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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56화 (45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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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화 2장. 욕망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3)

누군가 빛을 발하면, 다른 누군가는 빛을 잃기 마련이었다.

초연운이 창룡신협이라는 별호를 얻으며 강호의 새로운 구성으로 떠올랐을 때, 무림맹주인 남천산은 이제까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권위를 상당 부분 잃게 됐다.

“크윽!”

남천산은 방 안에서 홀로 고독을 곱씹고 있었다. 평소라면 수많은 이들이 그의 곁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있었다.

무림맹의 수뇌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남천산이 지는 해라는 사실을.

어떻게 겨우 맹주직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권위와 위엄이 사라진 남천산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굳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애초 그는 세속의 권력에 크게 집착한 적이 없었다. 신창(神槍)이라는 어마어마한 별호를 얻었음에도 강호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무림맹의 맹주가 되었다. 강호의 변방에서 단숨에 중심이 된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무림맹의 맹주라는 것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볼 만한 엄청난 명예였다. 남천산은 무림맹의 맹주가 주는 명예에 취했다.

마치 달콤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강호의 군웅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랐고, 이전에는 감히 똑바로 볼 수 없었던 거대 문파의 수장들이 눈치를 봤다.

이런 것이 권력의 힘인가 싶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도 모르게 권력에 취했다. 그래서 군사였던 남궁창을 견제했고, 자신이 가진 한 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러다 적경천의 꼬임에 넘어가 전대 무인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굳건한 성을 쌓았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을.

“하지만 모든 것이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했구나.”

기반이 든든하지 못한 모래성은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지금 남천산의 모습이 딱 그 지경이었다.

남천산은 들고 있던 술잔을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독주가 흘러갔다. 목구멍이 화끈한 것이 마치 불이 난 것 같았다.

“제기랄!”

혼자라는 게 싫었다.

강호에서 한발 물러나 있을 때 그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았지만, 이젠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이대로 무너질 줄 아느냐? 나는 반드시 맹주의 권위를 되찾을 것이다. 수많은 군웅들을 이끌고 마교도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사에 남천산이라는 이름 석 자가 영원히 남게 할 것이다.”

“아니, 자네는 그럴 기회가 없을 걸세.”

그 순간 낯익은 음성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순간 남천산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분명 이 방 안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당연히 다른 누군가가 있을 수 없었다. 만일 누군가 이곳으로 왔다면 분명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왔다면 말이다.

그 말은 곧 목소리의 주인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곳에 들어왔음을 뜻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누군가 방 안에 들어올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고.

탕!

“누구냐?”

그가 술잔을 탁자에 내리치며 일어섰다. 그러자 전방에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남천산의 턱수염이 푸들거렸다. 그의 눈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적경천!”

뼈까지 아득아득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존재, 바로 천도왕 적경천이었다. 그에게 결사대를 조직하게 만들어 나락에 떨어지게 만든 그 저주스러운 이가 태연하게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적경천이 혀를 찼다.

“허! 이젠 선배라고 부르지도 않는 건가?”

“감히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이곳이 어디라고 그 낯짝을 뻔뻔하게 드러낸 건가?”

“왜, 내가 오지 못할 곳이라도 온 건가?”

“닥치시오!”

남천산의 입에서 대번 노성이 터져 나왔다. 분노하는 그의 모습에서 선배에 대한 예의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남천산의 모습에 적경천이 혀를 찼다.

“쯧! 자네는 보기보다 속이 좁군.”

“어떻게 당신이?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믿었는데.”

“나도 자네를 무척이나 아꼈다네. 그래서 충고를 아끼지 않고 해 주지 않았던가?”

“결사대를 책임진다 하지 않았소?”

“그랬지! 그래서 내 동료들을 함께 보내지 않았는가?”

“그럼 왜 이 지경이 되었소? 그 젊은 영재들이 몰살을 당하다시피 했소.”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네.”

“뭐요?”

“쉽게 말해 불가항력이었단 말이네. 거기까지는 나도 어찌할 수 없네.”

적경천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 모습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남천산의 이성을 날려 버렸다.

“이놈!”

남천산이 적경천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은빛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그에게 신창이란 별호를 얻게 만든 애병이었다.

촤라락!

순간적으로 그의 창이 수십 자루로 분열했다. 환영창(幻影槍)이라는 절기였다.

무림맹의 맹주답게 그의 창술은 고강했다. 피할 틈 따윈 보이지 않았고, 적경천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순식간에 남천산의 창이 적경천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래도 적경천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앙!

“크윽!”

남천산의 창이 튕겨져 나가고, 그 자리에 검은 방립과 피풍의를 눌러쓴 괴인이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뭐, 뭐냐?”

남천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창을 움켜쥔 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괴인이 창을 튕겨 낸 충격으로 호구가 찢어진 것이다.

어찌나 강렬한 충격을 받았는지 창을 쥔 손바닥이 아직까지 찌르르 울리고 있었다.

괴인의 등 뒤에서 적경천이 미소를 지었다.

“악몽(惡夢)이지.”

“악몽?”

“모두의 악몽.”

순간 괴인이 남천산을 향해 쇄도했다.

그런 괴인의 전신에 기이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윽!”

남천산이 기겁하며 창술을 펼쳤다.

쿠와아앙!

굉음과 함께 남천산이 머물고 있던 맹주부가 무너졌다.

폭풍이 무림맹에 휘몰아쳤다.

“뭐, 뭐야?”

“무슨?”

맹주부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갑작스러운 난리에 기겁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거대한 맹주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먼지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누군가가 튕겨져 나왔다.

“헉! 맹주님!”

“이럴 수가!”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된 이가 바로 무림맹주 남천산임을 알아보았다. 정신을 잃은 남천산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기식이 엄엄했다.

“정신 차리십시오, 맹주님.”

“맹주님!”

무인들이 안아 들었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창을 쥐었던 오른손은 부러져서 덜렁거리고 있었고, 가슴은 커다란 쇠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안쪽이다.”

“무슨 일인가?”

맹주부의 변고를 알아챈 무인들이 안쪽으로 달려왔다.

그들 중에는 초연운도 있었다.

초연운은 초인적인 안력으로 무너진 맹주부 잔해 뒤쪽으로 몸을 날리는 인영 둘을 발견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남천산을 저 지경으로 만든 흉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멈춰랏!”

초연운은 남천산을 지나쳐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취운룡, 아니 창룡신협인가?”

적경천이 혀를 찼다.

설마 이 시점에 초연운이 달려올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초연운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초연운은 감히 그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절대고수로 성장해 있었다.

그는 초연운을 떨쳐 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어쩔 수 없군.”

그가 괴인을 향해 눈짓을 했다. 그러자 괴인이 방향을 바꿔 초연운을 향해 달려갔다.

콰아아!

괴인의 전신에서 강기가 회오리쳤다.

마치 강기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했던 괴인의 무위에 초연운이 눈을 크게 치떴다.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초연운은 자신의 두 주먹을 믿었다.

팔황신권의 절초가 펼쳐졌다.

“챠앗!”

콰아앙!

강기와 강기가 부딪쳤다.

그 반발력으로 초연운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가 대지를 박차며 괴인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아직도 그의 몸속엔 미증유의 거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괴인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어느 한 방향을 노려보았다. 순간 초연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괴인이 보고 있는 곳엔 혈인이 된 남천산과 그를 돌보는 무림맹의 무인들이 있었다. 괴인은 그들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권강이 무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가 목숨을 잃을 터였다.

“제길!”

초연운은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그들 앞으로 이동한 초연운이 혼신의 힘을 다해 괴인이 날린 권강을 주먹으로 쳐 냈다.

콰아앙!

강기가 그의 코앞에서 폭발했다. 하지만 초연운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펼쳐 자신과 무림맹의 무인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아!”

“크윽!”

강기의 폭발을 지척에서 지켜본 무인들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초연운이 그들을 보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괘, 괜찮습니다.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초연운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가 강기를 막아서는 사이 괴인과 동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제기랄!”

초연운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괴인의 곁에 있던 동료의 얼굴을. 그는 천도왕 적경천이 분명했다.

“맹주님!”

“크흑!”

그 순간 무림맹 무인들의 오열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품에 안겨 있던 남천산이 끝내 절명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근래 들어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남천산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무림맹주였다. 그의 죽음이 주는 충격은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아미타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도대체!”

뒤늦게 소림사와 무림맹의 고수들이 달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무너진 맹주부와 남천산의 주검뿐이었다.

소림사의 방장인 광천의 얼굴에 참담한 빛이 떠올랐다. 그가 급히 초연운에게 다가왔다.

“아미타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대체 누가 남맹주를 죽였단 말인가?”

“천도왕입니다.”

“적 대협?”

“그렇습니다.”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아미타불! 어떻게 그럴 수가!”

광천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초연운의 말이었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대체 그가 왜 맹주를 죽였단 말인가?”

초연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괴인, 분명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어.’

온몸이 아직도 짜르르 울리고 있었다.

상대의 괴물 같은 강함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고 있지만, 직접 부딪친 그는 괴인의 강함을 누구보다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맞붙는다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괴물.

초연운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맹주의 죽음으로 더욱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 분명했다.

초연운의 걱정은 곧 사실이 되었다. 남천산의 죽음은 숨길 수 없었다. 너무 많은 목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천산의 죽음이 알려지자 무림맹과 소림사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나름 철옹성을 구축했다고 알려진 무림맹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들에겐 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무림맹과 소림사에서는 연일 비상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남천산의 죽음을 기점으로 천하는 더욱더 어지러워졌다.

훗날 사가들이 혈천대전(血天大戰)이라고 기록하게 되는 난세는 이렇게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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