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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권마-484화 (48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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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화 3장. 물러설 수 없는 전쟁에 모든 것을 건다(3)

지천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담호를 노려봤다.

심장박동과 어긋나는 담호 특유의 걸음이 사람의 가슴을 불길하게 자극했다. 지천휘와 같은 경지에 오른 무인조차도 영향을 받을 정도니 그의 제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꼴깍!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렇게 큰 소리로 침을 삼켰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만큼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담호의 모습에 압도당한 것이다.

수많은 학사들이 일대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담호는 마치 무인지경인 양 그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지천휘를 향해서만 걷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오만하다 못해 명일학관의 학사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였다. 그런데도 누구 한 명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담호라는 무인은 그들의 상식이 통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그가 보여 준 행보가 그것을 증명해 줬다.

언뜻 보기엔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싸우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게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담호를 보면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지천휘가 명령을 내렸다.

“뭐하느냐? 놈을 죽여랏!”

내공이 실린 그의 목소리가 담호에게 압도되어 가던 학사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와아아!”

“놈도 사람이다. 합공하면 죽일 수 있다.”

학사들이 담호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판관필과 아미자 같은 기문병기들이 들려 있었다.

판관필이나 아미자는 모두 크기가 작은 데다가 혈도를 찌르기 좋게 만들어진 무기들이었다. 학사로 위장하고 있는 이들이 사용하기에 최적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쉬쉬쉭!

공기가 갈라지고 판관필과 아미자가 담호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 순간 담호의 다리가 대지를 향해 힘껏 내리꽂혔다. 대진각을 펼친 것이다.

콰앙!

굉음과 함께 대지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대지에 발을 딛고 있던 학사들의 신형 역시 흔들렸다.

“크윽!”

“뭐, 뭐야?”

그들이 당황해하는 순간 담호의 몸에서 한 줄기 폭강이 휘돌았다.

독행류 유일의 강기공인 폭마경이 펼쳐진 것이다.

쿠콰콰!

전신에 폭강을 휘감은 채 담호는 학사들을 향해 온몸을 내던졌다.

“크아악!”

“악! 살려 줘!”

폭강에 휩쓸린 학사들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잘려 나간 팔과 다리가 이러 저리 날아다니고,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쓰레기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강타한 것 같았다.

담호의 궤적에 걸린 모든 것이 부서져 나갔다.

판관필도, 아미자도, 인간도…….

그 모습을 지켜본 지천휘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담호의 무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목도한 위용은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어린놈이 정말 대단하구나. 석년의 교주께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천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교주의 꿈에 동조해 오대무객으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오사가 된 지천휘였다. 비록 정체를 감추고 간간히 오사의 일원으로 활동했지만, 스스로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담호를 보고 있자니 왠지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제자들의 비명성이 처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수십 년의 적공이 담호 단 일인에 의해 물거품이 된 것이다.

비록 사제지간의 정은 그다지 없다지만, 자신의 손으로 키운 제자들이 담호에게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지천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놈!”

결국 그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담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

그가 양손을 활짝 펴자 강렬한 열기가 담긴 장력이 발출됐다. 열기가 어찌나 강렬한지 공기마저 이글이글 타올랐다.

“크악!”

장력의 경로 근처에 있던 학사들의 살이 녹아내릴 정도였다.

지옥염화장(地獄炎火掌).

대성하면 만근 바위도 단숨에 녹여 버린다는 전설의 장법이었다. 이제까지 지천휘의 지옥염화장에 당한 후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천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자신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의 무공은 참오를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을 깨부수고, 지옥염화장의 위력을 본래보다 몇 배나 더 강하게 만들었다. 때문에 지천휘는 석년의 교주가 와도 쉽게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담호와 지천휘 사이에 있던 학사 서너 명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담호의 코앞에까지 지옥염화장이 도달했다.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 폐가 녹아내릴 것 같은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담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지옥염화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우우웅!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독행류의 독문방호기공인 방패가 펼쳐진 것이다.

방패와 지옥염화장이 격돌했다.

츠츠츠!

순간 수만 마리의 벌 떼가 일제히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옥염화장은 담호를 잡아먹으려 했고, 방패는 그런 지옥염화장을 분쇄하려 했다.

방패가 열기를 어느 정도 상쇄시켰지만, 완전히 막아 내지는 못했다.

지옥의 열기에 담호의 머리카락 끝이 녹아내렸다. 눈썹이 날아가고, 옷에도 불이 붙었다. 그래도 담호는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마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그렇게.

“뼈까지 녹여 주마.”

순간 지천휘가 더욱 공력을 집중했다. 그러자 열기가 더욱 강렬해지며 대지가 촛농처럼 쭉쭉 녹아내렸다. 이름 그대로 지옥의 불길이 일어난 것이다.

순식간에 화염이 담호의 몸을 집어삼켰다.

“끝났다.”

“관주님이 권마를 잡았다.”

명일학관의 학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천하에 악명이 자자한 권마를 지천휘가 제압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기쁘게 한 것이다.

명일학관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문무 어느 쪽이든 탁월한 성과를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지천휘의 지론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평소에 감정을 잘 조절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가슴에 격랑이 휘몰아쳤다.

담호라는 존재가 주는 부담감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환호를 할 때 단 한 명만큼은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지천휘였다.

지옥염화장을 펼치는 당사자인 지천휘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발산하는 지옥의 열기와 화염이 아직 담호를 완전히 연소시키지 못했음을.

그의 적은 아직 건재했다.

본능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푸화학!

갑자기 불길이 거세게 요동치더니 양쪽으로 갈라졌다.

‘온다.’

지천휘는 이격을 준비했다.

마침내 담호가 거센 불길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카락 절반이 불길에 타서 곱실거리고, 옷도 대부분이 불타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몸에 화상의 흔적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도 방패가 그의 몸을 보호한 것이다.

지천휘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한 번 지옥염화장을 날렸다. 그 순간 담호가 대진각을 펼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그의 발아래 있던 거대한 암반이 성벽처럼 일어섰다. 그 직후 엄청난 불길이 담호가 있던 곳을 덮쳤다.

불길은 암반에 막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런!”

지천휘가 자신도 모르게 경호성을 내뱉었다.

그 순간 하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담호가 허공으로 신형을 띄운 것이다.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솔개처럼 담호가 수직 하강했다. 바로 지천휘를 향해서.

“크윽!”

지천휘는 감히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급히 뒤로 피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인 패착이 되었다.

허공에서 담호의 오른 다리가 마치 충차처럼 내리꽂혔다. 지천휘는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담호의 충각을 막았다.

쾅!

“크윽!”

다행히 공격은 막았지만 충격까지 모조리 해소할 수는 없어 그의 몸이 흔들렸다. 담호는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단양타가 호신강기를 두들겨 흠집을 내고, 그 사이를 단공벽이 파고들었다.

쩌어엉!

“크흡!”

공기의 결에 충격을 주어 발생한 충격파가 지천휘의 고막에 충격을 줬다. 고막에 충격을 받으면 균형 감각이 마비되기 마련이었다.

지천휘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무공은 절대지경에 다다랐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거렸고, 호신강기가 출렁였다. 그리고 지옥의 연환 공격이 시작됐다.

콰콰콰콰!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담호의 이십사연격.

육합혈산하(六合血山河).

독행류의 최종장이 지천휘를 향해 펼쳐진 것이다.

지천휘의 호신강기는 담호의 주먹질 네 번만에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전신을 든든히 지켜 주던 호신강기가 깨져 나가고 무방비 상태의 육체가 드러났다.

그런 지천휘의 육체 위로 나머지 십팔연격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몇 번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층층이 쌓인 충격은 그의 팔을 부수고, 정강이뼈를 수수깡처럼 박살 냈다.

“컥!”

지천휘는 더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트렸다. 그 순간 간신히 유지하던 공력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콰직!

쇄골이 산산이 부서지고, 내장이 파열됐다.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오르고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쿠웨엑!”

지천휘는 바닥에 누워 연신 피를 게워 올렸다. 그런 그의 얼굴은 이미 시꺼멓게 죽어 있었다.

“관주님!”

“모두 관주님을 구하라.”

이제까지 감히 싸움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던 학사들이 지천휘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두려워서 미친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 한 명 도주하지 않고 담호에게 덤볐다. 그들은 마치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부나방 같았다.

‘아, 안 돼!’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그 모습을 지천휘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오직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쾅! 쾅!

연신 터져 나오는 폭음에 지천휘의 몸이 들썩였다. 그의 얼굴 위로 누군가의 피가 흩뿌려졌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가르친 학사들의 피라는 것을.

지천휘가 수십 년 동안 이뤄 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담호 단 일인에 의해서.

“크아악!”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이끌고 온 학사들이 모조리 전멸한 것이다.

스르륵!

대신 누군가 발을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담호. 이 악귀 같은 놈!’

지천휘의 양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부모가 죽었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발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담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천휘가 겨우 고개를 들어 담호의 모습을 확인했다.

담호의 행색은 너무나 처참했다. 화상만 입지 않았다 뿐이지, 수많은 상처가 그의 전신을 도배하고 있었다. 지옥염화장에 당한 상태에서 학사들과 싸우다 보니 적잖은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상처를 입고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다.

지천휘는 그 눈빛을 보고 치를 떨었다. 그의 모든 것을 무너트린 악귀가 여전히 피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이다.

“크흐!”

그의 입술을 비집고 기괴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숨소리였다. 그러자 담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춰 그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호천명은?”

“크흐흐! 글쎄…….”

순간 담호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지천휘가 말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지천휘가 울컥 피를 토했다. 입과 가슴을 적신 핏속에는 부스러진 내장 조각이 섞여 있었다.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는 상처였다.

“흐흐! 아……쉽구나.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것이. 그 하나를 위해 평생을 경주해 왔거늘. 네놈 때문에 내 필생의 염원이 무너지는구나. 악귀 같은 놈! 너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악귀다. 차라리 너에겐 그……곳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구나.”

“그곳이 어디지?”

“흐흐!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 네놈 주위에 그곳을 아는 놈이 있는데. 틈에서 살아나온 자가…….”

“기산월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 혼술사. 크흐흐! 쿨럭!”

지천휘가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그의 눈빛이 서서히 꺼져 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교주가 이미 데려갔을 테니까.”

순간 담호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 모습을 상심한 거라고 지레짐작한 지천휘가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담호를 비웃었다.

“크하하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너는 그를 결코 혼자 둬서는 안 됐다.”

“일부러 혼자 둔 거야.”

“뭐라고?”

예상치 못한 담호의 대답에 지천휘가 눈을 부릅떴다. 흐려지는 그의 머릿속에 담호의 마지막 말이 스며들었다.

“그래야 호천명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이 살아생전 지천휘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

기산월은 대로를 혼자 걷고 있었다.

창천맹과 마교와의 대전이 발발한 이후 민심은 흉흉해졌고,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했다. 덕분에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있는 곳이 남양(南陽)이라는 제법 큰 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창천맹과 마교의 싸움은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첫 번째 격돌 이후 마교는 더욱 전력을 끌어모아 창천맹을 거세게 몰아쳤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펼친 것이다.

이전의 무림맹과 소림사조차 마교의 물량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천맹이 금방 무너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창천맹은 마교의 공세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창천맹에서는 연일 영웅이 나타나고 있었다.

첫날엔 초연운이나 해소월, 소천 같은 이름이 알려진 무인들이 위용을 드러냈다면 두 번째 격전에서는 십칠 인의 결사대 같은 자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세 번째 격전에서는 이름 모를 문파의 젊은 무인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튀어나왔고, 네 번째 격전에서는 또 다른 영웅이 무위를 드러냈다.

이제까지 다섯 번의 격전에서 제각기 다른 영웅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마교의 군사인 상한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만천하에 마교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정면 대결을 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작전이 되었다. 그 때문에 마교 내부에서도 상한천을 향한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될 정도였다.

결국 상한천은 생각을 바꿔 병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팽팽하던 전황이 다시 마교에 우세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또 어느 이름 모를 영웅이 나타나 불리한 전황을 다시 뒤집을 거라고.

난세는 영웅을 부르기 마련이었고, 부름에 답하기라도 하듯 천하 곳곳에서 영웅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영웅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기산월이 문득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봤다. 조용하던 거리 곳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리 곳곳에 낯선 인형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기산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나타났군.’

그는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언뜻 보기엔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전신에서는 자신과 같은 사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중심에 유달리 강렬한 사기를 풍기는 이가 있었다.

‘귀사.’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물이 제 발로 나타났다.

귀사가 말했다.

“교주께서 그대를 부른다. 나와 함께 가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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