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459화 3장. 난세는 영웅을 만들어 낸다(3)
괴인의 왼쪽 어깨가 퉁퉁 부운 채 덜렁이고 있었다. 탈골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보원은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괴인은 단순히 무공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육신은 이미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을 이루고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금강석처럼 절대 무너지지 않는 육체, 그래서 금강불괴라 불린다.
쉽게 무너지거나 부서질 것 같았으면 결코 금강불괴라는 단어로 불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 어떤 무인도 괴인의 몸에 상처를 만들거나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담호가 괴인의 몸에 큰 피해를 준 것이다.
“대체 저 아이는?”
소보원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담호의 옆구리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괴인의 어깨를 탈골시킨 대가로 일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부러진 갈비뼈가 살가죽을 뚫고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데도 담호는 전혀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크으으!”
괴인이 덜렁거리는 어깨를 멀쩡한 손으로 잡았다.
뿌드득!
그리고 억지로 끼워 맞췄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통에 신음이라도 내뱉었겠지만 괴인은 오히려 흉성을 폭발시켰다.
보통 사람이라면 괴인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그의 압도적인 기파와 살의는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담호는 예외였다.
까드득!
그는 오른 손바닥으로 옆구리를 눌렀다. 그러자 튀어나왔던 갈비뼈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지만, 담호는 오히려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웃는 것이다.
담호가 웃는 모습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가 처음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괴인의 정체는 몰랐다. 하지만 그의 무력은 담호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른 사람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혈로를 걸었다.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고, 하루도 죽음이 끊이지 않았다.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 갔지만, 반대로 신경은 점점 무뎌져만 갔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감성은 점차 마모되었고, 평범한 자극으로는 그 어떤 위기감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은 흉포할 뿐 아니라 강했다. 담호가 이제까지 상대한 그 어떤 무인들보다도 말이다.
단순히 무공이 강한 것만으로는 담호의 심장을 이렇게 격렬하게 뛰게 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담호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다.
지금 담호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장이 평상시보다 몇 배는 빠르게 뛰며 전신에 혈액을 공급하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롭게 벼려지고 감각이 최고조로 일어났다. 저 먼 곳에서 바닥을 기는 개미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이 격렬한 감각이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했다.
담호가 괴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괴인도 마주 걸어왔다.
쿠우우!
거대한 기운과 기운이 부딪치며 강렬한 기파가 발생했다. 소보원과 기산월이 기파에 밀려 주르륵 밀려났다.
소보원이 입술에 피가 나도록 힘껏 깨물었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담호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괴인을 상대로 저렇게 강렬한 투지와 존재감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쾅!
그 순간 담호와 괴인이 격돌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고, 살점이 찢겨 나갔다. 피가 튀기고, 공기가 터져 나갔다.
도저히 인간끼리의 싸움이라고 볼 수 없는 흉험한 싸움이 펼쳐졌다.
충보로 전진하고, 파성추로 공격했다. 오지암파경이 괴인의 가슴에 나선형의 경력을 인장처럼 틀어박았고, 단양타가 머리를 튕겨 냈다.
쾅! 쾅!
괴인의 주먹이 담호의 옆구리에 작렬하고 무릎이 복부에 찍혔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강기(罡氣)나 권기(拳氣)를 사용하지 않았다. 단순히 위력만 따진다면 강기를 사용하는 것이 몇 배나 강한데도 말이다.
두 사람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싸움 방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적어도 무림이란 세계가 형성되고, 무공이 체계화된 이후 절대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 이런 식으로 싸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소보원이 알기로는 그랬다.
그녀가 아는 절대고수의 싸움이란 이렇게 난폭하면서 야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런 식의 싸움을 경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야만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공방이 사실은 얼마나 고절한 무리를 품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절대지경에 오르고, 내공의 수발이 자유로운 무인일지라도 강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보통 사람들에겐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고, 소보원과 같은 절대고수들에게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담호는 그 짧은 시간마저 단축시키고자 강기공을 펼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괴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을 던져 싸우는 방식과 극단적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초식까지.
“형!”
뒤늦게 달려온 방진보와 남궁 형제가 담호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쾅!
담호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괴인의 슬격(膝擊), 즉 무릎이 머리에 작렬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즉사했을 충격을 받고도 담호는 순식간에 균형과 정신을 되찾았다.
츄화학!
고개가 튕겨 나간 방향으로 오히려 가속도가 붙었다. 왼발을 축으로 회전을 한 것이다.
콰지끈!
이번엔 담호의 슬격이 괴인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괴인의 갈비뼈가 송두리째 부서지는 느낌이 무릎을 통해 생생히 전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괴인은 수도로 담호의 어깨를 내리쳤다.
콰직!
담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깨의 근다발이 끊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단번에 왼쪽 어깨가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 오른팔이 남아 있었다.
쾅!
지근거리에서 파성추가 터졌다.
괴인이 가슴이 움푹 함몰된 채 쿵쿵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괴인의 입술을 비집고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단순한 내상이 아니라 내장이 파열되었을 때나 흘러나오는 검은 피였다. 그런데도 괴인은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서서 담호를 바라보았다.
언제 그렇게 사납게 날뛰었냐는 듯이 괴인은 담호를 조용히 바라봤다. 순식간에 광기가 삭제된 듯한 모습이었다.
“권……마.”
처음으로 그의 입이 열리고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그의 변화에 담호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
“나는…… 아직…… 깨어나…….”
그의 말이 뜨문뜨문 이어졌다. 음성이 너무 거칠고 나직해서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담호는 귀를 기울여 들으려 했다.
그때였다.
“안 돼!”
갑자기 거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적경천이 환상에서 빠져나와 소리를 친 것이다. 그러자 조금이나마 초점을 찾아가던 괴인의 눈동자에서 다시 생기가 사라졌다. 적경천의 음성이 그에게 펼쳐져 있던 사술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으으!”
괴인이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느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크읏!”
적경천이 당황해 괴인을 따라갔다. 담호는 이미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괴인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적경천은 괴인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기산월의 법술에 당해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겐 정신을 추스를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혼돈보다 괴인을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담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담호는 그들을 쫓을 수 없었다. 소보원이 남아서 담호를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보원 역시 전대의 이름난 고수였다.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담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막을 건가?”
“미안하구나.”
“그럼 비켜.”
“그럴 순 없단다.”
소보원이 거절하는 그 순간 담호가 그녀에게 쇄도했다. 예의 충보였다.
“아!”
충차가 되어 들이닥치는 담호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소보원이 자신이 모르게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럴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쾅!
소보원의 손바닥과 담호의 팔꿈치가 격돌했다. 소보원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충돌하는 순간 담호의 힘을 이용해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츄화학!
그때 담호의 몸에서 강렬한 인력이 발생해 그녀의 몸을 잡아 끌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소보원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콰앙!
파성추가 터졌다.
“커헉!”
소보원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담호가 그녀를 쫓았다.
대지에 낮게 깔린 채 날아오는 듯한 담호의 모습은 도저히 중상을 입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사나운 눈동자가 보였다. 살기로 범벅된 그 눈빛은 이제까지 소보원이 보았던 그 어떤 눈빛보다 무서웠다.
자신도 모르게 방어를 하려고 하던 그녀가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힘을 풀었다. 이제까지 굳어 있던 얼굴엔 옅은 미소마저 어려 있었다.
순간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담호가 주먹에 힘을 뺐지만 이미 늦었다. 쇳덩이 같은 그의 주먹은 이미 소보원의 복부에 커다란 구멍을 낸 후였다.
소보원은 거의 이십여 장을 뒤로 날아가 커다란 바위에 처박혔다.
“쿨럭!”
그녀가 피를 토해 냈다. 부스러진 내장조각이 핏속에 섞여 있었다.
담호가 소보원에게 다가갔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보원과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왜 그랬지?”
“그냥…… 지쳤으니까.”
소보원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고수들을 격살한 파성추였다. 그런 극악한 공격을 힘을 풀고 맞았기에 그녀에겐 살아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랫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헤맸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
“이제야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거야. 이제야 편해질 수 있어.”
“아직은 아냐.”
담호의 말에 소보원이 흐릿해지는 눈을 겨우 치뜨며 바라봤다.
괴인과의 격돌로 움직이기도 힘든 중상을 입었건만 담호의 눈엔 그 어떤 흔들림도 존재하지 않았다. 묵직한 그 눈빛이 소보원의 가슴을 압박했다.
“교……주가 누군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겠지?”
담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보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는 그와 비슷한 면이 참 많구나. 한 번 목표를 정하면 결코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그 맹목적인 집념까지. 그는 네가 생각하는 ‘그’가 맞다.”
“…….”
“그…… 맞……아! 그를…….”
소보원의 목소리가 잦아들다가 아예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숨이 끊어진 것이다.
담호는 석상처럼 움직임도 없이 한참이나 소보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생전에는 그다지 많이 웃지 않던 소보원이었다. 그녀는 죽어서야 비로소 자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유로워 보였다.
“휴우!”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방진보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소림사에서 몇 번 봤다고 가슴이 무거웠다. 그는 감히 담호에게 다가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멀리서만 바라봤다.
담호가 몸을 일으킬 때였다.
“주군!”
기산월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들을 놓쳤습니다.”
그는 담호를 대신해 괴인과 적경천을 추적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적경천 등을 추적했지만, 결국 내공이 달려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기산월은 죽은 소보원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그녀가 그곳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었군요. 휴우!”
기산월의 음성엔 소보원을 향한 원망이나 어두운 감정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담호의 시선이 기산월을 향했다.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은 기산월이 움찔했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더 나을 텐데 야속하게도 담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주군?”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됐나?”
그의 음성이 기산월의 양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