그랬다.

갑자기 나타나 신화상단의 수장이자 마교의 외원주인 원회상을 죽였다. 신화상단으로서는 길을 잘 가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쿵!

담호가 그들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 발소리가 유달리 강렬하게 그들의 가슴을 자극했다. 특히 신화상단의 무인들이 받는 심적 충격과 공포는 어마어마했다.

‘죽는다.’

그들은 담호의 모습에서 자신들이 죽는 환상을 봤다. 혈월십검처럼 몸이 분시 되고, 난도질 되는 모습에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발작하듯 담호에게 달려들었다.

상대하던 무인들을 내버려 두고 담호를 향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부나방 같았다.

“휴!”

그 순간 기산월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나섰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주군인 담호가 싸움에 휩쓸렸으니 자신도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기산월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런 기산월의 주위로 갑자기 운무가 발생했다.

그의 뒤에 있던 방진보와 남궁 형제가 그 모습에 눈을 크게 치떴다. 운무는 순식간에 일대를 뒤덮었고, 담호에게 달려들던 신화상단 무인들도 가뒀다.

그 순간 기산월이 염원(念願)을 간절히 담아 한마디를 내뱉었다.

“빙결(氷結)!”

쩌저저적!

순간 새하얀 운무에 냉기가 서리더니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아울러 운무 속에 들어온 신화상단의 무인들도.

제일 먼저 옷이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피부와 머리 위에도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크윽! 뭐야?”

“사, 사술(邪術)이다.”

신화상단의 무인들이 기겁하며 내공을 끌어 올려 냉기에 대항했다. 하지만 냉기는 순식간에 그들의 체내에 침투해 피를 얼렸다. 피가 얼어 만들어진 좁쌀 같은 얼음은 혈관을 떠돌아다니다가 심장으로 들어가는 큰 혈관 안에서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크어억!”

“우욱!”

냉기에 노출된 무인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들의 안색은 서리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심장으로 통하는 혈관이 얼어붙었으니 혈액이 공급될 수가 없었다. 잠시만 멈춰도 죽음에 이르는 장기가 바로 심장이었다. 운무에 노출되었던 수십 명의 무인들이 바닥을 나뒹굴며 괴로워하다가 이내 심장이 멈춰서 죽었다.

전신에 한 겹의 서리가 내려앉은 그들의 주검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으으!”

“이럴 수가!”

천만다행으로 운무를 피한 신화상단의 무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살아 숨 쉬던 동료가 순식간에 얼어 죽는 광경을 본 그들의 정신은 정상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혈관이 막혀 죽은 것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얼어 죽은 것으로 보였다.

괴물 같은 무력을 지닌 담호에 기괴한 사술을 쓰는 기산월까지 더해지자 그들은 전의를 잃었다.

“사, 살려 줘!”

“우아악!”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주했다.

신화상단을 습격했던 무인들은 망연히 서서 그들이 도주하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들도 신화상단의 무인들처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단지 담호와 기산월이 자신들까지 공격을 할 것 같지 않기에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다.

“쿨럭!”

그때 기산월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피를 토해 냈다.

“괜찮아요?”

방진보가 급히 기산월을 부축했다. 기산월이 방진보의 어깨에 기대 억지로 웃었다.

“이거 아직 어설픈 법술을 쓰려니 반발이 만만치 않네요.”

“대체 무슨 법술이기에…….”

“팔한지옥술(八寒地獄術)이라는 겁니다. 제대로만 완성하면 대량살상이 가능하지만, 보다시피 부작용이 커서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펼치는 것을 권장하진 않습니다.”

기산월의 설명에 방진보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운무에 집어삼켜진 삼십여 명의 무인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한데 이마저도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완성되었을 때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라면 내공을 이용해 몸에 침투한 냉기를 몰아내 버릴 수 있겠지만, 평범한 무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일반 무인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기산월이 펼치는 법술이 더욱 위력적이었다.

무간지옥이라는 공간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왠지 모르게 섬뜩했는데, 이렇게 법술을 펼치는 모습을 보니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휴!”

잠시 시간이 흐르자 기산월이 본래의 신색을 회복하고 방진보에게 기대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거리는 정리된 이후였다.

신화상단의 고수들은 희생자만 남긴 채 퇴각했고, 거리엔 그들을 기습했던 무인들만 남아 있었다. 이 정도라면 승리를 자축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지만, 누구 한 명 기뻐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담호 일행을 공포가 담긴 시선으로 바라봤다.

누구 한 명 감히 담호 일행에게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쭈뼛이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던 이들 중에 한 명이 겨우 용기를 내어 담호에게 다가왔다.

“저, 저는 소림사의 속가제자인 하충호입니다. 다, 담 대협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담 대협 덕분에 적들의 보급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담 대협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신화상단을 습격했던 무인들이 일제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거리에 그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담호는 말없이 그들을 바라봤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 중 강호에 이름이 알려지거나, 무공이 특출하게 강한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생존 확률보다 죽을 가능성이 더 큰 기습 작전에 기꺼이 참여했다. 실제로 그 잠깐 사이에 죽은 이들이 생존한 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어떤 이들은 저들을 두고 만용으로 무리한 작전을 펼쳤다고 욕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저렇게 무모한 자들의 용기가 하나 둘 모여 거대한 강호를 지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했어.”

담호는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섰다. 그러자 살아남은 무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냉혹하기로 천하에서 첫손에 꼽히는 담호가 해 주는 칭찬이었다. 그의 한마디 말만으로도 그들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긴장감과 피로가 싹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 방진보가 앞으로 나섰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혹시라도 놈들이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이곳을 수습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서 시체를 치우고 곡식을 다른 곳으로 옮기죠.”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 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무인들은 거리에 널브러진 시신을 모두 치우고, 곡식을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마교에 보급되려던 식량은 무림맹과 하남성의 무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권마 담 대협을 직접 보다니. 난 정말 오줌을 싸는 줄 알았어.”

“휴우! 누가 아니라는가? 그런 위압감이라니, 정말 살벌하더군. 왜 천하의 많은 고수들이 그분에게 추풍낙엽처럼 날려 갔는지 알 것 같아. 주먹질 한 방에 최절정의 고수들이 아예 난도분시를 당하다니. 차마 꿈에 볼까 끔찍하더군.”

시신과 곡식을 옮기면서도 무인들은 담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호를 처음 봤기에 느끼는 충격은 더욱 컸다.

“그래도 다행일세. 담 대협이 적이 아니라 우리 편이라서.”

“동감일세. 그분이 적이었다면 정말 어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무인이 몸을 부르르 떨자 다른 무인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만큼 그들이 직접 목도한 담호의 무위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법술을 펼치던 기산월의 존재 또한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에 관한 부분은 빼놓고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대화를 하는 사이 대부분의 시신이 치워지고 원회상의 시신만이 남았다. 머리를 잃은 원회상의 시신은 끔찍하기보다는 차라리 허망해 보였다.

원회상은 천하제일의 부를 소유했던 남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가진 엄청난 부를 부러워했고, 그 일부분만이라도 가지길 원했었다.

엄청난 금력에 마교라는 든든한 배후, 원하는 것은 뭐든지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의 최후가 이렇게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허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자의 시신은 어떻게 하지?”

“광야에 버려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세.”

“그래도 같은 인간인데.”

“마교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본보기로 보여 줘야 하네. 마교를 따르는 이들의 최후가 이렇게 허망하고 잔혹한 것이라는.”

“으음!”

누군가 꺼낸 의견에 많은 이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한두 명씩 그러자고 동조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마교를 향한 그들의 원한은 지독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배려마저도 해 줄 수 없을 만큼.

밖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를 들은 기산월이 한숨을 토해 냈다.

“어떻게 무간지옥이 이곳보다 더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과 인간의 싸움만큼 끔찍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같은 종끼리 이렇게 지독한 원한을 갖고 서로를 말살하려 싸울 수 있다니,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해할 필요 없어.”

“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

담호가 본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짐승도 인간처럼 동족을 살상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족 살상마저 서슴지 않는 존재를 어찌 선하다 할 수 있을까.

담호의 눈가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엔 수많은 상념이 교차하고 있었다.

***

원회상과 신화상단 무인들의 시신은 광야에 버려졌다.

들개와 까마귀가 그들의 시신을 뜯어 먹어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원회상의 시신을 수습했다. 흩어진 살점, 뼛조각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모두 수거해 갔다. 그렇게 수습된 시신은 원설화에게 전해졌다.

“으아아악!”

아비의 처참한 시신을 본 원설화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혼절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그녀는 깨어났다 기절했다를 반복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녀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늘같이 높고 굳건하게만 보였던 아비였다. 원설화는 세상에서 아비 원회상을 가장 존경하고 따랐다.

그녀에게 있어 원회상은 교주보다 더 높고 든든한 존재였었다. 그런 아비가 처참한 시신으로 돌아왔으니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이 오히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가 제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의 일이었다.

“누구야? 아버지를 이리 만든 것이.”

“그게…….”

“말해!”

“권마라고 합니다.”

“권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손가락 하나, 살점 하나 모조리 씹어 먹어 버릴 거야.”

“아가씨!”

“호호! 내 아비를 죽인 자를 내가 그냥 둘 것 같아? 내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그를 죽일 거야. 그와 연결된 모든 것들까지.”

원설화의 눈에 원독의 빛이 가득했다.

아비를 잃은 여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복수 일념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숭산의 마교 전력에 보내기로 했던 곡식들이 사라졌지만 그녀는 하등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깟 곡식보다는 아비의 복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상단의 가용 인원을 모조리 소집해.”

“아가씨?”

“당장!”

“알겠습니다.”

수하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원설화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웠다. 원한에 눈이 먼 여인은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벌이기에.

그는 원설화가 저지르는 일이 마교에 누가 되지 않기만을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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