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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69화 (46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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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화 7장. 창천(蒼天)의 깃발 아래 영웅이 모인다(1)

일 남 이 녀가 소화산을 오르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와 등에 공작의 꽁지깃 같은 화려한 검갑을 차고 있는 남자, 그리고 면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신비한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거대한 남자에게서는 산악처럼 육중한 기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소화산을 올려다봤다.

“대단하군. 산 하나를 통째로 수련관으로 만들다니.”

거대한 남자는 한눈에 소화산에 만들어진 철혈지옥수련관을 알아봤다.

면사 여인이 약간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런 것이 중원 무림의 저력이란 거겠죠?”

“구심점이 확실하니까 가능한 거겠지.”

“하긴…….”

거대한 남자의 대답에 면사 여인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들을 따르고 있는 화려한 검갑을 차고 있는 남자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나 그들의 앞을 막았다. 소화산을 지키는 무인들이었다.

현소 진인을 안내해 주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하후명이 새로이 나타난 방문객들 앞으로 나섰다.

“누구시오? 이곳은 외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외다.”

세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눈엔 경계의 빛이 가득했다.

소화산은 중원 무림 최후의 보루였다.

이곳이 무너지면 무림엔 더 이상 희망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극도로 외인을 경계했다.

그때 공작의 꽁지깃처럼 화려한 검갑을 등에 찬 젊은 무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초 맹주를 만나러 왔소.”

“맹주?”

“창천맹의 맹주 초연운 대협 말이오.”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소?”

하후명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곳에 창천맹이 설립되었다는 것은 극비였다. 초연운이 창천맹의 맹주라는 사실 또한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소화산에 들어온 무인들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이 보안 유지였다. 아무리 세상이 대재앙으로 흉흉하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창천맹이 힘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마교가 무리를 해서라도 침공을 해 올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그들은 외인에게 비밀이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하후명의 뒤에 있던 무인들이 무기를 잡으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화려한 검갑을 차고 있는 남자가 양손을 들며 말했다.

“우리는 적이 아니오.”

“그걸 어떻게 믿지?”

“우리가 적이었다면 벌써 이 사실을 신교에 알렸겠지.”

“신교?”

순간 하후명이 눈을 빛냈고, 대답을 했던 화려한 검갑의 남자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서 마교를 신교라고 부르는 이는 딱 한 부류였다. 바로 마교에 속한 무인들뿐이었다. 적어도 무림의 무인들이라면 마교를 신교라고 부르는 짓 따윈 절대 하지 않았다.

촤앙!

하후명이 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등 뒤에 있던 무인들 역시 망설이지 않고 무기를 꺼내 방문자들을 겨눴다.

“마교도가 감히 이곳에 찾아오다니?”

“교주가 정찰을 하고 오라고 시켰더냐?”

무인들의 얼굴에 적의가 떠올랐다.

마교에 의해서 소림사와 무림맹, 그리고 각자의 문파가 짓밟힌 경험이 있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마교의 ‘마(魔)’ 자만 언급돼도 치를 떨 만큼 증오했다.

신교라는 단어를 꺼냈던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을 바라봤다.

순간 거대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 이름은 검율천이오. 초 맹주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 주시오.”

거대한 남자는 바로 검율천이었다. 화려한 검갑을 차고 있는 남자는 공작귀검 신무월이었고, 면사 여인은 마교의 성녀였던 음유경이었다.

검율천이 신분을 밝혔음에도 분위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닥쳐랏. 누가 마교도의 말을 들을 것 같으냐?”

하후명이 노성을 토해 냈다.

그의 얼굴은 적개심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후명의 사문인 장산파는 마교에게 짓밟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부와 동문을 잃었기에 마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이성을 잃었다.

하후명이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마교도들을 제압하라.”

“와아아!”

무인들이 변명할 여유도 주지 않고 검율천과 신무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휴우!”

검율천이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졸지에 창천맹의 무인들과 척을 지게 생겼다.

그가 신무월에게 말했다.

“상처는 입히지 말고 제압만 하거라.”

“예!”

신무월이 대답과 함께 공작검갑에서 검 한 자루를 빼 들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는 비약적으로 무공이 발전했다. 호교심공 상의 심득을 일부나마 이어받은 덕분이었다.

신무월의 전신에서는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세가 일어나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향해 달려드는 무인들은 추호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들도 지난 일 년 동안 목숨을 건 수련을 해 왔다. 거기에 마교를 향한 무한한 증오심까지 더해졌다.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었다. 마교도를 한 명이라도 죽여 길동무로 삼을 수 있다면.

무인들은 전력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다.

따다다당!

신무월의 검과 무인들의 무기가 격돌하며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후명을 비롯한 무인들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들이 펼치는 무공에는 지난 일 년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신무월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고수였다.

일 년 전에도 그는 절대의 반열에 올라서 있었다. 하후명 등이 감히 어떻게 비벼 볼 수준을 오래전에 벗어난 것이다.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신무월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검율천의 말처럼 상처 없이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닌 대화와 협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무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순간 대화와 협상은 물 건너간다. 그래서 힘든 싸움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악에 받쳐 목숨은 도외시한 채 전력으로 부딪쳐 오고 있었다. 이런 상대가 제일 난감했다.

카카캉!

연신 검과 검이 부딪치고,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들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초식을 교환했다.

하후명과 무인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격차가 너무 컸다. 신무월은 그들의 검을 모조리 튕겨 낸 후 점혈 수법을 펼쳤다.

“크윽!”

“컥!”

그들은 차례로 신무월에게 마혈을 제압당했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들의 얼굴에 수치심과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크윽!”

“제기랄!”

그들은 악을 쓰며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신무월은 독문의 점혈 수법을 사용했기에 해혈법을 알지 못하면 절대 풀 수 없었다.

하후명이 분루를 흘렸다. 적을 막지 못하고 제압된 것이 못내 분한 것이다. 검율천이 그런 하후명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정말 제대로 독기를 품고 있구나.’

소화산에 있는 무인들 전부가 이렇다면 정말 대단한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검율천은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신무월이 마지막 무인까지 제압할 때였다.

“침입자다.”

“쳐랏!”

소화산에 있던 무인들이 침입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신무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휴!”

신무월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점점 더 꼬여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콰앙!

굉음과 함께 대지에 균열이 가는가 싶더니 땅거죽과 암반이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일어섰다.

“헛!”

“뭐, 뭐야?”

기세좋게 달려들던 무인들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일어선 대지의 모습에 놀라 멈춰 섰다.

균열의 끝에 검율천의 발이 있었다.

대진각(大震脚).

발에 내력을 집중해 대지를 구르는 수법이었다. 일반적인 대진각은 절대 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검율천이기에 가능한 수법이었다.

우웅!

큰 상처를 입은 대지가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신무월을 향해 달려들던 무인들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투지도 어느 정도 격이 맞을 때나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나면 아예 덤벼들 엄두 자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창천맹 무인들의 상태가 그랬다.

검율천이 보여 준 일수는 그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경지의 것이었다. 이건 어떻게 감히 비벼 볼 수준이 아니었다.

검율천이 입을 열었다.

“괜히 이 이상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 나의 이름은 검율천, 창천맹의 맹주와 대화를 하고 싶다.”

그의 목소리에는 웅혼한 공력이 실려 있어 소화산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때였다.

“후! 누군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했더니 역시 당신이었군.”

누군가 창천맹의 무인들을 헤치며 걸어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검율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초 맹주.”

그는 바로 초연운이었다.

초연운이 차분한 시선으로 검율천과 동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당신, 검율천이라고 했던가?”

“역시 기억하고 있군.”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덕분에 목숨을 구했는데. 이거야 생명의 은인을 모셔 놓고 결례를 범했군. 미안하네.”

“아닐세! 연락도 없이 찾아온 우리가 오히려 미안하네.”

그들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담담하게 대화를 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수준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본래 용이 호랑이를 알아보는 법이었다. 그들은 능히 용호(龍虎)라 불릴 만한 무인들이었다.

초연운이 신무월에게 제압당한 무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이곳엔 어쩐 일인가? 호를 만나러 온 것인가?”

“아니, 자네를 만나러 왔네.”

“나를?”

초연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신무월에게 제압당한 무인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파파팍!

순간 격타음과 함께 무인들의 점혈이 풀렸다. 굳었던 몸이 풀리고 자유를 되찾은 무인들이 초연운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맹주.”

“죄송합니다.”

“그놈의 맹주라는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맹주라는 소리에 초연운이 손사래를 쳤다.

자신의 독문 점혈 수법을 너무나 쉽게 파해하는 초연운의 모습에 신무월이 놀랐다.

‘지난 일 년 사이에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했구나. 기연이 있었던 것인가?’

자신들은 성물에 숨겨 있던 무공을 익혀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했다지만 초연운은 무슨 기연을 얻었기에 이렇게 발전한 건지 이유가 궁금했다.

하후명 등의 점혈을 푼 초연운이 웃는 얼굴로 뒤돌아서 검율천의 눈을 바라봤다.

“그래, 무슨 일인가? 나를 찾아온 이유가.”

“협력!”

“협력?”

“그래! 협력하고 싶네. 창천맹과 신마련(神魔聯)이.”

“신마련?”

검율천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초연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신마련이 신교의 새로운 이름이 될 것일세.”

“내가 머리가 좋지 않아 이해할 수가 없군. 신마련이 신교의 새로운 이름이라면 우리가 왜 손을 잡아야 하지? 신교, 아니 마교는 우리의 적인데.”

“신마련은 나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일세. 신마련이 신교를 흡수할 것이네.”

“그러니까 자네가 마교를 흡수해 신마련이라는 이름으로 바꿀 거란 뜻이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정확하네.”

검율천이 담담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에 담긴 뜻도 담담하지는 않았다.

현 중원은 마교 천하였다.

마교의 위세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중원 무림의 그 어떤 문파도 감히 마교에 비할 수는 없었다. 무당파와 소림사, 그리고 무림맹마저 마교라는 거대한 파도에 무너졌다.

검율천은 그런 마교를 흡수해서 신마련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광오하다 못해 미친 자의 헛소리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초연운이 검율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검율천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봤다.

“…….”

잠시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검율천의 말이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기에 주위에 있던 사람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을 깬 이는 초연운이었다.

“어떻게 신교를 흡수하겠다는 것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창천맹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네.”

검율천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왜 우리가 신마련을 도울 거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뭐라고? 신마련이 마교를 흡수하면 우리의 적이 될 텐데 말이야.”

“그건 먼 훗날의 일이지. 먼 훗날의 일까지 벌써 걱정할 이유가 있는가? 신마련이 신교를 흡수하면 일단 중원 남부로 물러나겠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협력할 만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자네를 어떻게 믿지?”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전력을 다해 보게. 그러면 믿어 주지.”

초연운이 주먹을 내밀었다.

그 뜻을 읽은 검율천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세가 실타래처럼 풀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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