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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화 7장. 창천(蒼天)의 깃발 아래 영웅이 모인다(2)
무인은 힘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자.
그것이 초연운의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검율천 역시 그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무인에게 구질구질한 대화 따위는 필요 없었다.
동맹은 둘째치고 초연운은 검율천의 진정한 무력이 궁금했다. 일 년 전에 그와 자신 사이엔 분명 커다란 격차가 존재했다. 지난 시간 동안 그와의 격차가 얼마나 줄었을지도 궁금했다.
검율천이 정말로 신교를 흡수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창천맹의 가장 큰 적이 될 터였다. 그 전에 상대의 진정한 진신무력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초연운이 검율천에게 주먹을 내민 이유였다.
음유경과 신무월은 당연하다는 듯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창천맹의 무인들은 그들과 달리 주춤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양천화가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모두 맹주를 못 믿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럼 모두 물러나도록.”
“예!”
그제야 무인들이 큰 소리와 함께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중앙에 커다란 공터가 만들어지고 그 한가운데 초연운과 검율천이 마주보고 섰다.
“꿀꺽!”
뜻하지 않게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게 된 사람들의 입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팟!
그 순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움직였다.
콰앙!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눈으로 미처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먼저 격돌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강렬한 풍압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덮쳤다.
“크윽!”
“음!”
마치 수천, 수만 개의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은 아픔에 무인들 대부분이 눈을 질끈 감고 뒤로 물러났다.
퍼엉! 펑! 펑!
그 순간에도 연신 격돌음이 터졌다.
초연운과 검율천은 자신들의 심득을 마음껏 풀어냈다.
소림사에서 얻은 심득을 초연운은 이곳 소화산에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검율천도 마찬가지였다. 뇌정류에 호교심공의 묘리를 받아들여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그의 몸에는 가공할 힘이 축적된 채 분출할 기회만 찾고 있었다.
초연운과의 대결은 그가 그토록 찾고 있던 큰 기회였다. 무엇보다 초연운과 싸우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고, 손과 손이 얽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통나무 같은 다리가 예상치 못한 궤적으로 날아오기도 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묘수가 연신 펼쳐졌다.
두 사람 모두 초식이나 형에 얽매이는 단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고, 간단한 동작 하나가 신공절초가 되었다.
콰아아!
폭풍 같은 기파가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대지가 초토화되었다.
창천맹의 무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과연 같은 인간들의 대결인가 싶었다.
그야말로 천외천의 싸움이었고,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두 사람의 싸움은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콰쾅! 콰콰쾅!
인간들의 대결일진대 뇌성벽력이 연신 터졌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고막이 찢겨져 나가 피를 흘렸고, 내공이 고강한 자들조차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것이 절대고수들의 싸움?”
“저들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구나.”
저들의 싸움에서 눈을 떼고 싶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들의 싸움을 보니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몇 무인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갑자기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눈을 떼지 마.”
마치 사자의 으르렁거림처럼 거칠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모두의 몸이 굳었다.
단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천하에서 목소리만으로도 절정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을 이렇게 위축되게 만들 수 있는 남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담 대협!’
소리도 없이 조용히 나타난 남자는 바로 담호였다. 그가 현소 진인 등과 함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야.”
절대고수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눈과 기준이 높아지기 마련이었다. 담호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정신을 차린 고수들이 다시 초연운과 검율천의 싸움에 집중했다. 그사이 음유경과 신무월이 담호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봬요, 담 대협.”
“담 대협, 반갑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면사 속에 가려진 음유경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피부 위로 수천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웠다. 담호와 대면하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몸이 제멋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무월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빛은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호교심공의 심득을 일부나마 익혔기에 담호와의 격차가 많이 줄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담호와 맞대면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깨달았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격차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득히 벌어졌다.
머리가 아닌 몸이 그 사실을 먼저 느끼고 반응하고 있었다.
신무월이 포권을 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피가 날 정도로 힘껏.
화산이 내놓은 희대의 마인은 또다시 발전했다. 도대체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신무월은 미소를 지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웃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수양은 깊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협력을 위해서였다. 굳이 속내를 드러내서 서로 감정이 상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던 담호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보안이 부족했었나 보군.”
“그건 아니에요. 저희도 이곳을 찾는데 꽤 애를 먹었거든요. 창천맹이라는 세 글자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알면 담 대협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실 거예요.”
음유경의 말은 사실이었다.
검율천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것만으로는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을 읽고 제일 먼저 움직인 이는 바로 명천이었다. 명천은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세력을 구축하고, 수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제일 먼저 포섭한 이는 검율천과 같은 십삼지파에 속한 이들이었다. 명천은 십삼지파의 무인들 중 중도를 표방하는 자들을 찾아냈고, 검율천이 그들을 찾아가 무력으로 굴복시켰다.
그것이 신마련의 시작이었다. 십삼지파의 수장 중 네 명이 검율천에게 굴복하고 따르기로 했다. 그 후로도 명천은 마교의 무인들 중에서 불만을 갖고 있는 자들을 은밀히 포섭했다.
많은 이들이 명천의 수단에 넘어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원의 무인들 중 손을 잡을 만한 이들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그들보다 먼저 무인들과 접촉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적에 나섰다. 그들을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은 무척이나 은밀했고,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였다. 그 때문에 천하의 명천조차도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명천은 무척이나 끈질긴 인내심의 소유자였고,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을 추적했고, 결국 그들이 창천맹의 이름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창천맹은 단순히 소화산에서 무공만 수련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은밀히 섬서성 밖으로 나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문파의 수장들과 접촉을 했다. 그들은 긴밀한 연락 체계를 구축했고, 협력을 약속했다.
신마련이 그 흔적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때부터 지루한 싸움이 시작됐다. 명천은 은밀히 창천맹을 추적한 끝에 섬서성에 창천맹의 본거지가 존재한다는 것과 맹주가 초연운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거의 일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막대한 자금과 인적 자원이 소모됐다.
화산파 지척에 있었기에 담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부딪치게 되니 느껴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한층 더 진보를 한 것이다.
음유경의 시선이 담호의 곁에 있는 현소 진인을 향했다.
“혹시 현소 진인이신가요?”
“반갑네! 내가 현소일세.”
“신마련의 음유경이 화산의 현소 진인께 인사드립니다.”
“허허! 예를 거두시게.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네.”
“진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허허! 이 쓸모없는 늙은이를 보고 싶었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담 대협을 키워 내신 분이잖습니까.”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이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지. 뭐, 그 뒤는 제 혼자서 컸지만.”
“그 무슨 말씀을…….”
현소 진인의 말에 음유경이 당황하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신교에도 현소 진인처럼 현명한 어른이 한 명쯤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막 나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소 진인에게서 흘러나오는 선향이 그녀의 머리를 맑게 만들고, 가슴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담 대협의 사부라고 하더니 과연 범상치 않은 분이구나.’
신무월도 음유경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 도가나 불문의, 소위 있는 척하는 자들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신무월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현소 진인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콰아앙!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격돌음이 음유경과 신무월의 상념을 깼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초연운과 검율천의 싸움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적잖은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서로의 전력을 탐색하는 성격이 강했지만, 격전이 거듭될수록 그들은 싸움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승부욕을 자극한 것이다.
특히 초연운은 검율천과의 싸움에 깊이 몰입했다.
소림사에서의 기연 이후 심득을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소화하면서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창천맹 내부에서는 그의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상대를 찾기 힘들었다.
소천이나 해소월, 청운 등은 능히 그와 맞서 싸울 만했지만 같은 편이라서 그런지 투지가 크게 생기지 않았고, 담호와는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기에 초연운이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초연운은 강자와의 싸움에 늘 목말라 있었다. 강자와의 비무를 통해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가늠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검율천은 최적의 상대였다.
초연운은 호승심을 불태우며 팔황신권의 절초를 연이어 펼쳐 냈다. 그가 펼치는 팔황신권은 이제 사부 장일산의 그림자를 모두 벗어던지고 온전히 그만의 무공으로 재탄생했다.
그의 주먹이 공기를 찢어발기고, 대지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야말로 파천황의 무위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반면 검율천의 얼굴엔 곤혹스러운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가 초연운에게 기대했던 것은 친선을 다지는 수준의 비무였지, 이렇게 목숨을 도외시한 싸움이 아니었다.
초연운은 일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런 그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는 것은 자신 없었다.
최소한 초연운에게 중상을 입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적잖은 상처를 입을 것이다. 검율천은 그런 결과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초연운의 공격이 거세지면서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챠아아!”
초연운의 커다란 기합성과 달리 이전과 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초식이 펼쳐졌다.
콰콰콰!
초연운의 주먹에서 빛이 난다 싶더니 십여 개의 구체가 검율천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강환(罡丸)?”
강기의 집약체였다. 그것도 무려 십여 개나 됐다. 이 정도면 검율천도 더 이상 초연운을 배려할 수 없었다.
빠지직!
검율천의 전신에 백색의 뇌전이 명멸했다.
그 상태 그대로 검율천이 초연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 돼!”
그 모습을 본 음유경이 경호성을 내뱉었다.
이대로 두 사람이 충돌하면 어느 한쪽은 분명 큰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쿠우우!
갑자기 일진광풍이 그녀의 뒤쪽에서 불어닥쳤다. 담호가 움직인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검은 그림자만 희끗하게 보였을 뿐이다. 담호는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채 검율천과 초연운이 격돌하는 지점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담호를 향해 급속히 끌려갔다.
쾅!
파성추가 터졌다. 그리고 공기도 터졌다.
“크헉!”
“억!”
사람들이 벽력탄의 폭발에 휩쓸린 것처럼 사방으로 날려 갔다.
음유경과 신무월은 급히 호신강기를 펼쳐 자신들과 현소 진인을 보호했다.
폭풍은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폭풍이 남긴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주위에서 구경을 하던 무인들 중 상당수가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격전의 중심지를 망연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음유경과 신무월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대지에 깊은 고랑 두 개가 패여 있었다. 검율천과 초연운이 밀려난 흔적이었다.
그들은 각자 반대편으로 밀려나 있었고, 그 한가운데 담호가 우뚝 서 있었다.
‘미친!’
신무월이 속으로 비명과 같은 절규를 내뱉었다.
초연운은 이미 절대지경에 이른 고수였다. 검율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을 주먹질 한 방으로 멈추게 하다니. 그러면서도 양측 모두에게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 물론 초연운과 검율천이 담호의 공격을 잘 소화해 낸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의 미친 수준의 파괴력과 섬세한 공력 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서웠던 괴물은 더 끔찍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