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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83화 (48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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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화 3장. 물러설 수 없는 전쟁에 모든 것을 건다(2)

창천맹과 마교가 격돌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천하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창천맹과 마교의 싸움을 주제로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강호의 운명이 바뀌는 싸움이었다. 창천맹이 승리한다면 그래도 기존의 질서가 어느 정도 유지될 테지만, 마교가 승리하게 되면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시대가 열릴 터였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강호와 상관없는 이들조차도 그들의 싸움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니, 강호와 관계없는 자들이 있을 수 없었다. 마교가 중천이라는 포교 조직을 운용하면서 수많은 신도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마교를 믿는 자들은 강호와 상관없는 자들에게도 포교를 하려 했고, 그로 인해 곳곳에서 충돌이 생겨났다. 그 때문에 천하는 더욱더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민심은 흉흉해졌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불신만이 가득한 세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세상은 점점 지옥이 되어 갔고, 또 미쳐 갔다.

서협(西峽)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협은 섬서성과 호북성, 하남성이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있는 조그만 도시였다. 한참 창천맹과 마교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순양과는 불과 수백여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이었다.

서협 역시 창천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마교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한참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비록 두 세력처럼 무기를 휘두르면서 싸우진 않았지만, 소모적인 감정 싸움과 서로를 향해 퍼붓는 폭언으로 인해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서협의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낯선 이들은 서협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감시의 눈길을 받아야 했다.

그런 서협에 유독 눈에 띄는 일인일마(一人一馬)가 들어왔다.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새까만 말에 타고 있는 새까만 피풍의를 걸친 남자였다. 그는 등장부터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무슨 놈의 눈빛이…….’

‘헉!’

단지 눈빛만 보았을 뿐인데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창천맹의 편을 들던 사람들이고, 마교에 넘어간 사람들이고 가릴 것 없었다. 그들은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신비한 경험을 했다.

평소라면 도발적인 감정을 담아 노려봤을 사람들조차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생업에 열중하는 척했다. 하지만 그들의 온 신경은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바로 담호였다. 그가 창천맹과 마교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순양 근처의 서협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담호는 서협에서 가장 큰 객잔인 청리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

점소이가 반갑게 맞이하다 말고 석상처럼 몸이 굳었다. 그만큼 담호의 눈빛이 살벌했기 때문이다. 점소이도 이곳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별별 사람들을 다 봤다고 자부했지만 담호와 같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

단지 눈빛을 본 것뿐인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숨이 가빠 왔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점소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담호가 이미 창가의 자리에 앉은 후였다. 그가 서둘러 담호에게 달려가 고개를 조아렸다. 감히 눈을 마주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소, 손님. 어떻게 식사만 갔다 드릴까요?”

“저녁을 갖다 주고, 방도 하나 준비해다오.”

“주, 주무시고 가실 겁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후딱 준비해 놓겠습니다.”

“술도 한 병 가져오너라.”

“예!”

점소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후 주방으로 달려갔다.

혼자 남은 담호는 예의 무심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산서성 태곡에서 하남성 서협까지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잠깐씩 쉴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흑귀의 등에서 보냈다.

보통의 말이었다면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탈진해 쓰러졌을 테지만, 흑귀는 일반적인 말이 아니었다.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명마였고, 인간으로 치자면 청장년에 해당하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지구력을 가진 덕분에 약간의 휴식만으로도 별 무리 없이 내내 달릴 수 있었다. 덕분에 태곡을 떠난 지 불과 이틀 만에 무려 이천 리나 떨어진 이곳 서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그는 지옥이 된 세상을 봤다.

꼭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지옥이 아니었다. 인간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지옥이었다.

서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도 불신의 기운이 팽배해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심이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반적인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담호가 말없이 거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점소이가 술과 간단한 안주가 든 쟁반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여, 여기 술과 안주 나왔습니다. 드시고 계시면 저녁을 내오겠습니다. 그럼…….”

“여기 유명한 학관이 있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유명한 학관이라면 명일학관이 있지요. 유명한 학자님들도 다수 배출해서 단연 첫손에 꼽히는 곳입니다.”

“명일학관?”

“예! 그런데 왜 명일학관을 찾으시는 건지요?”

“알 것 없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점소이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혼자 남은 담호는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그윽한 주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담호는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단지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혀와 식도가 타는 것처럼 짜릿했다. 그만큼 독주였다.

담호는 말없이 독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그런데도 취기가 올라오지 않는지 멀쩡한 모습이었다.

담호는 식사까지 모두 마친 후 방으로 올라갔다. 담호가 무서워서였는지 모르지만 배정받은 방은 객잔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도 잘 관리했는지 내부는 꽤 깔끔했다.

담호는 침상에 누워 잠을 청했다. 술도 한잔해서 그런지 담호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조용한 방안에는 오직 담호의 깊고 고른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드르륵!

조용한 소리와 함께 담호가 머물고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뒤이어 서너 명의 사람들이 발소리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학사복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곤히 잠든 담호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화를 했다.

“권마가 확실한가?”

“맞다. 용모파기를 확인했다.”

“권마가 왜 여기에?”

“그것이 중요한가? 그가 천일취에 취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하기는…….”

그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점소이가 담호에게 건넨 술은 천일취(千日取)라는 이름의 명주였다. 일단 한번 마시면 천 일을 취한다는 이름처럼 독하기 그지없고, 한 병을 비우면 아무리 내공이 고강한 자라고 할지라도 꼬박 하루를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독이 아니기에 만독불침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남자들이 담호가 잠든 방 안에서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이유였다.

“이 정도라면 굳이 관주님에게 알리지 않고 처리해도 되겠는걸.”

“그러게 말이야. 권마라고 하도 떠들어 대서 긴장했었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해결하겠는데.”

스릉!

남자들이 품속에 숨겨 온 검을 꺼내 들었다.

그들은 검을 들고 담호가 누워 있는 침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들의 얼굴엔 희열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천하에 악명이 자자한 권마를 자신들의 손으로 목숨을 끊는다고 생각하니 손끝이 짜릿하고 심장이 절로 빨리 뛰었다.

그들의 검이 담호의 가슴과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퍼엉!

갑자기 선두에 있던 남자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우와악!”

“뭐야?”

넋 놓고 있다가 졸지에 피분수를 뒤집어쓴 남자들이 놀라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만큼 끔찍한 광경이었고,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그때 이제까지 죽은 듯 누워 있던 담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주먹에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남자들은 동료의 머리가 터져 나간 것이 담호가 일격을 날렸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말도 안 돼! 분명 천일취에 취했을 텐데. 어떻게?”

그들의 상식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일취에 취한 자는 절대로 중간에 깨어날 수 없다는 상식이.

“취했다면 그랬겠지.”

담호가 일어서며 말했다.

주르륵!

그런 담호의 손끝에서 물이 흘러내리며 짙은 주향이 방 안에 가득 퍼져 나갔다.

그 광경을 목도한 남자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담호가 내공으로 천일취를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짐작처럼 담호는 몸에 들어온 천일취를 내공으로 감싸 위장 한쪽에 밀어 넣고 있다가 손끝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고 있었다.

독행류의 독문심공인 암혼심공은 현문정종인 화산파와 마도의 정점인 마교의 장점만을 취합해 만들어졌다. 그런 암혼심공에게 천일취의 주독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멀쩡한 담호의 모습에 남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동료의 머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목도한 그들이었다.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일단 목도한 이상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검을 들고 있는 손이 마치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그들이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해 소리쳤다.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이냐? 권마!”

“가, 감히 명일학관 사람을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공이 실린 그들의 목소리에 방 안의 기물이 ‘웅웅’ 진동을 했다. 그만큼 그들의 내공은 심후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담겨 있었다.

담호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왜 기습했느냐?

정체가 뭐냐?

한마디라도 물을 법한데 담호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들을 더욱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제야 왜 그렇게 강호인들이 담호를 무섭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어떤 대화나 타협이 통하지 않는 최악의 상대.

쾅!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선두에 있던 사내가 담호의 일격에 피떡이 되어 밖으로 날아갔다.

비명도 없었다.

담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들이 폭음을 인지했을 땐 이미 동료가 벽을 뚫고 날아간 후였다.

“으으!”

그들의 입에서 절로 앓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오지 마라.”

“죽이겠다.”

그들이 검을 들어 담호를 위협했다.

그 순간 ‘쾅’ 다시 폭음이 울려 퍼지고 또 한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혼자만 남은 남자의 눈에 짙은 공포의 빛이 어렸다.

챙그랑!

그가 들고 있던 검을 떨어트리며 손을 번쩍 들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나는 시키는 대로 한 것밖에 없습니다.”

“…….”

“며, 명일학관입니다. 우리는 명일학관에서…….”

쾅!

그 순간 다시 한 번 폭음이 터져 나왔고, 말을 이어 가던 남자의 머리가 어깨 위에서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몸통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손을 움직이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담호가 쓰러진 남자의 시신을 넘어가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

점소이에게 명일학관을 언급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될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이 습격해옴으로써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담호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객잔을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학사들이 보였다.

그 한가운데 청수한 인상의 노학사가 있었다.

하얀 수염을 멋스럽게 기르고, 머리를 정갈하게 틀어 올린 그의 모습에선 꼿꼿한 기상이 느껴졌다.

노학사의 앞엔 객잔의 벽을 뚫고 날아온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시신은 고깃덩이와 다르지 않았다. 고깃덩이에서 흘러나온 피가 노학사의 신발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노학사의 발치에 구르고 있는 고깃덩이는 그의 제자였다. 살아 있을 적에는 제법 총명한 두뇌의 소유자여서 노학사의 총애를 받았었다. 하지만 고깃덩이가 된 제자를 바라보는 노학사의 얼굴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노학사의 시선이 담호를 향했다.

“어떻게 알았느냐?”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담호의 대답은 간단했다.

“조관일.”

“그렇군!”

그 한마디로 노학사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노학사의 이름은 지천휘였다.

명일학관의 관주로 이곳 서협에선 존경받는 명사였다. 그는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중요한 관직에 오르거나, 시인묵객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 덕에 천하 각지의 수많은 기재들이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이곳 서협까지 찾아왔다. 지천휘는 그런 기재들 중 특별히 뛰어난 이들을 골라서 제자로 받아들였다.

서협의 모든 사람들이 명일학관을 존경했다. 그리고 명일학관의 관주인 지천휘를 흠모했다.

지천휘는 서협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가 명일학관 밖에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치 구름 속의 신선처럼 그는 명일학관에서 두문불출하며 오직 제자를 양성하는 데만 힘을 쓸 뿐이었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담호가 머물고 있는 객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수많은 학사들과 함께.

지금 학사들이 발산하는 기운은 도저히 책만 읽고 산 서생들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것은 지천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천휘의 눈빛은 학사의 눈빛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우면서도 위압적이었다.

지천휘가 중얼거렸다.

“조관일, 입이 싼 줄은 알았지만 설마 내 정체를 밝힐 줄은 몰랐군. 차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그럴 거 없어.”

“뭐?”

“이미 죽었으니까.”

담호의 무심한 대답에 지천휘가 잠시 입을 벌렸지만, 이내 평소의 표정을 회복했다.

“그렇겠지. 네놈은 절대 누군가를 살려 두는 법이 없으니까. 내가 참으로 멍청한 말을 했구나. 오랫동안 학사 노릇을 했더니 머리마저 굳었어. 쯧!”

순간 지천휘의 기도가 바뀌었다.

그의 전신에서 산악 같은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은 도저히 학사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담호는 그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는 한때 염천왕이라는 별호로 불렸었다.

염천왕(炎天王) 지천휘.

일차 정마대전 당시 활약했던 오대무객 중 한 명이었다.

불같은 성격과 그에 걸맞은 열양지공(熱陽之功)으로 유명했었다. 특히 그가 익힌 열양지공은 양강 무공 계열의 최고봉으로 일단 한번 펼치면 일대가 초열지옥으로 변한다고 했다.

지천휘가 서협에서 학관의 관주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강호가 뒤집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진실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지천휘가 바로 천사교의 오사(五邪)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천사교를 떠받드는 다섯 개의 기둥. 지천휘는 그중 한 명이었다. 천병왕(千兵王) 오극과 더불어 오사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초강의 무인이 바로 지천휘였다.

“예까지 온 것을 보니 내가 오사 중 일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구나.”

“…….”

“그렇겠지. 조관일이 떠들었겠지. 허나 너는 이곳에 잘못 왔다. 오지 말았어야 했다. 왜인 줄 아느냐? 나는 조관일과 달리 천사교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조관일은 자식에게마저 자신이 천사교의 진마사자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하지만 그와 달리 지천휘는 명일학관의 기재들 중 특별히 자질이 빼어난 이들에게 천사교의 무공을 전수해 키웠다.

그들은 이미 지천휘가 천사교의 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도 스승의 길을 따르는 것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담호가 지천휘를 빤히 바라봤다.

“교주는 어디에 있지?”

“하! 교주님을 찾아다닐 시간이 있나 보구나. 네 친우가 맹주로 있는 창천맹과 마교가 격돌하고 있는데 말이다. 너는 친우가 걱정되지도 않느냐? 정말 듣던 대로 인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이구나. 너란 놈을 믿고 있을 초연운이 불쌍할 뿐이다.”

쾅!

그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며 지천휘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그가 발을 디딘 자리엔 깊은 고랑이 생겨나 있었다.

담호가 어느새 파성추를 날린 것이다. 하지만 지천휘 역시 이미 오래전에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담호의 공격적인 성향을 알고 있기에 도발을 하면서도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담호의 공격을 미리 감지하고 방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담호의 공격을 막아 낸 손바닥이 저려 왔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보다 담호의 파괴력이 훨씬 월등하다는 증거였다.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었다.

“놈!”

그가 분노 섞인 시선으로 담호를 노려봤다. 그런 그를 향해 담호가 걸어오고 있었다.

“너에게 조롱을 당해도 좋을 만큼 그는 가벼운 남자가 아니야.”

그가 있기에 담호는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초연운이라면 반드시 마교를 막아 낼 것이다.

담호는 그렇게 믿었다.

자신의 친구를.

그의 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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