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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64화 (4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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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화 5장.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2)

담호의 전신은 피로 절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를 죽였는지 모르지만 지독한 혈향이 풍겨 나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초연운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세상에 단 한 명뿐인 그의 친구였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만으로도 가슴이 충만해져 왔다.

초연운이 입을 열었다.

“늦었군.”

“미안하다.”

“아니야. 이제라도 왔으니 됐어.”

담호의 말에 초연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 담호의 뒤쪽에서 방진보가 고개를 내밀었다.

“저도 왔어요.”

그는 바로 방진보였다.

순간 초연운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져 갔다.

“하하!”

상처 입고 지쳤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안심이 되었다.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몸이 비틀거렸다. 그러자 방진보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방진보만 온 것이 아니었다. 기산월이 남궁 형제를 보호하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주군과 그의 우정은 정말로 대단하구나.’

단지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담호의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관과의 싸움은 담호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운신하기 힘든 중상을 입고서도 그는 기꺼이 초연운에게 달려왔다.

자신에게는 저들과 같은 우정을 나눌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아쉽고, 또 부러웠다.

그때였다.

“감히 시건방을 떨다니.”

담호에게 무시당한 강위가 분노해 몸을 날렸다.

슈가악!

그의 검이 담호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위험…….”

초연운이 그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담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의 오른 손등이 마치 독사처럼 튀어 나갔다. 단양타였다.

쩌어엉!

손등과 강위의 검이 격돌했다. 그런데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강위는 놀라지 않았다. 담호와 같은 수준에 이른 고수라면 얼마든지 맨손으로도 날붙이에 비견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위의 검이 제이 식, 삼 식을 연이어 풀어냈다. 섬전마검이라는 별호처럼 벼락같은 속도와 위력을 가진 검초가 연거푸 담호를 덮쳐 왔다.

순간 담호의 손바닥이 공기의 결에 충격을 줘서 폭발시켰다. 단공벽을 펼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콰쾅!

강위가 펼친 검초는 단공벽에 막혀 주춤거렸다.

그 순간 담호의 신형이 쏘아졌다. 충보를 펼친 것이다.

쾅!

파성추가 터졌다.

“크윽!”

강위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파성추에 직격당하기 직전 간발의 차이로 검신을 들어 막았다. 덕분에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피했지만, 충격까지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

쿵! 쿵!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지만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십여 걸음이나 더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제야 충격이 조금은 가셨다.

핏물이 울컥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한가하게 내상을 다스릴 시간이 없었다. 담호가 악귀처럼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로 떡 진 머리가 사납게 흩날렸다. 그 사이로 피를 뒤집어쓴 얼굴이 보였다. 어디서 입은 상처인지 몰라도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눈빛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위 같은 절대고수가 놀라 헛숨을 들이킬 만큼 담호의 눈빛은 무서웠다.

쾅!

다시 한 번 파성추가 터졌다.

이번에도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담호의 주먹을 막아 낸 검이 마치 활처럼 휘었다.

쩌저적!

순간 그의 검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번져 갔다. 연이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내구성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강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마교에서도 내로라하는 마병(魔兵)이었다. 강도와 예리함이 천하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마병이 담호의 주먹질 몇 방에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황당하다 못해 두렵게 만들었다.

그가 두려움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이 노성을 내질렀다.

“이놈!”

츄화학!

순간 그의 검에서 둥그런 환이 토해져 나왔다.

빛나는 구슬 같은 환은 바로 검강이 응축된 검환(劍丸)이었다. 검강이 응축된 만큼 파괴력 또한 훨씬 뛰어났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무려 다섯 개였다.

검환이야말로 강위가 가진고 있는 비장의 한 수였다.

퍼석!

검환을 발출한 대가로 검이 모래처럼 부스러졌지만 상관없었다.

쉬쉬쉭!

다섯 개의 검환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각기 다른 방향과 궤도로 담호를 향해 날아갔다.

“끝이다.”

강위가 소리쳤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본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검환의 위력은 절대적이었고, 또한 담호가 피할 모든 방위를 차단하고 있었다.

“피해!”

“안 돼!”

그 광경을 본 몇몇 무인들이 목에 피가 나도록 소리쳤다. 하지만 담호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쿠우우!

순간 그의 전신에 폭풍 같은 기류가 휘돌았다.

폭마경(暴魔勁)이 발동한 것이다.

그 상태 그대로 담호는 검환에 부딪쳤다.

콰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이 일어났다.

칼날 같은 기파가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반경 이십여 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뒤로 나가떨어졌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담호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저런 폭발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슈우우!

폭발을 뚫고 담호가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처참했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투성이인 육체에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했을 상처를 새로이 입고도 그는 강위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순간 강위는 두려움이 어떤 감정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무섭다.

살이 떨리도록 무섭다.

그것이 그 순간 강위가 느낀 감정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런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까지 싸운 상대는 그가 모두 고절한 검식 한두 가지만 보여 주면 알아서 위축되어 자멸하거나 지레 포기했다. 그 덕에 그는 손쉬운 승리를 할 수 있었다.

그와 대등하다고 알려진 상대와 싸울 때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은 강위의 명성에 위축되었고, 사나운 성정에 압도되어 굴복했다.

그 누구도 담호처럼 저런 눈빛으로 감히 그를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저건 도전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자 마음먹은 자의 각오였다.

그런 각오로 담호는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츄화학!

담호를 중심으로 가공할 인력이 발생해 강위의 몸을 끌어들였다. 강위의 몸이 속절없이 담호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파성추가 터졌다.

콰앙!

강위의 몸이 끌려온 속도보다 몇 배는 빠르게 튕겨 나갔다.

담호가 그런 강위를 따라붙었다.

목덜미를 틀어잡고 자신의 몸을 강위에게 밀착시키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담호는 용권풍이 되어 강위를 집어삼켰다.

지천격이 펼쳐진 것이다.

강위는 아찔한 부유감을 느끼며 눈을 크게 치떴다. 그런 그의 눈에 대지가 급속히 확대되었다.

“아, 안 돼!”

콰앙!

순간 그의 머리가 대지에 처박혔다.

“…….”

정적이 찾아왔다.

모두의 시선이 대지에 거꾸로 처박힌 강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강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터진 자가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상대는 강위였다.

섬전마검 강위.

마교가 자랑하는 사대군장의 일원.

일신의 무력만으로 천하를 아우른다는 그 절대의 고수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강위는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절대로!

그 비현실적인 광경은 소림사와 무림맹의 무인들에겐 환희를, 마교의 무인들에겐 절망을 안겨 줬다.

담호가 허리를 피며 몸을 일으켰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자 피로 물든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마치 피로 목욕을 한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저렇게 피로 물들 수 있는 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마……선.”

마교의 무인 중 한 명이 그런 담호의 모습을 보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파괴력은 무서웠다.

마교 진영 전체로 ‘마선’이라는 단어가 역병처럼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마선(魔仙).

신교의 전설에 나오는 숙적.

혈노가 만들어 낸 가공의 존재가 실체화되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음!”

장무경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와 어울려 치열하게 싸우던 해소월과 소천은 어느새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조금만 더 싸운다면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장무경의 관심 밖이었다.

장무경의 시선과 신경은 온통 담호에게 쏠려 있었다. 전장을 지배하는 그의 강렬한 존재감과 잔향이 장무경이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뜬금없이 나타나 순식간에 섬전마검 강위를 죽인 남자.

그의 가공할 무력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전율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담호는 중한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몸 곳곳에 난 상처는 절정고수라 할지라도 벌써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치명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뚝 서 있었고, 마교의 무인들은 그런 담호의 존재감에 압도되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것 같은 존재감과 장악력이었다.

소림사와 무림맹을 멸망시킨 마교의 무인들이 단 한 사람의 위용에 질려 꼬리를 만 꼴이라니.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쉽게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부인하고 싶지만 엄연히 직면한 현실이었다.

장무경은 더 이상 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꺾였다.

지금 이 상태로는 담호는커녕 무림맹과 소림사의 잔당에게마저도 밀리고 말 것이다.

장무경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목적을 이루기 직전이었는데, 담호 단 한 명에 의해 모든 것이 좌절된 현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허세다. 강위를 죽인 것이 놈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낸 거야. 놈에겐 더 이상 움직일 힘 따윈 없어.’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조차 담호를 향해 발이 선뜻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거부를 하는 것이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그 역시 담호라는 존재에게 위축된 것이 사실이었다. 일단 한번 위축되자 모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무경은 무서운 눈빛으로 담호를 노려봤다.

그의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뇌리 깊숙이 각인시켰다. 오늘의 수모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그의 각오였다.

마침내 담호의 모든 것을 각인시킨 그가 뒤돌아서며 외쳤다.

“모두 돌아간다.”

“…….”

그 어떤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장무경의 명령을 따랐다. 그 모습이 장무경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마교의 무인들은 동료의 시신들을 수습해 물러났고, 무림맹과 소림사의 젊은 무인들은 그런 그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마음 같아서는 이 기회를 살려 그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때였다.

담호는 말없이 그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장무경의 생각처럼 지금 그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철혈무신 이관과의 싸움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은 탓이었다.

그에겐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데도 무리해서 달려온 것은 이곳에 초연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연운이 담호에게 다가왔다.

“가세! 그들이 언제 마음이 바뀌어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답게 그는 담호의 몸 상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담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섰다.

“와아아!”

순간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무인들이 터트리는 환호성이었다. 담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엔 경외감이 가득했다.

기산월은 그 광경을 보며 기적이라 생각했다.

단 일인이 만들어 낸 위대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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