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권마-481화 (4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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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화 2장. 세상을 희롱한 데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3)

상한천은 수뇌 회의를 소집했다.

이미 척관혈이 그에게 힘을 실어 준 상황이었다. 수뇌부들 중 누구도 감히 그의 소집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삼대군장과 새로운 칠대마인들, 호교원의 수장인 유령마제 위강휘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개개인이 세상을 위진시킬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상한천에게 집중됐다. 그들의 시선이 부담될 만도 할 텐데 상한천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회의를 주재했다.

“이제 마지막 전쟁만이 남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향후 강호를 지배할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방심하지 마시고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시길 먼저 당부합니다.”

“이 모든 게 군사의 공이 아니겠는가? 이 늙은이는 그저 군사의 혜안에 탄복할 뿐이라네.”

모두를 대표해 호교원주 위강휘가 입을 열었다. 수뇌부 대부분이 위강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상한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 혼자 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여하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창천맹의 뿌리를 뽑는 것이 지상과제입니다.”

“우리는 군사의 뜻대로 할 터이니 명만 내려 주게. 호교원의 늙은이들은 모두 준비가 되어 있다네.”

위강휘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수뇌부들 중 가장 연장자인 위강휘마저 상한천에게 힘을 실어 주자 그 누구도 감히 상한천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상한천은 미소로 위강휘의 도움에 화답했다.

상한천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중인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잘한 승리가 아닌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중원의 무인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승리를 해야 합니다. 자잘한 계획 따윈 필요 없습니다. 압도적인 힘으로 몰아붙일 겁니다. 전 중원이 우리의 무서움을 인지할 수 있도록.”

“전……면전을 하자는 겁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교도들의 희생이 커질 텐데.”

칠대마인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자잘한 희생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저 오만한 중원의 무인들에게 우리는 강한 인상으로 기억돼야 합니다. 감히 건들 수도 없고, 대항할 수도 없는 그런 존재로. 그래야만 저들이 차후에도 감히 본교에 역심을 품지 못할 겁니다.”

상한천이 스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 겁을 집어먹을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각오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냉혹한 모습을 보여 줘야 했다.

나라를 세우는 것도 힘들지만,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십상이었다.

이전까지 마교는 중원의 문파들에 무력을 사용하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포교를 하는 두 가지 정책을 혼용했었다. 그 덕에 일반 백성들 사이에도 신교가 많이 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책을 전환할 때였다.

백성들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범접치 못할 위엄을 각인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이상 자잘한 계획 따윈 필요 없습니다. 일거에 밀어붙여 단숨에 창천맹을 멸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그 전까지 휴식을 취하면서 충분히 힘을 비축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빌려 십삼지파의 수장들에게도 전하겠습니다. 더 이상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방관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본교의 영세무궁한 군림을 위한 위대한 성전(聖戰)입니다. 모든 지파가 빠지지 않고 참여하길 바랍니다. 그러지 않을 시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으음!”

상한천의 선언에 장내의 수뇌부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마교의 오랜 역사 동안 십삽지파는 꽤나 독특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교의 일맥이 분명하지만, 통제는 거의 받지 않는 것이다. 교주가 그들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었지만, 그들에게도 거절할 권리가 있었다.

그 때문에 마교 내부에서는 십삼지파를 고깝게 보는 시선도 적잖게 있었다. 하지만 십삼지파의 힘이 워낙 대단한 데다 개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그 누구도 정면으로 질타하지 못했었다.

지금 상한천의 발언은 그동안의 금기를 깨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한천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봤다. 그동안 마교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도 중원의 변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십삼지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교주 척관혈의 권위가 최고에 이른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지금이 아니면 십삼지파를 완벽하게 복속시킬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없을 터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빌려 상한천은 십삼지파의 수장들에게 경고의 발언을 날린 것이다.

“음!”

상한천의 강경한 발언에 몇몇 수뇌부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를 이해하면서도 혹시 모를 십삼지파의 반발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뇌부들은 상한천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그래! 지금이야말로 신교의 위대한 통합을 이룰 때다.’

‘십삼지파의 반발 따위가 무엇이 두려울까? 그래 봤자 본류가 아닌 지파에 불과할 뿐인데.’

그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비췄다.

상한천은 그런 수뇌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반드시 신교의 영원한 군림의 토대를 내 손으로 만들어 내겠다.’

군사 된 자로서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존재하지 않았다.

냉철하기만 하던 상한천의 얼굴에 언뜻 욕망의 빛이 떠올랐다.

***

“아미타불!”

소천이 저 멀리 보이는 마교의 토성을 보며 염주알을 굴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격동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림을 멸문시킨 불공지대천의 원수가 저 앞에 있었다. 그들이 토성을 쌓고 막사를 짓는 게 보였다. 그런데도 움직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힘들게 했다.

소천의 등 뒤로 소림의 승려들이 보였다. 소림의 혈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맹목적으로 소천을 따르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소천과 비슷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드르륵!

그들이 염주를 굴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부처를 모시는 불문의 제자로서 살생은 엄금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 년 전 스승과 사형제들을 잃은 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살심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은 불심을 닦아 부처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살계를 열어 마교도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소림의 초석이 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염라승(閻羅僧)이라 칭하고 피처럼 붉은 가사를 몸에 걸쳤다. 그들이 어떤 각오로 이번 대전에 임하는지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한동안 그들은 마교의 토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 한 명 섣불리 나서 분노를 표출하거나 싸우러 가자고 선동하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들은 깊은 분노를 숙성시켰고, 단 일격에 적들의 숨통을 끊을 기회만을 기다렸다.

마교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때가 그들이 나설 때였다.

소천이 시선을 돌려 사제들과 사질들을 바라봤다.

“아미타불! 이제 그만 성벽을 내려가세.”

“예! 사형.”

염라승들이 두말하지 않고 소천을 따라 성벽을 내려갔다.

성벽을 내려온 소천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 반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차분한 분위기의 여검객이 일단의 무리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소천이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해 소저.”

여검객은 바로 해소월이었다. 해소월도 미소를 지으며 소천에게 인사를 했다.

“소천 대사.”

“대사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예전처럼 소협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럴 수 있나요? 소림사의 장문인이신데요.”

“소림은 이미 망한 문파입니다. 예의가 과하십니다.”

“저는 소천 대사가 반드시 소림을 부흥시킬 거라고 믿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소천의 시선이 해소월 뒤쪽에 있는 무인들을 향했다. 이곳 창천맹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지 못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기세를 발산하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이는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초로의 무인이었다.

손을 대기만 해도 베어질 것 같은 예기가 절로 발산되는 무인. 그 자체로 완성된 검(劍) 같았다.

소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본능적으로 무인이 고절한 경지에 이른 검객이란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해소월이 무인을 소개했다.

“이분은 저의 사부님이시자 해남파의 문주이신 능천월 대협이세요.”

“아! 해남파의 장문인이셨군요. 소승 소천이 능 대협께 인사드립니다.”

“과한 예를 취할 필요 없네. 만나서 반갑군.”

능천월이 오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해남파는 비록 구대문파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 못지않은 전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능천월의 자부심 또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소천이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렇게 합류해 주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네. 나 역시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마교가 중원을 장악하면 외딴 섬에 불과한 해남도는 고사해 전멸할 테니까. 될 수 있으면 중원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지.”

능천월의 눈빛이 서늘했다.

대대로 해남파의 주인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절대의 검객이었다. 이제는 멸문한 남궁세가의 주인이나 무당파, 화산파의 최고수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엄청난 검공의 소유자인 것이다. 실제로 능천월 역시 절대지경에 달해 검의 극의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마교의 손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해남파의 생존을 위해서 마교와의 대전에 참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해남파를 지킬 최소한의 제자만을 남긴 채 정예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왔고, 제자인 해소월을 만날 수 있었다.

해남파의 합류는 창천맹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켰다. 그들은 지금 맹주인 초연운을 만나고 배정된 거처로 가는 길이었다.

해남파뿐만이 아니었다. 청성파, 아미파, 점창파 등 마교에 그나마 피해를 적게 입은 문파들이 정예들을 이끌고 속속 합류했다. 그 덕에 며칠 사이에 창천맹의 전력은 또다시 크게 늘어났다.

예전 같으면 각 문파 사이에 신경전이라든지 서로 질시하는 소모적인 감정이 오갔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직은 젊은 초연운이 맹주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을 테고. 하지만 지금 창천맹 내에선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에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정이 그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만든 것이다.

초연운을 직접 만나 본 능천월은 그가 어리다고 깔보지 않았다. 절대지경에 오른 고수답게 초연운의 경지를 알아봤고, 그래서 흔쾌히 그를 맹주로 인정을 한 것이다.

“늦게 합류한 주제에 자네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지 않을 테니, 부디 우리를 잘 이끌어 주게.”

“어찌 제가…….”

“장강의 앞 물결이 뒷물결에 밀린다는 말, 그동안 나는 믿지 않았었네. 하지만 이젠 인정하네. 당금 무림엔 새로운 물결이 필요하고, 그것이 자네들이라는 것을. 그러니 자네들이 이끄는 대로 따르겠네.”

“능 대협?”

“말이 길어졌군. 어서 들어가서 쉬게나. 우리도 먼 길을 왔더니 피곤하군.”

“알겠습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부디 자네와 소림사의 행보에 무운이 깃들길 빌겠네.”

“감사합니다. 능 대협과 해남파도 무사하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럼!”

능천월과 해남파의 제자들이 소천과 염라승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지나쳐 갔다.

소천이 염라승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거처에 가서 쉬고 있거라. 나는 잠깐 들를 곳이 있다.”

“예! 사형.”

“알겠습니다, 사숙.”

염라승들이 소천에게 인사를 한 후 거처로 돌아갔다.

혼자가 된 소천이 향한 곳은 창천맹 심처에 있는 모옥이었다. 주변의 커다란 전각들과 대비되는 초라한 모옥에는 예상외로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창천맹에서도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 있는 곳이었고, 초연운도 그 때문에 특별히 이곳에만 세 겹, 네 겹의 경계망을 구축하고 모옥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케 했다.

모옥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소천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종리 소저, 저 소천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곧 안에서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천은 모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옥 안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진한 약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모옥 안에는 수많은 약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한쪽에서는 뜨겁게 달궈진 약탕기 십여 개가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약탕기 앞에는 모옥의 주인이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소천이 모옥의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바쁘신가 보군요, 종리 소저. 제가 괜히 찾아왔나 봅니다.”

“아니에요.”

부드럽게 고개를 젓는 여인은 바로 종리연이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종리 소저.”

“소환단 때문에 찾아온 거죠?”

“죄송합니다.”

종리연의 말에 소천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자 종리연이 벽 한쪽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약장에서 제법 큰 목함 하나를 꺼냈다.

종리연은 목함을 소천에게 건네며 말했다.

“부탁하신 소환단이에요. 최선을 다해 만들었는데 겨우 이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목함 안에는 서른 개의 소환단이 들어 있었다.

소환단을 확인한 소천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만큼이나 만든 것도 정말 대단합니다. 아마 종리 소저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이렇게 수월하게 소환단을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진심으로 탄복을 했다.

소천과 염라승들은 소림사를 탈출할 때 수많은 비전을 갖고 나왔다. 그중 하나가 대환단과 소환단의 제조법이었다.

약효는 대환단이 단연 월등했지만, 아무래도 들어가는 약재가 워낙 귀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필요한 약재를 모두 구해도 만드는 과정이 너무 고되고 섬세한 기의 운용이 필요해서 한 세대에 한두 알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소림사의 전성기에도 가지고 있던 대환단은 몇 개 되지 않았다.

대환단에 비해 그나마 만드는 것이 수월하다지만, 그래도 소화단을 만들기 위해선 의술과 약리에 정통해야 했다. 현 시점에서 그것이 가능한 이는 종리연 한 명밖에 없었다.

때문에 소천은 종리연에게 부탁해 소환단을 만들었다. 이 소환단은 소림사를 다시 재건할 때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종리 소저. 덕분에 마교와의 싸움에 전력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소환단을 만들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무림의 태산북두였던 소림사의 비전 신단이 바로 대환단과 소환단이었다. 그런 비전 신단의 제조법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종리연에겐 큰 수확이었다.

비단 두 문파뿐만이 아니었다. 창천맹에 참여했던 문파들 중 상당수는 그녀에게 부탁해 자파의 실전된 영약을 만들었다.

매화신단, 소환단, 그 외에도 수많은 영약을 만들면서 그녀의 약에 대한 지식은 더욱 깊어졌다. 그녀의 조그만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존재하는지 소천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소천이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종리 소저께서는 혹시 독문 영약을 만드실 생각이 없습니까? 혹시 만들게 되신다면 저희 소림에도 꼭 한 알 나눠 주시길 바랍니다.”

“죄송해요. 저는 더 이상은 영약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에요.”

“더 이상? 그럼 이미 만들긴 하셨다는 거군요.”

“맞아요.”

“그럼 영단은 혹시 그분에게?”

“네!”

종리연은 숨기지 않고 솔직히 대답했다.

소화산에 머물면서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영단을 만들었다.

세상에서 오직 한 명, 담호를 위해 만든 영단이었다.

온몸을 내던져 싸우기에 늘 부상을 달고 사는 담호였다. 종리연은 그런 담호를 항상 보살펴 줄 수 없어 늘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담호를 위해 오직 하나뿐인 영단을 만들었고, 그가 아닌 그 누구를 위해서도 영단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종리연의 확고한 생각을 읽은 소천은 더 이상 부탁하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담호를 위해 종리연이 만든 영단이라면 감히 자신이 탐할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리연이 열린 창문을 바라봤다. 창 너머 어둑해지는 하늘이 보였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기다림이 오래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란의 시대에 그녀가 바라는 유일한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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