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477화 (4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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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화 1장. 시대가 움직인다(2)

마교의 광풍은 무서웠다.

미친바람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진격은 거셌다. 형문산장을 비롯한 수많은 문파들이 마교가 불러일으킨 광풍에 휩쓸려 날아갔다.

마교는 그들의 앞에 있는 그 어떤 문파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조그만 문파부터 중견 문파까지 걸리는 모든 문파들을 무너트리며 북상했다. 그 어떤 후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제야 무림인들은 깨달았다. 아무리 바싹 엎드리고, 쥐 죽은 듯이 있어도 마교는 절대로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마교는 그 어떤 잠재적인 위협도 결코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문파들이 창천맹과 손을 잡자는 제안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들 중 창천맹과 손을 잡은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무림맹이 무너진 이후 그들은 이런 식의 연합(聯合)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천맹의 주축은 모두 젊은 무인들이었다.

노회한 강호 무인들은 그런 창천맹을 쉽게 믿지 않았다. 이렇게 난세에는 젊음의 혈기보다는 노회한 강호인들의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극히 적은 수의 문파들만이 창천맹과 은밀히 손을 잡고 협조했다. 그 외 나머지 문파들은 몸을 바싹 엎드린 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로써 그들도 알게 됐다. 섬서성의 창천맹이 무너지면 그다음 차례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결국 창천맹으로 전 무림의 힘이 결집되기 시작했다. 무인들의 대이동이 소리 없이 시작됐다. 덕분에 창천맹은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한편 소화산의 창천맹에선 한참 수뇌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초연운의 백전전승기 조각을 받고 찾아온 문파들부터 크고 작은 문파의 무인들, 심지어 낭인들까지 모여들면서 소화산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더 이상 수용하고 싶어도 수용할 자리와 막사가 없었다.

“맹주님, 맹(盟)을 옮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농성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뇌부가 초연운에게 창천맹을 옮길 것을 건의했다.

그에 초연운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장고에 들어갔다.

창천맹을 옮기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이곳 소화산은 섬서성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어 자칫하다가는 섬서성 전역이 전화에 휩싸일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창천맹보다 먼저 종남파와 화산파가 마교의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오래전부터 최적의 입지로 판단된 곳에 새로운 창천맹을 건립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문제는 아직 새로운 창천맹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완성 후 옮기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구나.’

마교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더 이상 주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초연운은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창천맹을 옮깁시다.”

“으음!”

“드디어!”

초연운의 결정에 수뇌부들이 반색을 했다.

“어디로 이동하는 겁니까?”

“새로운 맹의 입지는 정해진 겁니까?”

새롭게 합류한 무인들은 의문을 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대를 안고 합류한 창천맹의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제대로 된 전각은커녕 임시로 세울 막사조차 부족해서 새롭게 합류하는 이들은 거의 노숙을 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맹을 옮긴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숙소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초연운이 그들에게 말했다.

“순양(旬陽)에 이미 새로운 창천맹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옮길 겁니다.”

“순양?”

“벌써 새로운 성(城)을 세우고 있단 말입니까?”

무인들이 격동했다. 그러자 청운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저희는 일 년 전부터 순양에 새로운 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단지 안타까운 것은 아직 성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쉬운 대로 성을 거점 삼아 적들과 맞서 싸워 볼 수는 있을 겁니다.”

“오오!”

“순양이라면 호북성과의 경계. 그곳을 틀어막으면 마교의 북진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정말 절묘한 곳에 성을 세웠군요.”

새로이 합류한 수뇌부들이 창천맹의 발 빠른 대처에 감탄사를 토했다.

순양은 섬서성과 호북성의 경계에 존재하는 현이었다. 관도와 수로가 교차하는 곳으로 섬서성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이미 새로운 성을 세우고 있다고 하니 사정을 모르는 수뇌부들이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초연운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제법 큰돈이 들어와 급히 성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 하늘이 창천맹을 도우심입니다.”

“이 모두가 맹주의 지도력 덕분입니다.”

초연운을 바라보는 수뇌부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 중 몇 명은 아직 젊은 초연운이 이 거대한 세력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창천맹 무인들의 달라진 기도와 눈빛, 그리고 철저한 준비성까지 확인한 후 의심을 거뒀다.

현 강호 정세에서 초연운보다 완벽한 맹주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감복하는 눈빛으로 초연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초연운은 피하지 않았다. 창천맹의 맹주라는 중임을 받아들면서 그의 마음가짐도 자연 변했기 때문이다.

이주가 결정되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작년부터 소화산에 들어와 있던 창천맹의 무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져갈 짐은 거의 없었다. 입을 옷 몇 가지와 식기 정도가 전부였다. 그들은 정말 최소한의 물품으로 소화산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이제까지 사용하던 막사 같은 것들은 모두 버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한계에 달해 거의가 찢어지고 헤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주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것이 불행한 이유 때문이거나, 아니면 좋은 이유 때문인지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주 결정 후 많은 무인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초연운도 쉽게 잠이 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하고 산을 올랐다.

그의 목적지는 담호의 거처가 있는 철혈지옥수련관이었다.

이주 때문에 사람들이 빠진 철혈지옥수련관은 무척이나 쓸쓸했다. 맹을 이주하기로 결정하면서 철혈지옥수련관 역시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혈지옥수련관에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호!”

그의 눈에 홀로 서 있는 담호가 보였다.

철혈지옥수련관이 폐쇄되었어도 그는 유일하게 거처를 옮기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동안 담호의 분위기는 더욱 기묘해져 있었다. 예전처럼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에 무언가 더해져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하게 느껴지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담호의 분위기에 짓눌려 쉽게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초연운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호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가?”

“아무것도 아니야.”

초연운의 질문에 담호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에 초연운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들었지? 창천맹을 옮길 걸세.”

“그래!”

“휴우! 이제 진짜 마지막 싸움만 남았군.”

“자넨 잘할 거야.”

“그렇겠지?”

“그래!”

“그 말을 듣고 싶었네. 이게 무슨 청승인지.”

초연운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담호는 초연운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는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고민하고, 여러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런 면이 언뜻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려가 깊다는 뜻이기도 했다.

담호는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별빛이 가득 그의 무심한 눈에 박혔다.

그때 문득 담호의 검은 눈동자에 어린 빛이 일렁였다. 그는 밤하늘 한 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왜 그러는가?”

뒤늦게 초연운이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담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아!”

순간 그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에도 어둠을 가르며 확대되는 인영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펄럭!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자처럼 옷자락을 흩날리며 달려오는 인영은 분명 묘령의 여인이었다. 도발적인 미모가 인상적인 여인은 일직선으로 담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멈춰랏!”

초연운이 경호성을 내뱉는 순간 그를 제지하는 커다란 손이 있었다. 담호였다.

“호?”

초연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담호는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지만 초연운은 참고 기다렸다.

여인은 순식간에 담호와 가까워졌다.

“담…… 대협! 허억! 허억!”

그녀는 담호의 앞에 멈춰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온몸은 땀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가쁜 숨을 고르느라 잠시 말을 멈췄다.

담호는 그녀를 알아봤다.

“녹수빙.”

“역시……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겨우 숨을 고르고 말을 잇는 여인은 바로 환상선자 녹수빙이었다. 용화설을 따라갔던 그녀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말이다.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초연운만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 역시 눈치가 있는지라 입을 다물고 상황을 지켜봤다.

담호를 바라보는 녹수빙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서왕모께서…… 흐흑!”

그녀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그에 담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무슨 일이지?”

“서왕모께서 혈광사신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순간 담호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반면 초연운은 경악 어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왕모와 혈광사신이라니? 그들은 모두 사신제이지 않은가?”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담호를 바라봤다. 하지만 담호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무명자 사부님께 찾아가셨었어요.”

“무명자?”

“서왕모께서 그러시더군요. 무명자 사부가 혈광사신 호천명 대협이라고. 그리고 그는 자신과 같은 사신제의 일원이었다고.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서…….”

녹수빙이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을 했다. 그에 담호의 눈빛이 한없이 차가워졌다.

“정신 차려.”

“네?”

“어떻게 된 건지 차분히 말해.”

“예? 예!”

담호의 차가운 목소리에 녹수빙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저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해요. 하지만 서왕모께서 묵검협(墨劍俠) 남궁인후 대협을 만나고 난 이후 번민에 빠졌었다는 것은 확실해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그를……’이라는 말을 반복했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무명자 사부께 다녀온다고 말하고 나가셨어요. 그리고 며칠 후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셨어요. 그때는 기식이 엄엄해서 어떻게 미처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온 용화설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서신을 적어 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숙연해서 녹수빙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서신을 완성한 용하설은 녹수빙에게 넘기며 말했다.

―이것을 반드시 담호, 그 아이에게 전해 주거라. 명심하거라, 반드시 그 아이에게 직접 전해 줘야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숨을 거뒀다.

서신을 전해 받은 녹수빙은 용화설을 미처 묻어 주지도 못하고 도주해야 했다. 천사교에서 추적자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추적자를 뿌리치고 이곳까지 달려왔다. 그 때문에 그녀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서신?”

“여기 있어요.”

녹수빙이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담호에게 건넸다.

그녀가 건넨 서신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용화설의 피와 녹수빙의 피가 한데 묻어 있는 것이다.

담호가 서신을 펴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불행은 천사교의 명맥을 이은 마을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금서를 얻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 각자 다른 길을 걸었을까? 생각해 보면 후회가 막심하다.

세상은 우리를 사신제라고 부르며 추앙했지만, 우리 역시 욕망이 가득한 인간에 불과했다. 우리 중에 가장 순수한 사람이라면 풍월제 오라버니뿐, 나머지는 저마다 욕망이 가득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오직 풍월제 오라버니뿐이었다.

모든 비극은 천사교의 금서에서 시작됐다. 금서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이는 바로 호천명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금서를 풀지 말고 봉인해 두자고 했고, 우리는 그의 말을 믿었다.

금서를 봉인해 두고 나온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일차 정마대전이 발발했다. 마교는 무서운 기세로 중원을 장악했고, 우리는 그들을 막아야 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우리는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사대를 조직해 마교의 본단을 기습했다.

우리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마교의 수뇌부를 와해하고 교주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고, 승리를 목전에 뒀다.

결국 교주를 죽이는 데 성공했을 때 급작스러운 변고가 발생했다. 나의 연인인 이관이 풍월제 오라버니를 급습해 중상을 입힌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말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풍월제 오라버니가 큰 상처를 입고 난 후였다.

풍월제 오라버니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 겨우 도주했다. 나는 화가 나서 이관과 다퉜다.

그는 무척이나 혼란한 듯했다. 자신조차도 어떻게 된 건지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린 크게 싸웠고, 헤어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그렇게 유도한 것처럼. 하지만 그때는 너무 혼란스러워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호천명이 교묘한 언변으로 나의 연인이자 철혈무신이라 불리던 이관의 욕망을 부채질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부동심이 강했던 이관이 어째서 그렇게 쉽게 호천명의 언변에 넘어갔는지 몰랐었다. 하지만 먼 훗날 풍월제 오라버니가 다시 천사교의 금서를 봉인해 두었던 마을에 찾아갔다가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깨달았다.

호천명, 그가 천사교의 금서를 익힌 후 이관에게 펼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왜 천사교의 금서를 익혔는지 지금도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사신제가 깨졌고, 나의 연인인 이관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는 평생 그를 찾아 헤맸다. 그런 나에게 언젠가 호천명이 나타나 말했다. 그를 찾지도 말고, 자신에 대해 언급하지도 말라고. 만일 이 이상 이관을 찾으면 그를 해하겠다고.

결국 나는 그의 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남궁인후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관이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관은, 내가 사랑했던 연인은 이지를 잃은 실혼인이 되어 있었다. 어째서 그가 실혼인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호천명에게 그 죄를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강했다. 강해도 너무 강했다.

완전무결이라는 단어는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그를 상대할 때면 그의 사술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의 사술은 상대의 정신을 직접 공격하니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가 익힌 천사교의 금서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그가 그렇게 변한 건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을 이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 무엇을 하려는 건지.

하지만 한 가지 알아낸 것이 있다.

그가 이제까지 벌여 놓은 일은 치밀한 계획하에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피를 담보로 행해야 할 만큼 원대한 목표가 있다는 것을.

그는 다시 제단을 쌓으려 한다.

숭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이들의 피와 주검 위로.

부디 그를 막아다오.

이 끔찍한 악몽을 부디 끝내다오.

그리고 부디 이관에게 씌워진 저주의 굴레를 벗겨다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지옥에서라도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

―세상의 죄인 용화설이…….]

피와 눈물로 얼룩진 서신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가 담겨 있었다.

담호는 서신을 모두 읽은 후 초연운에게 건넸다.

서신을 읽는 내내 초연운의 표정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나중에는 놀랄 기력도 없는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담호는 그의 한숨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야공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찬연하게 빛나던 별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짙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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