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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화 2장. 세상을 희롱한 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1)
조가장(趙家莊)은 이십 년 전에 태곡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조가장이 지어질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큰 상단이 들어올 거라는 둥, 은퇴한 고관대작이 머무를 곳이라는 등의 소문의 돌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조가장의 주인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상단을 운영하면서 많은 돈을 벌긴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 태곡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노후를 보냈다. 가끔씩 밖으로 외출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조가장에서 보냈다. 때문에 그의 모습을 본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가장의 주인을 조 대인이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태곡에 큰 변이 있을 때나 가뭄이 닥쳤을 때 아낌없이 곡식을 풀어 구휼했기 때문이다.
조가장의 정문은 오늘도 굳게 닫혀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고서는 문이 열리는 법이 없는 조가장이었기에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따그닥!
그때 조가장의 정적을 깨는 말발굽 소리가 있었다.
무겁고 둔탁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 순간 일대의 공기까지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다.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새까만 말이 조가장의 정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새까만 말 위에 앉은 남자 역시 모든 것이 새까맸다.
마치 사자 갈기처럼 헝클어진 머리도, 몸에 걸친 피풍의도 새까만 것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느낌이 물씬 들 정도였다.
남자는 바로 담호였다. 그가 흑귀를 타고 조가장에 나타난 것이다.
담호는 잠시 말없이 조가장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엔 조가장은 별 이상한 점이 없어 보였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원일 뿐, 무림과는 그 어떤 접점도 없어 보였다.
그 역시 기예화에게 정보를 듣지 않았다면 이곳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예화가 거짓을 말할 리 없었다. 그녀 역시 나름 목숨을 걸고 알아낸 정보였으니까.
담호는 흑귀의 등에서 내려 정문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거대한 문이 한 걸음 앞에까지 가까워졌을 때 담호가 주먹을 들었다.
쾅!
평범한 사람의 키보다 족히 두 배는 높은 거대한 문이 마치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박살이 났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조가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그들 대부분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사신처럼 불길하게 보이는 담호의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담호에게 물었다.
“누, 누굽니까? 무림인이 이곳에 왜?”
“조관일 있나?”
“뉘신데 장주님을 찾으시는 겁니까?”
“조관일 나오라고 해.”
“그게 무슨?”
용기를 내서 담호에게 물었던 남자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담호의 정체는 알지 못하지만 그가 가장 존경하는 장주를 동네 개처럼 부르는 행태에 분노를 한 것이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장주님이 당신이 오라고 하면 오는 분인 줄 아느냐? 장주님은…….”
퍼석!
순간 남자의 머리가 어깨 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마치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가 곧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에 사람들이 눈만 끔뻑거리다가 잠시 후에 상황을 인지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살인이다.”
“조가장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은 놀라 비명만 질러 댔고, 개중에 무공을 익힌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담호에게 달려왔다.
순간 담호의 눈빛이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
무인들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담호의 몸 주위로 강렬한 기류가 휘돌았다. 폭마경이 펼쳐진 것이다.
“크아악!”
“아악!”
폭강에 휩쓸린 이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마치 오체분시를 당한 것처럼 산산조각 난 그들의 모습은 고깃덩이나 다름없었다.
“흐읍!”
“꺽!”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이렇게 끔찍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다 돋고, 전신이 오슬오슬 떨려 왔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등골이 떨리는 것이 도대체 눈앞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단 한 수로 십여 명의 사람들을 고깃덩이로 만들었지만 담호의 눈빛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모습이었다. 그런 담호의 모습은 사람들의 기를 더욱 질리게 만들었다.
평화롭던 조가장에 갑자기 난입해 살인을 저지르는 담호의 모습이 도저히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이유를 물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방금 전 앞에 나섰다가 고깃덩이가 된 동료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을 헤치고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이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양팔을 벌리며 담호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시오. 도대체 누구시기에 조가장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영준해 보이는 젊은 남자의 눈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였다. 남다른 기개와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담호가 물었다.
“넌 누구지?”
“내 이름은 조청운이오. 당신이 찾는 조관일 대협은 내 아버지시오.”
스스로를 조청운이라고 밝힌 젊은 남자는 담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 두려움의 감정은 있을지언정 비굴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청운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정말 미치도록 무서웠다. 평화로운 조가장에 침입해 무차별적인 살상을 행하는 남자가 그의 눈에는 마귀로 보일 뿐이었다.
담호가 물었다.
“조관일은 어디에 있나?”
“아버지를 왜 찾으시는 것이오? 아버지를 뵙고 싶으면 오늘은 물러가고, 차후 적당한 절차를 밟아 다시 찾아오시오. 그러면 뵐 수 있을 테니까.”
조청운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애써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의 모습은 태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다.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조청운을 바라봤다.
조청운은 조가장의 소장주였다. 평소 온순하면서도 사려가 깊었기에 조가장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심으로 따르고 아꼈다.
태곡에 가뭄이 들었을 때 곡식을 푼 것도 전적으로 그의 결정이었다. 지금 조가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가 거둬들인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여차하면 조청운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질 태세였다. 하지만 아무리 의기가 하늘을 찔러도 현실은 냉혹했다.
담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조청운을 바라봤다. 순간 조청운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심령의 압박에 심장이 옥죄어 오는 것이다.
담호는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 그의 심장은 오그라들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얼굴엔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허리는 새우처럼 굽었다.
“꺼어억! 꺼억!”
숨이 가빠지는 것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저, 저?”
“소장주님을 구하자.”
보다 못한 사람들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멈춰랏!”
웅혼한 목소리와 함께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장년인이 장원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땅을 가볍게 박찬다 싶었는데 어느새 공간을 단축해 담호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그가 바로 조가장의 장주인 조관일이었다.
그는 급히 조청운의 등에 내공을 주입하며 물었다.
“괜찮느냐? 청운아.”
“괘, 괜찮습니다.”
웅혼한 내공이 들어오자 조청운이 원래의 혈색을 되찾았다. 그가 목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토해 냈다.
그 모습에 모두가 놀라 눈을 크게 치떴다.
그들 대부분이 조가장에서 이십 년 이상을 함께했지만 조관일이 무공을 익힌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방금 전 조관일이 보여 준 극한의 경공술은 무공을 익히지 못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실로 엄청난 경지가 분명했다.
“장주님이 무공을 익히셨단 말인가?”
“뭐야?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웅성거렸다.
한편 조관일의 얼굴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살육을 행하는 담호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을 두고 웅성거리는 조가장 식구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조관일이 조청운에게서 손을 떼며 담호에게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누구기에 조가장에서 살육을 저지르는 건가?”
“몰라서 묻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도대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정말 그렇게 생각해?”
순간 조관일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담호의 눈빛이 마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조관일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방금 전까지 당황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가운 눈빛과 더불어 냉혹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내 정체를 알고 찾아온 것 같군. 맞는가?”
“척사청련검(斥邪靑蓮劍) 조무극, 그것이 당신의 본래 신분이지.”
순간 조관일이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담호의 말을 인정하는 행동이었다.
조가장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장주님이 본래 무림인이었다는 건가?”
“그럴 리가!”
그들은 혼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조관일의 아들인 조청운도 마찬가지였다.
조관일이 무공을 익힌 것도 놀라운데 척사청련검이라니.
척사청련검은 한 세대 전의 고수로 일차 정마대전 당시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아직도 종종 회자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럴 리가! 척사청련검 조 대협은 일차 정마대전 막바지에 목숨을 잃었는데.”
“우리 장주님이 척사청련검 조 대협이라고?”
많은 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조청운은 담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아버지는 조무극이 아니라 조관일 대협이시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아버지, 아니라고 말씀하십시오. 잘못 찾아왔다고 저자에게 말하십시오.”
“…….”
“아버지?”
조청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지그시 깨문 조관일의 모습이 담호의 말이 진실이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가 다시 조관일에게 따져 물었다.
“아버지! 정말 아버지가 척사청련검이 맞습니까? 그런데 왜 숨기셨습니까? 마교에 맞서 싸운 자랑스러운 별호가 아닙니까?”
“그건…….”
조관일은 이번에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 모습이 조청운에게 조관일이 척사청련검 조무극이었다는 확신을 들게 했다.
그때 담호의 입술을 열렸다.
“그리고 또 있지. 진…….”
“닥쳐랏!”
순간 조관일이 담호를 향해 쇄도하면서 대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검 한 자루가 딸려 와 손에 잡혔다. 허공섭물로 대전 안에 있던 검을 끌고 온 것이다.
슈와악!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담호를 향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검에 응집된 눈부신 빛 무리, 검강(劍罡)이었다.
절대의 경지에 들어선 무인들만이 발현할 수 있다는 검강이 조관일에 의해서 펼쳐진 것이다. 그 말은 곧 조관일이 절대의 고수라는 뜻이었다.
쾅!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담호가 파성추를 펼친 것이다.
두 사람의 몸이 충격으로 동시에 흔들거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조관일이 뒤로 물러나면서 균형을 잡은 반면, 담호는 앞으로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슈우우!
제비처럼 바닥에 낮게 깔린 채 접근하는 담호의 모습이 섬뜩했다. 머리카락은 산발된 채 흩날리고, 두 눈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 눈?’
마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그 눈빛이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그에겐 척사청련검이란 별호 말고도 또 하나의 숨겨진 신분이 있었다. 자식에게도 말 못 하고, 지옥 끝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
그는 천사교의 진마사자(眞魔使者)였다.
평소엔 조가장의 장주로서 은인자중하고 있지만, 교주나 귀사의 호출이 있을 때면 비밀리에 출타해 진마사자로 활동을 했던 것이다.
담호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를 죽여서 입을 막아야 했다. 그가 천사교의 진마사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식인 조청운은 강호에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죽어랏!”
그는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담호를 공격했다.
천사교에서 배운 사술은 펼칠 수 없었다. 사술을 쓰는 순간 모두가 그의 진정한 신분을 더 의심할 것이다. 때문에 그는 척사청련검이라는 별호를 얻게 해 준 검공을 전력을 다해 펼쳤다.
쉬가악!
검강이 마치 채찍처럼 길게 늘어났다. 무려 삼 장까지 늘어난 검강은 마치 독사처럼 담호의 숨통을 노리고 날아왔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담호 앞에서 검강은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쾅! 쾅!
그의 주먹질 두 방에 검에 서려 있던 검강이 소멸됐다.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울컥!
애써 끌어 올렸던 검강이 소멸하면서 강력한 충격이 그의 내장을 찌르르 울렸다.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조관일은 급히 구명초식을 펼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담호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그극!
강렬한 인력이 발생해 그의 몸을 잡아 끌었다.
“크으으!”
조관일은 내공을 끌어 올려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씩 그의 몸이 담호에게 끌려가며 바닥에 깊은 고랑을 패게 했다. 그의 얼굴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꽉 움켜쥔 담호의 주먹이 보였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은 담호의 주먹이었다. 굳은살이 잔뜩 배긴 모습이 마치 뭉툭한 정(釘) 같았다.
조관일에겐 담호의 주먹이 마치 사신의 창(槍)처럼 보였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순간 조관일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언제고 이런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절대 자신의 비밀이 밝혀져서는 안 됐다.
비록 자신은 천사교라는 흙탕물에 발을 담갔지만 자식에게만큼은 자랑스러운 아비로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천사교의 진마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식이 얼마나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런 일만은 절대로 막아야 했다.
“으아아!”
그가 기합성을 내뱉으며 전신의 기를 모조리 방출했다.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선천지기까지 더했다.
잠혈폭마공(潛血爆魔功).
전신의 피와 내공을 폭발시켜 적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동귀어진의 수였다.
“같이 지옥으로 가는 거다. 권마!”
그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오히려 담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버지!”
“장주님!”
조청운과 조가장의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조관일을 불렀다. 하지만 조관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폭발적으로 기를 방출했다.
그 순간 담호의 파성추가 터졌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조가장 안에 엄청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크억!”
“으아악!”
폭풍에 휩쓸린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고, 담벼락과 전각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마치 조가장 한가운데서 화산이 폭발한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그 중심에 담호가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발치엔 처참하게 짓이겨진 혈인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잘 다져진 고깃덩이처럼 뭉개진 혈인은 바로 잠혈폭마공을 펼쳤던 조관일이었다.
“끄으으!”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수십 번은 죽었을 중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가공할 내공에 겨우 기대어 숨을 이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제……발 비밀을…….”
그가 애원했다.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비밀이 알려질 것이 더욱 두려웠다. 죽음 뒤에 자식이 느낄 배신감이 무서웠다.
담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와 시선을 맞췄다.
무감각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눈빛은 빈사상태에 이른 조관일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담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말해.”
“무얼 말하라는 거냐?”
“너 말고도 있잖아. 천사교의 사자가.”
“그건…….”
조관일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